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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2

       

       

       

       

       나름 기습이었다. 

       

       보통은 ‘언제든지 먼저 시작하셔도 돼요’라는 말에 ‘정말이죠?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로 몇 마디를 주고받고 시작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나는 기합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지근거리에서 단검을 바로 내질렀다. 

       

       거리가 벌어지기 전에 속전속결로 끝내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체력 면에서 실비아 씨를 따라갈 순 없어.’

       

       나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동작이 굼떠질 거고, 실비아 씨는 그대로겠지.

       

       즉, 초장에 끝내는 게 가장 승률이 높다는 뜻.

       

       하지만.

       

       홱!

       

       다음 순간, 분명 눈앞에 있었던 것 같은 짚 인형이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옆인가!’

       

       오른손에 쥔 단검을 내지르자마자 실비아는 그대로 내 왼쪽으로 돌아 완벽하게 회피했다.

       

       ‘눈으로 따라가지도 못했어.’

       

       왼쪽으로 돌아 피했다는 것도 눈으로 본 것이 아닌, 내 왼쪽 귀에 스친 바람을 통해 짐작한 것일 뿐이었다. 

       

       -실비아 씨를 찌르기라도 하면….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왜 실비아가 그토록 여유롭게 말할 수 있었는지, 단 한 번의 공격만에 나는 절절하게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수준 차이다. 보법이 달라.’

       

       마물과 싸우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볼 때에는 알 수 없었다. 

       

       왜 내가 「레키온 사가」를 할 때에는 저렇게 무기력하게 당하지 않았던 마물들이 실비아의 앞에서는 느릿느릿 멍청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는지. 

       

       ‘직접 당해 보니 알겠어.’

       

       내가 마물이었어도 얼 타다가 대가리가 반으로 쪼개져 죽었을 거다. 

       

       인터넷 영상에서 복서들이 싸우는 걸 보고 ‘저 정도 주먹이면 나도 피하겠는데?’라고 생각했다가 동네 복싱장에서 1년 된 동호인 바디블로에 배를 부여잡고 주저앉은 사람처럼, 나는 멀리서 볼 때와 직접 상대할 때의 차이가 얼마나 큰 건지 깨달았다.

       

       ‘그렇다면.’

       

       나는 단검을 꽈악 쥐었다. 

       

       그리고 실비아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바람이 스친 방향을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얕게.’

       

       단 한 가닥이라도 짚을 자르기만 하면 나의 승리다. 

       

       단검의 날끝을 거의 수직에 가깝게 세운 채 최대한의 공격 범위로 휘두른다. 

       

       티잉!

       

       “큽!”

       

       하지만, 다음 순간 나는 검날 가운데에 가해진 충격에 하마터면 단검을 놓칠 뻔했다. 

       

       “위치를 확실히 파악하기 전에 본능적으로 쫓아 공격한 건 좋았어요. 확실한 공격만 하려고 해서는 실전의 수많은 변수에 대처하는 게 불가능하니까요. 하지만.”

       

       실비아는 단검을 어느새 왼손에 옮겨 역수로 쥔 채 내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이렇게 너무 적중하는 데에만 신경을 쓴 얕은 베기는, 순간적인 힘 싸움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죠.”

       

       그 말대로였다. 

       

       공격 범위를 최대한으로 만들기 위해, 나는 찌르기가 아님에도 날을 지나치게 정면으로 세웠고.

       애매하게 펴진 손목으로는 정면으로 받아치는 일격을 수월하게 버텨낼 수 없었다. 

       

       실비아가 막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내 단검을 쳐 내려고 했다면, 아마 지금쯤 내가 쥐고 있던 단검은 저 멀리 날아가 버렸을 것이다. 

       

       “크흡.”

       

       하지만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

       

       나는 십자 모양으로 맞붙어 있는 단검을, 아래로 빠르게 힘을 주어 단번에 빼냈다. 

       그리고 즉시 실비아의 목에 걸린 짚 인형을 향해 칼끝을 뻗었다.

       

       쇄액!

       

       하지만 이번에도 내 칼끝은 짚 인형에 닿지 못했다. 

       

       실비아는 간단히 몸을 틀어 칼을 피했고, 나는 실비아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단검을 살짝 뉘인 채로 휘둘렀다. 

       

       챙!

       

       확실히 실비아의 말대로 이번엔 손목이 버텨 주어 안정적으로 단검을 쥘 수 있었다. 

       

       ‘좋아.’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아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 하나를 확실하게 습득해 내 것으로 만들고 있다. 

       

       “하아압!”

       

       자신감이 붙은 나는 계속해서 실비아에게 달려들었고.

       

       “그럴 땐 발로 지면을 더 확실하게 디뎌야 해요.”

       “으아아아!”

       

       실비아의 조언을 하나씩 따르며 내가 배웠던 모든 걸 동원해 짚 인형에 칼끝이 닿을 수 있도록 발버둥쳤다. 

       

       “허억, 헉.”

       

       하지만 내 단검은 실비아에게 닿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내 체력은 떨어져 갔다. 

       

       ‘이거 이대로 한 시간 동안 온 힘을 다해 뺑이만 치다가 끝나는 거 아니야…?’

       

       벌써 힘들어 죽을 것 같은데.

       

       게다가 아르도 지겨워하고 있을….

       

       “쀼우우! 쀼웃! 쀼웃!”

       

       그때, 곁눈질로 아르를 본 내 눈이 커졌다. 

       

       아르는 어느새 잠이 완전히 깬 듯 일어서서 말랑한 두 손에 땀을 쥔 채 전력을 다해 실비아에게 달려드는 내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쀼, 웃! 쀼, 웃!”

       

       내가 곁눈질을 한 걸 알아차렸는지, 아르는 활짝 웃으며 주먹 쥔 손을 쭉 위로 뻗으며 짧뚱한 발로 까치발을 한 뒤, 다시 손과 뒤꿈치를 내리며 주먹을 쥐고 뻗기를 반복했다. 

       

       ‘아르가 응원을 해 주고 있어.’

       

       꽈악.

       

       아르를 보자 지쳤던 몸에 다시 활력이 돋아 나는 것 같았다. 

       

       [「신뢰의 계약」을 맺은 상대가 전심전력으로 계약자의 승리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스탯 동기화’ 2단계가 활성화됩니다!]

       [현재 동기화 중인 스탯을 제외한 모든 스탯의 일부를 추가로 공유 받습니다!]

       [힘이 3 올랐습니다!]

       [민첩이 3 올랐습니다!]

       [체력이 3 올랐습니다!]

       

       ‘어?’

       

       활력이 돋아난 것 같은 게 아니라, 진짜로 돋아났는데.

       

       ‘2단계…. 추가 공유?’

       

       스탯 동기화 1단계가 한 개의 스탯을 골라서 최대한 같게 끌어올려 주는 것이었다면, 스탯 동기화 2단계는 아무래도 대상이 가진 스탯 중 일부를 ‘추가로’ 얻게 해 주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모든 스탯을.

       

       즉 아르의 레벨이 올라갈수록 내 올 스탯이 상승한다는 이야기.

       

       ‘일시적이긴 하지만….’

       

       아마 레벨을 올리다 보면 2단계도 정식으로 해금되지 않을까. 

       

       ‘어쨌든, 지금은 아르 덕분에 오른 스탯을 조금이라도 더 활용해서!’

       

       슈와악!

       

       ‘이겨야 한다!’

       

       ***

       

       실비아는 레온의 공격을 피하거나 막아 내며 레온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했다.

       

       “방금 같은 경우는 베기보단 찌르기로 오는 편이….”

       

       그리고 상황을 즉시 즉시 복기해 줌으로써 레온의 실력을 빠른 시간 안에 끌어올려 주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센스가 있어.’

       

       실비아가 볼 때, 레온은 단검술에 대한 재능 자체는 그다지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은 사실 기초 동작에서부터 느낌이 오니까.’

       

       하지만 실비아가 놀란 부분은 레온의 실전 감각이었다.

       

       동작 자체는 아직 어설프기 짝이 없지만, 전투를 운영해 나가는 방식이나 상대가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할지 순간적으로 예측하는 능력이 상상 이상으로 뛰어난 편이었다.

       

       ‘마치 수천, 수만 번의 모의 전투를 경험해 본 사람처럼.’

       

       단검을 쥐는 모습을 보면 지금까지 무기류를 다뤄 본 적도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런 전투가 가능한 건지 의문일 정도였다.

       

       하지만 워낙 기본적인 육체 능력 자체가 달려서일까. 

       

       레온은 금세 지쳐 가는 듯했다.

       

       ‘아무래도 곧 마무리를 해야겠네.’

       

       솔직히 말해서 레온의 첫 기습은 훌륭한 편이었다. 

       그래서 4~5성 검사급으로 조절했던 육체 능력을 조금 해금해 연속으로 회피했었다. 

       

       ‘이제 적당히 몇 번 더 피하다가 어쩔 수 없이 한 가닥 정도 베여 주고 마무리하면 되겠어.’

       

       실비아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쀼, 웃! 쀼, 웃!”

       

       아르가 짚더미 쪽에서 짧뚱한 팔을 쭉쭉 뻗으며 레온을 응원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와…. 진짜 너무 귀여운 거 아니야?’

       

       꿀꺽.

       

       당장 수련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아르에게 다가가 말랑한 볼을 마구마구 손바닥으로 비벼 주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나한테 저렇게 응원해 주면 진짜 없던 힘도 생길 것 같아.’

       

       아르와 계약을 한 레온이 더없이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때.

       

       “하아압!”

       

       슈와악!

       

       “……!”

       

       방금전까지 부족한 체력 탓에 굼떠졌던 레온이, 첫 기습 때보다도 더 날카로운 동작으로 짚 인형을 향해 단검을 내질렀다. 

       

       홰액!

       

       ‘아니, 진짜 없던 힘이 생겼잖아.’

       

       레온의 동작 빠르기에 자신의 동작을 맞춰 주고 있었던 탓에 하마터면 짚 인형의 다리가 찔릴 뻔했다. 

       

       “하아아압!”

       

       약간의 틈을 만든 레온은 계속해서 쉴 새 없이 실비아를 몰아붙였다. 

       

       ‘게다가 점점 전투 자체에 몰입하고 있어.’

       

       몇 번의 공격을 회피하며 여유를 찾은 실비아가 짧게 공격에 대한 조언을 했지만, 이전과는 달리 레온은 실비아의 말이 마치 들리지 않는 것처럼 완전히 몰입한 눈으로 짚 인형을 향해 단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가볍게 회피만 하던 실비아도 이제는 회피 대신 방어를 하는 비율이 조금씩 높아져 가고 있었다. 

       

       ‘이번엔 이쪽인가. 내 조언대로 측면을 잘 파고들었….’

       

       쇄애액!

       

       ‘…!’

       

       그리고 마지막 순간. 

       

       측면 베기로 들어오는 것 같았던 레온의 공격 궤적이 확 꺾이며 칼끝이 실비아의 정면을 아래에서부터 파고들었다. 

       

       ‘이대로면….’

       

       한 가닥 정도 허용하려고 했던 공격이, 완벽하게 들어가 버리게 된다. 

       

       아무리 육체 능력을 스스로 제한해 놓은 상태라고는 하지만.

       

       스윽.

       

       실비아의 왼손이 일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인다. 

       

       앞으로 몇 센티미터면 짚 인형에 닿는 단검의 옆면에, 실비아의 왼손바닥이 닿는다. 

       

       그리고 내질러지고 있는 단검을 그대로 옆으로 밀어내는 동시에 몸을 옆으로 비튼다. 

       

       “어…?”

       

       완벽하게 들어간 줄 알았던 공격이 빗나가서인지, 전투에 몰입했던 레온의 눈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 아깝다.”

       

       풀이 죽은 듯한 레온은 숨을 한 번 몰아쉰 뒤, 다시 실비아를 향해 달려들 준비를 했다. 

       

       하지만, 레온은 곧 그럴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레온 씨, 축하해요.”

       

       실비아의 손에는 짚 인형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짚 한 가닥이 들려 있었으니까. 

       

       실비아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오늘 수련은 여기서 끝. 합격이에요.”

       

       ***

       

       아, 다행이다.

       

       중간부터는 뭔가 실비아의 조언도 귀에 잘 안 들어오고 정신없이 움직인 것 같았다. 

       

       ‘이것도 스탯 동기화랑 연관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신없는 기분이 왠지 모르게 좋았고, 나는 흐름을 타 계속해서 실비아를 몰아붙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내가 생각해도 꽤 공격이 잘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무조건 짚 인형을 제대로 찌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빗나가 버리는 바람에 흐름이 깨져 버렸다.

       

       ‘진짜 뭐였지? 정면에 있었는데도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모르겠어.’

       

       첫 공격이야 아예 닿기 전에 미리 피했다지만, 이번 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피할 각이 없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공격이 이상한 곳을 찌르고 있었다. 

       

       정말 다행인 건, 아예 빗나가지는 않은 모양이라는 거. 

       

       나도 모르게 미세하게 칼끝이 스치긴 한 듯, 실비아의 손에 짚 한 가닥이 들려 있었다. 

       

       “해…. 해냈다!”

       

       내가 손을 번쩍 들자, 짚더미 위에 서 있던 아르도 손을 번쩍 들었다. 

       

       “쀼우우우!”

       “아르야아아아!”

       

       나는 승리의 기쁨을 아르와 나누기 위해 단숨에 달려갔다. 

       

       “쀼우우웃!”

       

       아르는 어서 안아 달라는 듯 평소보다 높은 쀼웃 소리를 내며 나를 향해 손을 쭈욱 뻗었다. 

       

       ‘바로 안아서 저 분홍색 젤리를 그냥 마구마구….’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문득 내가 땀으로 흠뻑 젖은 상태라는 걸 깨닫고 멈추었다. 

       

       “쀼우?”

       

       아르는 내가 바로 안아 주지 않자 ‘왜 나 안 안아 조?’라고 말하듯 나를 바라보며 공중에 손을 저었다. 

       

       “아르야, 나 지금 수련 하느라 완전히 땀투성이거든. 이따가 씻고 나서 안자, 알겠지?”

       “쀼우?”

       

       아무리 그래도 이 상태로 안는 건 좀 그러….

       

       “쀼우!!”

       

       응?

       

       나는 불길한 느낌에 위를 올려다보았고.

       

       콰아아아아아아!!

       

       바로 머리 위에 생긴 마법진에서 쏟아진 시원한 물줄기를 한바탕 맞고 쫄딱 젖은 나를 향해.

       

       “쀼웃!”

       

       아르는 짚더미에서 폴짝 뛰어 올라 내게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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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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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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