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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26

   ‘제 말이 맞죠? 괜찮을 거라고 했잖아요.’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며 어깨를 폈지만 할아버지의 반응은 떨떠름했다.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가능한 일이죠. 현실에서 일어났잖아요.’

   <아니 네가 아무리 운이 좋아도 이건.>

   

   방금 전 있었던 일은 신이 이기라고 했다는 말 이외의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게임을 시작할 때부터 끝까지 최고의 패만 나오다니, 누가 본다면 손모가지 날아가고 싶냐고 물어봤을걸?

   

   실제로도 쿠르텐 공작은 내가 사기를 쳤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고, 지금도 바라는 걸 다 들어줄테니 어떤 기술을 쓴 건지 알려달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걸.

   

   근데 놀랍게도 그런 건 없었어! 난 도박 기술 같은 건 아무것도 모르는걸! 카드를 제대로 섞는 방법도 모르는데 도박 기술을 어떻게 알겠냐고!

   

   “단순한 운이었다고? 어떻게 한 인간의 운이 그리 좋을 수가.”

   “고용주님은 사실만을 말하고 계십니다.”

   

   내 설명에 더해 카리아까지 단언을 했지만 여전히 공작의 눈초리는 애처로웠다. 자신을 막다른 길까지 몰아넣은 게 무엇인지 알고 싶은 거겠지.

   

   그게 운이라고! 내 운!

   

   그리고 있잖아! 오히려 의심하려면 딜러를 의심해야지! 주는 패마다 21이 나오는 원흉은 그 놈이잖아!

   

   “고용주님. 저 놈은 사기 못 쳐. 공정을 맹세했는데 그걸 어겨봐. 영혼이 거두어질걸?”

   “그러니 무언가 가능한 건 알른 영애 그대 뿐이다.”

   “설탕공작님. 눈도 침침하실텐데 왜 자꾸 눈으로 보는 것만 생각해요? 위에 하나 더 있잖아요?”

   “…주신에 대해 말하는 건가?”

   

   그래! 이 내기의 모두가 무고하다면 조작범은 단 한 사람! 개허접주신뿐이야!

   

   “어쩌겠어요. 허접주신께서 제가 공작같은 노친네한테 지는 걸 두고 볼 수가 없었나 보죠.”

   

   저 놈이 제멋대로 편애하는 데 나보고 어쩌라고!

   

   꼬우면 공작 당신도 귀여운 메스가키로 태어나시든가!

   

   당신이 로리메스바바였다면 허접주신도 침을 질질 흘리면서 말을 걸었을 걸!?

   

   저 놈은 페도변태새끼니까!

   

   “주신께서.”

   

   이런 내 생각을 모르는 공작은 주신이란 단어를 듣고 눈을 깜빡이다가 헛웃음을 흘렸다.

   

   “후우. 알겠다. 주신께서 이를 바라셨다면 나도 할 말이 없지.”

   

   응? 정말 그걸로 납득하는 거야? 난 당연히 더 따지고 들거라 생각했는데?

   

   혹시 공작 너도 아르테아 백작마냥 신성이라면 어쩔 줄 모르는 변태인 건 아니지?

   

   그런 거면 미리 말해줘. 빨리 도망치게.

   

   “보물고의 열쇠를 주겠다. 바라시는 걸 가져가라.”

   “뭔가 착각하시는 듯 한데 전 이 땀내나는 가문의 보물에 조금도 관심이 없답니다. 그딴 걸 가져서 어디다 쓰겠어요?”

   “걱정마라. 협력하는 것과 별개로 내어주는 보상이니.”

   “제 말 못 들으셨어요? 그딴 잡동사니 필요 없다니까요?”

   

   쿠르텐 공작의 보물고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안다. 내가 거길 털어먹은 게 몇 번인데 모를 리가 있나.

   

   생명의 보석이라거나, 마검이라던가, 준종결급 갑옷이라던가, 그 안에 귀한 게 많이 들어있긴 하다만 지금의 내게는 전혀 필요가 없다.

   

   주변 친구들의 장비에 대해 생각해봐도 마찬가지다.

   

   솔직하게 말해서 무얼 받건 인벤토리 공간이나 차지하는 짐덩어리다. 전혀 기쁘지 않다.

   

   “그럼.”

   “망상병 걸린 왕비에 대해서나 말씀해 주세요. 듣자하니 무척이나 가까운 사이였다던데.”

   

   대신 내가 공작에게 요구한 건 1왕비에 대한 정보였다.

   

   정황상 내가 지닌 1왕비에 대한 지식은 이 세계와 어긋나있어.

   

   이 어긋남을 그대로 내버려뒀다간 훗날 1왕비를 상대할 때 변수를 낳을 수 있다.

   

   그러니 다잡아야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대처할 수 있도록.

   

   눈을 감은 채 침묵을 지키던 공작은 이내 한숨과 함께 눈을 떴다.

   

   “폐하와 약조한 내용이었다만, 이제는 그 폐하가 없으니 상관없겠지.”

   “공작! 그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까?!”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던 르네가 달려들 듯 소리치자 공작이 느릿하게 고갤 끄덕였다.

   

   “예. 이전에 1왕비께서 찾아와 직접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헌데 당신은, 아니! 그대는 어찌 폐하의 죽음을 묵인했는가!”

   “그것이 폐하의 바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뭐?”

   “모두 다 말씀을 해드릴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야기가 끝날 즈음이면 다 알게 되실 겁니다.”

   “자네의 말을 어찌 믿지?”

   “당연히 절 믿으시면 안 됩니다. 그러니 카리아의 능력을 믿으시지요.”

   

   공작의 말에 카리아가 끼어 들었다.

   

   “죄송합니다만 쿠르텐 공작님. 전 어디까지나 타인의 생각을 읽어낼 뿐입니다. 당사자의 정신에 문제가 있을 경우 이 능력은 무의미하죠.”

   “괜찮다. 이 자의 정신은 멀쩡하다. 내 보증하지.”

   

   카리아의 의문에 대답해 준 건 베네딕의 어깨 위에서 공작을 노려보던 얼빠여우였다.

   

   “확신할 수 있습니까?”

   “안개의 여우라 불리는 몸이다. 그런 내가 정신에 낀 안개를 구분 못할 성 싶으냐?”

   “만약이란 것도 있습니다.”

   “실수하는 순간 루시의 증오를 사게 될 텐데 내가 그를 감수하리라 생각하나? 확신이 있으니 말하는 거다.”

   “…그것도 그렇군요.”

   

   품위라고는 조금도 없는 말에 납득한 카리아는 다시금 쿠르텐 공작과 눈을 맞췄다.

   

   “그럼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부디 그대가 만족했으면 좋겠군.”

   

   가볍게 웃은 공작은 이 자리의 모두를 둘러본 후 조심스레 목소리를 냈다.

   

   “꽤 오래 된 이야기입니다. 승하하신 폐하께서 왕이 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하니까요.”

   

   *

   

   쿠르텐 공작이 작위를 얻고서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공작의 지위가 실로 무겁다는 걸 온 몸으로 체감하던 쿠르텐의 유일한 안식처는 자신의 어린 친우였다.

   

   아카데미가 정치의 축소판이라 투덜거리면서도 겨우 2개월만에 아카데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영민한 왕자에게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세이지. 자네 마도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지?”

   “어지간한 전문가보다 낫다고 자부합니다.”

   “내 왕실 지하에서 아주 재밌는 걸 찾아냈는데 한 번 봐주지 않겠나?”

   

   그렇지 않고서야 출입이 금지된 곳을 뒤져 찾아낸 물건을 공작에게 보여주려 하지 않았을 테니까.

   

   왕자의 초대를 받은 공작이 보게 된 것은 사지가 분해된 사람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한없이 사람과 가까운 인형이었지.

   

   “본래는 나 혼자 복원을 해보려했다만 할 수가 없더군.”

   “장치 하나하나에 정밀한 마법이 새겨져 있군요.”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마법사 에르기누스님의 것일세.”

   “정말입니까?”

   “분명해. 왕실의 서고에서 보았던 것과 일치하거든.”

   

   신체는 유약하나 정신만큼은 비상하던 왕자의 말이었기에 공작은 이를 믿었다.

   

   “잠시 살펴볼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인형의 안에 새겨진 마법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것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익숙한 것이기도 했다.

   

   현대의 마법에서 골렘을 제조할 때 사용되는 것과 유사했으니까. 구체적으로 비교하자면 인형에 새겨진 마법이 정밀하고 세세했다.

   

   “희망이 보이나?”

   “파트란의 꼬맹이를 데려오는 게 편할 듯 합니다만.”

   “그. 파트란의 공자는 좀 거북해서 말야.”

   “생긴 것만 그렇지 괜찮은 녀석입니다.”

   “자네가 도와도 어려울 것 같나?”

   “일단 해보도록 하죠.”

   “하하! 고맙네! 역시 내겐 자네 뿐일세!”

   

   두 사람은 서로 여유가 생길 때마다 모여 인형을 복원해나갔다. 특히 열정적이었던 건 왕자였다.

   

   인형 속에서 도대체 무얼 발견한 것인지 몰라도 그는 자신의 일상마저 내던져가며 인형의 복원에 몰두했다.

   

   보다 못한 공작이 만류해도 마찬가지였다.

   

   인형이 완성되지 않는 한 왕자를 말릴 수 없으리라 확신한 공작은 왕자를 위해서라도 더더욱 최선을 다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또 다른 시험을 해보기 위해 공작이 비밀장소를 찾았을 때 왕자는 기미를 잔뜩 늘어트린 채로 환히 웃음을 지었다.

   

   “세이지! 드디어 왔군! 내 자네를 기다리다 죽는 줄 알았다네!”

   “무슨 일이 있습니까?”

   “그럼! 있고 말고! 아주 좋은 일이 있지! 자! 빨리 안으로 들어오게!”

   

   그 날 공작은 처음으로 인형의 차디찬 눈동자를 마주했다. 감정이 조금도 담기지 않은 기계의 눈은 절로 섬뜩함을 선사했다.

   

   “이 자가 자네를 복원하는 데 도움을 준 세이지 쿠르텐일세!”

   “처음 뵙겠습니다. 쿠르텐 공작. 저는 무명의 인형입니다. 제가 깨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길고도 긴 잠에서 깨어난 인형은 자신을 대마법사 에르기누스의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과거 솔라딘이 세워질 무렵 솔라딘과 에르기누스 사이에 맺어진 계약이 지켜지는 지 감시하기 위한 존재라고 말이다.

   

   *

   

   “감시자! 감시자로군!”

   

   아서가 이야기를 끊고 소리치자 공작이 눈을 크게 떴다.

   

   “3왕자님께서 그를 어찌 알고 계십니까?”

   “자네도 알 터 아닌가! 에르기누스님께서 어둠의 신이 되었단 것을!”

   “과연. 대마법사께서 직접 설명을 해주신 것이군요.”

   

   에르기누스의 핑계로 상황을 모면한 아서는 자신의 귓가에 때려박히는 조각의 다그침을 애써 무시했다.

   

   “그렇다면 1왕비가 감시자였단 것도 알고 계시겠군요.”

   

   대수롭지 않은 듯 공작이 내뱉은 말에 방 안에 있던 이들이 굳는다. 여태 여유를 부리던 루시 알른 마저도 말이다.

   

   “모르셨습니까?”

   “…에르기누스님께선 자신의 흔적을 찾지 못하셨노라 말하셨다.”

   “허어. 교황 성하께서 선사하신 기적은 대마법사의 지혜마저도 뛰어넘는 겁니까.”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교황이란 단어에 또 다시 정적이 흐른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자연스레 말씀드리게 될 사안이었습니다만 미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왕비께서 지금 같은 생기를 얻게 된 것은 교황 성하께서 그 분에게 축복을 베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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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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