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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2

       * * *

       

       

       

       베리야는 차리나를 신격화하듯 말하면서 고다드를 설득했다.

       

       먹잇감이 흥미를 느낄만한 미끼를 던져둔 다음 관심을 보이면 그때 바로 생각을 깊게 할 틈도 주지 않고 열심히 몰아붙이는 것.

       

       분위기대로 흘러들어 가게 하는 것이. 베리야가 적백내전과 시베리아 수용소를 겪으며 익힌 새로운 전술이었다. 

       

       

       “차리나께서 어찌 로켓 관련해서 알고 있다는 말인가?”

       

       

       예상대로 고다드는 흥미를 느끼는 듯했다.

       

       베리야의 새로운 주인이 어째서 그에게 관심을 두는지.

       

       솔직히 베리야 본인이 고다드 입장이라도 그럴 거 같기는 했다.

       

       어느 날 나타난 러시아인들이, 우리 차르가 귀하의 기술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하면 솔직히 궁금하지 않겠나. 

       

       

       “그건 나도 모르오. 다만 한 가지는. 그분께서는 그런 것을 아시기에 내전도 승전으로 이끄셨지.”

       “으음. 조금 생각을 해볼 문제인데.”

       “다가올 미래에 그대의 힘이 필요하다 하셨소. 이 자리에서 결정해주셔야 하오.”

       

       

       그리고 적당히 먹잇감을 달아오르게 한 지금.

       

       선택할 시간을 준다.

       

       그것도 아주 짧게. 바로 이 자리에서 결정하라면서, 판단력을 흩어놓는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길래?”

       “그건 모르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대가 원하는 로켓의 개발은 우리 러시아에서 지원해 줄 수 있소. 우리 차리나께서는 로켓에 관해 큰 관심을 보이고 계시니. 황실 재산까지 지원 예정이시오.”

       “으음.”

       

       

       이제 여기서 결정적인 한방을 넣으면 된다.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한 이것을.

       

       차리나가 미리 준비해 둔 이것으로 이 판단력이 흐려질 때. 이 순간을 결정적으로 이용한다.

       

       

       “이것은 차리나께서 귀하가 고민한다면 보여주라는 것이오. 차리나께서 떠올린 것을 친히 그린 것이니 한번 확인해 보시오.”

       

       

       베리야 본인이 보기엔 뭔지 모르겠지만, 고다드가 보면 관심을 보일 수도 있을 거라 차리나가 말해줬다.

       

       그러니, 고다드에게 넘겼다.

       

       

       “이건 그냥 화기의 일종이 아닌가? 응? 대전차 화기?”

       “귀하가 가진 기술을 여기에 응용해 보라 하셨소.”

       

       

       고다드가 보기에 차리나가 내어준 설계도는 솔직히 그냥 중간 과정이 보이지 않는 그런 것이다.

       

       그냥 이렇게 만들어질 수도 있다. 이런 느낌만 드는 그런 설계도. 무반동포와 대전차로켓.

       

       아직 고다드가 만들지 못한 가능성의 영역들.

       

       하지만, 분명히 가능성은 보였다.

       

       차리나는 분명히 이 기술에 관심을 두고 있고, 러시아로 가면 고다드는 지원을 받으리라.

       

       그럼, 고민할 것이 없었다.

       

       

       “음. 좋네. 가보지.”

       

       

       어차피 고다드 본인도 지금 연구가 중단된 것이 아쉬운 터였다.

       

       특히나 전쟁이 흐지부지하게 끝을 맺으면서. 더더욱. 고다드의 기술도 흐지부지하게 관심을 받지 못했다.

       

       베리야는 비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좋군. 좋아. 이제 이고르 시코르스키를 찾으면 된다.’

       

       

       트로츠키가 문제지만, 그쪽은 뭐 적당히 미국에서 빨갱이 선동하는 놈을 찾으면 될 것이다.

       

       그 트로츠키는 애초에 당에서도 말이 많았으니까.

       

       당장 끄트머리에 있던 베리야조차 트로츠키에 대해 알 정도로 과격했다.

       

       베리야는 웃는 얼굴로 두 팔을 벌렸다.

       

       

       “좋은 선택이오. 아국의 차리나께서는 귀하를 크게 환영할 것이오. 이제 오흐라나가 배편을 준비해 줄 테니 따라가면 되오.”

       “알겠네.”

       

       

       이렇게 고다드의 러시아행이 결정되었다.

       

       적어도 이 시대에서 그의 로켓은 원래 역사보다 더 일찍이, 러시아에서 그 발전이 이어질 것이 예견되었다.

       

       그리고. 이 무렵.

       

       공산 독일에서는 예상대로 소련 시즌2로 이어지고 있었다.

       

       어디든, 정치장교가 투입되어 속속 감시하고. 절대로 노동자들이 사적으로 모이는 것도 막았다.

       

       특히, 오스트리아로 넘어가는 독일인이 많아, 감시하기 위해 정치장교들이 직접 모든 것에 관여했다.

       

       이 무렵에는 독일에 미국 기자들이 도착해 공산 독일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공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공산주의의 좋은 점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지만. 실제로는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고자 함이었다.

       

       가는 곳마다 군인으로 보이는 자가 감시하는 게 좀 그랬지만. 아무튼, 취재는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하나같이 냉랭했다.

       

       공산주의. 지상낙원이라 하더니, 공장의 노동자들은 무언가의 눈치를 보며 힘없는 몸을 애써 부지런히 움직이며 공장을 돌리고 있었다.

       

       한 미국 기자가 노동자에게 다가갔다.

       

       

       “일하는 것이 즐거우십니까?”

       “예. 예. 당연하죠! 당의 지도는 그야말로 이 독일을 번영과 발전의 길로 나아가게 하고 있습니다!”

       

       

       기자의 질문에 독일 노동자가 움찔 하더니 애써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는게 아닌가.

       

       가식적인 미소.

       

       마치 진짜 힘든데, 협박을 받아 억지로 웃는 듯한 얼굴.

       

       독일에 파견된 미국 언론인들은 그것이 마냥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게까지 물어보지는 않았는데. 음. 일하는 것이 즐겁다고요?”

       “네. 넵! 기쁩니다!”

       

       

       저게 기쁜 건가. 억지로 웃는 것인가.

       

       그럼 조금만 더 물어봐도 될까.

       

       미국 언론인들은 공산주의의 실태를 제대로 파악할 필요성이 있었다.

       

       앞으로 공산주의의 본산이 될 독일에 대한 대응을 할 테니까.

       

       

       “그렇군요. 저희가 그 공산주의의 장점에 대해 저희가 궁금해서요. 그러는데.”

       

       

       그렇게 더 물어보려는 순간. 노동자의 얼굴이 일그러지다 못해 울상을 지었다.

       

       

       “그 정도만 해주십시오. 제발. 그냥 돌아가 주십시오.”

       

       

       노동자에게 인터뷰를 하던 기자는 입을 다물었다.

       

       자세히 보니 뒤에서 감시하는 정치장교가 있었다.

       

       기자는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역시 러시아에서 선전한 대로 공산주의는 제대로 된 것이 아니었다.

       

       미국 내에도 공산주의. 공산 독일에 은근 우호적인 인물들이 좀 있는데, 역시 이건 좀 아니었다.

       

       공산 독일의 실태를 속속 제대로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이 노동자가 울먹이면서 제발 봐달라는 것만 보더라도 평소 독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만했다.

       

       

       독일의 상황을 살핀 미국 언론인들은 그대로 독일에서 떠났다. 

       

       그리고. 그나마 대우받던 다양한 직종의 기술자들 역시 이 독일 체제가 마음에 안 들 긴 매한가지였다.

       

       매일 같이 감시해대고, 이건 뭐냐 저건 어떻게 해라. 지시만 해대면서 정작 이쪽 상황은 잘 모르는 주제에 압박이나 주고 있다.

       

       심지어 억지로 따르고 있는 상황에 공산당에 협력한다고 테러하는 자유군단도 있어 더는 이곳에 있기도 싫었다.

       

       미국으로 가기에는 너무 멀고. 폴란드 회랑 쪽으로만 가면 이쪽을 이용해 동프로이센이나 러시아로 갈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는 이미 공산당이 독일 권력을 잡은 초기에 대거 넘어가면서 그쪽 감시를 늘려 놔서 국경을 넘으면 바로 총살이다.

       

       그리하여 나온 대답은 볼가 독일이었다.

       

       

       “러시아 내에도 독일이 있다더군. 볼가 독일이라고. 거기로 갈 생각이야.”

       “동프로이센에 가지 말고. 볼가 독일로 가자는 말인가?”

       “이 사태를 만든 카이저의 동프로이센으로 가고 싶은가? 나는 볼가 독일로 갈 생각이네. 차리나가 기술자를 굉장히 우대한다더군. 단치히 쪽 인민군을 매수했네.”

       

       

       동프로이센은 지금 왕당파를 제외한 반공주의자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인 선택지도 아니었다.

       

       이 빌어먹을 사태를 만들어낸 작자가 누구인가.

       

       바로 그 카이저란 작자다. 절대 그 작자를 위해 일을 할 수는 없다.

       

       

       “그럼 나도 가겠네.”

       

       

       많은 독일 기술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러시아로 넘어갔다.

       

       공산 독일은 시작부터 삐걱대고 있었다.

       

       한편, 동프로이센에서도 이를 가는 이가 있었다.

       

       

       “두고 보자. 내 러시아의 힘을 빌려 자식들의 복수를 할 것이다!”

       

       

       동프로이센의 카이저 역시 복수의 칼날을 갈며 동프로이센의 힘을 키우고 있었다.

       

       공산주의의 낙원은 그렇게 풍요롭지도, 평화롭지도 않았다.

       

       그 무렵, 러시아의 수르구트에서는.

       

       

       “차리나께서 시베리아에 우리를 위해 잠들어 있는 자원이 무궁무진하다 하셨다!”

       “이곳에 뭔가가 있을 거야. 어서 파보자.”

       

       

       러시아의 유전탐사대는 수르구트를 열심히 파댔다.

       

       이미 자원탐사는 러시아가 국책으로 밀고 있는 것이라. 미국 석유회사의 굴착기술을 이전받아 열심히 개발했다.

       

       그리고.

       

       

       “뭔가 발견이 되었는데? 어어? 이거.”

       “차리나께서 말씀하신 거 아닌가?”

       

       

       마침내 차리나가 직접 로마노프 황실 재산까지 지원하면서 시작한 국책사업의 빛을 발하듯. 유전을 발견해냈다.

       

       

       * * *

       

       

       생각대로 볼가 독일의 홍보는 제대로 먹혔다.

       

       러시아로 넘어온 독일인의 숫자가 어느새 수천 명이 훨씬 넘어섰다.

       

       그들 대다수가 나름 직종에 종사하는 인물이라는 것도 중요하다.

       

       하기야 러시아에선 너희를 제대로 대우해준다며 열심히 홍보하고 다녔으니, 공산주의 압제에서 시달릴 바엔 독일인들이 머무는 볼가 독일로 오고 싶겠지.

       

       동프로이센으로 가기에는 또 좀 그럴 것이고.

       

       오스트리아로 가는 길은 또 막혀버렸다고 들었다.

       

       그래서 러시아로 오는 경우가 있다하더라.

       

       여기에 수르구트에서는 유전도 발견되었고. 차리나에게 채점 받는 학생들은 경악했다.

       

       

       “대체 그 유전에 대해서는 어찌 아셨나요?”

       “그냥 ‘감’입니다.”

       

       

       그리고. 동프로이센에서 도착한 선물도 있었다.

       

       

       “동프로이센의 카이저가 선물로 개를?”

       “예. 폐하. 카이저가 셰퍼드를 보냈습니다.”

       

       

       그 상황에서 개를 보낼 상황이 되는구나.

       

       그쪽도 지금 황가가 작살 났다고 들었는데 말이다.

       

       운 좋게 루이제 부부가 살아남은 게 그나마 놀라운 점이라고 할까.

       

       은근히 나와 비슷하니 말이다.

       

       

       “우리와 잘 지내고 싶다는 거 같은데. 흠.”

       

       

       내가 개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개보다는 고양이 파거든. 나는.

       

       심지어 세상이 망하고 안 좋은 추억도 있다.

       

       그래. 쉘터의 폭주족이 키우던 개한테 물린 적이 있었다.

       

       그 개가 이 개는 아니지만, 아무튼 적당히 궁전에 풀어놓고 관리인 하나 붙여주면 되겠지.

       

       

       

       “갑과 을이 바뀐 건가.”

       

       

       애초에 영국이 하라는 대로 움직인 것을 갑이라 볼 수 없지만, 설마하니 우리 외팔이 씨가 러시아에 애원하는 상황이 올 줄은 몰랐지.

       

       뭐 그래. 다 좋다. 그런데 이건 뭔가.

       

       내 손에는 지금 빌헬름 2세가 보낸 친서도 있다.

       

       이거 내용이 굉장히 어이가 없거든.

       

       

       “그런데 이건 뭡니까?”

       

       

       독일 황위 문제로 나와 논의하고 싶단다.

       

       그러니까. 진득한 대화를 하고 싶다고 할까. 내가 황위에 오른 것에 대해 코치코치 캐묻고 있다.

       

       

       “아무래도 자식들이 다 죽다 보니까.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저쪽도 황가가 작살이 났으니.”

       

       

       두마에서는 그렇게 판단했다.

       

       확실히 그 점만 본다면야 내 예상과 맞아떨어지지만. 아, 편지 끝에 루이제를 황위에 올리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그걸 나하고? 왜 빅토리아 루이제 황녀의 황위 관련해서 나와 말이 나온 거지.”

       “독일의 카이저가 폐하의 선례를 보고 여제로 옹립하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내 선례?

       

       아, 그래. 진짜 살리카법이든. 기타 후계법이든 다 때려치우고 바로 차리나에 올랐으니.

       

       그런데 내 경우에는 이게 어쩔 수 없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나를 중심으로 러시아는 돌아갈 수밖에 없으니까..

       

       동프로이센에 모인 놈들은 뼛속 깊이 왕당파 놈들이 아닌가.

       

       이거 융커들은 괜찮은 건가?

       

       

       “고명딸을 카이제린에? 살리카 법도 있고, 그래도 황자가 하나도 없는 건 아닐 텐데?”

       “저희가 추정하기에는 아무래도 같은 여제의 국가로서 좋은 관계를 맺어보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너의 일은 나의 일이고. 나의 일은 너의 일이다.

       

       독일과 러시아는 같은 아픔을 겪고 같은 상황이다.

       

       이것을 표현하는 거였구나.

       

       확실히 한 번 나라가 갈려나가면 법 같은 건 때에 따라 특별법을 만들기도 하는 법이니까.

       

       예외 조항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군. 똑같이 공산내전을 겪었고, 여기서 여제까지 올려 공통점을 더 늘려, 우리의 지원을 받고 싶다 그건가.”

       

       

       카이저가 아무래도 내가 오스트리아 쪽을 지원하는 걸 아는 모양이다.

       

       공산독일에 맞설 나라는 동프로이센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겠지.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체급은 오스트리아 아니겠냐.

       

       굳이 동프로이센을 싸고 돈다면 폴란드일 것이다.

       

       실제 역사와 달리 영국으로 인해 러시아와 싸우지 않은 폴란드는 역사가 좀 달라지긴 했지만, 비슷하게 단치히를 먹었다.

       

       어쨌든 영국을 싫어하는 공산 독일이 사실상 친영 국가인 폴란드의 단치히 점령을 인정할 리가 없을 테고.

       

       반면에 외팔이는 일단 살기 위해서라도. 폴란드의 지원도 필요하니 단치히를 인정할 것이다. 그러니 폴란드도 일단은 단치히 점령을 인정해 줄 외팔이를 돕긴 할 거다.

       

       물론 어차피 빌헬름이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폴란드가 하겠다는데, 동프로이센만 가지고 있는 빌헬름이 어쩔 건가.

       

       애초에 폴란드는 독일, 러시아 모두와 관계가 좋지 못하다.

       

       당장 우리에게 좋은 의미로 보이려고 공통점을 만들고자 루이제를 카이제린으로 만들 생각을 하는 것도 어쩌면 또 폴란드를 견제하기 위한 것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이미 베르몬트가 동프로이센에 주둔 중이기도 하고. 동프로이센과 친하게 지내는 것은 훗날을 위해 좋을 거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중국, 미국의 트로츠키도 있으니, 2차 세계 대전은 150화 이후로 시작되리라 보고 있습니다만..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카이저의 개수작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선작,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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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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