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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2

       아브라함의 눈동자가 떨렸습니다. 예상 밖의 일을 맞닥뜨린 사람의 당황이었습니다. 그는 매일 밤 꿈속에서 딸이 돌아오는 모습을 그렸지만, 별처럼 빛나는 지성은 그럴 일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당혹.

       

       아브라함은 신중하게 할 말을 골라내었습니다. 그 종교에서는 나오기로 한 거냐, 여전히 괴상한 것을 믿고 있느냐, 험한 일을 당하지는 않았더냐. 

       

       그러나 이사악의 눈동자를 들여다보고 나면, 이러한 질문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눈은 마음의 창이고, 그녀의 창 안쪽에는 오직 한 가지뿐이었습니다. 사람의 이지를 흩어놓는 맹목적인 흰색. 끓어오르는 거품.

       

       그러니, 노인은 뻔한 말을 구태여 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잘 지냈느냐⋯⋯?”

       

       이사악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 미소는, 딸이 자상한 아버지의 염려를 기꺼워하는 것이 아니라, 철창 안에 갇힌 원숭이의 재롱을 보는 듯하여.

       

       “네, 저는 잘 지냈어요 아버지. 제 영혼은 인생의 여느 때보다도 충만하고, 하루하루를 진정으로 의미 있게 사용하고 있답니다. 모두 아버지 덕분이에요.”

       

       “⋯⋯⋯⋯.”

       

       “여전히 의미 없는 별을 헤아리고 계시는가요? 그저, 먼짓덩어리들이 뭉쳐서 만들어진, 우주를 부유하는 돌덩어리들을.”

       

       “의미 없지 않단다, 얘야. 세상의 모든 것에는 의미가 있어.”

       

       “여전히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계시는군요. 아버지.”

       

       오가는 말의 어조는 상냥했을지언정, 분위기와 눈빛은 딸과 아버지 사이의 대화로 볼 수가 없어서. 타라는 아브라함을 지키려는 듯이 둘 사이에 끼어들었습니다.

       

       “⋯⋯너는, 누구야.”

       

       “소개가 늦었네요. 제 이름은 이사악이에요. 당신은?”

       

       “⋯⋯타라.”

       

       “여러분은?”

       

       이사악의 눈동자가 베네트와 니오레에게 향했습니다. 베네트는 선명하게 느껴지는 꺼림칙함에 마른침을 삼켰고, 니오레는, 그녀의 시선에서 우주를 느꼈습니다.

       

       암흑, 그 소름 끼치도록 새까만 공백에, 있으나 없고, 없으나 있는. 부풀어 오른 알 같기도 하고, 쪼그라들어 스스로 무너지는 심장 같기도 한. 인간의 인지로는 단편적인 부분밖에는 관측할 수 없는 기괴한 우주를.

       

       “⋯⋯아하. 당신도?”

       

       그것을, 이사악도 감지한 것처럼.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꽃이 피어났습니다. 이전의 비웃는 듯한 미소가 아닌,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으로. 

       

       이사악은 느긋한 걸음으로 다가와, 니오레의 두 손을 잡고 정중하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한가득 친애를 담아.

       

       “만나게 되어 기뻐요. 이름은?”

       

       “⋯⋯⋯⋯.”

       

       니오레는 멍한 표정으로 입을 벙긋거렸습니다. 그것으로 족하다는 듯, 이사악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침묵 속에서 이어지는 교감.

       

       그러나, 그것은 일방적인 교감이었습니다. 이사악은 분위기로, 몸짓으로, 니오레를 더듬어나가듯. 아득하면서도, 사악한 무언가를 전하려고 했습니다. 사내가 아리따운 여성에게 구애하듯이, 찌르는 듯한 시선으로.

       

       그리고, 그녀가 뭐라고 더 말을 붙이려 할 때──.

       

       “떨어져라!”

       

       타악!

       

       베네트가 이사악의 손을 쳐냈습니다. 그리고 니오레의 어깨를 감싸, 두 걸음 뒤로 물러났습니다. 보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치, 흰색 뱀이 니오레에게 독니를 드러내고 있는 모습으로 보였기 때문에.

       

       이사악은 꾸며낸 울상을 지으며, 아프다는 듯이 쳐내진 손을 쓰다듬다가. 

       

       “마땅히 묵을 곳이 없어서 돌아왔어요. 처음 보는 이방인도 따뜻하게 맞이해 주셨으니, 잠깐 집을 나갔다 돌아온 딸은⋯⋯ 틀림없이 환영해 주시겠죠, 아버지?”

       

       “⋯⋯그래, 네 방은 항상 관리해 두고 있었단다.”

       

       이사악의 눈길이 타라를 흘겼습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이사악의 옷도.

       

       “하지만 지금은, 그 방이 저를 위해 있는 것 같지는 않네요. 저는 괜찮아요, 아버지. 제가 돌아올 거라고 믿어주지 않으셨던 건, 용서해 드릴 수 있어요.”

       

       “나는⋯⋯ 네가 돌아오기를 꿈에서도 바랐단다.”

       

       “말과 행동이 다르시네요. 저는 창고 방으로 족하답니다. 제 방은, 계속 사용하셔도 괜찮아요. 타-라. 좋은 식사 되세요.”

       

       이사악은 가볍게 인사하고, 2층 계단을 걸어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베네트가 머무르던 복도 구석의 창고 방으로 향했습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닫았습니다.

       

       그녀의 흰색 잔향이 사라질 때까지, 자리의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표정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습니다. 별을 헤아리는 가엾은 노인은, 주름진 손으로 얼굴을 덮인 채로 한탄했습니다.

       

       “이사악에게, 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는데⋯⋯.”

       

       인간이 어쩔 수 없는, 뒤늦은 후회였습니다.

       

       ===============================================================

       

       이사악은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습니다. 날을 세우던 첫날과는 달리, 그녀는 시종일관 착하고 예의 바른 딸처럼 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애교를 부리고, 니오레에게 더 필요한 것은 없는지를 묻고.

       

       특히나, 이사악은 니오레에게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먼저 말을 걸고, 안부를 물었습니다. 그녀의 문장에 웃고, 감격한 듯이 굴었습니다. 따뜻한 말과, 변하지 않는 호의로.

       

       그러나, 이 자리의 모두가── 그것이 가식이리라는 것을 알기에. 겉으로는 화기애애해도, 수면 아래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했습니다. 

       

       당장이라도 무언가가 일어날 것 같은.

       

       하지만 손을 쓸 방법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식뿐인 태도라고 한들 행복한 듯 보였습니다. 집을 나가 사이가 멀어진 딸이 돌아와서 살갑게 굴어주는 지금의 상황은, 꿈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일이었으니까요.

       

       그렇기에 베네트도, 타라도, 손을 쓸 수 없었습니다. 베네트는, 어느 날 밤에 아브라함과 나누었던 대화가 마음속에 남아있었기 때문이며. 타라는, 아브라함이 슬퍼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으므로.

       

       할 수 있는 일은, 감시나 대비 등의 간접적인 일뿐이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인 일이라면, 외적의 등장으로 타라와 베네트의 사이가 임시로나마 개선되었다는 것입니다.

       

       “수상한 짓을 하면 알아낼 수 있을 거다. 창고 방의 문턱에도 마법을 깔아 뒀고, 아브라함의 방에도 장치를 해 뒀다. 감시용 패밀리어도 하나 준비했고. 천장 위에 쥐새끼를 하나 숨겨 뒀다.”

       

       “나도 『저주 방어』같은 건 깔아놨는데⋯⋯ 여차하면 아브라함을 버릴 거라면서? 생각보다 열심히 하네. 무슨 생각이야?”

       

       “⋯⋯그 이사악이라는 여자가 위험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눈깔이 정상이 아니었으니까.”

       

       “그래, 뭐⋯⋯. 오늘 당번 너지?”

       

       “은근슬쩍 떠넘기지 마라. 너니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 5일 차 낮.

       

       귀환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타라는 오늘 아브라함과 함께 대학교를 견학하자고 주장했고, 베네트 또한 정보 수집의 필요성을 느꼈으므로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식사 자리에서 아브라함에게 물었습니다.

       

       “아브라함, 혹시 저희가 대학교를 견학해 볼 수 있을까요?”

       

       “대학에 관심이 있는 겐가?”

       

       “네. 알아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대학보다는 도서관에 관심이 있었군. 좋네.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준다면⋯⋯ 내가 직접 안내해 줄 수도 있을 테지. 가세나.”

       

       아브라함은 흔쾌히 동의했고, 세 사람은 미스캐토닉 대학교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외출을 위해서 이것저것 챙겨 들고, 타라가 아브라함의 짐을 들어주겠다며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묘하게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식사를 깨작대는 니오레를 보고. 베네트는 어깨를 툭 건드렸습니다. 니오레는 놀라지도 않고 고개를 돌렸습니다.

       

       “들었나? 미스캐토닉 대학교로 가기로 했는데.”

       

       [아, 네. 들었어요.]

       

       “컨디션이 안 좋은 거라면⋯⋯ 그래도 따라오는 편이 낫겠어. 무력한 상태일 때 습격이라도 받으면 어쩔 도리가 없으니까. 정 힘들면 업어주지. 그럴 몸 상태도 아니라면 보고서에 적힌 은신처로⋯⋯.”

       

       [괜찮아요. 그냥, 어젯밤에 잠이 잘 안 와서 그랬어요. 그리고, 도서관 같은 곳에서는 제 능력이 필요하잖아요?]

       

       베네트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사소한 정보까지 순식간에 알아채는 니오레의 눈썰미는, 무언가를 조사할 때 큰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이번에도 분명히 도움이 될 터.

       

       어딘가 태도가 이상한 니오레가 걱정되었지만, 혼자 남겨두는 것보다는 나았습니다. 그렇게, 여러분들은 아브라함을 따라 자동차라고 불리우는 소란스러운 기계를 타고 미스캐토닉 대학교로 향했습니다.

       

       타라가 자기도 운전해 볼 수 있겠느냐며 묻고, 베네트가 개소리하지 말라고 끼어들고, 그렇게 북적거리는 와중에도 니오레는 조용했습니다. 화이트보드와 펜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니오레의 이상행동은, 어젯밤에 있었던 일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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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 권유

       

       늦은 밤, 니오레의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리 와. 이리 와. 그녀는 얕은 잠에서 깨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새근새근 잠든 타라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리 와. 

       

       머릿속의 목소리는 방향까지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니오레는 이것이 모종의 마법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방에서 나서, 목소리가 유도하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도착한 곳은 복도 끝의 창고 방.

       

       니오레는 조용히 노크했습니다. 그러자 문이 스르르 열렸습니다. 안으로 발을 들이면, 반짝이는 달빛을 받으며 기지개를 켜는 이사악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애롭게 웃으면서 말을 걸어왔습니다.

       

       “신을 믿나요?”

       

       [존재는 믿지만, 신앙하지는 않아요.]

       

       “신을 가까이서 본 적은요?”

       

       [없어요.]

       

       “아까워라.”

       

       이사악은 유감스럽다는 듯 눈꺼풀을 파르르 떨고, 창문 너머로 펼쳐진 아득한 밤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니오레도 고개를 돌렸습니다. 오늘은 마당 앞의 감시자가 없었습니다.

       

       흰 드레스를 입은 여인은, 종교적인 열의에 심취한 채로 뇌까렸습니다.

       

       “인간은, 신을 이해할 수 없어요. 열등한 감각기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귀로는 아주 자그마한 음역대만 들을 수 있고, 눈으로는 무지개를 벗어나는 색을 볼 수 없죠.”

       

       [⋯⋯⋯⋯.]

       

       “하지만, 아주 가끔. 조금 더 볼 수 있는 행운을 거머쥐고 태어난⋯⋯ 선택받은 사람들이 있어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신과 아주 가까운 사람. 나와, 당신. 온전한 이해에는 결코 닿을 수 없더라도, 그 편린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그녀는, 자신이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굳게 믿는 듯 보였습니다. 그것이 종교적 열의의 원동력이었습니다. 이사악은 허벅지를 비비적거리며,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들뜬 눈으로 저 밤하늘에 구애의 시선을 보냈습니다.

       

       그 질척거리는 애정. 그럴 수 있다면, 금방이라도 혀를 섞어 넣을 것 같은 끈적거리는 욕망. 다양한 감정이 혼탁하게 섞여 자아내는 한 송이의 꽃. 부글거리는 거품.

       

       니오레는 그것의 이름을 알았습니다. 광신(狂信).

       

       “당신도 이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요. 지금은 아주 좋은 때거든요⋯⋯.”

       

       이사악은 책 한 권을 니오레에게 내밀었습니다. 무언가의 가죽으로 제본되어 있는 불길한 책이었습니다. 표면을 쓸어보면, 죽은 가죽에서는 느껴질 리가 없는 온기가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니오레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책을 품 안에 넣은 채로 방에서 나왔습니다.

       

       [⋯⋯⋯⋯.]

       

       니오레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우주의 무언가에 대해, 아찔한 낙차를, 그 거대함에 경외를 품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던져버릴 생각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이세계도, 본래의 세계도,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무언가는 항상 존재해 왔습니다. 황실의 권력도, 승화에 다다른 걸어다니는 괴물도, 언젠가 맞이할 죽음도, 항거할 수 없는 무언가라는 사실은 동일합니다.

       

       그녀는 다만, 사람을 구하는 것이 옳고, 사람을 해치는 것이 그르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믿음을 위해서 몸을 던질 용기도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불길한 책을 읽고, 정보를 얻어내어. 베네트와 타라를, 아브라함을 도울 생각이었습니다. 어쩌면⋯⋯ 이사악도. 도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니오레는 방구석에서 책을 펼쳤습니다.

       

       그날 밤은 기억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

    쪼끔 더 있다가, 한 친구 더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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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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