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62

       파견 실습은 학생 개인의 성향에 따라 그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린다.

        

       바깥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학생이라면 파견 실습을 매우 좋아할 수밖에 없다. 아카데미의 수업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으니까. 사실 어렸을 때 가정교사에게 확실하게 수업을 받거나 별도로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면 수업을 따라오는 것만으로도 벅찰 것이다.

        

       게다가 이전부터 이미 교육을 받아오던 아이들이라고 학교 수업을 대충 들을 리도 없고. 성적 순위는 자기 가문의 명예와도 연관이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귀족 아이들은 하다못해 평균 이상은 유지하기 위해 기를 쓰고 노력한다.

        

       그런 분위기가 갑갑하게 느껴지는 애들이라면 이런 식으로 제도를 벗어 한숨 돌릴 수 있는 파견 실습을 대단히 시원하게 여길 것이다. 특히, 제도 바깥으로 여행 다니는 것이 부담되는 평민들이라면 더 그럴 거고. 하긴, 그 정도로 가정 형편이 어려울 정도의 평민이라면 아카데미에 들어오지도 못했겠지만.

        

       반대로 조금 내성적인 성격이라 길 가는 사람들한테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을 잘하지 못하거나, 바깥을 돌아다니는 것을 싫어한다면 이런 파견 수업과는 전혀 맞지 않을 거다. 차라리 방에 틀어박혀서 책이나 읽는 쪽을 좋아할 테니까. 그나마 함께 다니는 그룹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충 같이 묻혀 다닐 수 있겠지만, 그조차 없는 애들이라면 뭐, 최소 점수 채우는 것도 힘들겠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나는 후자에 해당하는 인간이다.

        

       매년 발매되는, 초회차 플레이타임만 최소 50시간에서 최대 80시간은 되는 게임을 몇 회차나 돌려가며 플레이하던 나다. 그 외의 시간에는 짤막하게 공개된 외전 소설이나 만화, 설정집을 파는 나였고, 설령 아제르나 전기를 파지 않는 시간이라고 하더라도 책이나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아주 가끔 여행을 가긴 했지만, 그럴 때면 숙소를 최대한 아늑한 곳에 잡아두고 밖을 돌아다니는 것을 최소화하곤 했다. 계획이 없다면 나가지 않는 것이 내 행동 양식이다.

        

       “실비아!”

        

       “으에?”

        

       “……실비아 언니?”

        

       그러니까, 새벽 네 시에 내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며 나를 깨우는, 피가 섞이지 않은데다 10년은 얼굴을 보지 못했던 여동생의 성격은 나와는 여러모로 참 맞지 않았다는 말이다.

        

       다시!

        

       *

        

       내가 왜 굳이 쿨뷰티라는 이미지를 선택한 것일까.

        

       차라리 감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을 선택해도 되지 않았을까? 평소에는 몹시 느긋하고 털털한 성격이지만, 마음을 먹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어려운 일들을 척척 해결하는, 그런 캐릭터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쿨뷰티 컨셉을 처음 잡을 때만 하더라도 ‘표정 연기 같은 걸 최소화 할 수 있고, 생각을 숨기기 좋아서’라는 이유였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냥 루카스나 제이크 같은 성격이었어도, ‘속이 검다’ 같은 내용만 추가했으면 훌륭한 캐릭터가 될 수 있었을 거다.

        

       내가 굳이 쿨뷰티라는 컨셉을 유지할 필요가 없었다면, 클레어가 방에 쳐들어오기 30분 전에 미리 일어나서 씻고 준비한 뒤, 총기를 손질하고 있는 척하고 있을 필요도 전혀 없었겠지.

        

       “실비아! 아, 역시 일어나 있었네.”

        

       솔직히 ‘역시 일어나 있었네’ 하는 말은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데.

        

       내가 자다가 당황해서 낸 소리를 보고 역으로 엄청나게 당황했던 클레어였다. 솔직히 이 시간에 미리 일어나 총기 손질을 하고 있는 나를 보고 눈을 살짝 크게 뜰 이유 같은 건 전혀 없을 텐데.

        

       “하긴, 지난번에는 실비아가 우리보다 먼저 일어났었으니까.”

        

       ……내가 언제?

        

       …………아.

        

       설마 입학하고 처음으로 의뢰를 해결했을 때의 일인가.

        

       새벽 네 시에 이미 밖에 나와 있었다는 레오와 클레어의 말을 듣고 그보다 먼저 일어나 엘리멘탈 독을 잡았을 때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 이후로는 굳이 그 둘보다 먼저 일어나 의뢰를 수행하진 않았다. 차라리 앨리스가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일어나 공부하러 다니는 쪽이 정신건강에 나았으니까. 가끔 따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양해를 구하고 따로 움직이고.

        

       내가 알고 있는 서브 퀘스트만 해도 새벽 세 시에 일어나는 개고생을 해야 했는데, 게임에 묘사되지도 않았던 주차의 의뢰를 이 둘보다 먼저 수행하려고 하면 그때는 정말로 잠도 자지 않고 돌아다녀야 할지도 모르니까.

        

       “레오랑 나는 먼저 나가려고 하는데, 실비아는 어때? 같이 나갈래?”

        

       “…….”

        

       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지금 시간부터 나가면 무슨 퀘스트가 있었더라.

        

       의뢰는 진짜 긴급하게 들어왔다는 설정이 아닌 이상, 제니퍼가 미리 수집해둔 의뢰들이었다. 게임으로는 ‘퀘스트’라는 명칭으로 들어오고…… 거의 튜토리얼이나 다름없는 첫 주차와는 다르게, 첫 파견 실습인 지금부터는 천천히 메인 스토리에 진입할 시점이다.

        

       게임의 스토리는 주인공 캐릭터들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몇 시에 클리어해도 스토리상 큰 지장이 없는 사냥 퀘스트 같은 거야 지금 시간대에 해도 무리가 없지만, 사람이 얽혀있는 퀘스트는 분명 그 시간대에 맞게 수행하게 될 것이다.

        

       내 목적은 이 게임의 스토리를 캐릭터로서 체험하며 죽을 운명인 캐릭터들을 살려 해피엔딩을 보는 것.

        

       ……딱히 나쁜 짓도 하지 않았는데 이 세계에 빙의된 이상, 나는 그걸 목표로 삼기로 했다.

        

       “황녀님은 어떻습니까?”

        

       “황녀? 아, 앨리스.”

        

       나의 질문에 클레어의 표정이 조금 흐려졌다.

        

       클레어가 앨리스에게 별다른 악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거다. 그보다는, 자기가 먼저 나와 언니 동생 같은 사이가 되었는데 지금은 앨리스와 내가 그런 관계가 되어있다는 생각에 조금 씁쓸할 뿐이겠지.

        

       하긴, 루카스가 없었다면 나는 그레이스가에 가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레오와 클레어, 나로 이루어진 삼 남매가 되어있었을지도 모르고, 내가 굳이 ‘쿨뷰티’ 캐릭터를 선택하는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뭐, 이미 벌어진 일이고, 나는 앨리스라는 캐릭터도 좋아했으니 나름대로 지금 상황을 즐기고 있기는 했지만.

        

       “앨리스는 아직 잠이 덜 깬 모양이야. 사실 여기 오기 전에 먼저 앨리스 방에도 들렀는데, 웅얼웅얼하면서 대답해서 뭐라고 했는지는 제대로 듣지 못했어.”

        

       “…….”

        

       흠.

        

       하지만, 나는 앨리스도 결국 합류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게임에서는 파티 편성에 앨리스도 넣을 수 있었으니까. 만약 앨리스가 아직 자고 있었다는 설정이었다면 첫 퀘스트부터 파티에 넣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곧 내려가도록 하겠습니다.”

        

       “알았어!”

        

       내 대답을 들은 클레어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그렇게 좋을까?

        

       하긴, 가족 비슷한 존재조차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클레어였으니, 원작과는 다르게 가족 비슷한 존재인 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쁠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원작에서는 거의 묘사되지 않았던 그 고아원 아이들은 전부 어떻게 되었을까. 아직 그레이스 가에 있으려나? 어쩌면 그곳에서 고용되어 가신이나 하인, 하녀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의 클레어라면 자기 하인으로 들어온 같은 고아원 출신이라도 마치 형제나 자매처럼 대하고 있겠지.

        

       상상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광경이었다.

        

       스토리 상으로는 나중에 그레이스가에도 방문하게 되니, 그때 한 번 확인해보도록 할까.

        

       “그럼 먼저 내려가서 아침부터 주문해둘게!”

        

       “알겠습니다. 하던 일만 정리하고 곧바로 내려가겠습니다.”

        

       “응!”

        

       클레어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는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그리고 조금 서둘러 방문 앞을 떠나는 발소리가 들렸다.

        

       들뜬 걸까?

        

       음, 그럴지도 모르겠다. 자기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람이 둘씩이나 같이 있고, 친해진 친구들도 전부 여기 있었으니까.

        

       클레어 눈으로 보기에는 다 같이 놀러 왔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겠지. 수련회 비슷한 거라고 생각해도 되려나?

        

       “…….”

        

       나는 분해해서 멍하니 닦고 있던 총기 부품들을 다시 천천히 조립하기 시작하며 생각했다.

        

       하긴, 뭐.

        

       이렇게 내성적인 나도 기대되는데, 저런 성격의 클레어가 기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조금 웃긴 일이긴 했다.

        

       “흐암.”

        

       ……그래도 조금 피곤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

        

       철두철미한 척하기 위해 그 새벽부터 총기를 분해해 손질하는 척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게 나쁜 일은 아니었다고 본다. 덕분에 본격적으로 일에 들어가기 전에 총기 상태를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혹시라도 극적인 상황에서 총기가 고장 나면, 몇 시간씩을 통째로 돌려서 총기를 재조립해야 하는 사태가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일단 바로 나갈 것은 아니었기에, 총기는 그대로 내 방 안에 안전하게 두고, 방 밖으로 나왔다.

        

       “아…… 실비아…….”

        

       평소에 듣던 것과는 다르게 쩍쩍 갈라진 목소리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황녀님.”

        

       “……실습 중이기는 하지만…… 아직 아카데미 생이니까, 이름으로, 불러…….”

        

       눈을 거의 뜨지도 못하고 반쯤 좀비 같은 소리를 내고 있긴 했지만, 그 와중에도 앨리스는 나에게 그런 딴지를 걸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보여?”

        

       내 질문에 앨리스가 얼굴을 내 쪽으로 똑바로 향하며 물었다. 나를 보았다고 표현하지 않고 얼굴을 향했다고 표현한 이유는, 앨리스가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굴이 붓지는 않았고, 머리가 조금 삐친 것만 빼면 여전히 앨리스의 예쁜 얼굴 그대로이긴 했지만, 역시 아무리 자기관리에 철저한 앨리스라고 해도 새벽 네 시에 깨는 것은 여러모로 어려운 모양이었다.

        

       “……머리카락이 삐져나왔습니다.”

        

       “……됐어. 알고 있어도 지금은 고칠 자신이 없으니까.”

        

       내 말에도 앨리스는 그렇게 말하고 그냥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래도 말을 하는 와중에 잠이 조금씩 깨고 있는지, 갈라졌던 목소리가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눈도 거의 뜨지 못한 채 계단을 내려가는 앨리스 뒤에서 앨리스의 발걸음에 신경 쓰며 계단을 내려갔다. 앨리스는 다행히 발을 헛디뎌 체통을 지키지 못하는 일을 겪지는 못했다.

        

       1층으로 내려가 찾아간 식당에는 일전에 우리가 역 근처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모양의 둥근 테이블이 몇 개 있었다.

        

       다만 그 주변의 모습은 우리가 봤던 그곳과는 다소 달랐다.

        

       대낮이었는데도 조금 어두웠던 그곳과는 다르게, 아직 해도 뜨지 않았는데도 이곳은 밝았다. 바닥은 나무로 된 마루였지만 낡아서 끼익 거리고 여기저기가 검게 물들어있던 그 식당 겸 여관과는 다르게 고급 나무 재료로 훌륭하게 손질되어 만들어진 것이었고, 여기로 들어오기 전에 보았던 호텔 로비도 아주 훌륭하게 잘 지어진 곳이었다.

        

       분명 급이 다른 건축자재로 급이 다른 돈을 써서 만들어진 곳인데도 그 식당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역시 같은 북부는 북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

        

       먼저 앉아서 기다리고 있던 레오가 손을 들어 우리에게 인사해 보였다.

        

       “…….”

        

       그리고 그 옆으로는 앨리스와 마찬가지로 거의 좀비나 다름없는 상태의 같은 반 급우들이 차례대로 앉아있었다.

        

       사실 미아 크로우필드는 이미 죽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의자에 앉아있긴 했지만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미동도 하지 않았으니까.

        

       제이크는 눈을 연신 비비고 있었고, 샤를로트는 간신히 왕녀의 체통을 잃지 않을 정도로만 의자에 버티고 앉아있었다.

        

       ……다행이다.

        

       내가 평범한 거였구나.

        

       하긴, 원래의 주인공은 레오였으니까.

        

       원래 주인공 일행은 주인공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 존재들이다.

        

       그 주인공 아침이 좀 지나치게 이른 것이 문제이긴 했지만.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