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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2

       [흑사병의 1차 감염원은 모기입니다. 날벌레에 물린 흔적은 발견하기 매우 어려우니 의료진 여러분께서는 두통, 발열, 오한과 멍울 등의 증상을 바탕으로 감염자의 발병 여부를 판단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울러 중앙 정부에서는 이 시간부로 제국 국민들에게 국지적인 외출 제한을 명령합니다. 의료당국자가 아닌 분들은 칩거 생활에 들어가십시오. 외출이 꼭 필요한 경우 가까운 행정기관에 핫라인으로 연락주시길 바랍니다.]

         

         

       **

         

         

       첫 감염자 발생 후 2주 경과.

         

       길거리엔 연탄이 즐비했다. 나라에선 초동대응을 했다고 말하는데 영 아닌 듯싶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아카데미는 야전병원으로 돌변했다. 환자의 격리와 수송, 병상의 마련 등을 학교에서도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카데미는 수도 한복판에 있다. 황성과도 가깝고, 시장과도 연결되어 있다. 황실이 무너졌을 때를 대비하여 제2사령탑 역할을 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었다.

         

       새벽부터 초저녁까지는 환자의 격리와 이송이 주로 이뤄진다. 이 시간대에 밖에 나갈 수 없는 건 아니었지만, 외출 허가증을 받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슬슬 시간 됐다. 나가자.”

        “응.”

         

       인구 이동이 극단적으로 감소하는 오후 10시 무렵, 몇몇 학생이 대운동장으로 집합한다. 무리의 중심에 있는 건 학생회 산하의 선도부원들이다. 아카데미 중앙을 기점으로 수십 명 안팎의 인원이 안전거리를 유지한 채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나와 로테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오늘도 이렇게 모여줘서 고마워요.”

         

       학생회의 선도부장, 샤디엘 아르가나가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샤디엘은 검은 부르카를 쓰고 있었다. 저런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하고 있는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에 모인 모두가 천으로 몸을 꽁꽁 싸매고 있었다. 모기에게 안 물리기 위함이다.

         

       물론 이러고도 감염될 위험은 언제든지 존재한다. 그런데도 이렇게 밖에 나와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병에 걸리는 건 무섭지만, 가족 얼굴을 못 보는 건 그 이상으로 두려웠기에.

       

       

       지구로 돌아가려면 틸레트 아카데미에서 더 많은 마법을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이 전염병 사태부터 진정시켜야 한다. 일상이 회복되고 등교가 재개되지 않는 이상 원래 목표는 미뤄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차피 이대로 계속 있다간 먹을 것도 동나게 생겼다. 의식주의 결핍은 사람을 밖으로 나오게 만든다.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기숙사에 틀어박혀 있어야겠다는 무책임한 생각은 접어둔 지 오래였다.

       

         

       “지금부터 북부 정화 작업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예전에 나눠드린 지침에 따라 활동하시길 바랍니다.”

         

       가뜩이나 일손이 부족한 시점이다. 학생들은 보호 받을 권리를 제 손으로 반납했다.

         

       “이 스크롤 이름이 뭐라고 했죠?”

       “펄스 생성 스크롤입니다.”

       “그래요, 이게 하급 마수 사살에 특효라는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더구나 특허를 가지신 분이 이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무료로 사용하실 수 있도록 조치해 주셨다는 말씀까지 해 주셨습니다.”

         

       샤디엘은 아르가나 공작가의 대표로서 그 사람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우리는 하나둘씩 EMP를 들고 뒷산에 올랐다.

         

       방역 과정은 단순했다.

         

       모기가 많은 지역은 대개 물가다. 이런 지역에 화계마도사가 불을 지펴 웅덩이째로 끓여버린다. 고기들이 배를 뒤집은 채로 떠올랐고, 연꽃잎은 스키야키에 담긴 청경채처럼 푹 끓어 눅눅해졌다.

         

       생태계 파괴? 고려하지 않는다. 아니, 고려 못 한다.

         

       “참 나, 이걸 여기서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상급 수계마도 ─ 프로즌(Frozen)]

         

       그 다음에는 빙결을 이용하여 뜨거워진 물을 급속 냉각한다. 여기선 수계마도로 유명한 엘리예프 자작가의 영애의 도움을 받았다. 사실 이르카 말고는 빙계를 사용할 수 있는 이가 없었다.

         

       아마도.

         

       [◇ 이 마도의 응용에 다음의 과학적 지식이 필요합니다.]

       [─ 음펨바 효과]

         

       “너 진짜 뭐 하는 애냐…?”

       “글쎄.”

         

       이르카가 눈가를 떨며 물었다. 모호한 대답밖엔 해줄 수 없었다. 양장본에서 마력을 끌어다 쓰고 있다는 말을 누가 믿냐고.

         

       뜨거운 물이 미지근한 물보다 빨리 언다. 급변한 온도 차로 인해 저수지 내 유충은 씨가 말랐을 것이다.

         

       “근데 정말 이래도 돼?”

         

       누군가가 그런 의문을 던졌지만, 회답하는 이는 없었다.

         

       우리는 가는 길마다 스크롤을 설치하며 산을 빠져나왔다.

         

       이렇게 호수 하나 얼려놓고 나오면 인근에서 유자나무 열매나 껍질을 채취해 돌아온다. 먹으려고 하는 건 아니고, 빙의자의 부탁이다.

         

       아마 이게 치료제일 테지.

         

       흑사병은 중간숙주인 모기조차 죽일 정도로 독하다고 한다. 만약 시트러스 계열의 나무에 흑사병을 치료하는 성분이 들어있다면, 그래서 그 수액을 빨아먹고 다니던 일부 모기가 병에 적응성을 갖췄다면 모든 정황이 이해된다.

         

       호수를 정화했고, 빙의자가 주문한 것도 가져왔다. 그렇다고 한숨 돌릴 틈은 없었다. 아카데미 근교를 청소하기 위해 곧바로 창고에서 빗자루를 꺼냈다.

         

       “어우. 사방이 철가루잖아!”

         

       길거리는 그야말로 아수라장. 피치 못한 운명을 맞이한 사람들의 최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연검게 변한 몸은 나병 환자처럼 떨어져 나간다. 그 조각은 중력에 이끌려 땅바닥과 붙어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 연필 짓이긴 가루처럼 바스러진다. 괴사하고 으깨진 신체 조직은 화장 직후 고아낸 뼛가루와도 같았다.

         

       방역하러 나온 학생 몇몇을 제외하면 대학로엔 사람이 없다. 숯가루와 연탄 조각, 그리고 산화되다 만 철괴만이 쓰레기 대용으로 널려있다.

         

       사방이 재앙, 어쩌면 그 이상이었다.

         

       우리는 밤새 장례를 치렀다.

         

         

       **

         

         

       학교에 못 나간 지 얼마나 되었을까. 체감상 그리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진 않은데.

         

       기숙사에서 단둘이 식사하고 있으면 수척해진 룸메이트의 얼굴을 싫어도 보게 된다. 고운 부잣집 따님의 인상이 보름 새에 반쪽이 됐다.

         

       그럼에도 소녀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뭐라도 할 수 있잖아. 이런 시국인데.”

       

       뭐가 그리 좋아서 웃냐고 물었더니, 어줍잖은 소리만 반복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바보.

         

       살리에르 영애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보다 좋은 단어가 없겠다고.

         

       3개월에 가까운 동거, 3주에 가까운 고립. 정을 붙이기엔 충분한 시간일까?

         

       모르겠다. 다만 먼 훗날, 이 세상에서 내가 사라지기 전에 나를 잊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상념을 떨쳐내고는 내일 할 거리를 머리에 욱여넣었다.

         

       “오늘도 공부 가르쳐 줘.”

        “안 힘들어? 쉬어가면서 해.”

       “난 괜찮으니까 얼른.”

         

       고작 3미터가 안 되는 책상에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았다. 방역이니 청소니 하며 밤낮이 바뀐 지 오래되었지만 도통 침대에 눕고 싶은 생각이 들질 않았다.

         

       나는 한쪽에는 책을, 다른 쪽에는 마전지를 올려놓고 과외를 시작했다. 시간은 시침 단위로 빠르게 넘어갔다.

         

       붙어살던 시간만큼 로테가 익힌 화계마도의 숫자는 지수적으로 늘어났다. 오늘 하나를 배운다 치면 내일은 둘, 그 다음 날은 넷, 또 다음 날은 여덟이 됐다. 등비급수로 어림했을 때 로테가 알게 된 마법의 개수는 어느덧 8백에 달했다.

         

       가르칠 게 없어져간다.

         

       플레어를 공동 연구했을 때부터 느꼈던 사실이었지만, 로테는 빨리 배우고 빨리 응용할 줄 안다. 못해도 우리 둘은 2학년이 되면 서로 제 갈 길을 걷게 되지 않을까 싶다.

         

       자연스럽게 서로를 잊게 되겠지. 학창시절의 간결한 추억. 좋은 만남이었다. 아마도.

         

       어쨌든 비즈니스 관계를 맺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받는 수입이라고는 로테가 주는 돈이 전부였으니까.

         

       “자. 계산은 확실히 해야지.”

         

       병마가 지속되자 물가도 올랐다. 로테는 인플레이션에 맞춰 과외비를 더 내줬다.

         

       그래도 이건 너무 많은 거 아닌가. 기브앤테이크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라 생각해서 손사래를 쳤다. 그럴수록 로테는 지갑을 더 털어가며 내 손에 은화를 얹어놓았다.

         

       “다음 학기도 같이 다녀야지.”

       “2학기라면 내가 어떻게든 할 수 있는데.”

       “그럼 졸업 때까지 같이 다녀야지.”

       “…내 등록금 걱정을 왜 네가 하고 그러냐.”

         

       헤를라인 선생님에게 학업장려금 삼아 받았던 금화도 있다. 성적도 나쁘지 않고.

         

       이 사태만 어떻게든 진정된다면 졸업은 할 수 있을 텐데.

         

       “상황이 다르잖아. 옛날처럼 알바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아.”

       “정 그래도 스크롤 특허가 남아있어. 그걸로 돈을 마련하면 돼.”

         

       비록 플레어는 무료로 풀었지만, EMP 스크롤은 빙의자를 통해 적당한 가격에 매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거 생산단가를 얼마로 잡았는데?”

       “열 묶음에 동화 두 닢.”

         

       하스펠트 교수가 하루 식비로 주던 금액이다.

         

       “역시 안 되겠어. 더 받아.”

         

       억지로 은화 한 닢이 더 쥐어졌다. 나는 그만큼의 액수를 다시 책상으로 올려놓았다.

         

       “돈이 궁하면서 왜 남이 주는 걸 안 받으려고 해? 플레어 특허도 포기하고, 펄스 스크롤인가 뭔가 하는 걸 아무리 팔아봤자 하루에 스프 한 접시 겨우 떠먹을 수준이잖아.”

         

       틀린 말은 아니다.

         

       동기 중 누군가가 말했다. 난 금전 감각이 떨어지는 새끼라고.

         

       주면 주는 대로 좀 쳐받을 것이지, 왜 안 받냐고.

         

       “됐어.”

       “왜…. 빚지는 것 같아서 싫어?”

       “예전에 멋 모르고 받았다가 크게 데인 적 있거든.”

         

       헤를라인 선생님에겐 불가항력으로 받아버렸지만, 그것도 금방 갚아야겠지.

         

       “그러니까 채무를 두긴 싫어. 정 주고 싶으면 한 시간 더 하든가.”

       “…이건 안 갚아줘도 되거든?”

         

       로테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레몬을 한 움큼 물었을 때 입매를 비트는 어린애처럼 떨떠름한 표정을 뒤섞으며 날 바라봤다.

         

       “어떻게 살든 사람은 빈 손으로 태어나서 빈 손으로 가. 어느 것 하나 네 거였던 적이 없었고, 그렇다고 내 거였던 적도 없었어. 그러니까 덜 급한 사람이 더 급한 사람에게 양보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코뮤니스트나 할 법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 너 귀족 맞아?”

       “우리 가문에서는 그걸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불러.”

       “허.”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손엔 더 많은 은화가 쌓였다. 금화로 환전해도 될 정도의 양이었다. 머릿속이 백지가 되어 흑사병이니 핵융합이니 하는 어려운 이야기들이 떠오르질 않았다.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상대하는 건 어려웠다. 그동안 줬다 뺏어가는 사람만 봐서 그럴지도 모른다.

         

       돈을 줬더니 도박에 꼬라박는 못난 사람, 연대보증 안 서면 나 죽는다고 소리쳐놓고 나중 가서 잠적하는 글러먹은 사람, 스타이펜드로 연구비 착복하는 개씨발호로놈의새끼들이 여태껏 봐 온 인간군상의 절대 다수였으니까.

         

       이런 경우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침묵으로 일관했다.

         

       로테는 책상을 정리한 뒤 침대에 누웠다. 4시간은 자고 일어나서 다음 밤을 준비해야 한다.

         

       나는 커튼을 걷어둔 채 바깥 공기를 쐬었다. 이따금씩 창가 너머로 소중한 사람을 잃은 자들의 곡성이 들려온다. 처절한 울음소리에 오늘도 숙면을 취하긴 글렀다.

       

       [이런 마당인데 아카데미 내 사망자가 없다는 게 신기할 정도군요.]

       

       내 말이.

         

       한참을 기다리니 그 아래로 누군가가 나타나 이쪽을 향해 손짓하는 것이 보인다. 온몸을 검게 싸매고 있어 신원 확인이 어려웠지만 어떤 놈인지는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로테가 잠드는 걸 확인한 뒤, 사감의 눈을 피해 캘리퍼스와 유자나무 열매를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흑사병 발병 후 24일째 되는 날 오후.

       

       드디어, 이 사태를 끝낼 기회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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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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