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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24

        

       “응. 듣고 있어.”

         

       “안 듣고 있잖아!”

         

       “듣고 있어. 그러니까 퓨마를 김치랑 스팸에 싸서 먹는 거 맞지?”

         

       “안 들었네!”

         

       이아린은 분노했다.

       그리고 감히 자신을 무시한 예설화에게 응징을 가하기로 했다.

         

       “꺅!”

         

       무릎을 베고 있는 그 자세의 이점을 살려서, 머리를 이용해 배를 공격한 것이다.

       당연하게도 예설화는 갑자기 배를 꾹꾹 누르는 감각에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고, 이내 얼굴이 점점 분노에 물들기 시작했다.

         

       특히 다이어트를 할 정도로 뱃살에 신경을 쓰고 있었기에, 그 분노는 평소보다도 짙은 것이었다.

         

       탓.

         

       하지만 그 분노를 풀 곳은 없었다.

       이아린은 이미 고무공처럼 튀어 올라서 벤치 옆에 있던 나무의 위까지 올라가 있었으니까.

         

       “서라야~ 복근이 좀 말랑해졌다.~?”

         

       이아린은 예설화의 이성을 잃게 만들기 충분한 도발까지 한 뒤 경공을 사용하며 도주하기 시작했다.

       초상비의 묘리를 통해 가느다란 나뭇가지 위에 올라가고, 무게중심을 사용해 나뭇가지를 움직이게 해서 탄성을 받아 튀어 오르면서 말이다.

       그 모습은 정말 사람이 아니라 짐승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나무 사이를 오가는 표범이나 퓨마 같은 짐승 말이다.

         

       “너. 잡히면 가만 안 둬.”

         

       그리고 짐승에게는 항상 사냥꾼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지금 이곳에, 사냥꾼이 강림했다.

         

         

         

         

        * * *

         

         

         

         

       “아~ 재미있었다~”

         

       이아린은 원한을 품은 채 자신을 쫓아오는 예설화를 너무나도 쉽게 따돌렸다.

       예설화는 그녀와 비교하면 경공의 성취가 낮았고, 거기에 이아린 특유의 짐승 같은 감각이 더해진다면…. 평범한 술래잡기를 숨바꼭질처럼 만들 수도 있었다.

       그냥 숨바꼭질도 아니고, 사람을 환장하게 만들기 충분한 숨바꼭질로 말이다.

         

       ‘오늘은 자율수련 안 하고 그냥 집으로 가야겠다.’

         

       이아린은 자신을 찾느라 혈안이 되어있을 예설화를 생각하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리곤 ‘나 집에 감~’ 이라는 문자가 5분 뒤에 자동으로 보내지게 설정해놓았다.

         

       아마 5분 후에는 학교 안에서 이아린의 흔적조차 찾기 어려울 것이다.

         

       집에 갔을 테니까!

         

       ‘내일 저칼로리 레몬 타르트 좀 챙겨줘야지. 히히.’

         

       이아린은 그렇게 생각하며 짐을 챙겼다.

       뭐, 딱히 거창하게 챙길 것은 없었다.

       가방 하나만 챙기면 되었으니까.

         

       이아린은 자그마한 슬링백(Sling Bag)을 대충 어깨에 맨 뒤 빠르게 하교하기 시작했다.

       그래, 빠르게….

       지름길을 통해서 말이다.

         

       그녀는 드나들라고 만든 문 대신에 창문으로 튀어 나갔고, 경공을 이용해서 벽면을 타고 질주했다. 그리곤 곳곳에 심겨 있는 나무 윗부분을 발판으로 삼아 통통 튀어 올랐고, 심지어 마지막에는 나무의 탄성을 이용해서 교문까지 미사일처럼 쏘아지기까지 했다.

         

       정말 번개 같은 속도가 아닐 수가 없었다.

         

       ‘벽을 넘으면 더 빠를 텐데.’

         

       학교의 담장을 넘는다면 더 빨리 학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유일한 아쉬움이다.

       하지만 얼핏 평범해 보이는 학교의 담장은 끔찍한 수준의 보안이 적용되어 있었기에, 괜히 시간 단축하겠다고 넘어가려고 했다가는 전기 찜질을 당해서 몸을 파르르 떨며 담장 아래에서 발견이 되거나, 아티팩트에 의해 포박이 되어서 대롱대롱 매달려 있게 된다거나, 아티팩트에 붙잡힌 뒤 질소마취(Nitrogen Narcosis) 상태가 될 수도 있었다.

       최악에는 어디 몸 한군데가 부러지거나 다친 상태가 될 수도 있었고.

         

       그러니 얌전히 교문으로 나가는 것이 맞았다.

         

       삐익.

         

       이아린이 교문 밖으로 나가자마자 들리는 자그마한 소리.

       교문에 설치된 센서가 이아린의 학생증을 인식하며 그녀가 학교에서 나갔음을 기록했고, 그와 함께 교문 근처에 설치되어 있는 CCTV들이 그녀의 모습을 찍기까지 했다.

       학교에 누군가가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보안 설비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뭐, 그냥 공기처럼 익숙한 상태가 되었다.

       게다가 저런 설비가 있는 것도 학교에 이상한 사람이 쳐들어오거나 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는데 뭐 어쩌겠는가?

       그냥 우리의 안전을 이렇게 생각해주는구나- 하고 좋게 받아들여야지.

         

       실제로 산업스파이, 범죄자, 변태, 음모론자 등이 학교에 침입하려다가 잡히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는 이상한 음모론자 한 명이 팻말을 들고 침입하려다가 제지를 당한 일이 있었는데….

         

       ‘그 팻말에 무슨 혹세무민? 뭐 그런 게 적혀 있었는데….’

         

       이아린은 그런 변질자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었지만, 그 음모론자만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음모론자는 노숙하다 온 것처럼 지저분한 모습의 남자였는데, 그 눈은 뭐 이상한 것이라도 먹었는지 반들거리고 있었다. 거기다가 뭘 먹고 온 것인지 입가에는 기름이 줄줄 흐르고 있었으며, 옷에는 오물이라도 묻은 것인지 파리가 꼬이고 있었다.

       그는 이상한 팻말을 들고 있었는데, 쓰레기장에서 한참 뒹굴다 온 것 같은 지저분한 팻말에는 남자의 인상만큼이나 지저분한 글씨체로 글이 적혀 있었다.

         

       『 惑世誣民하는 자가 있어 惑術을 펼쳐 欺惑하고 妄惑을 하고 있으니 그 誣妄함이 全國에 뻗쳐 파릇한 싹들마저 誣妄해져가고 있으매 亡國之歎을 』

         

       이아린이 본 것은 온갖 한자, 알아보기 힘든 글씨체의 한글의 향연이었다.

       수십 년 전 한자와 한글을 혼용하던 시절의 신문에서나 볼 것 같은 글씨에 이아린은 순간 현기증마저 일었었다.

         

       게다가 글자 일부가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었는데, 발달한 시야로 그 꿈틀대는 것이 착각이 아니라 벌레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우욱.’

         

       …다시 떠올려도 역겨운 광경이었다.

         

       게다가 이 사람은 그냥 행색이랑 팻말만 지저분한 것이 아니었다.

         

       [ 놔라! 이 학생들에게 진실을 알려줘야만 해! ]

         

       [ 미륵불이 나에게 진리를 보여주었어! 이 학생들이 올바르게 클 수 있도록 내가 나서야 해! ]

         

       [ 가만히 놔두면 싹이 썩고 나라가 망조의 길에 접어들게 될 것이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한민족은 중국에 통합될 것이야! 대다수의 불쌍한 자들은 외면받은 채 왜구들의 침탈에 고통스러워하게 될 것이야! 그래선 아니 되는 일이야! 내가 나서서 이 싹들을 계몽시키고 국가에 헌신하도록-! ]

         

       하는 말 하나하나가 미치광이 그 자체였다.

       누가 보더라도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중증 환자 그 자체였다고 할까….

         

       이 음모론자의 임팩트는 꽤 강했다.

       앞서 종종 발견되는 변질자들에 비해서 독보적인 개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한창 이곳저곳에 호기심을 보이고 떠들기 좋아하는 학생들의 감성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팻말을 들고 침입한 더러운 노숙자에 관한 이야기는 순식간에 전교로 퍼졌고, 쉬는 시간 동안 학생들의 입에서 오가며 씹히는 훌륭한 간식이 되었다.

       그렇게 노숙자는 한때의 즐길 거리가 되었다가 사라지게 될 것 같았는데….

         

       그때, 이 노숙자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나타났다.

         

       괴담이나 미스터리 같은 것을 좋아하는 호기심 많은 이들이 말이다.

         

       『 저 노숙자, 정신병원에서 탈출했다고 하던데? 』

         

       『 이 근처에 정신병원이 어디 있어. 집값 내려간다면서 우리 동네에 못 들어오게 난리를 쳤잖아. 가장 가까운 정신병원도 차 타고 두 시간은 가야 있을걸? 』

         

       『 그 두 시간 거리에서 왔을 수도 있잖아? 』

         

       『 그럴 수도 있긴 한데…. 그것보다는 근처 폐가나 폐건물에서 지내다가 온 거 아닐까? 』

         

       『 그게 더 가능성이 높아 보이긴 하네. 』

         

       그들은 갑자기 쳐들어온 음모론자에 관해서 관심을 보였고,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고자 했다.

       하지만 학생들이 조사해 봤자 얼마나 할 수 있을 것이며, 정확해봤자 얼마나 정확하겠는가?

         

       『 저기 산에 있는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에서 왔다는데? 그 초가집이 사실 무당이 오가는 곳인데, 거기서 귀신을 받는다고 하더라고. 거기에서 지내다가 빙의가 되어서 미쳐버린 거래. 』

         

       『 아니야. 저어기에 재개발한다고 텅 비어버린 곳 있잖아. 거기에서 지내던 사람이라는데? 듣기론 가족을 사고로 다 잃고 혼자서 지내다가 미쳐버렸다고 하더라고. 우리 학교에 쳐들어온 것도 자식 생각 때문이래. 』

         

       『 에이~ 사이비 종교라니까? 딱 보면 알잖아. 사이비 종교에 전 재산 다 바치고, 이제 쓸모가 없어졌으니까 교주가 팻말 들고 우리 학교에 쳐들어가게 시킨 거지. 하는 행동이나 적힌 말이나 다 사이비 그 자체라니까~ 』

         

       그렇게 수많은 이야기가 돌았고, 점점 소문에 살이 붙었다.

       그리고 마침내 학교에서 떠돌던 ‘7대 불가사의’에 접목이 되기까지 했다.

         

       그래.

       그것이었다.

       이아린이 그 음모론자에 대해서 기억하는 이유가 말이다.

         

       『 야, 그 노숙자가 있던 곳 거기라고 하던데? 그 서울에 있는 그 좀 음산해 보이는 빌딩 있잖아. 악령 숭배자가 들어갔다고 하는 그 빌딩….』

         

       『 야야, 너 아직도 그 소식 못 들었냐? 그거 다 구라잖아. 』

         

       『 응? 뭐가? 』

         

       『 그 빌딩 악령 숭배자가 아니라 주술사가 들어갔잖아. 그 얼마 전에 TV에 나온 그 청년 주술사. 게다가 우리 학교에 그, 이곳저곳에서 보이는 그 무인 여자애 오빠라던데? 』

         

       『 어 그래? 그럼 내가 들은 건 헛소문이네….』

         

       정말 황당하게도 박진성이 머무는 빌딩은 괴담의 일부가 되어있었다.

       학생들 말로는 무려 악령 숭배자가 대악령을 소환하려 했다느니, 한밤중에 갔다간 귀신에게 홀려서 미쳐버린다느니, 악령의 둥지라느니, 세상을 멸망시킬 비밀조직의 거점이 지하에 있다느니 하는 소문이 가득했다.

       게다가 빌딩의 음산한 외형 때문에 이러한 소문은 가라앉을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으며, 나중에는 7대 불가사의니 뭐니 하는 것에까지 포함이 되기까지 했다.

         

       박진성이 TV에 나오기 전까지 말이다.

         

       박진성이 TV에 나온 후로 그 빌딩에 관한 이야기는 싹 사라지게 되었으며, 대신에 ‘청년 주술사 박진성’은 학교 내에서 그 불가사의만큼 큰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 어찌 보면 화가 복이 되었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었다.

       박진성은 알지도 못하고, 신경도 쓰지 않는 새에 말이다….

         

       하지만 괴담이라는 것의 특성상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고 약간은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TV나 소문에 관심을 두지 않는 학생이라면 더더욱 그러했겠지.

         

       그 때문에 학교에 침입한 그 더러운 노숙자 같은 사람의 이야기가 진성이 머무는 빌딩에까지 결합하였고, 빠르게 수정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 덕분에 그 빌딩 이야기는 이제 정말로 괴담에서 멀어지게 되었고, 대신에 ‘TV에도 나왔던 주술사가 사는 곳’이라면서 명성을 얻었다.

       진성을 만나고자 일부러 찾아오는 학생들에, 유명세 때문에 약속 장소로 이용되기까지 하면서 유동 인구가 예전에 비해 늘어나기까지 했으니….

         

       진성의 빌딩은 슬슬 랜드마크로 진화하려 하고 있었다.

         

       ‘음…. 생각난 김에 한 번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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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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