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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25

       

       

       ‘뭘 하고 있었지.’

       

       눈을 뜬 순간 든 생각이다.

       

       지금까지 뭘 하고 있었더라.

       

       ‘분명….’

       

       내 마음속으로 가서, 망설임을 없애고 오자.

       그리 생각하고 눈을 감길 얼마나 흘렀을까.

       

       어쩐지 멍한 머리를 그냥 두고 시선을 돌렸다.

       

       눈을 감기 전과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환경이다.

       여전히 빙정이 보였고.

       

       ‘궁주.’

       

       이리저리 쳐다보다 보니 날 보고 있는 궁주 또한 보였다.

       

       한데.

       

       ‘뭐지?’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거지?

       놀람과 당황.

       

       차갑디차가운 인상을 지닌 궁주였는데.

       그가 짓고 있는 표정이 참으로 다채로웠다.

       

       왜 저런 얼굴을 하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 무렵.

       

       “왜 울고 있는 게요?”

       

       궁주가 뱉은 말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울고 있다고?

       손을 들어 눈가를 만졌다.

       

       ‘어?’

       

       확인해보니 정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뭐야.’

       

       나는 왜 울고 있는 거지?

       

       ‘뭐야 이거.’

       

       뜬금없이 흐르고 있는 눈물에 상황 파악이 더뎠다.

       얼마 만에 흘리는 눈물인 것인지는 둘째 치고.

       

       이걸 왜 흘리고 있는 건지를 파악해야 했다.

       

       딱히 뭐 대단한 걸 겪지는 않았던 것….

       

       ‘음?’

       

       이전 상황에 대해 떠올리려 해보는데.

       이상하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분명히….’

       

       심상 공간으로 들어가 내 어릴 적 모습을 죽이려 한 직후.

       그 다음.

       

       그 다음이….

       

       ‘뭐였지?’

       

       기억나질 않는다.

       분명 뭔가 있었던 거 같은데.

       

       기억에 먹을 잔뜩 칠해 놓았는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찝찝해.’

       

       그리고 막막하다.

       

       인상을 가득 찡그린 채 떠올리려 애를 써보지만.

       흐릿하게 무언가 스쳐 지나갈 뿐이다.

       

       

       

       

       

       누군가가 아이를 안고 있는 형상.

       그게 간신히 떠올릴 수 있는 한계였다.

       

       ‘모르겠군.’

       

       뭘 보았던 걸까. 뭘 보고 겪었기에 이리도 찜찜한 걸까.

       

       “구 공자? 괜찮으시오.”

       

       “아….”

       

       궁주의 말에 우선 눈물부터 닦아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겁니까?”

       

       “몇 초 지나지 않았소.”

       

       “…음.”

       

       몇 초라.

       겨우 그 정도가 지난 건가.

       

       ‘고작 그 시간이 지났는데…’

       

       말아쥔 주먹을 보며 생각했다.

       

       ‘경지가 이만큼이나 늘었다고…?’

       

       놀란 눈으로 몸 상태를 관조했다.

       

       넘친다. 

       

       기운은 흘러넘칠 만큼 가득 차 있었고.

       그걸 감싸고 있는 그릇은 더욱 커져 있었다.

       

       ‘이건….’

       

       직전의 상태가 전생에 훨씬 못 미치고 있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반절은 훨씬 넘었군.’

       

       완전히 닿았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거의 근접했다.

       이 정도면 확연히 달라졌다 할 수 있다.

       

       ‘…하.’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고작 망설임을 버린 것으로 이리 달라질 수 있다니.

       

       이는 달리 말하자면.

       

       ‘얻어낸 것이라기보다. 원래 가지고 있던 것. 이라고 보는 게 맞겠지.’

       

       이건 새로이 얻어낸 힘이 아니었다.

       

       격이 달라지며, 애당초 몸 안에 생겼던 기운들이지만.

       심상을 안정화하지 못해 몸 안에 묶여있던 힘이라 보는 게 옳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그게 이만큼일 줄은 몰랐을 뿐이지.’

       

       마음 같아선 지금의 상태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확인을 해보고 싶다만.

       

       ‘일단은.’

       

       고개를 돌려 빙정을 확인했다.

       

       ‘이것부터.’

       

       궁주는 말했었다. 

       내가 선택을 하게 되면 분명 알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흐음….’

       

       그걸 떠올리며 빙정을 쳐다봤다. 

       궁주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음을 깨달았다.

       

       내가 이곳으로 온 이유.

       그건 여전히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이게 뭔지는 알겠네.’

       

       앞에 있는 빙정의 정체.

       그것만큼은 알 것 같았다.

       

       손을 뻗었다.

       

       스윽.

       

       빙정의 표면에 손바닥을 대니.

       

       웅우우웅—!!!

       

       빙정이 대뜸 미친 듯이 진동하기 시작한다.

       

       “…!”

       

       이걸 보며 뒤에 있던 궁주가 흠칫하며 몸을 떨지만.

       무시했다. 

       

       집중하니 보인다.

       

       그저 둥근 얼음덩이로만 보이던 빙정이.

       이제는 다르게 보였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오만가지 감각에 집중했다.

       잠시, 그렇게 빙정을 이리저리 만진 다음.

       

       “음.”

       

       뚝.

       

       흐르는 식은땀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더워서 흘리는 땀일까? 

       그럴 리 없다. 

       

       이 공간이 얼마나 차가운 곳인데.

       

       이 땀은 단순히 빙정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 탓에 흘리는 땀이었다.

       

       보이지 않던 게 보이고.

       느껴지지 않던 게 느껴진다.

       

       궁주의 말대로,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많은 걸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알이라고 하더니.’

       

       이건 궁주의 말이 맞았다. 빙정은 알이다.

       그것도 더럽게 무서운 걸 품고 있는 알.

       

       ‘심장인 건 모르겠지만.’

       

       이 안에 어마어마한 게 있다는 것쯤은 알 것 같았다.

       심지어.

       

       그 존재가 부화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까지 말이다.

       

       이런 미친 물건을 지금껏 북해가 가지고 있다는 것도 어처구니없을 일이다.

       

       “…”

       

       빙정을 보다가, 슬쩍 몸에 힘을 줘볼까? 그리 고민했다.

       

       힘을 준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가. 

       

       갑작스러운 생각이라 한들, 몸은 이미 알고 있었다.

       

       눈을 뜬 직후.

       

       경지가 급변하며 육신과 기운이 달라졌다. 

       이는 말도 안 되는 변화가 맞으나.

       

       그보다 더 큰 변화가 있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게 없던 힘이 생겼음을 말이다.

       

       ‘정확히는.’

       

       잊고 있던 힘이지만. 이는 제쳐두고.

       

       간신히 깨닫고서야 암왕이 했던 말들을 알 수 있었다.

       

       용이 되면 얻게 된다는 힘.

       수련을 통해 차곡차곡 강해지는 무공과는 다른.

       

       태생적으로 가지게 된다는 능력.

       

       권능.

       

       그걸 어떻게 쓰는지. 

       이게 과연 힘을 지녔는지. 원리는 무엇인지.

       그런 설명은 애당초 필요 없다.

       

       몸뚱이가 이미 정답을 알고 있었다.

       

       오히려, 어떻게 지금껏 몰랐는지 놀라울 지경이다.

       그만큼 자연스럽게 몸에 익어 있었다. 

       

       애당초 지니고 있었다는 듯 말이다.

       

       ‘될까?’

       

       하여, 빙정에 이를 써볼까 순간 생각하지만.

       잠시 고민을 반복하고서.

       

       스륵.

       

       빙정에 대고 있던 손을 회수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순서가 틀렸어.”

       

       ‘이쪽’이 먼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빙정을 만지고 있던 손바닥을 확인했다.

       

       얼음덩이를 그리 오래 만지고 있었는데, 물기 하나 묻어있지 않았다.

       

       “궁주.”

       

       시선을 돌려 궁주를 보고 물었다.

       

       “이걸 심장이라 보던 이유 말입니다.”

       

       아까 하던 대화. 

       거슬리던 얘기에 다시금 말을 이어가 볼까 싶던 찰나.

       

       “아.”

       

       일순 뱉던 말을 멈추고 떠올렸다.

       

       “이것도 순서가 잘못됐네.”

       

       “…무슨?”

       

       “일단 갔다 와서 듣겠습니다. 그게 먼저겠네요.”

       

       “구 공자? 그게 갑자기 무슨 말-.”

       

       궁주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날 불러 세우려 하지만.

       나는 걸음을 돌려 출구 쪽을 향해 걸어갔다.

       

       문고리를 잡을 필요도 없었다.

       내가 다가가니, 아까처럼 문이 절로 움직였으니 말이다.

       

       “…지금 어딜 가는 거요?”

       

       그걸 보며 궁주가 물어오기에, 살짝 고개를 돌리곤 그에게 말했다.

       

       “별건 아니고. 한 가지 배운 게 좀 떠올라서 말입니다.”

       

       그래, 배운 것. 

       근래 들어 확실하게 배운 것이었다.

       

       -아시잖아요?

       

       -저희는 자신의 것을 절대 뺏기지 않아요.

       

       머릿속에 목소리가 감돈다. 

       어찌 지금 와서 이 말이 떠오르는 건가 싶지만.

       

       ‘다르지, 지금 와서 떠오르는 게 아니야.’

       

       애당초 떠올렸어야 하는 걸 잊고 있었음에 가깝다.

       

       그렇기에 이제 와서라도 생각하는 것이다.

       

       ‘맞는 말이야.’

       

       자신의 것을 절대 뺏기지 않는다.

       

       오만하면서 강력한 소유욕이 돋보이는 말이다.

       그리고, 정말 맞는 말이었다.

       

       ‘뺏기면 안 되지.’

       

       내 것으로 생각했다면, 빼앗기면 안 된다.

       그 말이 온몸에 감돌고 있다.

       

       이건 본래의 나였다면 하지 않았을 행동이다.

       망설이길 반복하며 계획과 명분을 보려 했을 터이나.

       

       지금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당장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뿐이다.

       

       빼앗겼다면.

       

       “다시 가져와야지요.”

       

       단순한 이치일 따름이었다.

       

       궁주는 내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살짝 인상을 찌푸리지만.

       

       나는 다시금 시선을 돌릴 뿐이었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설-.”

       

       궁주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나는 이미 들어온 문을 잡아 열고 있었다.

       

       끼이이익-!

       

       문을 열어 밖으로 나오니, 대기하고 있던 이와 마주친다.

       

       흑사자였다.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온 날 보며 흑사자가 일순 표정을 구긴다.

       그를 보며 말했다.

       

       “볼일은 다 보고 나왔습니다.”

       

       손을 대충 휘저으며 말하자 흑사자가 내게 말한다.

       

       “혹, 궁주님께 또 결례를 범한 건 아니겠지?”

       

       아까 마찰이 있었던 탓인가. 흑사자의 태도가 훨씬 날카롭게 느껴졌다.

       그걸 듣고 답했다.

       

       “딱히, 뭔가 한 것 같지는 않은데. 했던가?”

       

       모르겠다. 

       잘 기억이 안 나서 한 말이다만.

       

       빠드득.

       

       내가 놀린다고 생각한 것인지, 흑사자가 투기를 내뿜는다.

       

       “…계속 그런 태도를 보일 거라면, 정녕 피를 봐야 할게요.”

       

       살짝 역린을 건드렸는지, 아니면 참다 참다 터지려는 건진 모르겠지만.

       진짜 화가 났다는 듯 흑사자가 내 앞을 가로 막는다.

       

       그걸 보며 웃으며 말했다.

       

       “놀리려던 건 아니고. 진짜 몰라서요. 기분 나빴으면 죄송해요.”

       

       웃으며 사죄까지 한 다음, 슬쩍 옆으로 걸어가려는데.

       

       “또 그런 식으로 농락을-!”

       

       흑사자가 내 어깨를 붙잡으려 하기에.

       

       “손 닿으면.”

       

       웃음을 지우고 그에게 말했다.

       

       “죽는다?”

       

       흠칫-!

       

       뱉은 말에 흑사자가 흠칫하며 손을 멈춘다.

       

       내 눈이 굳어버린 흑사자를 쳐다봤다.

       흑사자의 눈이 흔들리는 게 보인다.

       

       대화가 더는 오가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시선을 마주하고 있을 즈음.

       

       슥.

       

       흑사자가 먼저 손을 회수해갔다.

       

       그리곤.

       

       “…무언가 변했군.”

       

       흑사자가 떨림이 섞인 목소리로 내게 말해 온다.

       변했다라?

       

       말을 들으며 고개를 까딱였다.

       단순히 경지를 뜻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나로선 아직 체감되질 않았다. 

       무언가를 버렸다고 한들.

       

       여전히 나는 나였다.

       

       하지만.

       

       “그럴지도.”

       

       아직은 모를 일이다.

       

       대답 해주며 슬쩍 웃었다.

       

       “다음에 봅시다. 지금은 내가 볼일이 있어서.”

       

       여전히 굳은 흑사자를 떠나 걸음에 힘을 주었다.

       여기서 원래라면 어떻게 했을까.

       

       일행이 있는 곳으로 향했을까?

       아마 그랬을지 모르겠다.

       

       하나, 지금은 그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적어도 지금의 내겐 그랬다.

       

       시선을 돌린다. 

       나는 이미 은신처 밖으로 나온 상태였다.

       

       처음부터 그랬지만, 이번에도 동굴 밖으로 나오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늘을 바라봤다.

       

       쏴아아-!

       

       여전히 바깥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런 눈을 보며 떠올린다.

       

       “음.”

       

       여전히 기분 나쁜 땅이다.

       

       밟고 있는 지면도. 느껴지는 공기도.

       

       내리는 눈조차도.

       

       모든 게 기분이 나빴다.

       

       처음엔 몰랐지만, 이제는 알 수 있다.

       

       이 땅이 그토록 기분 나쁜 이유는, 땅 위에 다른 용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그 이유는 바로.

       

       ‘다른 놈이 지배하는 땅이기에.’

       

       단순히 용이 땅 위에 있어서가 아니라.

       이 땅을 그놈이 지배하고 있는 탓에.

       

       그래서 기분이 더러운 것이다.

       처음부터 어렴풋이 느껴지던 감각이, 이제야 선명하게 느껴진다.

       

       ‘나는, 그래서 기분이 나빴구나.’

       

       남의 땅이라서.

       단순히 그 이유 하나만으로 이토록 신경이 거슬리는 것이다.

       

       이 얼마나 오만하고 욕심 많은 족속인가.

       

       아니면.

       

       ‘내가 유달리 욕심이 많은 걸 수도 있지.’

       

       떠올리며 웃음을 흘렸다.

       정녕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가?”

       

       권능이랍시고 생긴 걸 떠올리며 한 말이다.

       

       내가 유달리 욕심이 많고 오만해서.

       그래서 ‘이런’ 권능을 지닌 게 아닐까 싶었다.

       

       두둑.

       

       손을 풀었다.

       

       “뭐든 어때.”

       

       단순하게 생각하자. 망설이는 것보단 그게 나으리라.

       

       ‘지금은 일단.’

       

       뺏긴 걸 돌려받는다.

       그거 하나를 우선시하고자 했다.

       

       눈을 보던 시선을 돌려 정면 너머를 바라봤다.

       

       보이진 않으나.

       느껴지지 않던 게 느껴졌다.

       

       화륵.

       

       몸에 불꽃을 둘렀다.

       그리고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자.

       

       화아아아아아–!!!

       

       빛이 폭발하며.

       

       쏴아아아…투두두두두둑–!

       

       하늘에서 내리던 눈이 비로 뒤바뀌었다.

       

       

       

       

       

       ******************

       

       

       

       

       

       북해빙궁.

       

       빙궁의 혈족들이 머무는 공간이며, 북해의 중심이라 불리며 위세를 떨치던 성이었으나.

       

       지금의 모습은 비교적 뒤떨어진 형태다.

       

       반역의 여파로 건물 곳곳이 무너져 있었고. 

       난장판이 된 잔해들을 구태여 치우지 않은 탓에, 더욱 엉망으로 보였다.

       

       그런 성의 안쪽 구역.

       

       본궁으로 향하는 입구쪽에서 주변을 순찰하던 사내가 말을 꺼내들었다.

       

       “비외군께선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모르겠소.”

       

       이에 옆에 같이 있던 사내가 흠칫 놀라 말한다.

       

       “말조심하시게.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렇지 않소.”

       

       사내는 불만이 많은 표정으로 말을 이어간다.

       

       “듣기엔 궁주가 어디에 숨었는지도 잘 알고 있다 하던데. 구태여 이리 대기만 하고있는 이유를 모르겠소.”

       

       도망친 궁주와 그의 세력이 어디에 숨었는지는 진작 파악한 부분이다.

       

       심지어 궁을 이미 빼앗는 데 성공한 시점이기에.

       실상 마음만 먹으면 끝낼 수 있는 전쟁이었다.

       

       한데, 어찌 더 이상의 진행이 없는 걸까.

       그게 사내는 의문일 따름이다.

       

       “다 뜻이 있으시겠지. 우리야 따르면 그만 아닌가.”

       

       “이러다 실패라도 한다면 다 개죽음이니 하는 말 아니오.”

       

       “전쟁은 이미 승리한 것과 다름이 없어, 여기서 실패할 거라 보는가?”

       

       북해의 절대자로 군림하던 궁주가 패배해 도망쳤다.

       

       다섯의 대장군이 합세해도 꿈쩍도 안 하던 강자가 빙궁주였건만.

       그가 비외군의 검에 패배해 도망치던 모습을 모든 전사가 보았다.

       

       “하물며, 혈족을 포섭하기까지 했지. 이건 승리나 다름이 없어.”

       

       “…흐음….”

       

       말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의문일 뿐이다.

       

       “정녕 궁주가 주술을 이용해 사람들을 제물로 썼다고 생각하시오?”

       

       전쟁을 시작한 원인.

       궁주가 제 욕심을 채우고자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다는 얘기였다.

       

       사내의 말에 다른 이가 한숨을 내쉰다.

       

       “이미 증거도 다 발견한 얘기잖은가.”

       

       궁주의 방과 궁의 지하에서 흔적들을 발견했다.

       그걸 보며 어찌 믿지 않을 수 있을까.

       

       “궁주는 타락했네. 더는 우리가 알던 분이 아니란 말일세.”

       

       혈족은 지금까지 북해를 위해 희생하며 살아왔다.

       그들이 있기에 그나마 북해에서 인간들이 살아갈 수 있건만.

       

       이를 감당하지 못한 궁주는 타락해버린 것이다.

       

       “…이를 보고 충격을 받은 공녀께서 우리의 손을 들어주셔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아마 전쟁을 일으키기 힘들었을 게야.”

       

       “…”

       

       사내는 영 떨떠름한 표정만 지을 뿐이다. 며칠 전. 비외군의 지지자가 궁에 잡혀있던 혈족중 한 명.

       

       일공자도 이공자도 아닌.

       일공녀임이 밝혀지며 시끄러운 잡음이 지나간 시점이다.

       

       

       정녕 혈족이 비외군을 지지하고 있음이 확정되었지만,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건 매한가지였다.

       

       ‘과연.’

       

       과연.

       정말 그럴까. 

       

       이미 증거까지 다 나온 상황에, 반역까지 성공했으니.

       더 물고 늘어질 얘긴 아닌 것 같다만.

       

       그저 믿어지지 않을 따름이었다.

       

       사내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눈이 계속해서 내리는 하늘을 말이다.

       

       끝나지 않는 혹한. 춥고 저주받은 땅이라 불리면서도.

       

       끝내 혹한에 휩쓸리지 않도록 해준 건 혈족, 그중에서도 궁주라 들었다.

       

       어떤 이유와 연관으로 그들이 혹한에서 우릴 지켜주고 있는지는 말단인 사내로선 자세히 모를일이지만.

       

       영생을 위해 궁주가 그러했다는 말은, 믿기가 힘들었다.

       

       ‘본인의 영생을 위해서가 아니라, 차라리.’

       

       이 혹한을 지워내기 위해서.

       그런 이유로 했다고 하면 오히려 믿었을지 모를일이다.

       

       그리 생각하며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을 때.

       

       뚝.

       

       “…어?”

       

       가만히 하늘을 보던 사내가 외마디를 뱉는다.

       

        “음? 왜 그러나?”

       

       “…이거.”

       

       사내가 손을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게 하곤 뻗는다.

       

       “이거 눈….”

       

       그걸 보며 다른 이가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눈이야 항상 내리던 게 아닌가.

       따라서 손을 뻗는다. 그때.

       

       “…눈이 아니라, 비가 아니오?”

       

       “뭐라?”

       

       사내의 말에 그 또한 급히 하늘을 쳐다봤다.

       

       그 순간.

       

       뚝-!

       

       사내의 볼로 물방울이 떨어졌다.

       

       “이, 무슨…?”

       

       차가운 감촉에 당황을 머금은 순간.

       

       뚝-! 뚜둑-!

       내리는 눈 틈에서 점차 하나씩 내리기 시작한 방울은.

       

       투두두둑-!

       

       금세 범위를 키워 빠르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다.

       이건 분명 비였다.

       

       사시사철 혹한 탓에 눈만 내리는 북해에 비가 내린다.

       

       이게 뜻하는 바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

       

       놀란 표정으로 소리치려던 찰나.

       

       화륵-!

       

       그의 옆에서 짧게 불꽃이 튀었다.

       

       이상한 감각에 사내가 시선을 옮기니, 불꽃이 나타난 곳에 누군가 서 있었다.

       

       묵색 도포가 바람에 펄럭이고.

       

       쏴아아아….

       

       내리는 빗줄기는 어째선지 인물만을 빗겨나가고 있다.

       

       신비한 광경이다.

       그래서였다. 

       

       경계를 취하기보다 홀린 듯 그를 지켜본 이유가 말이다.

       

       두 사람이 멍하니 그를 쳐다보고 있으니, 나타난 이가 고개를 들고 그들을 쳐다본다.

       

       청년이다. 

       나이는 대략 약관을 조금 넘었나 싶을 정도.

       

       하지만, 절대 평범한 이는 아니다.

       

       인간이라 보기 힘든 찢어진 청색 동공과.

       짓고 있는 무덤덤한 표정에,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걸 느꼈다.

       

       그런 사내를 향해.

       

       “마침 만났으니 하는 말인데.”

       

       인물이 표정을 지우고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여기 대장한테 말 좀 전해줄래요?”

       

       청년이 짓고 있는 미소에 몸이 떨린다.

       태어나 저렇게 무서운 미소는 처음이었다.

       

       “뺏긴 걸 가지러 왔다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_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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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FZ,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Under the Heavens, The Zenith's Childhood Friend, 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Artist: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struggling meaninglessly, he acknowledged hi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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