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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2

       『잘했다. 밀실 공간에 가스를 채우는 건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지. 문을 막고 불필요한 충돌 없이 마비독으로 제압한 건 좋은 판단이다.』

       “흐아.”

         

       파스텔은 하수도 땅바닥에서 비척비척 일어났다. 살짝 몸을 떨며 손으로 팔을 비볐다.

         

       “완전 나쁜 사람들이었어요.”

         

       무차별 독극물 테러라니.

         

       우아아.

         

       꽉 닫힌 철제문을 두려워하는 시선으로 봤다.

         

       “뭐 하는 범죄자들일까요?”

       『마족 과격파일 가능성이 높다. 모든 마족이 이런 건 아니지만 일부는 증오와 원한을 애꿎은 곳에 풀기도 하지. 인간 학생들의 식수원에 독을 뿌리는 식으로 말이다.』

       “으아아.”

         

       두려우면서도 학생회로서 의무감이 든다. 이런 지독한 범죄자에게서 친구들을 지켜야 해.

         

       파스텔은 검을 들고 조심스럽게 철제문을 열었다. 문틈으로 노란 마비 가스가 새어 나왔다. 가스를 들이켜자 기침이 나왔다.

         

       우와앗!

         

       가스다, 가스!

         

       파스텔 살려어!

         

       혼비백산하며 문을 다시 닫았다.

         

       딱히 맑진 않은 하수도 공기를 서둘러 들이켰다.

         

       “후하! 후하!”

         

       악마가 어이없어했다.

         

       『넌 안 통한다. 매일 식사에 마석 가루를 뿌려 먹으면서 왜 계속 평범한 인간인 것처럼 자각하는 거냐.』

       “앗! 맞아요!”

         

       나 멀쩡하지!

         

       그래서 들고 다니다가 불상사가 생길 가능성이 높은 유리병 마비독을 사용의 편리성만 고려해서 채용해도 되는 거고.

         

       자신감이 생긴 파스텔은 문을 천천히 열었다. 새어 나오는 노란 가스를 자신만만하게 들이켰다.

         

       “안 통, 콜록!”

         

       콜록! 콜록!

         

       맑은 공기가 아니라 기침이!

         

       황사 도중에 숨쉬기를 한 거 같은 괴로움!

         

       『그렇다고 굳이 일부러 들이켜라는 의미는 아니다…….』

       “으에, 네에.”

         

       하얀 소매로 코를 가리며 문을 열었다. 문가에 기대 있던 마족이 쓰러지며 소음을 냈다.

         

       “우왓!”

         

       파스텔은 흠칫 떨곤 마족을 살펴봤다. 몸이 완전히 마비됐는지 미동조차 없었다.

         

       “주, 죽으셨나요?”

         

       검면으로 마족을 툭툭 건드려 봤다. 반응이 없다.

         

       으아?

         

       나 설마 살인을 저지른?

         

       『밀실 상태로 가스를 마셨으니 마비가 과해서 혼수상태에 이른 거다.』

       “그, 그래요?”

         

       마족을 툭툭 건드려 보다가 방의 내부로 시선을 돌렸다. 노란 가스가 빠져나오곤 있었지만 실내는 아직도 뿌연 노란색으로 뒤덮인 상태였다.

         

       마른침을 꼴깍.

         

       “모두 쓰러지셨나요?”

         

       혼란으로 쓰러진 나무 가구와 사람 실루엣들은 역시나 미동조차 없었다.

         

       휴우.

         

       파스텔은 괜히 이마를 닦았다. 그리곤 의기양양한 기색으로 사악한 범죄자들을 내려봤다.

         

       “나쁜 범죄자 여러분! 이제 아셨나요? 독극물 테러 같은 흉악한 짓을 계획하는 사상 최악의 범죄자 중 하나인 여러분은 절대로 승리할 수 없어요!”

         

       스스로를 팍 짚었다.

         

       “그걸 알았기에 학생회 파스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여러분을 상대했습니다! 정의가 제게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뿌듯.

         

       수많은 친구들, 내가 이렇게 고생하고 있다구.

         

       그러니까 꺼림칙한 크래프트라고 거리 두며 아이돌 보듯이 하지 말고 친구로 지내자. 이 분홍분홍 파스텔의 어디가 겉과 속이 다르다고 그러는지 모르겠어.

         

       설교하며 승리감에 취한 파스텔은 내부의 가스를 훑어봤다.

         

       “이 가스를 오래 들이켜면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거나 하나요?”

       『그 정도 효과까진 안 나온다. 네가 자다가 유리병을 깬 바람에 주변 사람이 수면 동안 휩쓸리는 상황도 고려해서 만든 거니.』

         

       잉.

         

       갑자기 사고뭉치가 된 기분.

         

       반박하려던 파스텔은 오늘 아침에 악마의 요리를 구경하다가 튀김 밀가루를 엎어드려 살짝 혼난 기억을 떠올렸다.

         

       좀 사고뭉치일지도……?

         

       슬쩍 딴청을 했다.

         

       “자, 장시간도 괜찮다니 이 사람들은 여기에 방치해 두죠.”

         

       문가의 마족을 밀었다. 마족이 가볍게 밀려나 실내로 들어갔다. 문을 꽉 닫아 가스 밀실을 완성해 줬다.

         

       “경비대 불러와 감옥에 수감시켜야지~.”

         

       손을 털고 하수도 구석에 둔 마석 랜턴을 챙겼다. 랜턴 광원을 키우자 하수도가 밝아졌다.

         

       문득 하수도 통로의 저편이 소란스러웠다. 거대한 생쥐 무리가 통로를 채우며 몰려왔다.

         

       오잉.

         

       파스텔은 눈이 동그랗게 됐다.

         

       “악마니임! 찍찍이 친구들이……!”

         

       내 피와 살을 먹어 복수하려고 오는 거야.

         

       으아아.

         

       『경비대를 데려오려면 주변을 정리할 필요가 있겠지. 개체수를 조절해줘라.』

         

       앗.

         

       파스텔 담담한 목소리에 진정했다. 주변 지형지물을 둘러보다가 통로 벽으로 폴짝 뛰었다. 생쥐가 어쩌지 못할 높이에 검을 박고 한차례 회전해 올라탔다.

         

       몰려오는 쥐 떼를 내려봤다.

         

       “어서 와, 찍찍이 친구들.”

         

       나이프 친구와 인사할 시간이야.

         

       품에서 나이프가 질주했다.

         

       은빛 궤적이 하수도를 휩쓸었다.

         

         

         

       #

         

         

         

       앨시어 벨라몬트의 개인 기숙사를 방문했다.

         

       사용인 겸 사병들이 지키는 기숙사였다. 쇠창살이 감옥을 둘러싸듯 사병의 장창이 빽빽하게 기숙사를 감쌌다.

         

       “침입한 마족들을 심문해 보니 잡힌 인원은 선발대고 추가 인원이 더 있다고 해.”

         

       파스텔은 테라스의 티 테이블에 앉아 팔짱을 꼈다.

         

       “이미 계획을 포착했으니 식수원 오염 같은 무차별 테러는 차단이 가능하지만 널 상대로 한 암살은 완벽히 막기가 어려워.”

       “괜찮아.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정면의 은발 소녀가 설탕을 티스푼으로 떴다. 하얀 가루가 홍차에 뿌려지고 섞였다.

         

       “편입학할 때부터 예상한 일이니까. 마족을 동원할 줄은 몰랐지만.”

       “암살을? 무슨 원한이라도 졌어?”

         

       파스텔은 고개를 갸웃했다.

         

       앨시어는 흐릿한 미소를 짓곤 설명해 주지 않았다.

         

       대답은 대신 옆 테이블에서 나왔다.

         

       “후계 다툼이겠죠.”

         

       멜리사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찻잔이 소리 없이 세련되게 찻잔 받침에 놓였다.

         

       소식을 어디서 들었는지 도중에 스리슬쩍 따라온 멜리사는 다른 테이블에 혼자 앉아 있었다. 또 왜 저러는 걸까.

         

       파스텔은 옆자리를 가리켰다.

         

       “같은 테이블에 앉는 게 어때?”

         

       멜리사가 고개를 저었다.

         

       “마음에 두지 마세요. 전 여기가 좋아요.”

       “그래?”

         

       취향 참 독특하단 말이야.

         

       앨시어가 미간을 좁혔다. 은색 눈동자가 금발의 소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엄마 말에 휘둘리는 어린애.”

         

       오잉.

         

       파스텔은 눈이 동그랗게 됐다.

         

       갑자기 도발.

         

       멜리사가 눈살을 찌푸렸다.

         

       “휘둘리는 게 아니라 존경해 마땅할 어머니의 말씀을 따르는 거예요. 벨라몬트, 당신과는 같은 테이블을 공유하는 시간 자체가 아깝거든요.”

         

       앨시어가 말없이 고개를 숙이더니 파스텔의 그림자를 살펴봤다. 캐머롯의 구두가 크래프트의 그림자를 밟은 사실을 확인하더니 비죽 미소 지었다.

         

       “좋아하는 엄마와의 약속도 못 지키는 어린애.”

         

       우와아.

         

       파스텔은 입이 벌어졌다.

         

       사이 안 좋다더니 정말 안 좋은가 봐.

         

       아닌가? 그냥 사이가 좋은 건가?

         

       반응이 궁금해 슬쩍 돌아봤다.

         

       멜리사가 눈썹을 잘게 떨었다.

         

       “파스텔은 어머니께 허락받았어요. 장남에게 밀려 아카데미로 쫓겨온 당신과 다르게 전 어머니와 소통이 잘 되거든요. 잘못 이해한 부분을 말로 해결할 수 있죠.”

         

       앨시어가 입꼬리를 비죽 올렸다.

         

       “결국 엄마 말에 휘둘리는 어린애.”

         

       우아아.

         

       멜리사는 열심히 말하는데 앨시어는 그냥 한마디로 대충 찌르고 있어.

         

       멜리사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멜리사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살짝 떨리는 목소리가 됐다.

         

       “휘둘리는 게 아니라, 존경해 마땅한 말씀을 따르는 거라니까요. 몇 번을 말해야 이해할 수 있을까요. 입은 천박하고 태도는 무례한 당신에게 이해를 바라는 건 실례일지도 모르겠어요.”

         

       우왓, 강렬한 단어 선택.

         

       살짝 팝콘 먹는 기분이 된 파스텔은 앨시어를 돌아봤다. 이건 좀 아프지 않아?

         

       앨시어가 손가락으로 크래프트의 그림자를 밟은 멜리사의 구두를 가리켰다.

         

       “엄마 말도 안 듣는 어린애.”

         

       완전 대충인 반박.

         

       하지만 효과는 좋은지 멜리사가 옅게 씩씩댔다. 얼굴이 붉어지고 호흡을 진정시키지 못하는 반응이 진짜 애 같긴 했다.

         

       “그러니까, 허락을 받았다는-”

         

       앨시어가 어깨를 으쓱였다.

         

       “결국 엄마 말에 휘둘리는 어린애.”

         

       멜리사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답답하고 자존심 상하는지 숨을 다소 거칠게 내쉬다가 고개를 홱 돌렸다.

         

       “됐어요. 천박한 당신과는 대화가 안 돼요.”

         

       그리곤 무시하듯이 우아하게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걸 보던 앨시어도 코웃음을 치며 똑같이 차를 마셨다.

         

       정적이 흘렀다.

         

       구경하던 파스텔은 입을 뻥긋거렸다.

         

       우와우와.

         

       이것이 남부 군벌과 북부 군벌이 제국의 정치권력을 두고 펼치는 고도의 신경전?

         

       너무 고도의 신경전이라 그런지 순수한 파스텔은 이해가 안 돼~.

         

       둘을 번갈아 보다가 따라 하듯이 차를 마셨다.

         

       꿀꺽꿀꺽.

         

       “후아아.”

         

       설탕을 왕창 넣어서 그런지 달콤하네.

         

       원샷하고 찻잔을 내려놓았다.

         

       달그락.

         

       시선이 집중됐다.

         

       파스텔은 앞접시에 마석 가루를 뿌리고 쿠키를 냠냠 했다. 그리곤 둘을 번갈아 보며 울상인 표정을 지었다.

         

       “얘들아! 날 두고 싸우지 마아!”

         

       양 주먹을 꼭 쥐곤 열렬히 외쳤다.

         

       “파스텔은, 파스텔은! 모두의 친구니까! 독점할 수 없어!”

         

       진심이 담긴 외침.

         

       “네?”

         

       뜬금없는 소리에 멜리사가 당혹스러워했다.

         

       앨시어도 마찬가지인지 눈을 깜빡였다.

         

       응, 좋아!

         

       대충 싸움 분위기가 없어졌네!

         

       역시 난 친구 사귀기 100단이야!

         

       파스텔은 쿠키를 하나 더 먹었다.

         

       우물우물.

         

       “앨시어, 네가 암살은 괜찮다고 말해도 학생회로서 가만히 있긴 곤란하니까 당분간 아카데미 단속을 강화할게. 최소한 일대일 토너먼트 기간이 끝나는 동안까지는 말이야.”

         

       와 그런데 이 쿠키 완전 맛있다!

         

       눈을 빛낸 파스텔은 쿠키 부스러기를 입가에 묻힌 채 둘을 번갈아 봤다.

         

       “그리고그리고! 날 두고 싸울 거면 맛있는 선물이 좋겠어! 이 쿠키 같은 거! 그런 의미로!”

         

       앨시어를 향해 검지를 내밀었다.

         

       “앨시어 1승!”

         

       손뼉을 짝짝 쳤다.

         

       “축하해! 나랑 더 친해졌어! 와아!”

         

       앨시어가 얼빠진 상태가 됐다.

         

       그러더니 슬쩍 멜리사를 바라봤다.

         

       “얘는 원래 이래?”

         

       멜리사가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으잉?

         

       파스텔은 둘을 번갈아 봤다.

         

       그러다 쿠키 냄새가 정신을 솔솔 자극하길래 그냥 쿠키 두 개를 집어 통째로 입에 넣었다.

         

       욕심쟁이 와아앙.

         

       우물우물 우물우물.

         

       건조하고 담백한 겉 부분이 부서졌다. 촉촉한 내부가 씹히며 달콤함이 터졌다.

         

       분홍색 눈이 반짝였다.

         

       “우와, 진짜 맛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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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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