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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22

        

       하지만 이아린은 당당했다.

         

       “화산과 관련된 무공 맞잖아?”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않았으니까.

         

       그녀가 방금 사용한 무공은 누가 봐도 화산과 관련된 무공이었다.

       무공에 조금이라도 조예가 있다면 화산을 심상으로 삼아 창안한 무공임을 알 수 있었으며, 그녀가 방금 사용한 일권(一拳)에 화산을 모방해서 만든 묘리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거기에 기(氣)를 압축하였다가 터뜨리는 그것은 마그마가 분출하는 현상과 이치가 통하고 있었으며, 양기공을 주로 익히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양기로 변환할 수 있게 만드는 묘리까지 더해졌으니….

         

       볼케이노 펀치(Volcano punch)라는 간결하기 짝이 없는 이름과는 다르게 무공에 조예가 있는 이가 창안했음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필시 높은 경지에 있는, 그러면서도 대종사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 이에게서 나온 무공임이 분명하겠지.

         

       게다가 효용성으로 따지자면 단순한 심상이나 묘리 그 이상이었다.

       다른 무공을 익히고 있음에도 양기로 발현되게 함으로써 여러 상황에 대처할 수 있게 하는 한편, 권과 관련된 무공의 성취를 확 뛰어오르게 할 수 있을 기(氣)의 운용, 무공의 사용에 있어 견문을 확 넓혀주는 응용 방법을 깨닫게 해주는 것까지….

       하나같이 대단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거기다가 격공장의 묘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 무공의 효과는, 학교의 보호에서 벗어나 한 사람의 무인으로써 세상에 우뚝 서게 되었을 때 큰 도움이 될만한 것들이었다.

       일대일 대련이나 특정 상황에서의 대처 방법, 정석적인 다대일 대처 방법 등을 가르쳐주는 학교의 교육과는 다르게…. 실제 사회로 나와보면 온갖 더러운 술수들이 난무하니까 말이다.

       경호 쪽으로 나가는 사람들은 좁아터진 곳에서 여럿을 상대해야 할 수도 있고, 저 멀리서 저격용 총으로 의뢰인과 자신의 머리통을 노리는 총알에 대응해야 할 수도 있다. 마피아나 갱들이 총을 들고 우르르 몰려들 수도 있고, 무인을 대처하는 전문가들과 상대하며 수명이 실시간으로 깎여나가는 듯한 스트레스와 마주할 수도 있겠지.

       그런 상황에서 이 무공은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지향성 폭발이라는 것은 다대일 상황에도, 함정을 파괴할 때도, 장애물을 부수거나 임시 피난처를 만들 때도 쓸만한 기술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래.

       완벽했다.

         

       …이아린이 화산과 관련된 무공을 보여주겠답시고 무공연습실로 데려온 사람이 화산(華山)과 관련된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일부러 그녀가 착각하도록 정정하거나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기대감을 증폭시키기까지 했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화산은! 그 화산이 아니라고! 몇 번을! 몇 번을 말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건 고의였다.

         

       이아린이 아무리 공부에 관심이 없더라도 화산(華山)과 화산(火山)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겠는가?

       정말로 뇌까지 근육이 들어찬 것이 아닌 이상 그걸 착각할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으음. 아샤는 착각할 수도…?’

         

       …아니지.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귀여운 아나스타시아라면 정말 착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것도 평범하게 이해를 못 하는 것이 아니라, 기묘한 방향으로 착각을 할 수도….

         

       『 화산(華山)과 화산(火山)이 다르다고요? 당연히 알고 있어요! 화산(華山)은 특정 산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화산(火山)은 용암 같은 것이 쌓여 만들어진 산체 전체를 통칭하는 말이잖아요! 당연히 화산(火山)이 더 포괄적이고 거대한 개념이죠! 』

         

       『 제가 말하려고 하는 건 화산(華山)이 화산(火山)에 속할 수도 있다는 거죠! TV 보는 것이 취미인 엘라의 언니인 이 아나스타시아의 언니로서 말하는 건데, 화산(華山)은 화산(火山)일 가능성이 분명히 존재해요…! 그러니 둘이 다르다고 부정할 수는 없어요! 』

         

       ‘…내 머릿속에서 나가!’

         

       이아린은 자동으로 재생이 되는 아나스타시아의 목소리에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머릿속으로 파고든 아나스타시아를 떨쳐내려는 듯 말이다.

         

       “이, 이이!”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이아린과 대화를 하던 여학생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화산(華山)은 화산(火山)이 아니다’라는 주제로 대화하던 와중에 고개가 저렇게 저었으니, ‘네 말은 틀렸고 내 말은 맞다. 그러니 화산(華山)은 영어로 볼케이노(Volcano)가 분명하다!’라는 뜻을 담은 도발로 느껴진 것이다.

         

       “죽어!”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은 분노!

       분노가 극에 달하면 기혈이 뒤틀린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정말로 기혈이 뒤틀리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여학생은 분노를 담아 일권을 날렸다.

       …물론 화가 나기는 했지만, 이아린은 소중한 친구이자 라이벌이니까, 조금 손속은 둬서 말이다.

         

       그렇게 화산을 담은 것 같은 주먹이 이아린의 명치를 노리고 날아왔다.

       옅은 매화 향기가 풍기는 것으로 보아, 명치에 맞으면 아무리 이아린이라고 하더라도 숨이 턱 막히는 고통을 느끼며 자신이 한 망언을 후회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맞는다면 말이다.

         

       휘익.

         

       주먹이 명치에 닿기 전, 이아린의 몸이 휘었다.

       허리가 굽혀지며 명치가 기존의 위치에서 뒤로 밀려났으며, 아예 주먹의 경로에서 벗어나려는 듯 몸이 초승달 모양으로 휘었다. 그것도 무슨 요가(Yoga)를 평생 수련한 요기(Yogi)라도 되는 것처럼, 엄청나게 유연하게 말이다.

       뭐, 실제 요가와 관련된 무공을 익혔다면 초승달 정도가 아니라…. 몸이 고무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기기묘묘하게 휘어졌을 테니 ‘요기(Yogi)’에 비유한 건 말 그대로 비유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만 말이다.

         

       “맞아! 맞으라고! 매화일권(梅花一拳)에 한 대만 맞아!”

         

       “싫은데? 그 매화펀치 아파 보이는데?”

         

       “매화펀치 아니라고! 매화일권이라고!”

         

       “아니야~ 매화펀치야~ 누가 봐도 펀치야~”

         

       “죽어!”

         

       그리고 그 유연한 움직임은 계속 이어졌다.

       유연한 몸이 젖혀지고, 휘어지고, 고무공이 튀어 오르기라도 하는 듯 바닥과 벽면에서 통통 튀고….

       정말로 무슨 짐승 같은 움직임이었다.

         

       그렇게 이아린은 여학생이 휘두르는 모든 주먹질을 피했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학생은 분노 때문에 미쳐버릴 것만 같은 심정이 되었다.

         

       “합!”

         

       후웅!

         

       “호잇!”

         

       후웅!

       

       “이얍!”

         

       주먹을 피할 때마다 입으로 내는 저 짜증 나는 소리!

       긴박감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저 표정!

       촐싹대고 방정맞아 보이는 이아린의 저 움직임까지!

         

       짜증이 난다!

       전부 짜증 난다!

         

       그리고 정말 짜증이 나는 것은, 이아린이 저렇게 사람을 약을 올리고 있는데도 한 대도 때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 안 해!”

         

       결국 여학생은 폭발했다.

       그녀는 더는 못 해 먹겠다는 듯 빼액 소리를 치고는 분노가 묻어나오는 거친 발걸음으로 문까지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곤 안전을 위해 설치된 잠금장치들을 하나하나 해제하고는 학생증을 찍었다.

         

       삑.

         

       [ 퇴실하시겠습니까? ]

         

       여학생은 디스플레이에 뜨는 자신의 학년과 반, 그리고 예설화라는 자신의 이름을 확인한 후 『 퇴실하시겠습니까? Y / N』이라는 문구에서 Y를 터치했다. 그리고 무공연습실의 이용 시간과 퇴실했다는 문구가 떠오르는 것을 확인한 후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탓.

         

       그런데 그 순간, 하늘에서 이아린이 떨어져 내렸다.

       무공을 사용해 바닥과 벽면을 박차면서 순식간에 그녀의 앞에 떨어진 것이다.

         

       이아린은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예설화의 앞을 가로막고는,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지으며 예설화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살짝 고개를 기울이고는 파란 해달이 나오는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어떤 다람쥐 흉내라도 내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물었다.

         

       “화난 거야?”

         

       열받는다.

       묘하게 열받게 만드는 자세다.

         

       말 그대로 ‘주먹을 부르는’ 자세 그 자체다….

         

       “…아니, 화 안 났어. 비켜!”

         

       하지만 예설화는 참았다.

         

       그래.

       참았다….

         

       “화나쪙? 화났네! 때릴 거야? 응? 때릴 거야?”

         

       빠악!

         

       “앆!”

         

       …못 참았다.

         

       예설화는 이어지는 이아린의 도발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고, 마치 홀린 것처럼 그녀의 정수리를 때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기(氣)를 사용하지도 않았고 힘을 주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한마디로 소리만 요란했을 뿐, 이아린에게는 조금의 타격도 입히지 못하는 공격이었다는 이야기다.

         

       “아이고 아파라. 우리 예서라한테 맞으니까 너무 아프네~”

         

       하지만 이아린은 정수리가 아파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한껏 엄살을 피웠고, 마치 자해 공갈단 흉내라도 내는 것처럼 장난기 가득한 태도로 예설화에게 달라붙었다. 심지어 예설화에게 맞은 자기 정수리를 그녀의 명치께에 들이밀고는 드릴처럼 회전시키며 비비기까지 했다.

         

       “하…. 진짜….”

         

       도무지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가 없는 모습.

       맹수가 애교를 부리는 듯한 그 모습에 예설화는 한숨을 쉬었다.

         

       “너 요새 장난 되게 많이 늘었어. 좀 자중해….”

         

       “히힛.”

         

       그러고는 내가 아니면 누가 너랑 놀아주겠냐는 듯, 뭔가 기묘한 우정이 담긴 시선으로 이아린을 쳐다보았다.

         

       “…정신연령이 더 어려진 것 같네…. 너…. 아니, 됐어…. 빨리 너도 학생증 찍고 퇴실해…. 매점이나 가자.”

         

       “오, 매점~ 나쁘지 않지~ 가자!”

         

       그렇게 둘은 무공연습실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어마어마한 운동량에 시달리는 무인들에게는 영양을 섭취하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낙원과도 같은 곳.

       운동량이 적은 여학생들에게는 ‘다이어트의 적’, ‘함부로 발을 들였다가는 체중이 순식간에 늘어버리는 사악한 유혹이 가득한 곳’으로 불리는 그곳.

         

       매점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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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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