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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2

       

       신전에서 떨어진 외곽.

       

       성기사들이 무장을 한채로 은밀하게 대기 중이었다.

       

       “곧, 시간이 오면 전투가 시작될 것이다.”

       

       “이미 모든 준비를 끝마쳤습니다.”

       

       명령을 내리는 성기사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이상한 현상은 전날부터 시작되었다.

       

       평생을 몸에 품고 살아온 신성력.

       

       그것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나뿐만이 아니다.’

       

       명령을 받는 성기사 또한 비슷한 상황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반질거리던 얼굴에 주름이 생기지 않았는가.

       

       무심코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던 성기사의 손이 멈췄다.

       

       그 역시 얼굴에 주름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어젯밤 회동이 있었다.

       

       그곳에 모인 이들이 모두 같은 현상을 겪고 있었다.

       

       아무 이상이 없던 자들도 날이 바뀌자 이상 현상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하나 같이 신성력이 줄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힘이 더 줄어들기 전에 모든 걸 끝마쳐야 한다.’

       

       설마 모든 신성력이 사라지기야 하겠는가.

       

       그저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 생각하는 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분명히 불안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어쩌면 이대로 모든 게 끝나버릴 것 같은 예감.

       

       생각을 뚫고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정말로 교황께서 신께 버림을 받은 것이 틀림없습니까?”

       

       “분명한 사실이다.”

       

       질문을 던진 성기사의 얼굴에는 동요가 가득했다.

       

       “지금의 교황은 사사로이 이단과 어울렸으며, 그자를 위해 너희의 동료들까지 감금했다.”

       

       “하오나, 그보단 신탁을 먼저 받는 것이…”

       

       “이런 멍청한… 신께 버림을 받은 교황이 신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보는가?”

       

       명분은 확실했다.

       

       그가 따르는 베르테라는 인물은 심계가 굉장히 깊은 인물이었으니.

       

       이것 말고도 여러 준비를 해 놓았을 것이다.

       

       신의 뜻이 함께하는 이상 다른 신관들도 이 성기사처럼 조용히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이번 일만 마무리되면…’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제국의 귀족놈들을 뛰어넘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시간이 다가오는군.”

       

       이제 얼마 안 있어 해가 뜰 것이다.

       

       그에 맞춰 신탁을 청할 것이나, 그마저도 내려오지 않겠지.

       

       신탁을 받기에는 신성력과 기도가 턱없이 모자랄 터이니.

       

       “…그렇군.”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상상하는 성기사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났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신성력이 흩어지더라도 두 손에는 부와 명예가 남을 것이 아닌가.

       

       “평민에서 여기까지…길고 긴 시간이었구나…”

       

       권력만 쥘 수 있다면, 이런 신성력쯤 없어도 그만이었다.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듯 동료들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의 소중한 인맥이었다.

       

       장차 서로의 미래를 도모해 나갈 훌륭한 인재들 말이다.

       

       “얼른 해가 밝았으면 좋겠군…”

       

       “새로운 아침이 아니겠소? 그야말로 신께서 주시는 여명이오.”

       

       “허허…으음?”

       

       어느새 동료의 얼굴에 주름이 늘어나 있었다.

       

       윤기가 흐르는 머리도 색이 빠져 새치가 보였다.

       

       그 역시 머리카락을 당겨 확인해보니 비슷한 상황이었다.

       

       “이까짓 흰머리…고생의 상징이 아니겠는가.”

       

       한낱 평민에서 지금의 자리까지.

       

       수도 없이 많은 고생을 해 왔다.

       

       이 새치가 그 상징이라 생각하니 사뭇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젊음을 유지 못 하는 것이 아쉽군…금방 돌아오지 않겠는가.”

       

       어느새 그의 머릿속에서 신성력에 대한 걱정은 사라지고 없었다.

       

       신성력이 자리를 비운 욕심속에 다른 것들이 들어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

       

       딸랑 –

       

       희미한 방울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인지 확인해 보고 오라.”

       

       “예! 알겠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들이 보였으니까.

       

       “세 사람…아니 네사람인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그런데 눈이 흐릿했다.

       

       더 먼 거리도 한눈에 꿰뚫어 보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거늘.

       

       딸랑 –

       

       움찔.

       

       순간, 눈앞이 한층 더 흐릿해졌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일상처럼 입고 다니던 갑옷이 무거웠다.

       

       “…몸이 무거워진 것인가…”

       

       “이상하오… 내 눈이 침침하구려.”

       

       점점 더 가까워지는 사람들.

       

       조금 더 기다리니 그제야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알루어드경…그리고 저 흰머리는…”

       

       보고받은 적이 있다.

       

       흰머리를 한 청년에 대해.

       

       이번일의 가장 주요 인물이었다.

       

       “결국 이단과 함께 하는구나…!”

       

       저 자를 잡아들여야 했다.

       

       성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려는 순간.

       

       기침이 터져 나왔다.

       

       “쿨럭…! 얼른 저 이단을…”

       

       평소의 강직했던 목소리가 아니었다.

       

       힘이 빠질대로 빠진···.

       

       시골의 촌부와도 같은 목소리.

       

       굵기마저 얇아져 한없이 초라한 소리가 나왔다.

       

       딸랑 –

       

       방울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입에서 나온 것과는 다르게 작지만 훨씬 뚜렷한 목소리였다.

       

       “쯧쯧…욕심이란 것이 그런 것이다.”

       

       딸랑 –

       

       “다른 것을 채우면 원래 있던 것은 까맣게 잊어 버리지.”

       

       딸랑 –

       

       “채우고 싶어 안달이 난 놈이로구나.”

       

       움찔.

       

       흰머리의 청년과 눈을 마주한 성기사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갑옷이 버틸 수 없이 무거웠고, 저 눈이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했기 때문이다.

       

       “당장…저놈들을 잡아 들여라.”

       

       “하…하오나…알루어드 경입니다!”

       

       “이단과 어울려 신에게 버림을 받은 자다! 더 이상 교황후보가 아니다!”

       

       곧 교황마저 바뀔 것이다.

       

       그 후보의 자리가 멀쩡치 않을 것은 당연한 일.

       

       성기사의 말을 끊으며 또다시 목소리가 울렸다.

       

       “신에게 버림을 받았다라…”

       

       딸랑 –

       

       방울 소리가 울리자 허리춤의 검이 몇 배는 더 무거워졌다.

       

       “누가 버림을 받았다는 거지? 내가?”

       

       딸랑 –

       

       “아니면…신성력을 잃어 버린 너희들이?”

       

       “이…이놈…!”

       

       성기사가 검을 뽑으려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의 의지에 반응하는 신성력은 단 한 줌도 없었다.

       

       몸에 남아 있는 신성력 중 단 일부분도 그의 말을 들어 주지 않았다.

       

       “이게 왜…”

       

       “신성력이 움직이지 않소…!”

       

       고개를 돌린 그는 보고 말았다.

       

       어느새 회색빛으로 물든 동료들의 머리카락.

       

       그리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

       

       갑옷을 다 채우지도 못하고 왜소하게 쪼그라든 몸들을.

       

       이제는 말려들어가 간사하게 변해 버린 입술을 가지게 된 동료가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자네 모습이 왜 그런가…?”

       

       “….!”

       

       손을 들어 보니, 손등이 윤기를 잃고 쪼그라들어 있었다.

       

       분명히 몸에 신성력이 남아 있건만,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항상 젊음을 유지시켜 주던 신성력이 더 이상 몸에 영향을 주지 않고 있었다.

       

       딸랑 –

       

       “힘을 잃으니 검도 못 쥐겠어?”

       

       “….”

       

       흰머리 밑으로 보이는 얼굴.

       

       무표정한 얼굴 속에 섬뜩할 만큼 큰 존재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움찔.

       

       “너희들이 외면했던 사람들은 죽어 가면서도 검을 휘두르던데?”

       

       “…이…이놈…! 가까이 오지 말거라!”

       

       뒷짐을 지고 여유롭게 걸어오는 청년이 점점 가까워졌다.

       

       “창을 들지도 못하던 사람들은 기꺼이 몸을 던지던데? 그럴 용기는 없나 봐?”

       

       “다들 무엇하느냐…! 당장 저자를 잡…”

       

       말을 멈춘 것이 아니었다.

       

       무언가에 막힌 듯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목이 쉬어 버린 듯했다.

       

       입에서는 바람이 새는 소리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나오지 않았다.

       

       딸랑 –

       

       “지킬것이 있는 사람은 힘을 가지게 되어 있지…”

       

       딸랑 –

       

       다가오는 청년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성기사의 눈에 비치는 모습은 전혀 다른 형상을 하고 있었다.

       

       뻐끔 –

       

       입이 움직였지만, 소리는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귀에서 들리는 소리 또한 이상했다.

       

       눈으로 보는 형상도 이상했다.

       

       흰머리를 한 청년이 꼭 늙은 할머니 처럼 보였다.

       

       딸랑 –

       

       귀로 목소리가 들리고.

       

       “뭘 지켜야 했는지 알겠어?”

       

       머릿속으로 다른 목소리가 한 번 더 울렸다.

       

       – 네가 지킬 것이 신이 아니었어도 되었느니라.

       

       그리고 그 음성은 청년이 하는 말 같기도, 동시에 다른 존재가 하는 말 같기도 했다.

       

       두 목소리가 귀로, 머리로 울렸다.

       

       “신성력이 왜 움직이지 않는지도 모르겠지?”

       

       – 신을 섬기지 않아도 허락한 힘이었다.

       

       성기사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서 있던 몸마저 경기를 잃으키는 듯 떨리고 있었다.

       

       주름이 생긴 모든 성기사들이 같았다.

       

       딸랑 –

       

       할머니로 느껴지던 청년의 분위기가 변했다.

       

       어디에서나 느낄 수 있는 분위기였다.

       

       밟고 다니던 땅 같기도 했고, 항상 배를 채워주던 음식 같기도 했다.

       

       – 그저 지키고 보살피라고 준 힘이었거늘.

       

       딸랑 –

       

       – 작은 도움조차 힘들었더냐.

       

       떨리는 얼굴에서 이빨이 부딛히며 소리를 만들어냈다.

       

       이토록 따듯한 목소리가 있을까.

       

       하지만 성기사의 귀에는 그 어떤 것보다 무서운 목소리였다.

       

       “허억…!”

       

       뻐끔 –

       

       뻐끔 –

       

       움직이는 사람이 없었다.

       

       움직일 수 없었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방울 소리가 코앞에 이를 때까지 성기사가 할 수 있는 것은 몸을 떠는 것밖에 없었다.

       

       딸랑 –

       

       흰머리가 눈앞에 다가오고.

       

       그 밑의 눈동자와 마주할 때.

       

       성기사는 보았다.

       

       꾸중을 하는 듯한 할머니의 모습을.

       

       어느새 청년이 할머니의 모습을 하고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딸랑 –

       

       “허억…자…잘못…”

       

       바닥으로 허물어진 성기사가 땅을 짚으며 뒤로 기기 시작했다.

       

       왜소해진 몸은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무거운 갑옷을 밀어내기엔 너무나도 약한 힘이었으니까.

       

       “도…도움을…”

       

       바닥에 쓰러져 고개를 돌린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동료들 뿐이었다.

       

       머리를 가누지도 못 하는 그의 목은 서 있는 사람들을 보여 주지 않았다.

       

       그저 웅성거리는 소리만을 들을 수 있을 뿐.

       

       “일리아님의 음성이다…!”

       

       “신탁이 시작되었다…!”

       

       “모…모두 알루어드 경을 따라가야 하오!”

       

       “신께서는 성하를 버리지 않으셨소! 우리가 속은 것입니다!”

       

       저벅 –

       

       조용한 발걸음이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뒤로 갑옷이 절그럭거리며 함께했다.

       

       뻐끔 –

       

       뻐끔 –

       

       한동안 걸음 소리가 울려 퍼지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바닥에 쓰러진 사람들 뿐이었다.

       

       고통의 신음과 흐느낌이 흘러나왔지만.

       

       아무도 들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입이 움직였으나,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닫혀 버린 것처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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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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