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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20

       

       밤이었던 시간은 낮이 되어 있다.

       

       하루가 흘렀다는 뜻이다.

       

       은신처로 다시 돌아오는 길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몸에 있던 문제가 모두 나은 상태인지라, 속도가 훨씬 빠른 덕이었다.

       

       여기서 의문은.

       

       ‘은신처라더니 너무 잘 보이잖아.’

       

       동굴 입구를 찾는 게 너무 쉬웠다는 점이다.

       

       유리가 이르길 주술인지 뭔지가 처져 있어 찾기 어렵다고 했는데.

       

       저번에 탈출할 때도 그렇고. 

       진법의 여파를 파악한 것도 그렇고.

       

       내게 무언가 변화가 생긴 건 확실한 것 같았다.

       

       “멈춰라…!!”

       

       앞에 보초를 서고 있던 이들이 날 보고 다급히 경계를 취하지만.

       다행히 유리가 함께 있었기에 큰 문제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너…!”

       

       은신처로 복귀하니, 백련검이 다급히 나타나 날 확인한다.

       

       그녀는 뭐라 내게 말을 하려고 했으나.

       내가 안고 있던 남궁비아를 보며 놀란 듯 멈춰 섰다.

       

       “…아….”

       

       그녀의 눈에는 많은 감정이 엿보인다.

       알고 있었다. 

       

       남궁비아를 보며 백련검의 마음이 편치 않으리란 것쯤은.

       백련검이 마냥 모진 이는 아니었기에, 제 스스로 미끼 역을 자처한 남궁비아에게 여러 감정을 느끼고 있을 테지만.

       

       “얘 좀 받아서 몸 상태 좀 확인해 주세요. 그리고.”

       

       그런 걸 일일이 파악할 때가 아니었기에.

       

       나는 안고 있던 남궁비아를 백련검에게 대뜸 넘긴 뒤. 

       진지한 그녀에게 말했다.

       

       “먼저 궁주 좀 만나고 오겠습니다.”

       

       그에게 물을 말이 있었다.

       

       

       

       

       

       **************

       

       

       

       

       “돌아가시오.”

       

       궁주가 있으리라 예상된 철문.

       그 앞에 당도하니, 앞을 막아선 이가 한 말이다.

       

       흑사자라고 했던가. 

       

       북해의 대장군 중 한 명이라 했던 인물이다.

       그대 거대한 태도를 끄집어 들며 내게 말했다.

       

       “그대는 궁주님을 배알 할 수 없소.”

       

       검 끝에 경계심이 가득하다.

       이유는 알고 있었다.

       

       ‘난장판을 벌이고 나갔으니까.’

       

       궁주 앞에서 궁주를 패버리겠다고 난동을 피운 탓에.

       저자가 저리도 경계하는 것일 터.

       

       이는 즉.

       

       내가 싼 똥이라는 뜻이다.

       

       나는 양손을 들며 가장 친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는 제가 좀 잘못한 것 같.”

       

       “…표정을 보니, 분명 궁주님께 무슨 짓을 할 생각인 모양이군. 그대는 이곳을 절대 지나갈 수 없소.”

       

       저 씨발 놈이…?

       

       나름 가꿔본 친절한 양천씨는 안 통하는 모양이었다.

       

       “하아….”

       

       들고 있던 양손을 내려놓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당연한 일이기야 했다. 

       궁주는 몸 상태가 악화한 시점이다.

       

       그걸 위해 피신을 한 상황인데.

       그런 궁주 앞에서 위협을 가했으니, 이자가 저리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말로는 안 통하는 모양인데 그럼 어쩔 수 없지.

       

       “비켜요.”

       

       표정을 풀고서 흑사자에게 말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물어볼 것만 물어보고 나올 거니까.”

       

       “그게 될 거라고 생각하시오?”

       

       “안 되겠죠. 당연히 안 되겠는데.”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거리를 쟀다.

       

       “내가 지금은 안 되도 해야 하는 시점이라서요.”

       

       아까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나는 꼭 알아야 할 일들이 있었고.

       그걸 알고 있으리라 판단되는 이가 궁주였으니.

       

       무슨 수를 써서든 만나야 했다.

       

       그런 내 눈을 본 흑사자가 잡은 태도를 움켜쥐며 말한다.

       

       “그대가 지금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그대를 귀한 손님으로 응대했기 때문이오. 하나.”

       

       후욱-!

       

       태도에 기운이 휘감긴다.

       강기다.

       

       후우우우….

       

       주변 공기가 짓눌리며 짓이겨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화경이 훌쩍 넘은 무인이 내뿜는 투기는 공기를 뒤틀기 충분하다.

       

       이는, 저 사내가 그만한 인물이란 소리였다.

       

       “궁주님을 위협한 그대를 들여보낼 수 없을뿐더러. 지금 궁주님께선 숙면을 취하고 계시오.”

       

       “하하.”

       

       그 말을 듣고 웃음을 터트렸다.

       

       “상황이 이 꼴인데 그 양반은 편하게 잠이 오신답니까?”

       

       “함부로 말하지 마시오!”

       

       쿠우웅-!

       

       태도에 진동이 이른다.

       그 기세가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궁주님에 대해, 한 번만 더 혀를 잘못 놀렸다간. 그대로 베어버리겠소.”

       

       “거 참, 말 한 번 무섭게 하시네.”

       

       베어버리겠다니,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평소였으면 다음에 오겠다 하고 넘어갈 텐데. 지금은 진짜 급해서 그래요. 잠은 나중에 주무시라고 하고 좀 깨워주시죠?”

       

       “정녕…. 피를 볼 생각이군.”

       

       “아니, 아프게 피를 왜 볼….”

       

       쉬이익-!

       

       흑사자의 태도가 거칠게 움직인다.

       

       이를 보며 속으로 혀를 짧게 차곤.

       

       “귀정.”

       

       쉬리릭-! 콱-!

       

       “…!”

       

       왼팔에 있던 귀정을 움직여 태도를 묶어 움직임을 봉쇄했다.

       

       끼기기긱-!!

       

       태도를 잡아끌려는 흑사자와 그걸 잡고 버티는 힘 싸움이 시작됐다.

       

       쿠우우웅–!! 

       상대는 화경의 무인. 그것도 이미 완숙한 경지에 도달한 인물이다.

       

       하물며 태도를 이용하는 만큼, 외공이 발달 되어 있을 터.

       그런 힘을 버티려 하니, 근육이 제멋대로 화를 냈다.

       

       다만, 밀리지는 않았다.

       

       이를 보며 흑사자의 눈이 커진다.

       

       쿠웅-! 쿵-!

       

       힘과 힘이 붙어 진동이 터지고.

       그 여파는 주변에 피해를 주기 시작한다.

       

       후두둑.

       

       흔들리는 공간, 천장에서 흙먼지가 떨어진다.

       

       “이놈…!”

       

       “정말, 다 부수고 들어가길 바라요? 그럼 좋은 결말은 아닐 텐데?”

       

       “나는 궁주님의 전사. 그분께 위험이 되는 이를 가만히 둘 수 없다.”

       

       “음.”

       

       호위로서 알맞은 마음이었다. 

       

       절대 굽히지 않겠다는 신념까지 가득 느껴진다.

       이러면 방법은 하나였다.

       

       “그럼 때려눕히고 가야겠네.”

       

       후욱-!

       

       기운을 끌어 올린다. 구염화륜공의 고리를 회전시켜 몸에 열기를 더했다.

       투기와 합쳐 손아귀에 불꽃을 모아든다.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염옥을 손에 움켜잡았다.

       

       흑사자 또한 내 상태를 보며, 있는 힘껏 강기를 몸에 두른다.

       

       일촉즉발.

       

       그대로 전투를 벌이려던 찰나.

       

       [멈춰라.]

       

       “…!”

       

       문 뒤편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흑사자가 즉시 강기를 회수한다.

       궁주의 목소리였다.

       

       [흑사자. 문을 열어라.]

       

       “하오나…궁주님…!”

       

       [명이다.]

       

       “…”

       

       순간, 표정에 마음에 안 드는 기색이 스치지만.

       흑사자는 더 이상의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저 검을 등 쪽에 다시 집어넣은 후.

       

       꽈악-!

       

       문고리를 잡을 뿐이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끼이익-!

       

       문이 열린다. 

       이를 확인하며 나도 기운을 다시 회수했다.

       

       화아악-! 저번에 느꼈던 차가운 냉기가 스치고.

       

       [들어오시오.]

       

       궁주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내가 걸음을 옮겼다.

       

       “…이번엔 부디, 궁주님께 예를 갖추시길 바라오.”

       

       흑사자의 살벌한 배웅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공간에 들어갔다.

       

       여전히 차갑고 불쾌한 공간이었고.

       그 자리 그대로 궁주가 앉아있을 뿐인 곳.

       

       다른 점이 있다면.

       

       그를 보는 내 시선의 차이겠지.

       

       [금방 다시 보게 되어 반갑소.]

       

       “그러게요. 저도 이렇게 다시 뵐 줄은 몰랐습니다.”

       

       말을 건네며 그의 앞에 도착했다.

       여전한 모습이다.

       

       육체의 절반은 얼음에 휘감겨 있고.

       그에게서 뻗어 나온 서리가 사방을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놈과 같은 기운.’

       

       직전에 만났던 유선이란 녀석과 상당히 닮은 기운이 느껴졌다.

       불쾌감이나 적의는 그보다 훨씬 적게 느껴지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 무슨 볼일로 내 단잠을 깨우셨소.]

       

       “진짜 주무시고 계셨습니까?”

       

       [아주. 아주 잘 자고 있었지.]

       

       궁주는 웃으며 그리 말했다.

       당연히 믿지는 않았다.

       

       [공자께선 내게 어떤 볼일이 있어 그런 연극까지 펼치셨소?]

       

       “음.”

       

       궁주의 말을 듣고 못내 웃음을 머금었다.

       아무래도 들킨 모양이다.

       

       흑사자와의 대립.

       일부러 강하게 나가 궁주가 알아서 나타나게끔 하려고 한 의도였는데.

       

       궁주는 단 번에 파악한 듯 보였다.

       

       상관없다.

       어차피 목적은 달성했으니까.

       

       나는 즉시 궁주를 보며 말했다.

       

       “방금, 댁네 아드님인지 따님인지를 만나고 왔습니다.”

       

       […]

       

       “이름은 ‘유선’이라고 하더군요. 아마 그쪽이 범인인 것 같습니다.”

       

       이름이 가명일 수도 있다. 유리의 말로는 제 언니의 이름이라 하였지만.

       내가 본 건 분명 사내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성별 자체가 가짜일 가능성도 있었다.

       

       다짜고짜 꺼내든 얘기에 궁주가 날 쳐다본다.

       여전히 세로로 찢어진 동공이었다.

       

       [유선이라….]

       

       말을 들은 궁주가 낮게 내뱉는다.

       

       [그렇군.]

       

       반역을 일으킨 자식의 정체를 들었건만.

       궁주의 반응은 그다지 변화가 보이질 않았다.

       

       [그 아이였나.]

       

       “…반응이 그게 전부입니까?”

       

       [얘기를 구태여 해주러 오신 거라면 고맙소. 바쁜 걸음을 하게 만들었군.]

       

       영 괴상한 반응에 미간을 찌푸려야 했지만.

       나도 본론이 있었다.

       

       “아니요. 물어볼 게 있어 찾아왔습니다.”

       

       [말씀하시게나. 귀담아들을 터이니.]

       

       “…궁주께선.”

       

       숨을 한 번 고르고 그에게 말했다.

       

       “용(龍)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흠.]

       

       물음을 들은 궁주는 잠시 침묵하더니.

       

       [알고 있소.]

       

       놀랍게도 긍정의 대답을 내놓았다.

       당연히 모른 척할 거라 생각했는데.

       

       “…알고…계시다구요?”

       

       [그렇소. 지금도….]

       

       궁주의 찢어진 동공이 나를 향한다.

       

       [내 눈앞에 있지 않소.]

       

       “…!”

       

       말을 듣고 눈을 키웠다.

       

       이 인간.

       

       ‘알고 있었나?’

       

       내 정체를 애당초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떻게 알았을까.

       

       그런 의문은 들지 않았다.

       

       암왕이 알아차렸고.

       유선이란 이가 날 알아차렸듯.

       

       궁주 또한 그럴 수 있다고 봤으니 말이다.

       

       다만.

       

       “알고도 날 들여보냈다는 겁니까?”

       

       [들여보내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소. 이곳을 찾은 귀한 손님이거늘.]

       

       궁주의 대답을 들으며 머리를 굴렸다.

       어디까지, 대체 어디까지 물어야 할까.

       

       저자는 어디까지 알고 있고.

       나는 그에게 어디까지 물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감돌았다.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당신의 자식도 용이었습니다.”

       

       이 또한 그는 놀라지 않았다.

       

       [그렇군. 빙정은 끝내 그 아이를 선택한 것인가….]

       

       되레 깨달았다는 듯 눈을 감을 뿐이다. 

       그런 궁주를 보며 말을 이어붙였다.

       

       “그리고, 날 보며 순혈(順血)이라 부르더군요.”

       

       그렇게 뱉으니.

       

       [뭐…?]

       

       

       이상하게도 이번엔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하여 물으러 왔습니다. 당신의 자식에 대해서도. 내가 순혈이라 불리는 것에 대해서도 말입니다.”

       

       […]

       

       들은 말에 대해 궁주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진다.

       

       아까 만났던 자식에 대해 들었을 땐 아무렇지 않아 보이더니, 오히려 이 부분은 기함을 금치 못하는 듯했다.  

       

       이유가 뭘까. 

       무슨 차이기에 그런 것일까.

       

       [순혈? 그 아이가 그대에게 순혈이라 했다고 했소?]

       

       “예.”

       

       심지어 팔도 뽑고 죽이려 들었는데.

       이건 구태여 말하지 않았다.

       

       “그게 대체 무엇이기에 그럽니까?”

       

       […허….]

       

       궁주가 헛웃음을 흘린다.

       

       […그런가….]

       

       이내 무언가 알아차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끝내 때가 온 것인가.]

       

       이후 알 수 없는 말을 뱉더니.

       

       쩌저저적-!

       

       “…!”

       

       갑자기 궁주의 몸을 덮고 있던 얼음이 깨지기 시작한다.

       선을 만들며 깨지기 시작한 얼음은 이내 산산이 부서지더니.

       

       스윽.

       

       궁주가 그걸 벗어나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보며 속으로 놀람을 감춰야 했다.

       

       크다.

       궁주는 내 예상보다 훨씬 큰 키를 가지고 있었다.

       

       ‘…거의 아버지랑 맞먹는데?’

       

       앉아만 있어 몰랐는데, 일어난 걸 보니 상당한 덩치였다.

       

       후두둑.

       

       궁주는 몸에 묻어있던 얼음 조각을 털어내고선 날 보며 말한다.

       

       “잠시 따라와 주시겠소?”

       

       메아리치듯 들려오던 목소리가 평범하게 돌아왔다.

       무거운 듯 가벼운 듣기 좋은 음성이었다.

       

       “갑자기 말입니까? 아직 얘기가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에 대한 대답을 들려드릴 터이니, 부디 날 따라와 주었으면 하오.”

       

       “…”

       

       “부탁드리오.”

       

       미간을 찌푸리며 궁주를 쳐다보지만.

       그는 진중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을 따름이다.

       

       얘기가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어딜 또 따라오란 말일까.

       

       급한 상황에 짜증이 올라오지만, 대답은 들려준다고 했으니, 우선 한숨을 섞어 대답했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이해해주셔서 고맙소.”

       

       대답을 들은 궁주가 살짝 미소짓더니, 등을 돌려 걸음을 옮겨간다.

       

       그를 따라 걸어갔다.

       

       얼마 걷지는 않았다. 

       

       공간에서 벗어나지도 않았고, 들어온 입구에서 반대로 조금 더 걸어갔을 뿐이다.

       

       이후 벽에 다다를 무렵.

       나는 입구 반대쪽 벽에 무언가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문?’

       

       문이다.

       

       벽에는 다른 곳으로 향하는 문이 있었다.

       

       그다지 크지 않은 문.

       

       궁주의 덩치를 보자면, 한참 작은 문이었다.

       어찌 보면, 비교적 작은 키인 나한테 알맞은 느낌.

       

       “이건 또 뭔….”

       

       “문을 한 번 열어보시오.”

       

       어디로 가는 문인가 싶어 의문을 뱉으려니.

       궁주가 한 말이었다.

       

       왜 본인이 안 열고 나한테 시키는 걸까.

       

       ‘무슨 함정이라도 걸어놨나?’

       

       그런 의심이 스친다.

       

       “혹여 의심스럽다면, 바라는 금제를 몸에 걸겠소.”

       

       “…”

       

       내가 의심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는지, 궁주가 강수를 든다.

       평소였다면, 좋다고 금제를 걸고 했을 테지만.

       

       지금에 와선 어쩐지 손이 먼저 뻗어졌다.

       

       이 또한 감에 따른 일이다.

       문을 본 순간부터 그랬다.

       

       본능이 말한다. 

       어서 문을 잡아보라고.

       

       그에 따라 얼어있는 문고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 순간.

       

       쩌저저저적—!!

       

       손끝이 살짝 닿았을 뿐인데. 

       

       문을 중심으로 크나큰 금이 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을 머금을 무렵.

       

       화아악-!

       

       문에 서려 있던 새하얀 냉기가 거치더니.

       

       끼이이이익….

       

       열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이건 또 뭔 경우일까. 어이없는 눈으로 문 너머를 쳐다보는데.

       

       “…정말이었군.”

       

       이를 본 궁주가 말한다.

       

       “그대의 말이 사실이었구려.”

       

       “…무슨 말입니까?”

       

       “이 문은, 순혈들만이 열 수 있는 곳이오.”

       

       “예?”

       

       “오래전부터 그리 정해진 일이었소. 그게 지금에서야 정말이었음을 알았을 뿐.”

       

       말을 듣고 문을 쳐다봤다.

       

       아직 궁주가 잡는 걸 못 보았으니, 이게 거짓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으나.

       

       순혈인지 뭔지들만 열 수 있게끔 해놓았다고?

       

       ‘대체 누가?’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누가 이런 걸 북해에 해놨을까.

       

       이에 궁주에게 물으려던 찰나.

       

       저벅.

       

       궁주가 먼저 고개를 숙이곤 입구 쪽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따라오라는 뜻인가.

       

       궁주를 따라 다시금 걸어갔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통로는 길지 않았다. 대략 열 걸음, 그 정도만 걸어도 통과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통로를 빠져나오고.

       

       “…허?”

       

       바깥에 펼쳐진 광경에 내가 헛숨을 들이켜야 했다.

       

       온갖 냉기로 뒤덮인 공간.

       그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원형의 무언가가 허공에 떠올라 있다.

       

       보기엔 얼음과 같이 보이긴 했으나.

       저리 정교한 원형의 얼음이라니.

       

       인위적으로 조각하지 않는 한 있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크기를 보면 절대 인간이 했을 리 없을 텐데.

       

       저게 뭐지?

       

       ‘저것이 대체 뭐길래.’

       

       쿵-! 쿵-! 쿵-!

       

       보기만 해도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걸까.

       

       후욱.

       후욱.

       

       점점 거칠어지는 호흡을 달래보지만, 이미 시선은 빼앗긴 지 오래였다.

       

       저게 무엇일까. 

       무엇이기에 내가 이토록 반응하는 걸까.

       

       뚜벅.

       

       다리가 멋대로 움직였다.

       

       저곳에 가까이 다가가야겠다는 듯, 멋대로 말이다.

       

       그때.

       

       “이는, 빙정(氷精)이라 부르는 것이오.”

       

       궁주에게서 들려온 말에 억지로 걸음을 멈춰 세울 수 있었다.

       

       “빙정? 저게 빙정이란 말입니까.”

       

       “반틈은 빙궁 지하에 있소만, 이 또한 빙정이오.”

       

       “…이런 게 하나 더 있다구요?”

       

       “그건 혈족이 대대로 지키고 있는 물건이오. 단지.”

       

       궁주의 시선이 빙정에게 향했다.

       

       “나 또한 처음 보는 것이지만, 나는 앞에 있는 빙정을 원본(原本)이라 생각하고 있소.”

       

       원본이라.

       이 앞에 있는 게 진짜 빙정이란 소릴까.

       

       하면.

       

       “…이걸 왜 내게 보여주는 겁니까?”

       

       이런 물건을 왜 내게 뜬금없이 보여주는 걸까.

       딱 봐도 외인은 봐선 안 되는 물건이었다.

       

       설마.

       

       여기서 날 죽이기라도 하려는 걸까. 그런 걱정이 살짝 들 때.

       

       “아까도 말했듯, 이곳은 순혈(順血)들만 올 수 있는 곳이오. 정해진 법칙이 그러했지.”

       

       궁주는 말했다.

       그 말인즉슨.

       

       “내가 순혈이라 여기로 데려왔다는 겁니까?”

       

       “맞소.”

       

       “단순히 그런 이유로…?”

       

       “공자께선 이를 단순하다고 보시오? 그렇지 않소.”

       

       궁주가 진중한 눈으로 빙정을 쳐다보며 말을 이어간다.

       

       “지난 수백 년. 빙궁의 혈족은 내려진 업에 묶여 북해에 뿌리를 내리고 견뎌왔고. 오늘은 그 업을 제대로 대면하는 날이오.”

       

       빙정을 뚫어지게 보던 궁주가, 이번엔 내 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북해에 순혈의 존재가 나타나게 되면, 필히 마주해 이곳으로 데려와라.”

       웅.

       

       빙정에서 얕게 진동이 느껴졌다.

       

       “그때까지 빙정을 유지하고 지켜내는 것. 그게 혈족의 업이었소.”

       

       몇 세기가 넘도록, 궁과 이곳을 지키며 약속된 누군가가 찾아오길.

       그게 혈족의 업이었다.

       

       궁주가 말하는 얘기에 나는 인상을 찡그려야 했다.

       

       “…무슨, 예언도 아니고. 언제 올지도 모르는 걸 기다리며 그러고 살았다구요? 그게 말이 됩니까?”

       

       “그렇기에 업이고 저주라 부르는 것이오. 참으로 잔혹하지 않소?”

       

       궁주는 웃으며 말했지만, 미소엔 지독한 무언가가 잔뜩 휘감겨 있었다.

       

       “한데, 정녕 구 공자 같은 이가 나타날 줄은 몰랐소.”

       

       “그 말의 주인이 난지 아닌지 어떻게 확신하고 이러십니까. 아닐 수도 있는 거잖-.”

       

       “그건 중요치 않소.”

       

       궁주가 내 말을 끊어냈다.

       

       “아니라 한다면, 저 문조차 열리지 않았을 테니까.”

       

       “…”

       

       아까 문을 열어보라던 말.

       이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는 건가. 

       

       “…뭘 위해서? 내게 바라는 게 뭡니까.”

       

       무얼 위해 순혈이란 존재가 나타나길 기다렸을까.

       어찌 저 빙정에 당도하길 바라왔던 걸까.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감정을 담아 궁주에게 물으니.

       

       “역사는 저걸 보며 ‘알’이라 표현하고는 했소.”

       

       그 말에 빙정을 쳐다봤다.

       알이라고?

       

       ‘저 큰 게 알?’

       

       알이라 하기엔 너무나 크고 차가웠다.

       

       저게 알이라면, 안에 무엇이 들었기에 저리도 거대하단 말인가.

       만약 저런 곳에서 무언가가 태어난다고 한다면, 상상만 해도 꺼림칙했다.

       

       “표현하길 그리 말하고는 했으나.”

       

       궁주가 내 옆에 다가온다.

       

       “다른 말로 적힌 것도 있었소.”

       

       옆으로 다가온 궁주가 내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용제(龍帝)의 심장.”

       

       “…!”

       

       말을 듣고 휙 돌려 궁주를 쳐다봤다.

       

       “빙정은, 용제의 심장이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_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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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FZ,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Under the Heavens, The Zenith's Childhood Friend, 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Artist: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struggling meaninglessly, he acknowledged hi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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