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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20

   갑작스레 왕자 셋이 찾아온 것임에도 알른 가문의 대응은 유려했다.

   

   방금 전까지 괴상한 소리를 내며 고행을 거듭하던 기사들이 즉각적으로 태세를 갖추었고, 내부에선 집사장의 명령에 따라 저들을 대우할 준비를 했으며, 베네딕과 숲의 주인이 아래로 내려와 이들을 응대했으니 말이다.

   

   얼마 전 알른의 광기를 맛 본 르네나 알른 가문에서 훈련까지 받았던 아서는 이를 신기하게 구경했지만 알른에 대해 이야기로만 들었던 세실은 역시 알른 가문이라며 고개를 주억였다.

   

   다만 이런 태평한 분위기는 오래 이어질 수 없었다.

   

   “국왕폐하께서 서거하셨다.”

   

   르네가 내뱉은 발언의 수위가 태평함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그게 정말입니까?”

   

   당혹스러워하는 세실을 대신해 아서가 묻자 르네가 고갤 끄덕인다.

   

   “내 눈으로 확인하고 왔다.”

   “착오일 가능성은.”

   “요정여왕께서 보여주신 내용이다. 착오가 있을 것 같진 않군.”

   

   응접실에 모인 이들이 희미하게 지녔던 의심은 요정여왕이란 단어 앞에 사그라들었다.

   

   어둠의 신격마저도 일부 수용한 요정여왕을 속일 수 있는 자가 작금의 대륙에 존재할 리 없으니까.

   

   “시체의 상태로 보아 폐하께서 서거하신 것이 하루 이틀 일은 아닌 듯 했다. 최소한 몇 달은 지났을 것이야.”

   “그건… 이상하지 않습니까? 폐하께서 서거하셨는데 왕궁이 조용하다뇨.”

   “1왕비께서 직접 은폐를 하셨으니 바깥으로 아무것도 흘러나오지 않은 거다. 당장 그 분의 곁에 있던 나조차 알지 못했잖나.”

   

   1왕비가 지닌 권력은 단순히 왕을 대행하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녀가 1왕비의 자리에 오르고서 수십 년. 왕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1왕비의 손을 지나쳤다.

   

   다소 개입이 과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그녀가 이루어 낸 일들이 모두 다 일정 이상의 성과를 거둔 탓에 그런 말도 어느새 사그라 들었다.

   

   작금에 이르러 왕궁에서 일을 하는 자들은 1왕비의 뜻에 따라 일을 하는 자들이며, 1왕비가 용인하는 선에서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이들에 불과하다.

   

   그러니 1왕비가 작정하고 무언갈 숨기려 한다면 이를 눈치챌 수 있는 자는 존재치 않는다.

   

   설령 그것이 국왕의 서거라는 거대한 사건일지라도.

   

   “내 말이 의심스럽다면 당장 요정의 숲으로 찾아가봐라. 숲의 구원에 참여한 알른 백이나 아서 너라면 능히 환영을 해주지 않겠느냐.”

   “그럴 필요 없다. 이 놈이 하는 말은 진실이다. 내가 보증하지.”

   

   고까운 눈으로 르네를 노려보던 리나가 툭하고 말을 내뱉자 응접실의 분위기가 한층 심각해진다.

   

   여기에 더해 보충하듯 세실이 말을 더했다.

   

   “형님께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무슨 끔찍한 장난일까 싶었다만 어머님께선 생각이 다르시더군. 이전부터 이상하다 생각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폐하의 서거가 사실이면 맞아떨어진다고 하셨어.”

   

   1왕비에 비해 영향력이 적다한들 2왕비도 공작가문을 뒤에 둔 왕비다.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꽤나 힘있는 파벌을 만들어 세실을 지원할 수 있을만큼 능력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런 2왕비이니만큼 어느 순간 위화감이 든단 걸 알아차렸지만 그럼에도 국왕의 서거에 도달하지 못한 까닭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고 하셨지만.”

   

   대체 1왕비가 국왕의 서거를 숨겨서 볼 이득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계승권자가 정해지지 않은 채 국왕이 서거하면 자연스레 1왕자가 왕위에 오를 텐데.

   

   “작금의 상황은 평범한 사람의 이해를 뛰어넘은 광인이 저지른 일이다. 이후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도 예측하기 어려워.”

   

   이번 일은 이미 상식의 영역을 벗어났다. 그러니 앞으로를 예측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어떤 방식일지. 어느 수준의 규모일지. 목적이 무엇일지. 모든 것이 불명이다.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내가 급하게 움직이고 있는 거다. 1왕비께서 무엇을 준비하고 계시건 간에 일정 이상 진행됐을 것이 분명하니. 이쪽도 세세한 걸 신경 쓸 수가 없는 것이야.”

   

   분명 1왕비는 르네의 움직임을 이미 포착했을 것이다. 왕국 전역에 깔려 있는 그녀의 정보망을 생각해본다면 모르는 게 더 말이 안 된다.

   

   허나 이것까지 신경을 쓰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그러니 역으로 이를 이용한다. 대놓고 반역의 낌새를 풍겨서 상대가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도록 만든다.

   

   “2왕비님 측에 가장 먼저 접근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지. 그 분이 편을 들어주면 최악의 경우에도 1왕비께서 벌이려는 일을 가로막을 수 있다.”

   “대가로는 무엇을 지불하셨습니까.”

   “왕위.”

   

   별 것 아니란 듯 내뱉어진 말에 아서와 베네딕이 경악했지만 정작 르네는 태연했다.

   

   1왕비께 반기를 들기로 한 순간부터 내가 지닌 자리는 의미를 잃었다. 유력한 왕위계승자면 무얼 하는가.

   

   이 자리를 만들어낸 건 어디까지나 1왕비께서 지닌 권력의 잔향일 뿐. 그 분이 해 온 모든 일이 부정당한다면 나란 인간은 의미를 잃는다.

   

   사실 이것도 희망적인 관측이다. 2왕비께서 날 아예 지우고자 마음을 먹는다면 1왕비의 핏줄이란 것을 걸고 넘어져서 내 목을 날려도 이상할 게 없다.

   

   어딘가에 유폐당하는 것마저도 자비롭다 칭송해야 하는 게 르네의 상황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2왕비도 이를 눈치챘을 것이다.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 르네도 그를 생각해서 그녀에게 이득이 될 만한 내용을 몇 가지 더 준비했었다.

   

   헌데 2왕비는 르네에게 왕위 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가 내어 준 계승이란 게 허울뿐이란 걸 알면서도, 코웃음치면서 그래서 어쩌란 거냐 말해도 어찌할 수 없음을 이해했으면서도, 그녀는 르네에게 어울려줬다.

   

   ‘1왕자님께서 친히 내어주신다니 거절할 이유가 없네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를 악물고 하나라도 더 뜯어내려 했을 분인데 많이 바뀌셨어.

   

   그래. 루시 알른과 연관된 후부터. 절로 짜증이 나는 이름을 떠올린 르네는 코웃음을 흘리고는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2왕비님께서 1왕비님의 부정을 폭로하는 건 차악이다. 그럼 타국에서 왕국에 개입할 명분을 주는 셈이야. 최선은 1왕비님과 함께 부정을 묻어버리는 것.”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틀어막아야 하는 게 1왕비의 입 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1왕비는 한 세력의 우두머리다. 그녀가 무너져내릴 것이 훤한 상황이라면 그 아래에서 무슨 일이건 못 하겠는가.

   

   권력을 지닐 것이라 확신하던 이들이 그를 빼앗겼을 때 어떤 식으로 발악할지 훤하다.

   

   원활한 해결을 위해선 이들의 입을 막을 필요가 있다.

   

   “왕국의 중추인 오공작가는 괜찮아. 다섯 중 셋이 이쪽 편이니까.”

   

   2왕비가 태어난 가문 뿐만 아니라 파트란과 버로우도 이쪽 편을 들어줄 거다.

   

   상황을 관망하거나, 여기에 무관심한 이들도 알른과 켄트, 아르테아, 이외에도 여러 백작 가문이 합류하는 걸 보면 자연스레 시류에 올라타겠지.

   

   그러니 대다수 이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건 잔챙이들이다.

   

   나라고 가문이고 뭐고 간에 자신의 안위가 중요한 이들. 이들의 입을 틀어막아야 왕국의 문제를 조용히 해결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카리아의 협력을 받을 생각이었다만, 그 녀석은 지금 어디에 있나?”

   

   여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카리아다. 그녀라면 너무도 손쉽게 잔챙이들을 침묵시켜 줄 게 분명하다.

   

   “루시 알른과 함께 외출했습니다.”

   “…뭐?”

   “언제 돌아올지도 미지수입니다.”

   

   아서의 대답이 진실이냐고 묻기 위해 르네가 시선을 돌리자 베네딕이 느릿하게 고갤 끄덕였다.

   

   “미쳐버리겠군.”

   

   어째 그 녀석은 도움이 되지를 않는 것이냐. 얼굴을 손바닥에 묻은 채 동요를 억누른 르네는 다시금 침착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

   

   “대체할 수 있는 인원은?”

   “아. 그러고 보면 버로우 가문의 공자가 카리아님의 아래에 있습니다. 일단 그 쪽에 가보시는 게 어떨지.”

   “좋아. 일단 아서 넌 나와 함께 움직이는 걸로 하고 그 외에도…”

   

   *

   

   ‘조용하네요.’

   <마음이 편하고 좋지 않으냐?>

   ‘좀 적적한 기분이에요.’

   

   최근 할아버지와 함께 내 머릿 속을 가득 채우던 가라드의 목소리가 사라진 탓일까.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상황일 텐데도 난 적적함을 느꼈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구나.>

   ‘으음. 그렇네요.’

   

   이상하네. 난 전생에 혼자가 편하다 느끼던 아싸였는데 왜 이젠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안 되는 인간으로 변한 걸까.

   

   이것도 메스가키 스킬의 영향…은 아니겠네. 멘헤라 메스가키라니.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뭐. 괜찮아요. 제 옆엔 할아버지가 있으니까!’

   <허. 답잖게 참 기특한 말을 하는구나.>

   ‘저 평소에도 이랬잖아요?’

   <양심이 있는 게냐?>

   ‘주신의 사도이자 용사인 제가 양심이 없을 리 없잖아요?’

   

   할아버지가 아무리 부정해봐야 제게 주어진 호칭은 달라지지 않거든요? 어디 한 번 주신의 사도이자 용사인 제가 악인이라고 지껄여보시죠?

   

   <말세로구나.>

   

   한탄하듯 내뱉은 할아버지에 말에 키득키득 웃고 있으려니 카리아가 고갤 갸웃거렸다.

   

   “고용주님. 뭐가 그렇게 즐거운 거야?”

   “아줌마 얼굴. 봐도봐도 질리지 않고 새롭게 추해. 최고야.”

   “…어이.”

   “카리아님! 진정하십시오! 왜곡된 어투임을 아시잖습니까!”

   “놔봐! 저거 왜곡 아냐! 진짜로 놀린 거라고!”

   “어라? 들켰네? 근데 어쩔 건데? 아줌마가 날뛰어봐야 아줌마일 뿐이잖아.”

   

   때릴 수 있으면 때려봐. 퇴물이 되어버린 아줌마한테 당할 정도로 약하진 않으니까.

   

   일부러 잔망스럽게 움직이면서 도발했더니 카리아가 입술을 부들부들 떨다가 한숨을 내뱉었다.

   

   “이럼 어쩔 수 없네. 고용주님이 여태까지 해 온 일을 공표해서 찬양받게.”

   “너무 놀리다 부서지면 재미 없으니까! 적당히 할까?!”

   

   죄송합니다! 주제파악을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지 말아주세요!

   

   다급히 사과의 말을 전했더니 그제서야 카리아가 웃음을 흘렸다.

   

   “장난은 이쯤하면 됐고. 그래서 나한테 물어볼 게 뭔데.”

   “예전에 네 아래에 있던 썅년 기억하지?”

   “지 잘난 줄 알던 년?”

   “정확해!”

   “당연히 기억하지. 위치도 파악하고 있어. 안내해주면 되지?”

   

   역시 카리아야!

   

   빨리 움직이자!

   

   나 조금이라도 빨리 그 썅년이 바닥을 기면서 질질 짜는 걸 보고 싶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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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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