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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2

       *

         

         

         이반은 비록 친교를 다지는 데에 직업과 성별, 나이나 인종 등으로 사람을 구분하지 않지만, 마법사들과는 친하지 않다. 이것엔 매우 합리적이고 타당한 이유가 있다.

         

         마법사는 대부분 선천적으로 인성 결함을 가진 이들이다.

         

         

         “그게 무슨… 무슨 소리예요?”

         “사실이다.”

         

         

         이반은 떨떠름하게 그를 바라보는 오스왈드에게 삐딱한 시선으로 담담히 팩트를 설명했다.

         

         

         “마법사들은 기본적으로 골방 안에 틀어박혀서 마력을 주무르거나 책을 읽는 데에 시간을 할애하지.”

         “그… 렇죠?”

         “반면 다른 직업들을 생각해봐라.”

         

         

         전사가 강해지기 위해선 실전과 훈련의 병행이 필요하다.

         

         훈련장에서 허수아비만 때리는 전사는 강해질 수 없다. 당연히 상대가 있어야 한다.

         

         실력 좋은 대련 상대를 구하고, 함께 땀 흘려 교분을 나누면 자연스럽게 사교성이 좋아진다. 그렇지 못한 전사는 모두 머리가 깨지게 되니까.

         

         도적은 목표물의 근거지, 은신처, 창고나 금고 따위를 파악해야 한다. 이는 내부 정보이므로 자연스럽게도 도적은 해당 정보를 구하기 위해 목표와 친교를 다지거나 목표의 지인을 ‘설득’해야 한다.

         

         도적은 굉장히 사교성 좋은 이들만 할 수 있는 직업이다. 실제로 엔리케는 흡혈귀임에도 불구하고 친구가 많은 편이다.

         

         바드는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음악예술은 선천적 인싸가 아니라면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장르다. 이는 슈퍼-인싸 모짜르트와 그런 인싸를 증오했던 살리에리가 증명할 수 있다. (살리에리 또한 엄청난 인싸였다.)

         

         그리고 결정적인 증거가 하나 더.

         

         

         “거의 모든 엘프들은 마법사다.”

         “네.”

         “그리고 거의 모든 엘프들은 성격에 선천적인 인성 장애를 앓고 있지.”

         “…네?”

         

         

         완벽한 삼단논법(모든 엘프는 광인이다. 모든 엘프는 마법사다. 그러므로 마법사는 광인이다.)으로 오스왈드를 설득하는 데 성공한 이반은 따듯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반은 인종과 성별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그는 21세기 현대인이다.

         

         그러니, 이건 인종차별이 아니라 담담한 사실 토로에 불과하단 의미다.

         

         슬프게도 이 미개한 세상의 모든 이종족들은 기본적으로 선천적 인성 장애를 앓고 있다.

         

         평균주의를 발명하고 자기보다 키가 큰 모든 이들을 증오하는 드워프와, 인간을 조금 독창적인 식자재 정도로 여겼던 마족들, …그리고 엘프.

         

         역사에서 무언가 이상한 사건이 눈에 보일 때, 범인으로 엘프를 지목하면 대개의 경우 맞다.

         

         이상이다.

         

         이 이상의 설명은 쿨하지 않다. 이반은 오스왈드를 바라보았다.

         

         멍한 눈으로 이반을 바라보던 오스왈드는 슬프게 웃었다.

         

         그는 그 자신이 마법사이며, 동시에 엘프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

         

         

         “그 말씀을 저한테 하시는 이유가…?”

         

         

         오스왈드는 떨떠름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많은 학생들이 오고가며 그들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이곳은 마법학부였다.

         

         마법학부의 학생 중 절반 정도는 엘프였다. 즉, 이곳은 엘프-마법사 분포가 프리첸카야에서 가장 조밀한 곳이란 뜻이다.

         

         그런 곳 한가운데에서 이런 소리를 하다니.

         

         내 학교생활은 망했군. 오스왈드는 겸허히 웃었다.

         

         지구였으면 입대라도 해서 깔끔하게 과거세탁을 해보겠지만, 이 안타까운 세상에선 입대는 마음대로지만 전역은 그렇지 않으므로…. 오스왈드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마법사가 필요하다.”

         “아하. 그러니까 지금 마법학부 본과대 1학년 강의동 복도 앞에서 마법사와 엘프의 인성 함양 부족을 논설하신 이유가, 마법사를 고용하고 싶다는 의미였군요!”

         

         

         이반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오스왈드를 바라보았다.

         

         정리를 잘하는군. 처음부터 이렇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겠어.

         

         

         “…저는 이반 씨가 왕이나 고위 귀족으로 빙의하지 않아서 정말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이 남자가 다스리는 나라는 효율과 합리주의로 무장한 악의 제국이 될 것이다. 럭키 나치나 럭키 소련이 되지 않았을까.

         

         오스왈드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그리고 마법사가 필요했으면 그냥 저한테 따로 말씀하셔도 됩니다. 저도 마법 쓸 줄 알아요.”

         “마법해석학 C, 고전주문해설 C-.”

         “아, 아니! 제 성적은 대체 어떻게…??”

         “너는 쓸모가 없다.”

         “와.”

         

         

         마인드소서리는 전쟁 마법이다. 첩보 활동에서도 대단히 유용하지만, 그 용도 대부분은 전쟁에 특화되어 있다.

         

         파괴 계열 주문들은 요란한 외형에 비해 효과가 미비하다. 전선에서 화염구를 던져봐야 기껏 너댓 명 정도를 쓰러트리고 마니까.

         

         그 정도의 화력은 총화기로 대체할 수 있다. 마력까지 운용해가며 키워낸 고급 병종이 고작 그런 효율이라면 그건 자원 낭비에 불과하다.

         

         반면 마인드소서리는 그 정도의 마력으로도 아군 한 분대 전원의 정신을 고양시킬 수 있다. 두려움을 없애고, 용기를 북돋고, 적에 대한 끔찍한 증오심을 심어줄 수 있다.

         

         대체로 전쟁의 승기는 병사들의 사기에 달려있는 법. 마인드소서리를 익힌 마법사가 포함된 전선은 그렇지 않은 전선에 비해 압도적으로 오랜 시간 전투를 수행할 수 있었다.

         

         그 시절 전선은 ‘버텨내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이는 대단히 강력한 효과라 하겠다. 용사파티가 적의 수뇌부를 참수할 때까지 버티는 것이 전쟁의 유일한 승리 목표였던 탓이다.

         

         어쨌건.

         

         마인드소서리는 전쟁 마법이다. 그리고 이반에게 필요한 것은 ‘고대 마법 해석’과 ‘방호 주문’에 능한 전통적인 마법사였다.

         

         

         “엘프가 아니고, 방호 주문을 익혔으며, 고대 마법 해석에 능통하면서, 비밀유지까지 잘 해줄 마법사를 구하신다 이 말씀이시죠?”

         “그래.”

         “드래곤이나 유니콘을 구하시는 편이 더 빠를 것 같은데요.”

         “역시 어려운가.”

         “어려운 게 아니라 불가능하죠! 엘프랑 비밀유지 부분을 좀 포기하시면 어떻게 될 법도 하긴 한데….”

         

         

         오스왈드는 복잡한 눈으로 주위를 살피다가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이반 씨는 용사 파티랑 친하다고 하셨죠?”

         “음.”

         “그럼 하나 있잖아요. 고대 마법 해석을 포함해 전과목 이론 수석에 방호 주문 같은 비전공 마법도 A+를 딴 마법사요. 엘프긴 하지만 이반 씨 친구분 따님이시니 비밀 유지도 될 테고.”

         

         

         용사파티의 자식들 중에 마법사는 하나뿐이다.

         

         

         “…엘피헤라.”

         “네, 엘피헤라 그리켄코스 양이요. 친절하고 정숙하신 분이시기도 하고요.”

         

         

         마법의 재능을 아버지에게 고스란히 물려받았다고 전해지는 천재. 얀스크 대학 입학시험에서 역사상 최고점을 기록한….

         

         

         “으음….”

         

         

         그 또한 그녀를 알고 있었다.

         

         12년 전, 용사 파티가 출정하기 직전.

         

         딱 나흘간 그녀를 본 적이 있었으니까.

         

         그때 그 꼬마는 지극히 엘프다운 녀석이었다.

         

         

        *

         

         

         “우욱, 이게 무슨 냄새야. 인간, 씻는 법을 잊었나? 네 주인은 어딨지? 내가 그 작자에게 직접 애완동물 씻기는 법을 알려주겠다.”

         “…???”

         

         

         이반은 인형처럼 조그마한 꼬마가 쫑알거리는 것을 들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가슴팍 아래쯤에 간신히 닿을 정도로 작은 아이가 보였다. 뾰족한 귀가 화려하게 빛나는 금발 사이에서 삐죽 솟아 있었다.

         

         

         아, 엘프로군. 용사 파티에 한 명 있다더니. 과연.

         

         하지만… 베올그린 그리켄코스는 400살이 넘은 엘프라고 들었는데. 이렇게 어려보일 수가 있나.

         

         역시 장생족은 대단해.

         

         

         이반은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켄코스 경이십니까?”

         “응? 그래 맞다! 내가 그리켄코스이니라! 날 알아보다니, 행색에 비해 영리한 인간이로구나!”

         

         

         꼬마는 가슴을 당당히 펴며 외쳤다. 느껴지는 마력은 별 볼 일 없는데, 이게 반박귀진의 노고수라는 건가?

         

         이반은 감탄했다.

         

         그가 아는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은 엔리케였다. 그런 그녀조차도 이렇게 어린 모습을 취하진 못했다.

         

         이 세상엔 그런 개념이 없는 모양이지만, 무협지에도 평등하게 5,700자를 투서했던 이반은 ‘반박귀진’과 ‘환골탈태’, ‘노화순청’ 등의 단어를 알고 있었다.

         

         그런 소설 속 인물이 실재로 튀어나온 상황에, 이반은 경이로움마저 느끼고 말았다.

         

         

         “그래서 인간, 네 주인은 어디에 있느냐? 나는 무척 허기지다. 인간들은 귀빈을 대접하는 법도를 모르는 모양이니, 네 엘프 주인을 찾아가야 하겠구나.”

         “그게 무슨…. 혹시 군영 급양대에서 배식을 주지 않았습니까? 제가 급양대장과 이야기를….”

         “아니, 그런 여물 말고. 먹이가 아닌 ‘음식’이 필요하단 말이다.”

         “…오.”

         

         

         이반의 머릿속에서 엘프에 대한 이미지가 살짝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리켄코스 경. 죄송하지만 여긴 최전방입니다. 경의 일행에게 돌아간 몫은 장병들이 꿈도 꾸지 못할 고급품들이었습니다.”

         “인간의 언어는 신비롭군. 고급이란 말은 ‘엘프가 만든 것’이란 의미다. 오늘 내가 받은 여물통 중 어떤 것이 엘프제 식사였지?”

         

         

         이제 그의 머릿속 엘프들은 이제 더 이상 신비로운 장수-요정이 아니였다.

         

         400년이나 살아온 대마법사라면 뭐, 인성이 좀 터져 있어도 이해해줄 수 있겠다 싶어 애써 표정을 관리해야 했다.

         

         설마하니 모든 엘프들이 이런 미치광이들은 아니겠지.

         

         이반의 그런 안일한 생각은 그 다음 등장한 한 사내에 의해 박살 나고 만다.

         

         

         “엘피헤라.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아버지!!”

         

         

         저 너머에서 걸어온 훤칠한 청년이 웃으며 팔을 벌리자, 방금까지 그에게 떽떽거리던 꼬마가 도도도 달려가 그의 품에 폭 안겼다.

         

         청년은 따듯하게 웃으며 꼬마의 머리를 헝클였다.

         

         

         “여물이라니. 그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만찬이었다. 인간들은 가련하게도 그런 것들을 ‘만찬’이라 부르며 즐기니, 그걸 여물이라 부르는 것은 큰 실례가 된단다.”

         “아버지, 하지만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었던걸요!”

         “엘피헤라. 인간은 자신이 진상한 공물을 거절당할 때 크게 상심한단다. 하위 족속들을 보살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의무인지 내 누차 이야기하지 않았더냐.”

         “네, 아버지….”

         

         

         그건 맹세코 이반이 본 모든 가정교육 중 가장 놀라운 광경이었다.

         

         이반은 멍하니 두 엘프 부녀를 바라보며 입을 벙긋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 인간. 내 딸이 무례했어. 미안하군.”

         

         

         그는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었다. 악수를 하자는 건가? 그런 것치고 손 위치가 좀 이상한데. 손등을 위로 하고 펼친 것은 마치, 꼭….

         

         

         “나는 칼리온 군도의 추밀원장 대리, 베올그린 그리켄코스일세. 인간의 의례대로라면 귀족을 만날 때 손등에 입을 맞춘다지? 후후, 미개하지만 귀여운 전통이야. 내 기꺼이 허락하지.”

         

         

         이 자식들은 인간의… 아니. 세계의 평화와 미래를 위해서라도 멸종시키는 편이 낫지 않을까.

         

         이반은 진지하게 이 안건을 대왕께 상신하리라 마음먹으며 싸늘하게 베올그린을 노려보았다.

         

         

         그것이 12년 전.

         

         이반의 빙의 18년차, 군역 8년차. 이제 막 왕실근위대에 소속되던 당시의 기억이다.

         

         엘프들의 첫인상은 최악이었다. 그 이후로도 나아지지 않았던 것을 보면, 엘프들은 원래 그런 족속들인 모양이었다.

         

         

        *

         

         

         상념에서 깨어난 이반은 눈 앞에 보이는 엘프를 바라보았다.

         

         정숙하게 가슴께에 손을 얹고, 사뿐하게 고개를 숙이는 여자 엘프는 문자 그대로 그림 같았다.

         

         그녀는 오스왈드의 설명을 듣고는 수줍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처음 뵈어요. 엘피헤라 그리켄코스입니다.”

         “…?”

         

         

         이반은 혼란에 빠졌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레이시즘이고

    두 번째로 싫어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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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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