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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2

     

    “승부가 났네요! 아셀라 폰 뷔르템펠트 3황녀가 정당한 결투 재판에서 승리했음을 선언하겠어요!”

     

    라우가가 경기장이 떠나가라 외쳤다.

     

    내 앞에선 죽다 살아난 게오르크가 심장을 부여잡으며 숨을 헐떡대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내가, 토진궁의 주인이자 차기 황제가 되어야 할 내가…!”

     

    “삼각팬티 입으시네요.”

     

    “시끄럽다!”

     

    게오르크가 나를 향해 팔을 내저었다. 무장해제를 맞아 속옷 차림인데다 얼굴은 콧물과 흙 범벅이라 별 위협은 안 됐다.

     

    안 죽을 정도로 약화한 독이고 바로 해독하긴 했어도 건강한 놈이었다.

     

    아셀라가 앞으로 나서 탁, 지면을 박차며 턱을 치켜들었다.

     

    “게오르크, 잊지는 않았겠지? 결투에서 패배했으니 너는 3년간 황궁에 출입금지야.”

     

    “웃기지 마라. 토진궁은 내 궁이야. 나는 황족이다. 승계권자란 말이다. 감히 누가 무슨 권한으로 나를 쫓아낸단 소리야!”

     

    게오르크가 아셀라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역설했다.

     

    “할 테면 해봐라. 재판도 결국 대법관의 판결 아니냐. 황족인 나를 구속할 권한이 어디에 있겠어!”

     

    억지를 부리기 시작하는 게오르크.

    당장 밖으로 쫓겨나게 생겼으니 절박한 심정이겠지.

     

    그때 귀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추하구나, 게오르크!”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위압감을 뿜어낸 게 누군가 했더니 황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있었다.

     

    수염과 머리칼은 새하얗게 샜지만 여전히 눈빛은 부대 하나는 심장마비로 죽일 정도로 강렬하다.

     

    과연 제국에 전성기를 가져온 전쟁영웅다운 패기였다.

     

    “폐, 폐하.”

     

    “결투의 과정과 결과는 모든 황가의 일원이 지켜보았다. 패배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패배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 진정한 부끄러움이다!”

     

    게오르크의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더 도망칠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폐하, 옥체를 보전하시옵소서.”

     

    주치의들의 간언에 황제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가 턱을 괴고는 나를 바라본다.

     

    눈이 마주친 듯한데, 확실하진 않아서 게오르크와 용건이나 마치기로 했다.

     

    “그럼 이어서 진실을 선언 받겠습니다. 게오르크 황자님, 암살자를 고용해 흑마술로 아셀라 황녀님과 서부 공작의 목숨을 위협한 자가 누군지 아시죠?”

     

    “큭…! 그, 그건.”

     

    게오르크는 크게 당황한 눈치였다.

     

    카밀라의 이름을 말하면 그는 뒤가 없어지게 된다.

     

    안 그래도 쫓겨나는데 카밀라도 없어지면 협약도 무효가 되고, 토진궁은 방치되어 엉망이 되겠지.

     

    “신성한 결투 재판에서 설마 거짓말을 하실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무, 물론이다.”

     

    황제에게 한 소리를 들어서, 어느 쪽이 차선책인지 계산 중인가.

     

    마침내 게오르크가 천천히 입을 뗐다.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이번 건에 연관되지 않았다. 암살 계획이 있다고는 사전에 전혀 몰랐어. 책임소재가 없단 말이다!”

     

    “책임소재가 없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감안하도록 하지요.”

     

    “암살자의 고용인은 토진궁에 있다고 전해 들었다. 그 이상은 모른다.”

     

    게오르크가 눈을 피했다.

     

    그렇게 나오셨겠다.

     

    “즉, 처형 예정인 남작은 누명을 썼다?”

     

    “그, 그런 셈이다.”

     

    “이것 참, 진범은 어둠 속으로 꽁꽁 숨어버린 모양이군요. 토진궁의 주인인 황자님조차 파악 못 한 내용이시니 말입니다.”

     

    “그건….”

     

    “토진궁에는 사람이 많지요. 체류 중인 귀족이라거나…”

     

    나는 슬그머니 황제를 곁눈질했다.

     

    “황족도 계시고요.”

     

    황제가 눈썹을 들썩인다.

    그도 이해했다. 우리가 결투 재판까지 사건을 크게 만든 건 진범을 카밀라로 의심하고 있어서라고.

     

    이건 내가 보내는 메시지다.

     

    공작에게 배상할 필요가 없도록 진범 찾기는 이쯤에서 끝낼 테니 황제더러 카밀라를 통제해달라는 의미였다.

     

    어차피 게오르크가 없어지면 토진궁에 고립된 카밀라는 유폐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전하는 진범의 목표가 공작인지 황녀님인지도 잘 모르시겠군요.”

     

    “그, 그래….”

     

    “이제 됐어, 게오르크.”

     

    아셀라가 뚜벅뚜벅 걸어 게오르크의 앞에 섰다.

     

    “필요한 사실은 알았으니 황궁에서 썩 나가기나 해.”

     

    게오르크는 대꾸도 못 하고 고개를 푹 숙일 뿐이었다.

     

    아셀라가 나를 돌아보고는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진실이 밝혀졌군요! 이로써 결투 재판이 끝났음을 저, 입회인 라우가 폰 뷔르템펠트가 선언합니다!”

     

    황족들의 작은 박수를 받으며 나와 아셀라는 경기장에서 퇴장했다.

     

     

     

    대기실로 돌아가니 우리를 기다리던 인물이 있었다.

     

    “아셀라, 고트베르크.”

     

    헤이케 1황녀였다. 아셀라는 그녀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승리를 만끽하려는데 방해물이 있네.”

     

    “음, 여전히 날이 서 있군. 좋은 기개다. 고트베르크, 훌륭한 활약이었다.”

     

    “감사합니다.”

     

    아셀라의 앞이기에 살짝 예를 생략하고 대답했다.

     

    지난번처럼 뭐라고 한 소리 들을 수도 있으니까.

     

    “무슨 용건이야? 또 남의 신하를 빼갈 생각이면 너도 나랑 결투할 줄 알아.”

     

    “뭘, 좋은 이야기다. 게오르크의 퇴궁은 내게도 반가운 소식이지. 월광궁과 동맹으로서 승리의 축하 선물을 보내려 한다.”

     

    헤이케는 최대 라이벌이었던 게오르크가 약해졌으니 약소 세력인 우리를 포섭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나쁠 것 없는 제안이었다. 헤이케에게 이것저것 많이 받아낼 수 있겠다 싶었다.

     

    “저도 좀 챙겨도 됩니까? 오늘 상당히 공을 세운 것 같은데요.”

     

    “물론이다, 고트베르크.”

     

    시원하게 인정하는 헤이케.

    그녀의 태도를 보고 아셀라가 음흉한 미소를 띄웠다. 사악한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그때 시녀장 누님이 급히 뛰어왔다.

     

    “황녀님! 폐하께서 찾으신다는 진언이에요.”

     

    “바로 갈게.”

     

    “그게, 주치의님도 같이….”

     

    나도?

     

    아셀라와 의문 담긴 눈빛을 교환한다.

     

    “나중에 얘기해, 헤이케.”

     

    황명은 중요하지. 우리는 헤이케를 뒤로하고 즉시 움직였다.

     

     

    황제가 있는 경기장 관람석을 향해 층계를 올라간다.

     

    공주와 사담을 나누던 그가 우리의 도착 소식을 집사장에게서 전해 듣고는 고개를 돌렸다.

     

    나와 아셀라가 예를 표하여 인사하니 가까이 오라 손짓한다.

     

    “아셀라, 마법을 잘 쓰게 됐구나.”

     

    “황송한 말씀입니다.”

     

    예의 바른 아셀라의 태도에 황제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가 나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아셀라의 주치의. 고트베르크로군.”

     

    “보잘 것 없는 이름을 기억해주시니 은덕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셀라의 혼약자라지.”

     

    “그렇습니다.”

     

    “결투 재판으로 가려진 진실은 절대적일세. 짐도 받아들이는 것이 순리.”

     

    황제가 내 의도를 파악하고 카밀라를 통제하겠다는 의미였다.

     

    이건 좀 마음에 들었다.

     

    “진실은 아셀라, 네가 발언했느냐?”

     

    아셀라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고트베르크가 발언했습니다.”

     

    황제가 나를 보며 후덕한 웃음을 지었다.

     

    “재미있는 청년이 들어왔군.”

     

    고개를 숙이며 슬쩍 황제의 눈치를 살폈다.

     

    즐거움이 가득하지만 어딘가 꺼림칙한 눈웃음이다.

     

    아셀라가 누구랑 눈이 닮았는지 알겠다.

     

    “짐은 샤를로트와 소꿉친구였지.”

     

    샤를로트, 현 황후인 1황비의 이름이었다.

     

    “권터의 목을 가장 먼저 벨 건 헤이케나 게오르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만. 다른 결과가 나올 지도 모르겠어.”

     

    그러니까, 자기 첫 아내에 대한 예우로 맏아들을 후계자로 세우긴 했지만 그는 허수아비나 마찬가지.

     

    다른 자식이 그를 제치고 승계받을 전제를 당연하게 세우고 있었단 소리다.

     

    자식들 사이에서 일어난 승계 전쟁은 황제가 일으킨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인간도 발상이 제정신은 아니었다.

     

    아, 그래서 황실이 이 모양이구나.

     

    “쿨럭, 쿨럭.”

     

    근엄함을 지키기도 잠시, 황제가 깊게 기침했다.

     

    주치의들의 처치를 받은 후 그가 말을 이었다.

     

    “짐은 이 결투의 진실을 받아들였다. 고트베르크, 그대는 이를 어찌 생각하는가?”

     

    물론 땡큐죠.

     

    하지만 콕 집어 언급한 걸 보면 내가 어떻게 감사를 표하나 시험하는 것 같다.

     

    아셀라도 그걸 눈치챘는지 긴장했다.

     

    ‘한 번 볼까.’

     

    진단으로 살펴본다.

     

     

    [부상 상태 : 폐렴]

    [부상 상태 : 고혈압]

    [부상 상태 : 골다공증]

    ……

     

     

    주로 노화로 발생하는 질병이 상당히 많이 발생했다.

     

    “폐하, 결투 재판을 지켜봐주신 답례로 진상을 올리고 싶습니다.”

     

    “허락하마.”

     

    나는 품에서 약 봉투 하나를 꺼냈다.

     

    “아침저녁, 식사 후에 드시면 기침이 줄어드는 약입니다.”

     

    코코아를 압축, 강화해서 만든 기침약이다. 천연 성분임에도 마약성 기침약 못지않은 효과가 있다.

     

    “자네, 지금 폐하께 감히 무엇을 진상 올리는 겐가. 검증되지도 않은 물건 아닌가.”

     

    황제의 주치의가 나를 나무란다. 내가 그에게 말했다.

     

    “효과가 좋습니다. 아스피린만큼이나 잘 듣지요.”

     

    “어허, 아스피린은 그랬을지 몰라도 그 약제는 처음 보는 것이거늘….”

     

    황제가 오른손을 들자 주치의가 말을 멈추고 물러났다.

     

    “흠.”

     

    황제가 기침약을 받아들고는 살펴보더니 주치의에게 봉투를 넘겼다.

     

    “고트베르크, 그대의 실력은 내의원에서 어느 정도인가?”

     

    황제의 질문에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물론, 어느 치유사보다도 압도적으로 뛰어납니다.”

     

    황제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나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신성력 빼고요. 그건 훈련해야 하긴 하는데 귀찮아서요.”

     

    “하하하!”

     

    황제는 거하게 웃고는 쿨럭쿨럭 기침을 했다.

     

    “우선은 받아두지. 효과가 증명되고 쓰면 될 일 아니겠는가.”

     

    생각보다 오픈마인드인 황제 폐하였다.

     

    꽤 좋은 기회다. 황제가 내 약제를 쓰면 의학도 대중화될 거고 제약 공장도 보다 기반 있는 시장을 가지게 되니까.

    “알겠습니다. 효과를 증명해 오겠습니다.”

     

    “허허, 기대하마.”

     

    황제가 아셀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셀라.”

     

    “예, 폐하.”

     

    “또 보자꾸나.”

     

    그가 만족한 듯 입꼬리를 찢었다.

     

     

     

    ***

     

     

     

    ―――――――――――

     

    · [기대받는 신예] 업적을 획득했습니다. 제국의 황실이 당신이 다음에 무엇을 보여줄지 궁금해합니다.

     

    ―――――――――――

     

    상태창에 뜬 메시지를 치우니 아셀라가 나를 타박해왔다.

     

    “나한테 상의도 없이 그런 행동을 하면 어떡해. 그 약이 부작용이라도 있으면 난리가 나잖아.”

     

    “에이, 제 실력 못 믿으세요?”

     

    “그건 아닌데….”

     

    월광궁으로 돌아오며 아셀라는 또 불만 가득 투덜댔다.

     

    “어쨌든 이겼네. 공자, 잘도 살아남았구나.”

     

    “후작령에서는 알아주는 싸움꾼이었어요.”

     

    “거짓말. 그게 싸움하던 사람 팔뚝이니.”

     

    나는 피식 웃었다.

     

     

    [No. 012 : 제국의 멸망 38% → 24%]

     

     

    승리도 쟁취했고 황제에게 높은 점수를 획득한 덕분일까, 아셀라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공자는 내 덕에 평생 없을 경험을 다 하고 있지 않니. 대체 누가 제국의 황자를 발밑에 둬 보겠어?”

     

    “죽는 줄 알았다구요.”

     

    “후작령에 있었어도 술독에 빠져 죽었을걸.”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죠.”

     

    “후후, 무지하면 용감하다더니, 공자가 딱 그 꼴이야. 내가 봤는데…”

     

    아셀라가 말꼬리를 흐리더니 말을 멈췄다.

     

    “황녀님?”

     

    “아냐. 나중에 얘기해줄게.”

     

    아셀라는 나를 보며 사악한 음모를 꾸미는 악당처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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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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