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625

    <625 – 오크노디의 경호부대(6)>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는 본국에서 전송된 서신을 보고 깊은 시름에 빠졌다.

     

    “제국이 골렘의 금기지정해제를 선언했다고 하네. 나의 오랜 벗이자 충신 데이포보스여. 본국에서 골렘을 보유할 수 있도록 우리가 무엇을 해야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골렘의 주재료로 쓰이는 레어메탈을 포인트를 주고 매입하거나 생산학부 기술자를 초빙하는 방안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것으로는 양이 부족하네. 본국의 빈약한 재정과 지원으로는 만족할만한 수준의 전력을 갖추지 못할 것이야. 주변국과의 군비경쟁을 따라갈 수 없는 것은 명약관화가 아닌가.”

     

    왕자의 심중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눈치챈 데이포보스가 그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다.

     

    “왕자님께서는 나이트급 골렘 여러 기, 혹은 룩급 골렘 한 기에 전념하려는 계획이시군요.”

    “그렇다. 허나 나이트급 골렘은 재료부터 전략물자이고 골렘 오너는 더욱 드문 데다가 제작자는 돈으로 구할 길이 없으니 어찌 방법이 없겠는가?”

    “어려운 요청이군요. 실력자는 자신을 우대하는 조직이나 국가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울타리에 가둬지지 않는 실력자는 힘으로 어찌할 수 없으니 더욱 까다롭지요.”

    “허어.”

    “돈에 연연하지 않고 실력도 뛰어나며 자유로운 인물을 찾는다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그렇게 좋은 인물이 있단 말인가? 어서 말하지 않고 무얼 뜸을 들였는가!”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데이포보스가 그닥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말했다.

     

    “오크노디입니다.”

    “…자네가 말하는 오크노디가 그 오크노디가 맞나?”

    “오크노디는 재단의 귀녀입니다. 돈과 포인트에 연연하지 않을 부를 쌓았지요. 성녀연합회로 선신연합에게 뜯어먹은 포인트가 억 단위라는 소문도 돌고 있습니다.”

    “미쳤군. 본국의 일 년 예산을 후원으로 받아?”

    “실력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최근에는 3학년의 최상위 나이트급 골렘오너 미이니의 골렘을 가지고 놀며 격파, 골렘을 맨손으로 또각또각 부러뜨렸다는 목격담도 돌고 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어찌하지 못할 전략병기를 만든 것이 골렘인데 그걸 맨손으로 어째?”

    “재단 소속이지만 반 재단 활동도 서슴지 않는 종잡을 수 없는 구석도 있습니다. 재단의 이사장도 컨트롤하지 못하고 아카데미도 제멋대로 드나드는 그녀야말로 현시대에서 드래곤 교장이나 제국의 선황 다음가는 자유로운 인물임이 틀림없습니다.”

    “그 자유로운 영혼이 무슨 바람이 들어서 우리를 눈여겨보고 골렘제조기술을 전수한단 말인가!”

     

    데이포보스는 엄한 얼굴로 말했다.

     

    “그것은 왕자님께서 숙고하셔야 할 길입니다. 왕자님의 충신으로 다년간 곁을 지키고 있는 저이지만, 결정적인 국면에서 조직을 미래로 이끌 비전을 발견하고 인도하는 역할은 트로이 왕국의 차기군주인 헥토르 님이 가야 할 길이라고 감히 충언을 드립니다.”

    “그리 자신을 낮추지 마라. 답답한 마음에 하소연한 것이니. 네 말이 옳다. 헥토르가신단의 세를 넓히는 정도로는 이 복잡한 세계정세를 따라가기도 벅차지. 이제는 그 너머를 꾀할 때가 되었다.”

     

    헥토르는 어렵사리 용기를 내었다.

     

    “오크노디와의 회담일정을 잡아라. 직접 만나서 결판을 내보겠다.”

     

    행정학부 소속의 헥토르와 데이포보스는 오크노디와의 만남을 주선해줄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다.

    헥토르야 데이포보스에게 짬을 때리면 그만이지만, 데이포보스는 미덥잖은 가신단 단원들에게 짬을 때렸다가 트로이 왕국의 미래와 존망이 달린 중대사를 그르칠 수 없었다.

    헥토르가신단 내의 모든 중요한 일은 반드시 그의 손을 직접 거쳐야만 한다.

     

    “부탁드립니다.”

     

    그리하여 그가 찾아간 인물은 부탁을 받은 당사자도 뜬금없을 정도로 이색적인 인물이었다.

     

    “저한테 그러셔도 소용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오크노디와 접점이 없어요.”

     

    제국 3황녀 야요이.

    오크노디와 놀아주는 조직, 암흑상회, 지고쿠해적단, 서귀연, 카멜라사단.

    친 오크노디 성향의 쟁쟁한 981기 조직들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외딴섬이 바로 그녀였다.

     

    “야요이 황녀 전하는 매스각키 여제의 여동생이자 제국황녀파의 후계자이십니다. 매스각키 여제에게 부탁을 올리거든 자리를 마련해주실 수 있습니다.”

     

    얼굴만 마주치면 으르렁거리고 허접허접 매도하기 바쁜 와중에 언제 그리도 친해졌는지, 이번 성녀연합회 출범식에서는 베프타령을 하던 매스각키.

    그녀의 친 오크노디 성향에 대한 소문은 은근히 교내에 떠돌아다녔고, 야요이도 언니에 대한 소식은 관심을 기울였기에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순순히 데이포보스를 위해 언니에게 청탁을 할 이유는 없었다.

     

    “저는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후로 언니에게 한 번도 손을 벌려본 적이 없어요. 그런 제가 친분관계도 없는 소국의 왕자를 위해서 폐를 끼칠 수는 없어요.”

    “그렇다면 더욱 저희 트로이 왕국과 헥토르 왕자님의 청을 받아주셔야 합니다. 저희와의 연계는 매스각키 여제님께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무얼 믿고 그리 장담하시죠?”

    “귀족파의 불순한 움직임. 여제를 무시하는 태도. 독자노선을 걷는 삼대공신가문을 위시로 한 제국귀족들의 고삐를 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매스각키 여제께서 아카데미를 떠난 지금, 귀족파를 제어할 분은 야요이 황녀전하, 당신뿐입니다.”

     

    언니를 위해 도움이 된다.

    어렸을 때부터 무능한 허접동생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던 언니.

    끝내 국정이라는 커다란 짐을 그 작은 몸으로 짊어진 언니에게 미약하나마 도움이 된다.

    야요이에게는 오랜 바람이었다.

    이것이 데이포보스의 간교한 꼬드김임을 알면서도 넘어갈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야요이는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헥토르 왕자는 좋은 가신을 두었군요.”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자리를 만들어서 무엇을 청할 작정이시죠?”

    “나이트급 골렘양산기술. 혹은 룩급 골렘제조기술의 기술제휴 및 제작재료의 수급을 청할 생각입니다.”

    “터무니없는 요청이네요. 당신들이 오크노디에게 무엇을 지불할 수 있죠? 무례한 부탁은 중계하는 것만으로도 언니와 제게 폐가 될 수 있어요. 저를 이해시키지 않으면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어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헥토르 님께서 직접 하실 겁니다. 부디 왕자님과 한 번이라도 만나주십시오.”

     

    야요이는 생각했다.

    소국의 왕자 헥토르.

    동아줄이라도 쥘 작정으로 급히 손을 뻗었을 뿐.

    그에게 명확한 비전이 있을 리가 없다고.

    솔직히 말해서 그녀는 헥토르라는 남자를 얕봤다.

     

    쟁쟁한 981기 2년생들.

    이미 980기 3년생들은 물론이요, 상급반 라인업은 979기 4년생, 978기 5년생들까지 따라잡거나 능가하고 있다.

    입학 5년차 학생들은 아무리 실력 부족이나 포인트 부족으로 휴학했다고 한들, 이 마나와 지식이 넘쳐나는 아카데미에서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대단한 라인업에 헥토르의 이름은 없었다.

    평범한 왕자.

    소국과 함께 끝이 예정된 자.

    한계가 명백한 인물.

    끈 없는 평민들을 거둔 약소그룹.

    그를 꾸미는 수식어는 그 정도에 불과했다.

     

    적어도 겉으로 드러난 바에 한해서는 말이다.

    헥토르와의 대담을 지닌 이후.

    야요이는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은 헥토르를 얕봤던 걸지도 모른다고.

    독대의 자리.

    그는 말했다.

     

    “저는 헥토르 왕국에 오크노디의 수집품을 보관하는 거대한 수집센터를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예?”

    “오크노디뿐만이 아닙니다. 세계각국의 수집품 유치시설을 건설하고 보안에 재단 소속 인재들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작정입니다.”

    “당신… 후환이 두렵지도 않나요? 테러조직을 자국 내에 적극적으로 들여오겠다니. 국제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아요.”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군비경쟁을 따라가지 못해 주변국의 침략으로 무너질 나라. 선한 힘이든 악한 힘이든 가려가며 받을 때가 아닙니다.”

     

    기껏해야 본인이 재단의 장학생이 될 각오만을 보이리라 예상했던 야요이의 예측범위를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훌쩍 뛰어넘었다.

    트로이 왕국 전체가 재단의 랜드마크로 전락하고도 남을, 말 그대로 국가의 존망을 건 투자를 작정했다.

     

    “오크노디가 그 제안을 받으리라고 생각하나요? 재단은 트로이 왕국이 아니어도 힘이 있고, 세계각국에 영향력을 투사하고 있어요.”

    “그건 재단의 전력입니다. 오크노디의 전력은 아니죠. 저는 재단의 후계자인 오크노디에게 가장 먼저 손을 뻗을 나라가 되겠다고 결정한 겁니다.”

    “과격하군요… 그래도 고려해볼 가치는 있어요. 트로이 왕국의 현 국왕도 후계자의 패기 넘치는 도전을 지지한다면 저도 손을 써드리죠.”

     

    아무리 그래도 한 나라의 국왕이라는 자가 미치지 않고서야 테러조직의 후계자에게 왕국의 후계자가 굴욕적인 지원요청을 하는 꼬락서니를 두고 보지는 않겠지.

    상식과 지성이 있는 인물이라면 당연히 와이히엠하이 재단을 끌어들이는 일은 거절할 수밖에 없다.

    즉, 이것은 완곡한 거절표현.

    헥토르의 체면을 고려한 정치적 행동일 뿐이다.

    그녀의 인식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야요이는 지극히 상식인이었다.

     

    다만, 헥토르의 부친이자 트로이 왕국의 현 국왕 되는 자 또한 상식적이지는 않았을 뿐이다.

     

    [진짜 미친 생각이군. 당장 하자.]

     

    “수락하셨습니다. 이제 여제에게 청을 올려주시길 바랍니다.”

    “…”

     

    언니는, 언니는 다를 거다.

    친족끼리 칼을 겨누는 미친 황위계승전쟁에서 자신을 지켜주었던 언니는 지성과 상식을 겸비했으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짓거리에 동참하진 않겠지.

     

    -오크노디 랜드마크를 건설해? 풉풉. 머야 그 재밌게 들리는 이야기는. 당장 전해볼래♡

    “……”

     

    그렇게 돌고 돌아 야요이는 이 전하기 힘든 소식을 쭈뼛쭈뼛 손에 땀을 쥐어가며 오크노디에게 전달하는 신세가 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랜드마크 건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