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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2

       “돌겠네.”

       

       1층의 계층 수호자는 조금 특별하다.

       

       왜냐면 주인공이 미궁 ‘최초’로 잡는 계층 수호자니까.

       

       그런 만큼 주인공을 띄워주고 특별하게 만드는 이런저런 설정을 붙여주었으니, 권능 확정 가챠가 바로 그러하다.

       

       본래 계층 수호자를 처음 잡는 파티는 낮은 확률로 해당 층의 신의 권능 일부를 얻을 수 있다.

       

       두 번째부터는 불가능하니, 다른 층의 계층 수호자를 잡아야 하지만.

       

       예를 들어 2층의 계층 수호자인 사이클롭스를 쓰러뜨렸으나 권능을 얻지 못했다면, 몇 번이고 반복해서 잡아도 절대 전쟁신의 권능을 얻지 못하는 식.

       

       그럼에도 신의 권능을 원한다면 전쟁신과 궁합이 좋게 타고나길 바라거나, 운 좋게 신력이 고인 장소를 발견하거나……혹은 전쟁신이 아닌 다른 층의 신의 권능을 노리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리젠된 녀석과 달리 미궁 최초로 등장한 계층 수호자를 쓰러뜨릴 경우, 확정적으로 권능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전투에 참여한 모두가 얻는다는 소리는 아니라, 기여도가 높은 몇몇에게 한정된 이야기다. 어떤 권능을 얻을지도 완전히 미지수고.

       

       그럼에도 얻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이미 공략된 층의 계층 수호자보다 훨씬 낫다는 것은 확실하다.

       

       누구까지, 어떤 종류의 가호를 받을지는 몰라도 어쨌든 확정 아닌가 확정.

       

       이건 그거다. 가챠겜에서 경쟁 컨텐츠 상위 1퍼를 달성한 유저들에게 5성 확정 뽑기권을 지급하는 느낌.

       

       실로 배 아프고 아니꼬운 시스템이지만, 그걸 내가 받는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옳게 된 시스템인가.

       

       주인공은 우연찮은 기회로 1층의 계층 수호자를 불러내게 되고, 어쩌다 보니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1대1의 상황에 처했지만, 어찌어찌 쓰러뜨리고 개사기 권능을 얻어 마구마구 성장한다.

       

       이게 내가 쓰려던 주인공의 설정이다.

       

       …중요한 내용은 하나도 생각해 두지 않아 엄청 편의주의적인 전개로 보이지만 괜찮다!

       

       원래 주인공은 좀 날먹해도 돼!

       

       1층의 계층 수호자가 어떤 녀석인지는 몰라도, 어떻게 불러내는지는 설정해 둔 이유가 그래서다.

       

       최초로 1층의 수호자를 불러내는 장면은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장면과 다름없으니 좀 더 공들여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

       

       그런 이유로 나온 것이 세계수의 앞에서 수많은 몬스터를 죽이고, 마석을 뽑지 않아 시체를 방치하는 것.

       

       대체 어떻게 이 방법을 알아낸 것인지는 모르겠다. 나처럼 빙의자가 하나 더 있는 건가 싶지만, 애초에 이 소설은 첫 문장조차 쓴 적 없는 녀석이다.

       

       설령 빙의자가 있더라도 1층의 수호자를 소환하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했으리라.

       

       황혼을 삼키는 자에게 무언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무언가 때문에 내기 상품인 소원권이 날아가게 생겼다.

       

       “…녀석들이 뭘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엄청 끔찍하고 사악하며 있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려는 게 분명해요!”

       

       “요나 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러니 저와 이안의 얼굴을 보자마자 공격했겠죠.”

       

       카렌의 말에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그럼 두 분이 이단심문관인 걸 몰라도 일단 공격하고 봤다는 건가요?”

       

       “맞습니다. 요나 님 덕분에 여신님의 총애가 한층 강해지지 않았더라면 분명 첫 기습에 나란히 당했겠죠.”

       

       “허억.”

       

       그렇다는 건 나를 만나지 못한 카렌은 저번 전투에서 이안과 함께 죽었을 거라는 소리 아냐.

       

       진짜 정신 나간 소리지만, 어쩌면 나와 카렌이 만나고 카렌이 멋대로 착각해 깨달음을 얻은 것 자체가 사랑의 여신이 노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

       

       “일단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제가 짐작 가는 게 있는데, 아무래도 꽤 중요한 연관이 있는 것 같아서요.”

       

       “물론입니다. 우선 처음 놈들을 발견했을 때의 일부터 설명드리겠습니다.”

       

       

       

       이러쿵저러쿵 구리구리오리너구리

       

        

       

       이어진 카렌의 말에 따르면 아무래도 황혼을 삼키는 자가 계층 수호자 소환을 시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다만 그 방법을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수의 환영 앞에서 제물을 바쳐야 한다는 사실은 알아도, 어떤 제물을 어떻게 바쳐야 할지 몰라 닥치는 대로 죽이고 다니는 것에 가까웠으니까.

       

       “그나마 다행이네요….”

       

       “혹시 놈들이 꾸미고 있는 일이 별거 아닌 겁니까?”

       

       “아뇨. 엄청난 일은 맞고, 가만 놔두면 진짜 위험해질지도 몰라요.”

       

       내 소원권이 말이다.

       

       “다만 아직까지는 정확한 방법을 찾지 못한 것 같아 다행이라고 한 거죠.”

       

       “…역시 요나 님께서는 황혼을 삼키는 자의 목적을 꿰뚫어 보고 계셨군요.”

       

       눈을 반짝이며 그리 말하는 카렌. 그 기습 숭배에 몸이 근질근질해진 터라 리디아의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물었다.

       

       “리디아 님 리디아 님.”

       

       “왜.”

       

       “리디아 님은 정확히 얼마나 강해요? 황혼을 삼키는 자랑 싸우면 이길 수 있어요?”

       

       “잡졸 수준이라면 얼마나 몰려오건 상관없지만, 멘토 클래스부터는 개인차가 심해. 아, 멘토 클래스가 뭐냐면….”

       

       “괜찮아요. 황혼을 삼키는 자의 조직도는 대충 알거든요.”

       

       녀석들은 모든 사람은 사랑의 여신 밑에서 평등하다는 이유로 조직도를 엄청나게 단순화했다.

       

       평범한 하위 모험가 수준인 멘티. 아직 가르침을 받는 녀석들인데, 주로 온갖 잡일을 맡는다. 별로 위험하진 않다.

       

       다음은 중위부터 상위 모험가에 달하는 무력을 지닌 멘토. 앞선 이로써 멘티가 성장하도록 돕는 역할을 맡았으며….

       

       권능, 혹은 그에 준하는 힘을 하나 이상 가진 녀석들만 얻을 수 있는 칭호다. 판 그레이브에서 사고를 일으키는 주 전력이기도 하고.

       

       그다음은 마스터가 있긴 한데…이건 일종의 명예직이다.

       

       황혼을 삼키는 자는 잘게 쪼개져 점조직으로 활동하는 놈들이고, 그 수많은 지부의 지부장을 마스터라고 부르는 거거든.

       

       멘토 중에서도 조직 운영에 일가견이 있거나 특히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 맡는 거라 무력과는 상관없는 직함이다.

       

       마지막은 같은 이단자들에게 그랜드 마스터. 혹은 선각자라고 불리며, 황혼을 삼키는 자라는 조직명의 유래가 된 노괴.

       

       최초의 변절자 바네우스가 있긴 한데…지금쯤 미궁 깊숙한 곳에서 죽어가는 몸을 간신히 연명하는 중일 테니 난데없이 1층에 튀어나올 리는 없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운영되는 조직이다 보니, 직함만 듣고서는 정확한 전력을 추정할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에겐 졌지만, 직접 싸워보고 온 카렌이 있잖은가.

       

       “카렌 심문관님. 적의 수준은 어느 정도였나요?”

       

       “규모 자체는 작았습니다. 멘티급 열댓 명과 멘토급 둘이 있었을 뿐이니까요. 다만, 한 놈의 힘이 이상할 정도로 강했습니다.”

       

       “이안 심문관님을 이 꼴로 만든 녀석인가 보네요.”

       

       “맞습니다. 나머지는 저 혼자서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으나, 그 한 명은 저보다 한 수 위에 있더군요.”

       

       “…그 정도로 강하면 인상착의 같은 게 알려지지 않았나요?”

       

       아무리 정체를 숨기는데 일가견이 있는 황혼을 삼키는 자라도 자주 보이는 녀석은 기억할 수밖에 없다.

       

       얼굴을 안다면 얼굴을 기억하면 그만이고, 모르더라도 성별, 덩치, 목소리, 사용하는 능력, 주 무기, 예상 연령 등등.

       

       특징적인 부분을 본떠 코드네임 같은 걸 붙이니까.

       

       내가 따로 설정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판 그레이브에서 살다 보면 들리는 이름이 몇 개 있거든.

       

       키메라의 주인, 전투광, 탕녀 등등.

       

       하지만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지 카렌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전혀 모르는 녀석이었습니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얼굴은 모르지만, 목소리는 굉장히 어려보이더군요.”

       

       “새로운 멘토인가. 이거 귀찮게 됐네요.”

       

       한숨을 푸욱 내쉬며 말을 이었다.

       

       “일단 신전 측에도 보고를 올렸을 거 아니에요. 교황이 뭐라던가요?”

       

       “…지원군을 준비할 테니 대기하라고 했습니다.”

       

       “어, 음. 그거 기다리다가 목적을 달성하고 다시 숨어버릴 것 같은데요.”

       

       정확한 방법은 모르는 듯했으나,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는 왔다. 아마 며칠 정도면 진짜로 1층 수호자를 소환하는 데 성공하겠지.

       

       내 말을 들은 카렌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길드에 의뢰를 내는 건…소용없겠네요.”

       

       “예. 길드 전체가 신전의 소유입니다. 요나 님 말대로 교황이 황혼을 삼키는 자를 돕고 있다면 이미 무언가 수를 써뒀을 겁니다.”

       

       “쓰으읍. 그럼 어떻게 해야….”

       

       1층의 계층 수호자를, 권능을 넘겨주겠다는 선택지는 없다.

       

       소원권도 소원권이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주인공의 성장이 초장부터 막혀버리지 않는가.

       

       그랬다가는 앞으로 일어날 무수한 사건을 훌륭히 해결해 줄 국가권력급 인재가 하나 사라지는 거다.

       

       내가 얼마나 많은 복선을 뿌려뒀는지 잘 알고 있기에 그건 좀 곤란하단 말이지.

       

       요는 근시일 내로 같이 목숨 걸고 싸워줄 카렌 이상의 강자가 필요하다는 건데….

       

       한참을 고민하던 사이.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요나. 뭐 잊은 거 없어?”

       

       “리디아 님이요? 그야 리디아 님이 강하다는 건 저도 알지만, 험악하게 굴 때의 분위기를 보아하니 카렌 심문관님이랑 비슷한 수준이잖아요. 어쩌면 둘이서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조금 위험할 것 같아 불안하단 말이죠.”

       

       “…맞는 말이지만 화나.”

       

       콩!

       

       “끄아앙!”

       

       돌연 꿀밤을 날린 리디아. 찡한 고통에 이를 악물고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이 부조리한 폭력에 항의하기 위해 뱃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울리는 목소리로 대성통곡할 준비를 하는 것도 잠시.

       

       리디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을 열었다.

       

       “엘리 선배가 있잖아.”

       

       “넹?”

       

       “한쪽 팔이 없으셔도 나나 저 이단심문관 보다는 강할걸?”

       

       “…그 정도예요?”

       

       “응.”

       

       세상에. 그런 인간이 왜 은퇴를…….

       

       “아.”

       

       맞다.

       

       엘리가 은퇴한 이유는 모험가로 먹고살기 힘들어져서가 아니다. 지금껏 못해본 야한 일을 잔뜩 즐기며 방탕한 여생을 보내고 싶어서였지.

       

       아직도 내 배를 만지작댄 것 이상의 야한 이벤트는 없었던 것 같지만.

       

       …갑자기 엘리가 불쌍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재가…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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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2

EP.62





       “돌겠네.”


       


       1층의 계층 수호자는 조금 특별하다.


       


       왜냐면 주인공이 미궁 ‘최초’로 잡는 계층 수호자니까.


       


       그런 만큼 주인공을 띄워주고 특별하게 만드는 이런저런 설정을 붙여주었으니, 권능 확정 가챠가 바로 그러하다.


       


       본래 계층 수호자를 처음 잡는 파티는 낮은 확률로 해당 층의 신의 권능 일부를 얻을 수 있다.


       


       두 번째부터는 불가능하니, 다른 층의 계층 수호자를 잡아야 하지만.


       


       예를 들어 2층의 계층 수호자인 사이클롭스를 쓰러뜨렸으나 권능을 얻지 못했다면, 몇 번이고 반복해서 잡아도 절대 전쟁신의 권능을 얻지 못하는 식.


       


       그럼에도 신의 권능을 원한다면 전쟁신과 궁합이 좋게 타고나길 바라거나, 운 좋게 신력이 고인 장소를 발견하거나……혹은 전쟁신이 아닌 다른 층의 신의 권능을 노리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리젠된 녀석과 달리 미궁 최초로 등장한 계층 수호자를 쓰러뜨릴 경우, 확정적으로 권능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전투에 참여한 모두가 얻는다는 소리는 아니라, 기여도가 높은 몇몇에게 한정된 이야기다. 어떤 권능을 얻을지도 완전히 미지수고.


       


       그럼에도 얻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이미 공략된 층의 계층 수호자보다 훨씬 낫다는 것은 확실하다.


       


       누구까지, 어떤 종류의 가호를 받을지는 몰라도 어쨌든 확정 아닌가 확정.


       


       이건 그거다. 가챠겜에서 경쟁 컨텐츠 상위 1퍼를 달성한 유저들에게 5성 확정 뽑기권을 지급하는 느낌.


       


       실로 배 아프고 아니꼬운 시스템이지만, 그걸 내가 받는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옳게 된 시스템인가.


       


       주인공은 우연찮은 기회로 1층의 계층 수호자를 불러내게 되고, 어쩌다 보니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1대1의 상황에 처했지만, 어찌어찌 쓰러뜨리고 개사기 권능을 얻어 마구마구 성장한다.


       


       이게 내가 쓰려던 주인공의 설정이다.


       


       …중요한 내용은 하나도 생각해 두지 않아 엄청 편의주의적인 전개로 보이지만 괜찮다!


       


       원래 주인공은 좀 날먹해도 돼!


       


       1층의 계층 수호자가 어떤 녀석인지는 몰라도, 어떻게 불러내는지는 설정해 둔 이유가 그래서다.


       


       최초로 1층의 수호자를 불러내는 장면은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장면과 다름없으니 좀 더 공들여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


       


       그런 이유로 나온 것이 세계수의 앞에서 수많은 몬스터를 죽이고, 마석을 뽑지 않아 시체를 방치하는 것.


       


       대체 어떻게 이 방법을 알아낸 것인지는 모르겠다. 나처럼 빙의자가 하나 더 있는 건가 싶지만, 애초에 이 소설은 첫 문장조차 쓴 적 없는 녀석이다.


       


       설령 빙의자가 있더라도 1층의 수호자를 소환하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했으리라.


       


       황혼을 삼키는 자에게 무언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무언가 때문에 내기 상품인 소원권이 날아가게 생겼다.


       


       “…녀석들이 뭘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엄청 끔찍하고 사악하며 있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려는 게 분명해요!”


       


       “요나 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러니 저와 이안의 얼굴을 보자마자 공격했겠죠.”


       


       카렌의 말에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그럼 두 분이 이단심문관인 걸 몰라도 일단 공격하고 봤다는 건가요?”


       


       “맞습니다. 요나 님 덕분에 여신님의 총애가 한층 강해지지 않았더라면 분명 첫 기습에 나란히 당했겠죠.”


       


       “허억.”


       


       그렇다는 건 나를 만나지 못한 카렌은 저번 전투에서 이안과 함께 죽었을 거라는 소리 아냐.


       


       진짜 정신 나간 소리지만, 어쩌면 나와 카렌이 만나고 카렌이 멋대로 착각해 깨달음을 얻은 것 자체가 사랑의 여신이 노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


       


       “일단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제가 짐작 가는 게 있는데, 아무래도 꽤 중요한 연관이 있는 것 같아서요.”


       


       “물론입니다. 우선 처음 놈들을 발견했을 때의 일부터 설명드리겠습니다.”


       


       


       


       이러쿵저러쿵 구리구리오리너구리


       


        


       


       이어진 카렌의 말에 따르면 아무래도 황혼을 삼키는 자가 계층 수호자 소환을 시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다만 그 방법을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수의 환영 앞에서 제물을 바쳐야 한다는 사실은 알아도, 어떤 제물을 어떻게 바쳐야 할지 몰라 닥치는 대로 죽이고 다니는 것에 가까웠으니까.


       


       “그나마 다행이네요….”


       


       “혹시 놈들이 꾸미고 있는 일이 별거 아닌 겁니까?”


       


       “아뇨. 엄청난 일은 맞고, 가만 놔두면 진짜 위험해질지도 몰라요.”


       


       내 소원권이 말이다.


       


       “다만 아직까지는 정확한 방법을 찾지 못한 것 같아 다행이라고 한 거죠.”


       


       “…역시 요나 님께서는 황혼을 삼키는 자의 목적을 꿰뚫어 보고 계셨군요.”


       


       눈을 반짝이며 그리 말하는 카렌. 그 기습 숭배에 몸이 근질근질해진 터라 리디아의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물었다.


       


       “리디아 님 리디아 님.”


       


       “왜.”


       


       “리디아 님은 정확히 얼마나 강해요? 황혼을 삼키는 자랑 싸우면 이길 수 있어요?”


       


       “잡졸 수준이라면 얼마나 몰려오건 상관없지만, 멘토 클래스부터는 개인차가 심해. 아, 멘토 클래스가 뭐냐면….”


       


       “괜찮아요. 황혼을 삼키는 자의 조직도는 대충 알거든요.”


       


       녀석들은 모든 사람은 사랑의 여신 밑에서 평등하다는 이유로 조직도를 엄청나게 단순화했다.


       


       평범한 하위 모험가 수준인 멘티. 아직 가르침을 받는 녀석들인데, 주로 온갖 잡일을 맡는다. 별로 위험하진 않다.


       


       다음은 중위부터 상위 모험가에 달하는 무력을 지닌 멘토. 앞선 이로써 멘티가 성장하도록 돕는 역할을 맡았으며….


       


       권능, 혹은 그에 준하는 힘을 하나 이상 가진 녀석들만 얻을 수 있는 칭호다. 판 그레이브에서 사고를 일으키는 주 전력이기도 하고.


       


       그다음은 마스터가 있긴 한데…이건 일종의 명예직이다.


       


       황혼을 삼키는 자는 잘게 쪼개져 점조직으로 활동하는 놈들이고, 그 수많은 지부의 지부장을 마스터라고 부르는 거거든.


       


       멘토 중에서도 조직 운영에 일가견이 있거나 특히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 맡는 거라 무력과는 상관없는 직함이다.


       


       마지막은 같은 이단자들에게 그랜드 마스터. 혹은 선각자라고 불리며, 황혼을 삼키는 자라는 조직명의 유래가 된 노괴.


       


       최초의 변절자 바네우스가 있긴 한데…지금쯤 미궁 깊숙한 곳에서 죽어가는 몸을 간신히 연명하는 중일 테니 난데없이 1층에 튀어나올 리는 없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운영되는 조직이다 보니, 직함만 듣고서는 정확한 전력을 추정할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에겐 졌지만, 직접 싸워보고 온 카렌이 있잖은가.


       


       “카렌 심문관님. 적의 수준은 어느 정도였나요?”


       


       “규모 자체는 작았습니다. 멘티급 열댓 명과 멘토급 둘이 있었을 뿐이니까요. 다만, 한 놈의 힘이 이상할 정도로 강했습니다.”


       


       “이안 심문관님을 이 꼴로 만든 녀석인가 보네요.”


       


       “맞습니다. 나머지는 저 혼자서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으나, 그 한 명은 저보다 한 수 위에 있더군요.”


       


       “…그 정도로 강하면 인상착의 같은 게 알려지지 않았나요?”


       


       아무리 정체를 숨기는데 일가견이 있는 황혼을 삼키는 자라도 자주 보이는 녀석은 기억할 수밖에 없다.


       


       얼굴을 안다면 얼굴을 기억하면 그만이고, 모르더라도 성별, 덩치, 목소리, 사용하는 능력, 주 무기, 예상 연령 등등.


       


       특징적인 부분을 본떠 코드네임 같은 걸 붙이니까.


       


       내가 따로 설정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판 그레이브에서 살다 보면 들리는 이름이 몇 개 있거든.


       


       키메라의 주인, 전투광, 탕녀 등등.


       


       하지만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지 카렌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전혀 모르는 녀석이었습니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얼굴은 모르지만, 목소리는 굉장히 어려보이더군요.”


       


       “새로운 멘토인가. 이거 귀찮게 됐네요.”


       


       한숨을 푸욱 내쉬며 말을 이었다.


       


       “일단 신전 측에도 보고를 올렸을 거 아니에요. 교황이 뭐라던가요?”


       


       “…지원군을 준비할 테니 대기하라고 했습니다.”


       


       “어, 음. 그거 기다리다가 목적을 달성하고 다시 숨어버릴 것 같은데요.”


       


       정확한 방법은 모르는 듯했으나,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는 왔다. 아마 며칠 정도면 진짜로 1층 수호자를 소환하는 데 성공하겠지.


       


       내 말을 들은 카렌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길드에 의뢰를 내는 건…소용없겠네요.”


       


       “예. 길드 전체가 신전의 소유입니다. 요나 님 말대로 교황이 황혼을 삼키는 자를 돕고 있다면 이미 무언가 수를 써뒀을 겁니다.”


       


       “쓰으읍. 그럼 어떻게 해야….”


       


       1층의 계층 수호자를, 권능을 넘겨주겠다는 선택지는 없다.


       


       소원권도 소원권이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주인공의 성장이 초장부터 막혀버리지 않는가.


       


       그랬다가는 앞으로 일어날 무수한 사건을 훌륭히 해결해 줄 국가권력급 인재가 하나 사라지는 거다.


       


       내가 얼마나 많은 복선을 뿌려뒀는지 잘 알고 있기에 그건 좀 곤란하단 말이지.


       


       요는 근시일 내로 같이 목숨 걸고 싸워줄 카렌 이상의 강자가 필요하다는 건데….


       


       한참을 고민하던 사이.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요나. 뭐 잊은 거 없어?”


       


       “리디아 님이요? 그야 리디아 님이 강하다는 건 저도 알지만, 험악하게 굴 때의 분위기를 보아하니 카렌 심문관님이랑 비슷한 수준이잖아요. 어쩌면 둘이서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조금 위험할 것 같아 불안하단 말이죠.”


       


       “…맞는 말이지만 화나.”


       


       콩!


       


       “끄아앙!”


       


       돌연 꿀밤을 날린 리디아. 찡한 고통에 이를 악물고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이 부조리한 폭력에 항의하기 위해 뱃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울리는 목소리로 대성통곡할 준비를 하는 것도 잠시.


       


       리디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을 열었다.


       


       “엘리 선배가 있잖아.”


       


       “넹?”


       


       “한쪽 팔이 없으셔도 나나 저 이단심문관 보다는 강할걸?”


       


       “…그 정도예요?”


       


       “응.”


       


       세상에. 그런 인간이 왜 은퇴를…….


       


       “아.”


       


       맞다.


       


       엘리가 은퇴한 이유는 모험가로 먹고살기 힘들어져서가 아니다. 지금껏 못해본 야한 일을 잔뜩 즐기며 방탕한 여생을 보내고 싶어서였지.


       


       아직도 내 배를 만지작댄 것 이상의 야한 이벤트는 없었던 것 같지만.


       


       …갑자기 엘리가 불쌍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재가...된다고???
    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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