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62

       마법 살해자라, 그거 아주 기깔나는 이명이군.

        나는 어두운 골목길을 걸으며 살살이가 말했던 마법사에 대해 떠올렸다.

       

        나도 나중에 중층에 오르면 멋진 걸로 하나 지어야겠다.

        ‘분탕 탈곡기’나 ‘가면의 왕’같은 건 어떨까?

        최근 트랜드가 프리나처럼 저주명을 갤러리와 연관짓는 것이니만큼 그리 큰 의심을 사지도 않을 거다.

        당장이라도 갤러리에 여러 후보군을 놓고 투표를 붙이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또 먹통이네 이거.”

       

        66층에 올라온 뒤로 위치노트의 접속이 자주 끊겼기 때문.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공간이라 그런가?

        머리 위로 팔을 최대한 뻗은 상태에서만 겨우 신호가 잡혔다.

        그래도 갤질은 포기할 수 없지.

        불편함을 감수하며 하늘을 보고 걷던 내가 모퉁이를 도는 순간, 반대편에서 오는 이들과 어깨를 부딪혔다.

       

        “윽! 야, 눈 똑바로 안 뜨고 다녀!?”

        “잠깐, 네놈 어디 소속이지? 이 근방에선 못 보던 녀석인데.”

       

        나는 연금학파의 명찰을 달고 있는 두 사람을 살폈다.

        복제체라 그런지 확실히 일반적인 마법사에 비해 존재감이 옅었다.

        평소처럼 갤러리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다녔다간 부딪히는 일이 잦겠군.

        귀찮지만 번화가를 지날 때는 기감을 활성화하는 편이 좋겠다.

       

        “어이, 대답 안 해?”

        “아뇨, 저는…… 해부학파입니다.”

        “뭐……?”

        “해부학파요.”

       

        해주학파라고 말하면 곱게 보내줄 리가 없으니 적당히 지어내 보았는데 역효과였다.

        잠시 멍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본 두 사람은 이내 양쪽으로 갈라져 나를 둘러쌌다.

       

        “가면을 벗지 않는 것부터 수상하군. 적어도 같은 소속은 아니겠지.”

        “제가 어느 소속인지 알면 후회하실 텐데요.”

        “후회? 어처구니가 없군. 불야성에서 가장 많은 사교장을 가진 학파가 바로 우리다.”

       

        복제체는 본체와 동일한 마력흔(魔力痕)을 갖지만 위치노트는 사용할 수 없다.

        악의의 층을 통과하더라도 노트에 깃든 상태창까지는 복사되지 않기 때문이다.

        갤러리를 관리하는 입장에선 다행이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온건하게 상대를 제압할 방법이 하나 사라진 셈이었다.

        앞뒤를 포위한 마법사들이 ‘현자의 약관’을 읊기 시작하자 이쪽도 창을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릴리벨이 절대 문제 일으키지 말고 방 안에서 얌전히 기다리라 한 지 삼십 분도 지나지 않은 시점.

        뜻밖의 인물이 마차에서 내려 이쪽으로 다가왔다.

       

        “이그나 살롱 인근은 미티어의 구역이다. 이 늦은 시간에 뭘 하는 거지?”

        “루벤 발디니?”

        “루벤이라면…… 불의 춤꾼?”

        “너희 둘은 본 기억이 있군. 이반느 영애의 무도회에서 난동을 피우다 쫓겨난 이들 아닌가. ”

       

        장갑 낀 손에서 불꽃을 튀기는 남자를 보고 연금학파의 마법사들이 지레 뒷걸음질쳤다.

        큰 체격에 붉은 머리, 무뚝뚝한 말투까지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를 빼다 박은 모습이었다.

        미티어의 직계는 아니지만 현재는 문하생 대표를 맡을 정도로 명망높은 가문의 일원.

       

       루벤 발디니는 아르투르 발디니의 아버지였다.

       

        “내 눈 앞에서 두 번이나 소란을 피웠으니 타죽어도 할 말은 없겠지?”

        “아, 아닙니다!”

        “젠장, 가자!”

       

        루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들이 왔던 길로 사라진 이들을 향해 곱지 못한 시선을 보내더니, 이윽고 내게도 물어왔다.

       

        “넌 또 누구지?”

        “아, 저는 가련한 해부학파 출신의 마법사입니다. 무도회장 근처에는 평생 가본 적도 없답니다.”

        “……드물게 탑을 오르는 이들 중 자신만의 신비를 갈고닦는 자가 있기 마련이나 네게 그런 자질은 보이지 않는군. 과거를 마주하는 호기심은 접어두고 비석에 새긴 뜻을 따라 위로 올라가라. 그렇다면 너는 무해한 자로 이곳에 남게 될 테니.”

       

        분신체임에도 정중하고, 동시에 단호한 태도.

        그러나 루벤을 본 순간 나는 여기서 밤 산책을 끝내면 안 된다고 결심했다.

        지나가다 어깨 좀 부딪힌 것 가지고 생사결을 벌이려 하는 불야성에서 시엔을 찾기에는 운신의 제약이 너무 심하다.

        내게 릴리벨같은 정보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 다른 학파의 도움과 보호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딱히 그를 설득할 방법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부전자전이라 하니 혹시 취향도 비슷하지 않을까?

       

        “원치않던 싸움을 대신 말려 주시다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약소하지만 제가 보답으로 루벤 님께 드리고 싶은 선물이 있습니다.”

        “필요 없다, 가라고 하지 않았나. 나도 이만 저택으로 돌아가 아들의 소식을…….”

        “혹시 이런 것들을 보신 적 있으십니까?”

        “허어어억……! 이, 이건!?”

       

        예상은 적중했고, 나는 그 길로 루벤의 마차를 타고 스펜서 가문의 저택으로 갈 수 있었다.

       

       

       

        *

       

        — 땡그랑!

       

        “뭐죠 이건.”

       

        새벽 내내 정보부의 접선 장소와 은신처 등을 훑고 돌아온 릴리벨은 비어 있는 호텔방을 보고 중얼거렸다.

        클락은 온데간데 없고 평소 들고 다니던 검 한 자루만이 차가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찾아야 될 인원이 하나 더 늘어난 건가 고민하던 찰나, 마력승강기가 올라오며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떡진 머리에 어제보다 약간 더 초췌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어디 다녀오신 검까?”

        “잠깐 새로 사귄 친구네 다녀왔어. 밤새 붙잡혀 이야기 하느라 결국 삼 일 째 한 숨도 못 잤네.”

        “친구요? 팔자도 참 좋슴다.”

        “시엔은 찾았어?”

       

        정보 2과 최고의 에이스이자 존경하는 선배의 등반을 무려 5년이나 막았던 남자.

        마음에 안 드는 게 당연하지만 지금은 사사로운 감정에 휩쓸릴 때가 아니었다.

        정보부의 모든 지부가 텅 비어 버렸다는 것을 확인한 지금은 더욱이.

       

        “아무래도 정보 2과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은 듯 보임다. 흔적을 의도적으로 지운 것으로 보아 어디엔가숨어있을 가능성이 높겠지만 지금은 속단하기 어려운 상태임다.”

        “그러면 갈 만한 곳 위주로 찾아보자. 시엔이 근처에 있으면 내가 위치를 알 수 있어.”

        “유력한 장소가 한 곳 있긴 함다. 그런데 출입이 만만치 않은지라…….”

       

        마탑의 모든 학파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불야성이지만 유일하게 암묵적인 정전 상태를 유지하는 살롱이 있었다.

        바로 도시 한 가운데 세워진 부르크 하우스 무도회장.

        드레스코드가 철저하고 실제로 사교장 역할도 하지만 실상은 춤보다 마법이 중요한 마법사들이 세력간의 마찰을 해결하기 위해 만든 소통의 창구였다.

       

        “선배가 조사하던 인물이 자주 드나들던 곳이니 그곳에 잠입해 정보를 얻었을 가능성이 높슴다.”

        “그 인간이 누군데?”

        “저는 정보 3과라 연금학파의 순혈 가문인 플라멜 가(家)와 연관되어 있다고 밖에 알지 못함다.”

        “어쨌거나 그 무도회장에 들어가면 된다는 거지?”

       

        부르크 하우스는 각 학파에서 입지전적인 인물, 혹은 그들의 측근만이 출입할 수 있다.

        따라서 몰래 침입해야 했지만 급행으로 66층까지 올라온 것이기에 철통같은 감시를 뚫는 게 가능할지는 미지수였다.

        하물며 막차 시간을 놓치면 영원히 이곳에 갇힐 테니 시간조차 촉박하다.

       

        뾰족한 수가 없던 릴리벨이 손톱을 잘근거리던 그때, 클락이 수정구를 꺼내 어디론가 통신을 연결했다.

       

        “네, 오늘 저녁이요. 저 포함해서 한 명만 더 가능할까요? 아뇨, 그 친구는 해부학파는 아니고 연금학파입니다.”

        “——.”

        “우려하시는 부분은 알지만 괜찮습니다. 학파랑 별다른 접점도 없고 저랑 같은 시기에 들어온 참이라서요.”

        “——.”

        “하하,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성의의 표시라 하긴 뭣하지만 제가 가진 컬렉션 중 최고로 멋진 녀석을 준비하겠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데도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상당한 수준의 보안마법.

        통화를 마친 클락은 졸린 듯 눈을 비비며 말했다.

       

        “오늘도 자긴 글렀네.”

        “지금 누구와 통화하신 검까?”

        “친구. 이 근처에 인화소랑 액자 같은 거 파는 상점 있지? 저녁 될 때까지 거기 좀 싹 돌아야겠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그를 따라 귀중한 시간을 반 나절이나 거리에서 보내고 난 후.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호텔로 돌아온 릴리벨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불야성을 밝혀 온 가장 위대한 횃불의 문양.

        지금은 전과 비교해 그 위세가 많이 줄었지만 마탑의 역사를 통틀어 본다면 글레시아와 함께 최고의 주가를 구가해온 원소학파의 양대 산맥 중 하나.

        미티어 학파의 마차가 입구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

       

        “이거 폐를 끼친 게 아닌지 모르겠네요.”

        “하룻밤 뿐이다. 자네가 위험한 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힘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건 약소한 보답입니다.”

        “크흠, 아침에도 말했지만 이런 건 필요 없다니…… 허어어어억!!!!”

       

        흰 천을 슬쩍 들어 ‘수상쩍을 정도로 수상쩍은 수인 합동 컬렉션’을 마주한 루벤의 턱이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이건 가히 중증이군.

        마차에 차곡차곡 실려가는 액자를 보니 기뻐해야 할 지 슬퍼해야 할 지 의문이다.

        착잡하게 가라앉은 내 기분과 반대로 릴리벨은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어, 어떻게 하신 겁니까? 발디니 경의 복제체는 절대 포섭할 수 없기로 유명한데…… 저, 정보부에서도 포기했슴다.”

        “몰라, 사랑의 힘이겠지 뭐.”

        “눈에는 뭘 넣으시는 검까? 설마 그것도 선배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준비한 마도구?”

        “그냥 인공눈물이거든.”

       

        옆 자리에서 ‘생각보다’ 라던가  ‘극채색만 아니었다면-.’이라며 중얼거리는 그녀를 태우고 부르크 하우스에 도착했다.

        늦은 밤임에도 도심의 중심에 있어서 그런지 수많은 가문의 마차가 돌아다녔다.

        복제체로 보이는 이들이 많았지만 66층을 등반 중인 마법사들도 있었다.

        허나 그런 구분과 관계없이 다들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

       

        “루벤 발디니다. 이틀 전 이반느 영애가 제소한 무도회장에서의 난동에 대해 미티어 학파의 대표로서 찾아왔다.”

        “실례지만 이쪽 분들은요?”

        “해부학파 출신의 클락과 그 동행인이다. 신원은 둘 다 내가 보장하지.”

        “해부학파요? 어, 음…… 일단 확인했습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가드의 안내를 받고 들어간 무도회장은 23층에서 봤던 선상 파티보다 열 배는 큰 규모였다.

        마법사들은 축제를 참 좋아하는군.

        출입구와 테라스 등, 바깥으로 이어지는 모든 곳에는 삼엄한 경비와 함께 침입자를 감지하기 위한 장치가 가득했다.

        평범한 유리창 하나도 자세히 보면 마탑의 역사를 따라 발전해온 방어 마법이 지층 수준으로 쌓여 있었다.

       

        “한 번 나가면 재출입이 불가능하니 명심하게.”

        “이렇게 보안이 철저한 이유가 뭔가요?”

        “부르크 하우스는 불야성의 평화를 상징하는 유일한 등대니까. 최근에는 마법 살해자가 이 근방에서도 모습을 드러냈기에 다들 신경이 곤두서있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걸 보니 66층에 오를 당시의 루벤조차 마법살해자와는 만나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그를 따라 메인 홀에 도착하자 또 다시 문이 닫혔다.

        아름답게 차려입은 마법사들이 서로에게 견제의 눈빛을 보내며 하하호호 담소를 나누는 중이었다.

        공통된 대화 주제가 생기면 다소 토론이 격렬해지기도 했다.

        경비가 홀에서 나가는 인원을 하나하나 체크하는 것을 본 릴리벨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는 선배를 찾으러 가겠슴다.”

        “같이 갈까? 나도 여긴 별 볼일 없는데.”

        “아뇨, 오늘 처음 얼굴을 비춘 저희가 동시에 사라지면 의심만 삼다. 지금도 노골적으로 마력을 쏘아대는 게 안느껴지심까?”

       

        클로에가 선상에서 보여준 것과 비슷한 감각으로 마력이 피부를 찌른다.

        확실히, 여기 모인 이들은 각 학파의 유명인들이니 최소 수 년 동안 안면을 익혀왔을 것이다.

        대놓고 말을 걸진 않았지만 일종의 유입이라 할 수 있는 우리에게 보내는 관심이 부담스럽다 못해 불쾌할 지경이었다.

       

        “그럼 다녀오겠슴다. 클락 님은 여기서 최대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될 수 있으면 혼란도 유도해주심 좋슴다.”

        “내가?”

        “그래야 제게 관심이 덜 쏠리지 않겠슴까.”

       

        내가 아무리 난리법석을 떤다 한들 분홍색 머리에 분홍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너보다 주목을 더 받을 수 있을까.

        그래도 경비가 쫙 깔린 곳에서 위치노트를 하늘로 치켜들고 돌아다니는 것보단 나을 테니 우선 그녀를 보내기로 했다.

        릴리벨이 떠나고 난 후, 성격이 급해 보이는 한 명의 마법사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자신을 땅 소환학파 출신이라 소개한 그는 나를 신기한 듯 바라보며 루벤에게 물었다.

       

        “루벤 님께서 부르크 하우스에 누군가를 데려오시다니 굉장히 드문 일이로군요. 예의 그 소란의 목적자라도 되는 건가요?”

        “그렇다. 어젯밤 연금학파의 뜨네기들과 같이 있더군. 한패는 아닌 것 같아 참고인 삼아 데려왔지.”

        “흐음, 66층에서는 처음 보는 얼굴인데…… 같이 오신 일행께서는 어디 급한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오자마자 도로 나가시는군요.”

       

        절반의 호기심과 절반의 의구심이 뒤섞여 있는 듯한 말투.

        이대로면 릴리벨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기도 힘들어질 게 뻔하다.

       

        “그 친구는 부담스러워서 잠시 화장실에 간 것 뿐입니다. 이렇게 대단하신 분들에게 꼭 듣고 싶은 마법적 가르침이 있다 해서 데려왔는데, 막상 마주하니 부담되었나보죠.”

        “저희 모두에게 궁금한 점이라. 그게 뭐죠?”

       

        하지만 이 많은 공간에 모인 마법사들의 주의를 끌고 혼란을 유도할 수 있을까?

        갤러리가 없는 이곳에서 나는 ‘분탕 탈곡기’도, ‘가면의 왕’도 아닌 고행의 층을 전전하는 힘없고 연약한 해주술사일 뿐인데.

       

        “메테오가 무슨 마법인가요?”

        “네?”

        “전 해부학파 출신이라 전혀 감이 안 잡혀서…… 여기 모이신 분들은 분명 답을 알고 계시겠죠?”

       

        순수한 유입이 던진 하나의 돌이 무도회장에 파문을 일으켰다.

        불야성의 유일한 평화 지대가 전쟁터로 돌변하는 순간이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

[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

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