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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26

        

         

       빌딩.

       그리 크지 않은 빌딩.

       최상층에 박진성이 머무는, 말하자면 박진성의 ‘집’과 같은 곳.

         

       하지만 집이라고 하기에는 분위기가 너무나 음산한 곳이기도 했다.

       한밤중의 어둠을 끌어안은 빌딩은 인터넷에 떠도는 4대 흉가니 7대 흉가니 하는 그런 곳들과 비교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을 음산하고 소름 끼치는 분위기를 풍긴다.

       가뜩이나 밤중이라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곳인데, 무슨 에어컨이라도 틀어놓은 것처럼 서늘한 공기를 휘감고 있는 빌딩이 더해지니 정말 귀신들만이 사는 세계로 발을 옮기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언제부터 이 빌딩은 이런 분위기였을까?

       박진성이 머물기 전부터?

       박진성이 머문 후부터?

         

       ‘으음~ 오래비도 참 악취미란 말이지…. 아니면 귀찮아서 그러는 건가?’

         

       이아린은 이 빌딩이 박진성이 머문 후부터 이렇게 되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확신의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의 아버지인 이양훈이 박진성에게 이런 ‘폐급 빌딩’을 줄 리가 없으니까.

         

       그녀가 아는 아버지는 꼰대 같기는 하지만, 가족끼리 부대끼며 살아왔던 아들 같은 사람에게 이딴 빌딩을 줄 사람이 아니었다. 무조건 가치가 높은, 그래도 최소한 실패해서 쓰러졌을 때 보험이 될 수 있을법한 가치 높은 것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그러니 논리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이런 귀신 빌딩이니 뭐니 하는 별명이 붙을 만큼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으로 만든 것은 박진성의 짓임이 틀림없었다.

         

       전과가 있기도 했고 말이다.

         

       ‘오래비가 아지트 같은 것을 만든답시고 이상한 짓을 한 적이 있긴 했지….’

         

       언제였던가?

       박진성이 고등학생 나이쯤 되었을 때였나?

         

       그때 박진성이 정원 한구석에 주물을 보관하는 자그마한 공간을 만들어놓은 적이 있었다.

       인터넷에서 급조 건축물을 만드는 법을 보고 만들었다고 하는데, 통나무와 흙만으로 만들었음에도 꽤 그럴싸했다.

       다만 건축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 한 것이라 창고나 거처보다는 광산이나 벙커를 연상케 만드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거처를 만든 박진성은 보안장치가 필요하다며 주술을 사용했었는데….

         

       ‘으으. 벌레.’

         

       허가받지 않은 사람이 들어가면 거미 떼의 습격을 받도록 만들었다.

         

       그때 저택에서 일하는 분들이 얼마나 기겁했는지.

       정원사 아저씨는 그 이후 거미 떼에 학을 떼게 되었다고 하던가?

       그래서 호주로 이민할 계획도 취소했다고 들었다.

       그쪽 나라가 거미들이 좀 많다는 이유 하나로 말이다.

         

       ‘아마 여기도 그런 게 있겠지?’

         

       이아린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곳에도 분명히 비슷한 것이 있다고.

       무례한 사람들이나 범죄자들에게 트라우마가 생길법한 무언가를 설치해두었을 것이라고.

       그래서 이 빌딩의 분위기가 이렇게 음산한 것이라고 말이다.

         

       ‘음. 궁금한데. 한 번 건드려볼까?’

         

       순간 이아린의 머릿속에 좋지 않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내 이아린은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럼 오래비가 화낼 게 뻔하잖아.’

         

       뭐…. 궁금하기는 하다.

       하지만 자신은 호기심만 생기면 스토킹해서라도 궁금증을 해결할 것 같은 자신의 혈연메이트 이세린과 같은 음습한 사람이 아니다.

       그냥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면 되고, 물어봐서 대답 못 한다고 하면 그냥 그러려니 하면 된다.

         

       그게 바로 음습함 그 자체인 이세린과는 다른 길을 걷는 자로서의 자세…!

         

       ‘그냥 최상층에 가서 뒹굴뒹굴하고 있어야지.’

         

       이아린은 그렇게 생각하며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팔랑.

         

       “읍!”

         

       그녀가 빌딩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종이 한 장이 팔랑팔랑 움직이며 그녀의 얼굴에 착 달라붙었다.

         

       마치 문 위에다가 종이를 끼워놓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이아린은 재빠르게 자기 얼굴을 덮은 종이를 떼서 확인해보았다.

         

       『 외부인 출입 금지.

       무단출입, 훼손을 금합니다.

       이를 어길시 민형사상 고발 및 손해배상 청구가 있을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

       

       종이에 적혀 있는 것은 경고.

       폐가니, 흉가니 하는 소문 믿고 이상한 짓 했다가는 법의 철퇴를 맞을 수 있다는 친절한 내용이 적혀 있는 종이였다.

         

       어지간한 괴담보다도 무시무시한 이야기였다.

         

       ‘으음. 이런 것까지 해놓을 정도면…. 오라비 요새 이상한 사람들 때문에 고통받고 있나 본데? 우리 집 꼰대한테 말해서 좀 도와달라고 해야 하나?’

         

       이아린은 거기까지 생각했다가 무언가를 깨닫고는 발걸음을 딱 멈췄다.

         

       ‘잠깐만. 그러면 혹시 내가 오라비 방에서 좀 놀면 오해받을 수도 있겠네? 건물에 침입하는 이상한 놈들이 최상층까지 들어왔다고?’

         

       그녀의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한다.

         

       ‘지금 이런 경고문까지 적은 걸 보면 침입자들에게 이를 좀 갈고 있는 것 같은데…. 여기에 내가 얽히게 되면 좋은 꼴은 못 보겠지? 잘못하면 내가 한 짓도 오해받을 수도 있고, 내가 한 짓이랑 침입자가 한 짓이 섞여서 그놈들이 참교육을 받지 않을 수도 있을 테고?’

         

       이 무례한 놈들과 아주 잠시라고는 해도 한 카테고리로 묶인다는 것은 좋지 않았다.

       게다가 음습한 이세린이 의기양양해서는 자신에게 한소리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우욱.’

         

       떠올리고 말았다.

       계약자의 힘을 사용해서 ASMR이라도 하는 것처럼 귓가에 끊임없이 도발의 말을 속삭이는 이세린을.

         

       아마 기분이 매우 더러울 것이다.

       정말로.

         

       ‘아~ 돌아가야겠네~’

         

       그래.

       결론이 났다.

         

       돌아간다.

         

       여기까지 걸어온 게 조금 아깝기는 한데….

       그거야 뭐 평범한 밤 산책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고.

         

       어차피 지금 이 빌딩에 오라비도 없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뭐 딱히 재미있는 일도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돌아가야겠지.

         

       ‘오라비는 언제 돌아오려나~’

         

         

         

        * * *

         

         

         

       이아린이 잠깐 발을 들였다가 돌아간 빌딩은 다시 적막에 휩싸였다.

       가로등의 불빛을 입 안에 머금은 어둠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고, 별빛을 감싸며 그 빛을 꺼뜨리려는 듯 꿈틀거리며 허공을 검게 칠한다. 그리고 자신의 꿈틀거림을 착각이라 만들기 위함인지 벌레들을 불러 자기 몸 안을 헤엄치게 했다.

       설령 꿈틀거리는 것을 발견한다고 할지라도 벌레를 보고 착각한 것으로 생각하도록 말이다.

         

       그렇게 어둠은 가만히 그 자리에서 기다린다.

       꿈틀거리며, 숨을 쉬면서.

       그렇게 얌전히 숨을 죽인 채 희생양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여기가 그 귀신 빌딩 맞죠?”

         

       “이야 분위기 죽이네.”

         

       “자자. 모두 여기 주목해주세요. 여기 오기 전에 흉가 탐험 시 주의사항에 대해서 다 말씀드렸죠? 다시 한번 주의사항에 대해서 숙지하고 가도록 합시다!”

         

       그리고 언제나 그러하였듯 희생양이 발걸음을 들였다.

         

       악어가 나무토막으로 위장한 채 둥둥 떠다니는 늪지대에 발을 들이는 것처럼.

       꽃으로 위장한 식충식물의 위에 날개를 접으며 발을 디디는 것처럼.

         

       지금 이곳에 그들이 발을 디뎠다.

       무례함을 품고.

       이 공간의 주인에 대한 존중 따위는 결여된 태도로.

       그렇게 예의 없는 자들이 발을 디뎠다.

         

       “자, 다시 주의사항을 말씀드릴게요. 일단 첫 번째, 흉가 체험을 할 때는 안에 있는 영가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욕설을 내뱉는다거나, 영가를 도발한다거나, 영가를 자극할만한 행동을 해서는 안 돼요. 아시겠죠?”

         

       “예~”

         

       “그리고 두 번째. 안에 있는 물건은 건드리지 않도록 하는 게 원칙이에요. 영가는 자신이 사용하는 물건을 훼손하는 사람을 정말로 싫어하거든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안의 물건을 들고나와서도 안 됩니다. 이게 영가 관련돼서도 위험한 짓이지만…. 법적으로도 위험해요. 이런 흉가들 대부분은 주인이 있고, 안의 물건 역시 주인이 있어요. 고소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못 도와드려요. 아시겠죠?”

         

       “예~”

         

       “그리고 세 번째. 위험한 느낌이 들면 바로 흉가 밖으로 나가야 해요. 갑자기 어지럽다거나, 기억이 끊긴다거나, 내가 가려고 하지도 않았던 곳에 내가 있다거나 하는 그런 거. 아시죠? 이런 거 귀신에게 홀리기 직전의 전조증상이에요. 잘못하면 빙의가 될 수도 있고, 그러면 영능력자나 찾아가서 비싼 돈 주고 치료해야 합니다. 잘못하면 크게 다칠 수도 있고요. 아시겠죠?”

         

       “예~”

         

       “그리고 네 번째입니다. 이거 저번에 흉가 체험에서 있었던 사건 때문에 새로 생긴 건데요…. 여기 커플분들 있으면 제발 애정행각을 좀 자제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흔들다리 효과 때문에 두근거리는 것도 알겠고, 어두운 곳에서 단둘이 있으니 뭐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이해하기는 합니다만…. 애정행각 하면서 나오는 신음이 귀신 소리인 줄 알았다가 소동이 일어났었거든요? 그때 서로 얼마나 민망했는지 몰라요. 심지어 어떤 분은 귀신 보겠다고 소리 들리는 곳으로 뛰어갔다가 그…좀 수위 높은 애정행각 장면을 그대로 보기까지 했거든요? 그러니 여러분은 제발 자제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예~”

         

       “그리고 마지막. 정해진 시간에 다시 이곳으로 모여야 합니다. 아시죠?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고, 인원 관리도 해야 하고…. 그리고 단체로 모여서 서로에게 소금도 좀 뿌려주고 해야 하니까요. 그러니까 아직 못 본 게 많다 싶어도 정해진 시간이 되면 꼭 와주세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는데, 지각하지 말고 꼭 오셔야 합니다.”

         

       “예~”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흉가 체험이니 귀신 빌딩이니 하는 것.

         

       이들의 언행에서는 존중이 보이지 아니한다.

       예의의 터럭조차도 보이지 아니하고, 흙발로 남의 집을 짓밟을 생각만을 품고 있나니.

         

       “자, 그럼 들어갑시다!”

         

       “예~”

         

       게다가 단순히 무모한 자들이 아니니.

       그 사이에 좋지 않은 목적을 지닌 존재가 있어 악의가 줄줄이 흘러나오도다.

         

       그리하여 악의를 먹고 사는 것들이 반색하며 말하기를.

         

       [ 맞지? ]

         

       [ 맞네? ]

         

       [ 거기서 왔나 봐! ]

         

       …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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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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