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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23

   눈을 뜬 썅년은 처음엔 대뜸 욕지거리를 내뱉었지만 자신을 둘러싼 이들의 면면을 확인하고는 이내 얌전해졌다.

   

   왕자 둘에 공작가 영애 하나이니 자칫 잘못하면 자기 목이 날아간단 계산이 섰겠지.

   

   “가네린. 일은 어중간하게 해도 눈치는 좋았던 너잖아?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아?”

   “…뭐가 궁금하신데요?”

   “국왕폐하에 대한 건. 넌 알고 있지?”

   

   썅년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어리둥절해 했다.

   

   설마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나름 간부 자리에 있으면서 소문도 못 들었다고?!

   

   “캬핳! 아. 이 년 연기 많이 늘었네.”

   “아니에요. 저 진짜 아무것도.”

   “보인다고. 등신아.”

   

   허나 그녀의 자연스러운 연기도 카리아의 능력 앞에선 무의미했다.

   

   생각을 읽는 초능력이 있다 그래도 역시 그랬구나 하며 납득해버릴 그녀의 능력은 썅년이 머리에 새긴 사고를 모두 다 파헤쳐 놓았다.

   

   “너 예전에 내가 심문할 때 어떻게 했는지 기억하냐? 하고 있네. 그럼 대화가 쉽지.”

   

   카리아가 히죽 웃음을 흘리자 썅년의 어깨가 떨린다.

   

   “나랑 으슥한데가서 단 둘이 있을래, 아님 여기서 협조적으로 행동할래? 어느 쪽이건 난 상관 없어.”

   “카. 카리아님. 아시잖아요. 저희에게 걸려 있는 제약을.”

   “말만 안 하면 되잖아. 물어보면 머릿속으로 생각만 해.”

   

   질책에 가까운 명령에 썅년이 다급히 고갤 끄덕인다. 예전의 카리아가 어떤 사람이었길래 저 썅년이 고분고분하게 변한 걸까.

   

   “자. 여러분들. 질문할 거 있으면 말하세요. 뭘 물어도 협조해준다고 하네요.”

   “나부터 질문하지.”

   

   처음으로 손을 든 건 르네였다.

   

   “정보부는 1왕비님이 벌인 일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나.”

   “최초의 은폐부터 정보교란까지 모두 다 자신들의 손을 거쳤다네요.”

   “1왕비님의 목적에 대해서는?”

   “그 부분은 자기들도 모르나봐요. 시키는 일만 하는 병정들이니 어쩔 수 없죠.”

   

   르네가 물러서자 이번에는 아서가 나섰다.

   

   “왕국 정보부는 감시자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나?”

   “저랑 마찬가지로 모른다네요. 그 부분은 아마 현 쿠르텐 공작을 압박해야 얻을 수 있는 정보일걸요.”

   

   아서가 혀를 차며 입을 다물자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조이 쪽으로 쏟아졌다. 멍하니 앞을 바라보던 조이는 뒤늦게 시선을 알아차리고는 고갤 내저었다.

   

   “고용주님은?”

   “음습한 쓰레기들이 망상병 왕비를 따라 진행중인 일들에 대해 지껄여봐.”

   “유용한 것들은 별로 없는데 일단 늘어놔볼게. 요정의 숲 관련 협상. 흑마법사 무리와의 협의. 여러 주요인물들에 대한 추격임무. 에르기누스님에 대한 조사. 건국절 행사의 준비. 아. 원래는 이 때 일을 벌이려고 했구나.”

   

   내가 아는 것보다 1년이나 진행이 빠르네. 원래대로라면 3학년 건국절 때 사고가 터졌어야 했는데.

   

   “건국절이라면 채 한 달이 남지 않았을 터.”

   

   르네의 말에 카리아가 고갤 주억였다.

   

   “일을 벌일 준비는 끝났다나봐요.”

   “그 때 무슨 일을 하려 한 거지?”

   “미친년이 일으킨 혼란 속에서 분란분자를 처리하는 것. 그 이상은 얘도 몰라요. 눈치껏 움직이란 이야기죠.”

   “자세한 내용은 1왕비님밖에 모르는 건가.”

   “여러 주요 귀족들이 죽어도 어쩔 수 없을만큼 큰 사태란 건 분명해요.”

   “미치겠군. 무슨 일인지는 알아야 이 쪽에서도 준비를 할 텐데.”

   “병신의 조각이랑 관련 있는 일이야.”

   

   착잡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툭하고 말을 던졌다.

   

   “…병신?”

   “악신 아그라를 말씀하는 것 같네요. 그쵸?”

   “맞아. 병신 중의 상병신. 지가 이길 것 같을 때만 슬그머니 나타나선 처발리고 질질 짜면서 도망치는 찌질이 자식.”

   

   게임 속에서 1왕비는 소울 아카데미 지하에 보관된 악신의 조각을 깨운다. 그 힘을 이용해 왕국의 영원한 번영을 이루어내기 위해서.

   

   “내가 고용주님이 하는 말을 의심하는 건 아닌데. 그게 어떻게 가능해? 잘은 몰라도 악신이란 게 부활하면 개판나는 거 아냐?”

   “푸핳. 병신이 괜히 병신인 줄 알아?”

   

   몇 개로 쪼개져 어느 것이 중심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수백년이란 시간을 봉인되어 있던 아그라다.

   

   본래 지녔던 힘이 아무리 막강하다한들 지금까지도 강대할 순 없다.

   

   특히 소울 아카데미 지하에 봉인되어 있는 조각은 다른 조각보다도 더 약화된 상태다.

   

   에르기누스가 수백년에 걸쳐 그 힘을 소모하게 만들었으니까.

   

   봉인이 풀린다 한들 그리 위협적이진 않을 거야.

   

   요정의 숲에서 봤던 어둠의 악신에 비한다면 갓난 아기 수준일 테지.

   

   그런 녀석이 상대라면 권능을 탈취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해. 실제로 탈취당하기도 하고.

   

   “많이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 치자, 근데 그게 왕국의 번영과 무슨 관계야? 자칫 잘못하면 이단지정을 당해서 나라가 무너져버릴 텐데?”

   “그러니까 쓸모없어진 껍데기는 버려야지. 진짜 병신이라니까. 신이란 이름을 달고 인간한테 이용당하다 버려지다니.”

   

   권능을 통해 바라는 바를 이루어내면 1왕비는 자신이 직접 아그라를 쓰러트릴 예정이었다.

   

   봉인이 풀린 것은 불행한 사고이며 여러 희생 끝에 이를 수습해냈다는 시나리오지.

   

   직접 아그라를 쓰러트렸단 명분이 있어서 교회도 개입하기 어려울거라 그랬던가?

   

   “카리아.”

   “1왕자님. 잠시만요. 아직 확인해야 할 게 있어요. 제일 중요한 거에요. 왜 그런 미친짓을 저질렀는가에 대한 것.”

   “그거야 당연한 거 아냐? 망상병 걸린 왕비가 왜 이딴 짓을 저지르겠어? 당연히 이 허접한 나라를 위해서야.”

   

   왕정이라는 지배체재는 왕 한 사람의 능력에 의해 나라의 명운이 결정된다.

   

   뛰어난 이가 왕좌를 차지한다면 이만큼 훌륭한 일도 없다. 평범한 자가 나라를 차지하더라도 무언가 커다란 일만 벌어지지 않는다면 괜찮다.

   

   허나 암군이 권력을 쥘 경우, 왕정은 너무도 쉽게 기울어버린다.

   

   지금은 뛰어난 왕이 자리를 잡고 있더라도, 또한 자신이 뛰어난 왕을 키워냈더라도, 그 후에는?

   

   백 년 뒤에는?

   

   짐작하기도 어려운 아득한 시간이 지난 뒤에는?

   

   이렇게 생각한 왕비는 한 사람의 철인을 만들어내기로 결심했다.

   

   영원토록 왕궁을 번영으로 이끌 왕을 말이다.

   

   “아그라의 힘을 빌리면 그런 게 가능해?”

   “당연히 가능하지. 그것도 못하면 걔가 왜 신이겠어?”

   

   어둠의 악신이 아르마디가 지닌 빛이란 상징성과 대비되는 존재라면, 아그라는 본질적으로 그 반대에 선 존재다.

   

   세상의 시작을 알린 것이 아르마디라면, 세상의 끝을 알리는 존재가 아그라니까.

   

   시작과 끝. 창조와 소멸. 탄생과 죽음.

   

   아그라의 힘을 빌려 끝을 미룬다면 영생에 도달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 거다.

   

   “…왕성에서 빠져나오길 잘했군.”

   “형님이나 저 중에 한 명이 그 곳에 있었다면 휘말렸겠군요.”

   

   다들 너무 쉽게 믿는 거 아냐?

   

   

   다른 애들이야 내가 주신의 사도란 걸 아니까 그렇다 쳐도 르네 너까지 그러면 안 되지.

   

   

   왜 당연하다는 듯 내 말을 믿고 넘기는건데. 너 원래 이런 인간 아니잖아.

   

   정 말이 안 통하면 르네가 최종보스로 등장한단 이야기까지 하려고 했는데 아쉽다.

   

   

   그 때 얼마나 자기가 추하고 처참하게 뒈지는 지를 알려주고 싶었는데.

   

   

   “루시. 그럼 지금이라도 아카데미 아래에 있는 봉인을 지키면 되는 거 아니에요?”

   “얼빵아. 머리를 좀 써. 그 쪽에 망상병 왕비를 따르는 멍청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아서 옆에 악신의 봉인을 지키던 놈이 달라붙었기도 하고, 게임 속보다 아카데미에 1왕비 쪽 사람이 많이 들어왔으니 이미 빼돌려졌다고 보는 게 맞을 거야.

   

   “…형님. 루시 알른의 말은 사실인 듯 합니다.”

   “그걸 네가 어찌 아느냐.”

   “확인할 방법이 있습니다. 그렇게만 알아주십시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한 가지 물어보자꾸나. 어째서 탈취당할 걸 알면서도 막지 않은 게냐.>

   ‘그랬다가 1왕비가 어디로 튈 줄 알고요.’

   

   광인의 사고를 짐작하는 건 불가능하다.

   

   자신이 바라는 바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루어 낼 1왕비에게 변수를 쥐어 주는 것보다야 내가 아는 상황에서 싸우는 것이 더 낫다.

   

   ‘마지막 순간에 뒤통수라도 맞으면 큰 일 난다고요.’

   

   하나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대가 양 쪽에서 난리를 치면 고인물인 나라도 방법이 없어. 미리 처리해두고 마지막 싸움을 준비하는 편이 이롭다.

   

   ‘걱정마세요. 할아버지. 아시잖아요. 저 던전에 한해선 천재라니까요?’

   <허. 그것 참 믿음직스럽구나.>

   ‘그쵸?’

   

   내가 어깨를 피며 키득거리던 동안 아서와 조이는 서로의 현 전력을 확인하고 있었다.

   

   나중에 아그라의 조각이랑 싸우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구나?

   

   정답이긴 한데 그렇게 긴장할 필요는 없을 걸?

   

   지난 번 요정의 숲에서 상대했던 것보다 위험한 적은 아니니까.

   

   내가 아는 게 맞다면 말야.

   

   “다들. 악신의 주인 아그라와 싸우게 되었다는데 어찌 그리 침착한 게냐?”

   

   당혹스런 기색도 없이 다음을 준비하는 우리가 신기했던 듯 르네가 눈을 끔뻑이자 아서가 헛웃음을 흘렸다.

   

   “악신을 상대하는 게 처음이 아닌지라.”

   

   그리고 그 뒤를 잇듯 조이가 웃음을 지었다.

   

   “긴장되는 건 사실입니다만 저희에겐 루시가 있으니까요. 그녀와 함께라면 분명 저희는 승리할 겁니다. 여태 그랬던 것처럼.”

   

   두 사람의 대답에 일순 굳었던 르네는 가볍게 숨을 내뱉으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래서야 약한 소리도 못 하겠군.”

   “나이는 제일 많으면서 겁도 제일 많으신 건가요? 도망치셔도 돼요. 그러다 오줌이라도 지리면 어떡하시려고.”

   “두 번이나 도망칠 생각은 없다.”

   

   흐응. 그래? 어디 끝까지 잘 버티나 보자. 중간에 질질 짜는 모습이라도 보이면 넌 끝이야.

   

   가늠하듯 르네를 노려보던 중 복도에서 거친 발소리가 들려왔다.

   

   또 무슨 손님이 왔나 싶어 고갤 돌린 순간 응접실의 문이 열렸고.

   

   “형님! 죄송합니다! 실패했습니다!”

   

   속옷 하나만 걸친 2왕자 세실 솔라딘이 등장했다.

   

   “꺄아아악?!”

   “작은 형님!? 이는 대체?”

   “다 털렸나?”

   “예! 완벽히 실패했습니다! 쿠르텐 공작께선 정말 도박에 강하시더군요! 이야기의 시작도 못했습니다!”

   

   자신의 꼴에 부끄러움도 없는지 호쾌하게 웃던 세실은 이내 날 발견하고는 반갑게 인사했다.

   

   “오! 루시 알른! 오랜만이군! 그동안 잘 지냈나?”

   “쬐끄매.”

   “…뭐?”

   “땅콩정도인가?”

   

   그리고 난 그 인사를 받아주는 데 실패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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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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