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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2

    <62 – 1인분의 중압감>

     

    100포인트의 이득 때문에 동료들을 버린다.

    그건 어리석은 행동이다.

    단순히 포인트가 목적이었다면 이사벨, 지젤, 손오천과 함께 넷이서 포인트를 먹을 수도 있었다.

    이건 포인트가 목적이 아니다.

    헤스티아 억까 방지가 목적이다.

     

    ‘헤스티아는 애기야. 툭하면 멘탈이 터져.’

     

    갑자기 흑화하면 사람을 죽이는 미친년으로 변하는 건 아니지만 사소한 정신적 데미지가 쌓이고 쌓이다보면 누적된 스택이 터지며 사람이 흑화한다.

    영화 조커(2019)의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아서 플렉이라는 조커가 수많은 배신으로 작은 행복을 모두 잃고 삶을 지탱하는 의지마저 파괴당해 범죄자의 길을 걷듯이 헤스티아도 유사한 과정을 거친다.

     

    ‘여자조커가 있다면 헤스티아지.’

     

    용병들의 무모한 시도 탓에 닥친 위험에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아 합격했더니 돌아오는 평판은 동료들 골통을 갈아 부수고 혼자 합격한 비겁한 광전사.

    그녀 덕분에 목숨만이라도 간신히 건진 용병들은 그녀의 명예를 지켜주기는커녕 이를 악화시킨다.

    B그룹 제국귀족들은 그녀의 강함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며 괴롭히지만 A그룹 변방귀족들은 미개한 용병의 사정 따위에 관여하지 않는다.

    A그룹 평민들도 동료를 배신한다는 평판에 그녀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안식처도 가관이지.’

     

    <대답하는 문>과 벽 너머의 친구.

    그녀가 믿던 마음의 안식처는 허상이었다.

    원작게임의 111호는 공실.

    그녀의 상대는 사람이 아닌 사람 흉내를 내는 <대답하는 문>이었다.

    문의 목적 또한 그녀를 이용하는 것일 뿐.

    선의는 악의로 보답 받고, 넘쳐나는 악의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마음의 안식처마저 거짓된 유혹이었다.

    인간을 향한 믿음을, 살아가는 행복을 근본부터 부정당한 헤스티아의 마음은 어둠에 물들고, 그녀는 진정으로 사람 잡는 광전사가 되어버린다.

    모두가 그녀를 비웃고 모욕하기 위해 부르던 멸칭을 자신의 의지로 재현해내는 것이다.

    그 끔찍한 사건을 막기 위해 교관들이 현장에서 제지를 시도하다가 함께 살해당한다.

    교수들도 출동하지만 혼자서는 막지 못하는 놀라운 전투력을 발휘한다.

     

    1학년 1학기 중간고사에 벌어진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치 강력한 위험으로 이루어지는 동급생 무차별집단살육사건.

    그 잔혹한 비극을 막는 방법은 너무나도 간단했다.

    헤스티아가 부당한 핍박을 받지 않도록 보살피고 플레이어가 약간의 호의만 베풀면 된다.

    인간을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방지할 수 있는 비극인 것이다.

     

    “헤스티아가 걱정 돼. 다들 헤스티아에게 나쁜 소리를 하잖아. 같은 조원이 되어주고 싶어.”

    “어쩔 수 없지. 아이가 착한 짓을 하겠다는데 응원은 못할 만정 싫은 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아.”

     

    이사벨은 그런 내 마음을 이해해주었다.

     

    “그럼 우리가 세 사람이랑 같이 조를 짤게.”

    “신세 지겠습니다.”

     

    도로시와 록펠.

    입학시험에서 연이 닿았던 두 사람이 세 사람과 한 조가 되었다.

    덕분에 나는 헤스티아와 지고쿠, 롯토 세 사람과 교장의 강의에서 외톨이조, 낙오자조, 떨거지조의 조원으로 함께 하게 되었다.

     

    ‘즈앙은 의외로 사교성이 좋구나!’

     

    여우가면을 쓴 즈앙도 성격 나쁘기로는 여기 세 사람보다 더하고 그보다 더한 사디스트 변태도 있지만 적어도 얘들은 일반인 코스프레가 가능했다.

    그에 비해 평판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헤스티아와 롯토, 그런 거 없이 그냥 타고나기를 생또라이로 태어난 지고쿠는 모두에게 버림받았다.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A그룹 수석 오크노디와 나머지로 이루어진 기괴한 조였다.

     

    “왜 저랬대?”

    “애잖아. 마음이 착해서 그랬겠지.”

    “쯧. 마음 편히 욕하지도 못하겠네. 입을 잘못 놀리면 롯토랑 같은 꼴이 될 거야.”

    “좋겠네, 저 덩치 큰 광전사는. 어린애 뒤꽁무니에 숨은 덕분에 욕은 안 먹을 수 있어서.”

     

    흥 백날 쫌생이처럼 뒤에서 뭐라고 해봐라.

     

    “울 헤스티아가 얼마나 귀여운데. 저런 나쁜 소리 하나도 듣지 말아요.”

     

    귀를 막아주려고 까치발을 들어올리며 손을 뻗는데 앗차차.

    2m가 넘는 헤스티아한테는 손이 안 닿네?

    책상을 밟고 올라가야 하나 고민하는데 헤스티아가 내 겨드랑이에 양손을 넣고 슥 들어줬다.

     

    “이거 하고 싶었어?”

    “아니거든요!”

     

    누가 어부바 해달래!

    손을 들어서 귀를 덮어주니까 헤스티아가 좋다고 헤벌레 거린다.

     

    -누가 친목이나 다지라고 했나?

    -조는 그러라고 짜준 것이 아니다!

     

    교장의 불호령에 학생들이 찔끔 놀랐다.

     

    “교장님은 진지한 면학분위기를 원하시나봐. 미안하다, 오크노디.”

     

    사람 어부바 그만둬서 아쉬워하는 어린애처럼 취급하지 말라고!

     

    -조 선정은 고통과 절망, 비대칭적인 조직사회에 대한 증오심을 기르라고 있는 것이다!

     

    “?”

    “?”

    “??”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닐까.

    이게 맞나.

    다들 그런 표정인데 제대로 들은 거 맞다.

     

    -그럼 실력이 부족해서 어설픈 자들끼리 한 팀으로 뭉치는 절망이 얼마나 가혹한지 깨닫게 해주마.

    -너희는 오늘부터 목요일까지 교정 곳곳에 숨겨둔 ‘깃발’을 찾아서 모으도록 해라!

    -주인이 없는 깃발은 먼저 주운 사람이 임자지만 주인이 있는 깃발은 소지자의 조건을 가장 먼저 달성한 사람이 얻게 될 것이다.

    -단, 모으는 깃발은 개인이 아닌 조별로 측정한다.

    -너 하나쯤 놀더라도 나머지가 열심히 모으면 되는 아주 편리한 과제다. 심지어 받는 보상도 공평하게 n분의 1로 나눠가지지!

     

    “세상에!”

    “어쩜 저리 끔찍한!”

    “내가 열심히 노력하는 사이에 남이 무임승차를 할 수 있고 심지어 열심히 노력해서 얻어낸 결실인 성과까지 나눠가진다고?”

     

    학생들의 눈에 억울함이 가득 묻어났다.

    그것이야말로 드래곤 교장이 보고자 했던 것이었다.

     

    -이 강의는 너희가 신입생에게 개방된 시설을 돌아다니며 아카데미에 적응하기 위함도, 교관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규정을 익히기 위함도, 학생들과 친목을 도모하며 우애를 다지기 위함도 아니다.

    -조별과제의 잔혹함을 깨닫고 혼자서라도 모든 걸 해낼 수 있는 우수하고 고독한 개인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시련이다.

    -깃발의 배점과 상세한 규칙은 모두 아카데미를 돌아다니는 교관들에게 알아서 묻도록 해라. 나는 귀찮으니까 질문을 받지 않겠다. 그럼 강의 끝. 해산!

     

    지 할 말만 다해버린 교장은 그대로 펑 소리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남겨진 학생들이 어색한 침묵 속에 강의실 곳곳에 우두커니 앉은 채로 뭔진 몰라도 굉장히 망한 것 같다는 생각만 곱씹었다.

     

     

    * *

     

     

    “저, 저기… 그래서 깃발 모으기는 어떻게 할래?”

    “일단 내일 점심시간까지 각자 구역을 나눠서 돌아다니고 모아본 다음에 생각해봐요.”

     

    롯토는 소심하게 “알았어…”라고 모기만큼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저 혼자 쓸쓸하게 어깨를 늘어뜨리며 터덜터덜 돌아갔다.

     

    “난 산을 맡을게.”

    “해적은 강이지!”

     

    헤스티아는 굉장히 의욕적으로 1교시에 갔었던 산으로 달려나갔다.

    지고쿠도 캬캬 하고 웃으며 말릴 새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니… 교내에서 구역을 나눠 가지자는 말이었는데…….”

     

    어떻게 조원 셋이 아무도 사람 말을 안 듣지?

    다른 팀이라면 뭐 이딴 폐급 조가 다 있냐며 조장이 런을 쳐도 할 말이 없다.

    그치만 나야 혼자서도 알아서 잘할 수 있으니 부담은 하나도 없다.

    애초에 일을 맡겼으니 기한 내에 다들 혼자서 1인분을 해올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앗 저깄다. 저기도 있고. 저어기도 하나 더 있네.’

     

    게임에서 본 깃발이 있을 위치를 뺑뺑이 돌며 교내에서 깃발을 모으기만 한가득.

    지나가다가 우연히 나를 본 지젤이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쳐다봤다.

     

    “남들은 두세 개 발견하면 많이 모았다는 깃발을 어떻게 혼자 스무 개가 넘게 모았습니까? 누가 보면 깃발장사라도 하는 줄 알겠군요.”

    “헤헹. 제가 쫌 숨바꼭질이랑 물건 찾기는 잘하는 편이거든요.”

    “혹시 팁이라도 주실 수 있습니까?”

     

    당연히 가능하지.

     

    “교장님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나라면 어디다 깃발을 숨겨야 학생들이 가장 열 받을지 상상해봐요!”

    “흠. 저라면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 깃발을 하나 놓고 주변에 자동복구 되는 함정을 수십 개 설치한 다음 학생을 희망고문하고 싶군요.”

    “오? 이거 말하는 거냐?”

     

    털이 불에 검게 그을린 손오천이 창문 너머에서 깃발 하나를 들고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손오천씨. 여기는 2층인데 어떻게 창문에서 눈이 마주칠 수가 있습니까?”

    “나무속에도 숨겨뒀다 싶어서 나무를 타고 있었다. 깃발은 안 나오고 누가 숨겨둔 물약이랑 베게, 목판만 있더군.”

    “아…….”

     

    목판에는 “제발 내려가게 해줘” “잠은 지상에서 자고 싶어” 따위의 글씨가 단검으로 북북 긁어서 처절하게 새겨져있었다.

    왠지 알 것 같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어느 가엾은 학생이 나무 위에 매달려서 어디서든 잘 자기 강의를 들었나보다.

     

    “근데 쥐방울 녀석, 무슨 깃발을 그리 무식하게 모았냐? 혼자 5인분을 다 하기로 한 거냐?”

    “에이, 설마요. 다들 1인분은 하겠죠.”

     

    1인분이면 명당 3개씩은 모아오겠지.

    솔직히 그 이상은 바라지도 않는다.

     

     

    * *

     

     

    “오크노디 진짜 무섭더라. 벌써 스무 개를 모았어.”

    “실화야?”

    “걔네 팀도 다 1인분은 할 거래.”

     

    한편, 아카데미 교내에서는 누군가 어설프게 엿들은 이야기는 제멋대로 와전되기 시작했다.

    소문은 급물살을 타며 악화되더니 전혀 다른 결론을 제멋대로 도출했다.

     

    “오크노디가 20개를 못 모은 팀원은 1인분도 못 하는 쓰레기라고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던데?”

    “불쌍해.”

    “수석이랑 같은 팀이 되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차라리 맘 편하게 다 같이 못하는 게 낫지, 걔들도 참 불쌍하네.”

     

    저녁식사를 하러 교정에 돌아온 헤스티아와 지고쿠, 롯토의 눈이 동그래질 이야기였다.

     

    “스무 개?”

    “미친.”

    “그게 가능한 숫자에요……?”

     

    남들은 한두 개만 구해도 잘 구했다는 소문을 듣고 서너 개씩 구한 자신들이면 정말 잘한 거라고 위안을 삼았더니 전혀 안도할 때가 아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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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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