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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27

    <627 – 오크노디의 테마파크(2)>

     

    놀이공원 하나 지어달라고 했더니 만수르의 석유놀이터가 완성되었다.

    서울대공원이나 에버랜드 정도를 생각했던 나로서도 당혹스러운 발전도였다.

     

    “지젤아저씨 부자였어요?”

    “하하. 암흑상인에게 돈의 많고 적음을 묻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죠. 상인이란 마음의 크기에 따라 돈도 자산도 커지는 법입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그럼 스님들은 마음이 댑따 크니까 전부 갑부 아니에요?”

     

    진짜 그런가?

    무소유를 주장하면서 풀소유를 만끽하는 스님을 떠올리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명호스님의 자산이 꽤 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기억이 나는군요. 안 그래도 이번에 명호스님이 오랜 휴식 끝에 아카데미에 복귀했다고 합니다.”

    “우왕! 치료 끝났구나!”

    “치료?”

    “디스트로이어 교수님이 사경을 헤매느라 명호스님이 병간호를 해주고 계셨거든요. 함 만나러 가야지!”

     

    명호스님이 날 찾아온 적은 있어도 내가 명호스님을 찾으러 간 기억은 없었다.

    일전에 카넬레 시에서 신세를 진 건도 있고 하니 감사 인사 정도는 드리러 가야지.

     

    “스님! 디트교수님은 어때요?”

    “오랜만이군요, 오크노디 양. 디스트로이어는 다행히도 가까스로 고비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우왕!”

    “하지만 상태가 좋지는 못합니다. 수명의 감소를 피했을 뿐, 가진 기운의 대부분을 사용해도 암흑마나의 잠식을 버티기에 급급한 수준이지요. 남은 수명은 그리 길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아닛… 우왕이 아니잖아요! 교수님 어딨어요? 빨리 데려와요!”

    “스승을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하나 이것이 그가 남긴 의지입니다.”

     

    명호스님은 침울한 얼굴로 품에서 한통의 서신을 꺼내어 건네주었다.

     

    ━━━

    오크노디.

    직접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누지 못해서 아쉽지만 이렇게나마 마지막으로 글을 남길 기회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내 상태를 알려주마.

    정양을 위해 힘쓰고는 있지만 내 몸의 상태는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한 번의 전투로도 마력재해를 유발할 마인으로 전락할 수 있는 지금, 나는 내 힘을 통제할 수 있을 때 나 자신을 봉인해서 죽음을 맞이하려 한다.

    받아들이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

    이것이 내 결정이다.

    혁명가와 선황이 저지른 짓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보아왔던 너라면 분명 내 뜻을 존중해 주리라 믿겠다.

    삶을 연명하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을 죽음의 위기에 빠뜨리는 짓은 영웅의 최후에 걸맞지 못하다.

    나는 마인이나 마력재해 유발범으로 최후를 맞이하는 대신, 영웅으로서 죽기로 결심한 것이다.

    네 스승을 영웅으로 기억하길 바란다면 이 뜻을 존중해 주길 바란다.

    ━━━

     

    “이게 뭐예요…?”

    “보다시피 유언서입니다.”

    “디트 교수님이 유언을 왜 남기냐구요!”

     

    스님은 편지에 시선을 두었다.

     

    “우선은 그가 남긴 유언서를 모두 읽으십시오. 이야기는 그 다음입니다.”

     

    나는 내키지 않는 손으로 편지를 넘겼다.

     

    ━━━

    너희에게는 니알라토텝과 삼대거악에 대한 강의를 끝마치지 못했군.

    못다 한 강의를 대신 이어서 해줄 자가 있다.

    대감옥의 5계층을 찾아가라.

    그곳에 전대용사파티의 전사, 니알라토텝의 첫 번째 동료, 전사 <알파>가 수감 되어 있다.

    삼대거악의 마지막 한 명 <만신의 대리인>과 니알라토텝의 용사행이 끝난 이유를 그가 알려줄 것이다.

    이슈타르와 헤스티아.

    다른 두 동기들도 이야기를 함께 들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을 데려가라.

    하지만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혼자만 찾아가야 할 거다.

    알파는 나와 달리 친절하지 않다.

    그에게서 무언가를 듣고자 한다면, 언제나 그에 합당한 시험을 치러야만 하니까.

    ━━━

     

    ‘칫. 이딴 건 궁금하지도 않았다고요!’

     

    매번 랜덤 생성되는 전대용사.

    그러나 항상 고정적으로 출연하는 은퇴한 전직용사 디스트로이어.

    그와 달리, 용사파티의 나머지 파티원의 운명은 알 수 없다.

    미지라고 언제나 궁금하지는 않다.

    보상도 알 수 없고, 난이도도 어렵고.

    괜히 들쑤시면 피만 보는 나락이벤트, 함정이벤트도 있다.

    전대 용사파티의 어둠을 파헤치는 일이 주로 그렇다.

    하지만 디스트로이어 교수님의 편지는 아직 남았다.

    나는 편지의 다음 페이지를 펼쳤다.

     

    ━━━

    다음으로는 재단에 대한 충고를 해주마.

    그간 나는 사다코 교수와 힘을 합쳐서 재단의 비밀을 파헤쳐 왔다.

    그리고 많은 비밀을 알아내었지.

    재단의 집사는 <장학생>의 신분을 졸업하여 와이히엠하이 재단을 위해 위장신분을 벗어던지고 본격적으로 음지에서 활동하는 자.

    아가씨와 도련님의 육성, 현지 장학생의 통솔, 암살이나 전투 등의 공격적인 지령 수행 따위의 역할을 맡고 있다.

    집사장은 그런 집사 중 우두머리에 속한 자.

    필시 재단에서 너를 가르쳤던, 그리고 혁명가를 일격에 사살한 그 거대한 남자와 동일인물이겠지.

     

    네가 재단의 품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우선 그 남자를 물리쳐야만 한다.

    재단의 집사의 임무에는 ‘배신자 처단’도 존재하고, 집사장은 조나와 너를 함께 해치울 재단으로부터 파견될 최강의 습격자가 될 테니.

    집사장은 <밟기> 기능의 이중극의를 깨우친 자라고 한다.

    이 정보가 네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마.

    ━━━

     

    정보 자체는 쓸데없이 유익했다.

    밟기.

    숨기나 오르기처럼 수많은 기본기능 중 하나다.

    이 또한 쓰임에 따라 허접한 본래 기능과는 상상을 초월하는 용도가 존재한다.

    밟기를 주로 쓰는 것은 인간을 초월한 강자들.

    종합기능수치가 ‘높은’ 존재가 ‘하등한’ 존재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밟는 용도로 쓰이는 기능.

    종합기능수치가 낮으면 무조건 밟히고, 막대한 디버프를 받는다는 사실부터 회피 불가능한 디버프를 강제하는 아주 고약한 기능이다.

    하지만 <주류24신격>이나 다른 <초월종>들에 비해 재단의 집사장이 동급의 강자라고 생각하면 조금 생뚱맞기는 했다.

    그만한 힘이 있으면 애초에 재단파파가 다른 거악을 지배하거나 선황을 토벌하는 용도로 쓰지 않았을까?

     

    ‘내 <자동>기능이 영구분신이라는 히든극의를 개방한 것처럼 집사장도 히든기능이 있겠네.’

     

    교수님의 편지도 어느덧 마지막 장이 되었다.

     

    ━━━

    내게는 약간의 재산이 남아있다.

    두 번의 용사행을 끝마치고 대부분의 금품과 환전 가능한 재산은 도적길드에 투자했다.

    바로 그 도적길드가 내 첫 번째 재산이니, 너는 오늘부터 전국의 모든 도적이 우러러보는 도적길드 길드장의 지위와 신분을 얻었다.

    동봉한 신분패가 이를 증명할 것이다.

     

    다음으로 네게 줄 것은 도적길드에서도 처분할 수 없었던 암흑마기가 깃든 마인과 마족들의 물건이다.

    이 불길한 힘은 신전에 건네면 사악한 힘을 정화하고 마도구의 올바른 쓰임새를 되찾을 수 있어 신앙기여도나 신성술을 올리는 용도로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신과 척을 진 니알라토텝의 동료였던 나로서는 사용할 길이 없던 애물단지들이었지.

    동봉한 지도가 암흑물질들을 보관한 암흑창고의 소재지를 알려줄 것이다.

    지명만 먼저 말하자면 삼대금림 중 가장 위험하고 은밀한 장소, <괴수림>이라고 말해두마.

     

    마지막으로 맡길 것은 재보나 신분 따위가 아니다.

    오히려 짐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브론즈 교수가 나의 아이를 잉태했다.

    그녀가 내게 받은 용사의 아이를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도록 <후견인>으로서 도움을 주었으면 한다.

    내게 빚을 진 브론즈 교수라면 너를 자신의 아이의 후견인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 아이를 내 대신으로 생각하고 네가 기숙사에서 보살피는 옛 친구의 영혼이 깃든 응애처럼 소중히 돌봐주기를 바라마.

    ━━━

     

    사망플래그를 좋아하는 스승님인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건 진짜 당장 오늘 벼락 맞고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플래그를 쑤셔 박았다.

     

     

    * * *

     

     

    오크노디가 울면서 애원했다.

     

    “으앙! 명호스님, 빨리 디토 교수님 계신 곳으로 안내해요, 빨리요!”

    “그런 말을 해도 이미 늦었다는 것을 알지 않습니까. 인연이란 때에 따라 오고 가는 것. 흐르는 바람처럼 움켜쥐려 하지 말고 떠나보내십시오.”

     

    그리하면 당장은 괴로워도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 자신이 소중히 여겨야 할 현생의 다른 인연들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이것이 디스트로이어가 오크노디에게 바라는 미래이겠지.

    자신을 대신하여 회수해야 할 자산과 집중해야 할 적, 그리고 훗날 보살펴야 할 인연을 남겨둠으로써 영혼의 정체됨과 타락함을 막는다.

    마지막까지 스승의 도리를 다한 자.

    디스트로이어는 실로 참된 스승이었다.

     

    ‘천존이시여. 세상백해에 흩어진 그 영의 편린으로나마 어린 소녀와 그의 스승의 넋을 기려주소서.’

     

    비장한 마음을 담아 기도문을 올리던 명호스님은 자신의 몸이 거칠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천존의 의지가 그의 소망에 감응한 까닭인가?

    도복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명호는 그것이 자신의 착각임을 깨달았다.

     

    “으앙, 빨리 어디 있는지 안 알려주면 스님 마구마구 혼내줄 거야!”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는 자신의 멱살을 붙잡고 마구 흔들어대는 오크노디.

    도대체 무슨 짓을 벌였는지, 아이의 내면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마치 오래도록 <봉인>해왔던 기능 하나가 해방되려는 것처럼 너무나도 거대하고 불길한 징조.

    그 기운이 얼마나 거대한지 생명체라면 응당 느껴져야 할 생명의 기운과 생체마나파장조차 감지할 수 없을 정도였다.

    디스트로이어의 유언을 지키려다가 애가 먼저 폭주해서 난리가 나겠다는 생각이 들자 명호는 기겁하며 자신의 극의를 개방했다.

     

    <명호스님>

    <명상의 극의 : 명경지수>

     

    어떠한 외부의 영향으로부터도 절대적인 평정을 보장받는 자기수양의 극의에 달한 영역.

    그 영역이 ‘자신’의 범위에 오크노디를 강제로 편입시키려 들자 무서운 속도로 명호스님의 내면세계 속 절벽에 칼이 꽂혔다.

     

    -절벽에 꽂힌 칼은 곧 마음에 새겨진 살의.

    -이 칼을 모두 뽑기 전까지 나는 명경지수에 올린 서약에 의거하여 모든 성장을 금한다.

     

    시도만으로도 한 순간에 족히 수십 일의 수행을 강제당하는 수준의 살殺이 꽂힌다.

    몇초만 더 버텨도 가볍게 1년을 넘어서고, 1분을 버티려 들다간 수십 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리고도 남을 지독한 살업에 휘감긴 아이.

     

    ‘이 살의는 도저히 인간의 마음으로 막아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명호스님이 기겁하고 명경지수를 해제한 직후에야 오기를 부리듯이 기세를 키우던 오크노디의 기운 또한 거두어졌다.

    명호스님은 합리적인 추론에 의거하여 그 기운이 암흑마나를 끌어올린 영향이라고 여겼다.

     

    “대체 어쩌자고 이러는 것이냐. 스승과 제자를 한날 한시에 떠나보내도록 만들 작정이냐?”

    “명호스님이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면서 다 끝난 척 달관하지 마세요! 도감수집을 하면 건강보너스가 주어진단 말이에요!”

    “도감수집…?”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리하던 명호스님의 눈에 오크노디가 항시 ‘수집품’이라는 것을 집어넣고 다니는 배낭배낭이 눈에 들어왔다.

    저 배낭배낭은 와이히엠하이 재단의 특수시설에 향할 적에도 있었고, 신성중앙제국을 뒤엎을 적에도 항시 메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 배낭 안에는 암흑마나에 의해 벼랑 끝까지 수명이 내몰린 디스트로이어조차도 구할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살아서는 다시 만나지 못하도록 막아달라는 청을 이런 식으로 어기게 될 줄이야. 디스트로이어, 내 그대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것이 아니기만을 바랍니다.”

     

    명호스님은 오크노디의 억지를 들어주기로 결정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정보 : 응애노디는 플레이어가 100시간 이상 호의를 품었던 존재를 소환할 수 있는 *애정의 부름* 기술이 있지만 너무 화가 나서 기술의 존재를 까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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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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