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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29

       

        

        

        

        

        

        

        

        

        

        

        

        

        

        

       “유진 씨랑 여기 와서 상어랑 북극곰 언니들이 노는 거 구경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꼬리를 달고 여기 왔네요. 진짜 감개무량하다….”

        

       “…저는 가슴이 좀 답답한데요. 그보다 이 정도 근육이랑 골밀도, 체중이면 보통 물에 들어가도 절대 안 뜨지 않나요?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건가요?”

        

       “그게 발현자만의 특이한 점이지요. 애시당초 이 세계에선 유물론도 작동을 안 하니까요.”

        

        

        

        그리 중얼거리자 벽면을 타고 내 목소리가 자잘하게 울린다.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은 거주자 혹은 허가된 인원만 사용 가능한 펜트하우스 지하에 있는 대형 수영장이었고, 주변을 둘러싼 홀로그램 벽지는 이곳이 지하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도록 아름다운 바깥 풍경을 투영하고 있었다.

        

        아무튼 다시 돌아와서, 편하게 래쉬가드를 사라고 했더니 ‘이건 로망이에요!’하고 기어코 모노키니를 샀다가, 자기가 입고는 부끄러움에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는 아이리스의 말에 간단하게 답해주었다.

        

        애시당초 하룻밤 사이에 남자가 여자로 바뀌는 상황이 간혹 일어나고 있는 마당에, 이제 와서 물리법칙 한두 개 더 위반하는 게 뭐가 문제라도 있을까 싶다.

        

        그리 생각하니 문득 과거에 봤던 만화 하나가 기억이 났다. 뭐였더라, 중금속 비가 내리는 사이버펑크 디스토피아에서 느닷없이 사람들이 닌자로 각성하는….

        

        

        

       “…진 씨, 유진 씨! 정신 차려요!”

        

       “음, 잠시 딴 생각하고 있었네요. 아무튼 들어가기 전에 준비운동은 필수입니다. 수영 잘하는 뱀이 됐는데 다리에 쥐가 나서 물에 빠지기라도 한다면…여러분들을 방송에서 실컷 비웃어줄 예정이니까요. 알겠죠?”

        

       “우왁, 전국구가 아니라 세계 단위로 놀림거리가 될 거야…흣차.”

        

       “아그그그극…! 뼈 부러져요!”

        

       “조심하세요. 여러분들의 신체능력은 같은 발현자들도 다치게 할 수 있으니까요.”

        

        

        

        그와 동시에 한쪽 팔로는 가슴을, 다른 손으로는 국부를 가리고 있는 아이리스의 허리를 꼬리로 감아 번쩍 들었고, 동시에 내 앞으로 데리고 왔다.

        

        안 그래도 나보다 피부 하얀 양반이라 그런지 아주…이게 사람이야 홍당무야. 백사(白蛇)라 그런지 유달리 빨개지는 게 돋보인다.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다음부터는 래쉬가드를 사세요.”

        

       “…넹.”

        

       “그럼 우리 편집자님도 슬슬 스트레칭을 합시다. 수영이 전신운동이라는 건 아주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쟤네들처럼 다리찢기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목이랑 어깨, 허리, 종아리, 허벅지, 손목과 팔목 정도는 풀어줘야죠. 준비됐나요?”

        

       “아, 그 정도라면 저 혼자 할 수 있을 것 같-우와아악!”

        

       “얌전히 이리 오세요.”

        

        

        

        으드드득!

        

        발현자가 된 주제에 집에서 얌전히 처박혀 일만 하다니, 당치도 않다 – 대략 그리 생각하며 아이리스를 그 자리에서 홱 돌린 다음 팔과 팔을 얽고 등과 등을 마주 댄 뒤, 허리를 굽힌다.

        

        다음 순간 바둥거리던 아이리스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천장이었다.

        

        힘조절은 철저히 하고 있었으니 근육이나 관절이 다치거나 놀라지는 않았을 거고…애시당초 이 정도 스트레칭으로 근육이 놀란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그리하여 10분 가량이 지나자, 온 몸이 노곤노곤해진 듯한 아이리스가 선베드에 풀썩 엎어져 떡처럼 말랑해졌다.

        

        

        

       “으헤에….”

        

       “시원하죠?”

        

       “아파 죽을 것 같았는데 이제는 시원하네요.”

        

       “그럼 슬슬 들어갈 준비를 합시다. 안 그래도 저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으니까요.”

        

        

        

        플라스틱 대신 발현자들의 몸무게를 감당할 수 있도록 강철로 만들어진 선베드에 널브러져있는 아이리스를 일으켜 세우고, 슬슬 준비를 전부 끝낸 세 명에게 OK 사인을 보냈다.

        

        물론 그 순간부터 바로 전력질주 후 수영장 다이빙-이라는 일은 없었고, 다들 발끝부터 적신다 – 그리고 바로 그때부터 하모니와 다이스는 자신이 무슨 동물로 변했는지를 아주 잘 알게 되겠지.

        

        마치 물 속으로 빨려들어가듯, 단순히 온도에 익숙해지려고 물에 집어넣었던 팔다리였지만, 몸 전체를 수영장 안으로 밀어넣기까지는…고작 1초나 걸렸을까.

        

        놀람에서 기쁨으로, 기쁨에서 경악으로. 아마 몸이 물에 닿는 감촉 자체가 평범한 사람이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느므 좋당….”

        

       “여태까지 이 좋은 걸 유진 씨만 즐기고 있었, 우부브브브브…!”

        

       “우리 뉴 막내들은 조금만 풀어줘도 금방 바보같은 소리를 하는군요. 그 점이 귀엽긴 하지만…우리 막내도 저럴 때가 있었지요, 후후.”

        

       “와, 진짜요? 저도 알려주세요!”

        

       “막내가 눈에서 레이저를 쏠 것 같으니 어림도 없답니다.”

        

        

        

        그러게나 말이다.

        

        아무튼 이제는 아이리스 차례였고, 비얌이 됐으면서 개헤엄을 치고 있는 – 그래도 표정은 행복으로 가득했다 – 하모니와 다이스를 뒤로 한 채 그녀의 손을 잡고 물로 몸을 이끌었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세 발자국…그 다음으로 벌어진 일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했고, 다들 신나게 첨벙거리며 본격적으로 수영장을 즐기기 시작했다.

        

        신체능력이 능력이었기에 대충 움직여도 속도가 무지막지한 건 당연한 일이었고.

        

        

        수영장 자체가 굉장히 컸기에, 나는 저 세 명이 자유롭게 놀고 있는 사이 수영장 턱에 팔을 올린 채 가만히 그걸 구경하고 있는 상어 쪽으로 슬금슬금 접근.

        

        그냥 같이 있으려고 한 것도 있었지만, 물어볼 게 있었다.

        

        

        

       “…도대체 저쪽 세계의 상어랑 어떻게 연락하고 있는 거예요?”

        

       “세계를 자유롭게 왕복할 수 있는 친구의 도움을 받았지요. 접촉할 기회만 있다면 등이든 어깨든 뭔가를 붙일 수 있는 방법은 차고 넘친답니다.”

        

       “저쪽 세계의 상어가 제 몸에 원격해킹툴 비스무리한 걸 붙였고, 그걸 통해 커넥션을 구축했다…?”

        

       “간단한 일이죠.”

        

        

        

        …진짜 환장하겠구만.

        

        아무튼 상어라면 충분히 그럴 법했다. 모든 정합성과 핍진성이 ‘상어니까’ 한 마디로 압축되는 걸 보니 기분이 기괴하기 짝이 없었지만, 이 양반이 여태까지 한 걸 보면 그런 말이 나올 수밖에.

        

        그리하여 궁금증은 해결되었다. 어차피 그 이상 궁금한 것도 없었다. 보나마나 지난 번 디즈니 월드에서 서로 만났을 때, 나도 모르는 사이 적당히 논의되었을 이야기일 테니까.

        

        두 상어끼리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도 대충 감이 잡혔으니 이제 이 이야기는 더 할 필요가 없겠지 – 그리 생각하며, 나는 로렌티나의 옆에서 재차 입을 열었다.

        

        

        

       “저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제 옆까지 와서 말할 정도로 부끄러운 과거였나요?”

        

       “저 친구들이야 제가 어수룩했던 시기를 좋아하겠지만, 옛날 이야기를 하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아픈 기억들이 있어서….”

        

       “…제 불찰이로군요. 미안해요, 막내.”

        

       “아, 꼭 그런 건 아니고…사실 무지막지하게 창피하단 게 이유예요, 진짜로.”

        

        

        

        뒤늦게 덧붙인 이유란 티가 팍팍 나서일까, 로렌티나는 내 머리를 슬금슬금 쓰다듬었다.

        

        …아픈 기억이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전쟁이 끝날 때까지 내 지인들은 전부 살아남았단 말이지. 그 점만으로도 사실 크게 문제는 없었다. 게다가 그때만큼 절실하게 산 때도 없었고.

        

        여러모로 끔찍했던 때도 있긴 했지만, 뭐어, 지금 와서 말하자면…좀 많이 적응되기도 했고. 길거리에 해골바가지 굴러다니는 것 정도로는 더 이상 놀라지 않는다.

        

        그렇게 잠시간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을까, 로렌티나의 표정이 서서히 변한다.

        

        구체적으로는 진중한 모습에서 다시 장난기 넘치는 모습으로-

        

        

        

       “전 이제부터 저 친구들을 놀래켜주러 갈 예정인데, 막내도 따라올 건가요?”

        

       “…그럼 그렇죠, 증말.”

        

       “먼저 가죠. 따라올 거면 따라오시길.”

        

        

        

        퐁!

        

        그와 동시에 상어는 말 그대로 아주 조용하게 입수했다. 흔들리는 수면 아래로 보이는 로렌티나의 신형이 마치 발사된 작살마냥 순식간에 수영장 바닥을 훑으며 저쪽으로 사라진다.

        

        저 멀리로 갈수록 수심은 깊어지고, 세 명이 놀고 있는 곳은 5미터 가량의 수심. 평소에는 막혀있었지만 오늘은 개방해달라고 요청했기에 이용이 가능했고, 로렌티나는 아무도 몰래 수영장 바닥까지 접근.

        

        물 속이라면 물의 흐름을 더욱 잘 느낄 수 있을 테니, 본래라면 상어가 그 근방으로 접근하는 것 정도는 바로바로 알아차릴 수 있겠지만…아쉽게도 이번에는 그렇게 안 된 모양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쑤욱!

        

        

        

       “와우.”

        

       “우왁, 아이리스가 사라졌어! 발 밑에 뭔가가…끼야악!”

        

       “하모니이이-!”

        

        

        

        …뭔가 무 잡아뽑는 걸 거꾸로 돌린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아이리스가 순식간에 물 밑으로 사라지는 광경을 보는 것은 실로 즐거웠다. 물론 혹시 모를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인지 상어의 한쪽 손에는 작은 산소캔이 들려있었고.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상어가 다시 수면으로 올라온 하모니와 아이리스와 함께 저쪽에서 깔깔대고 있을 무렵, 이번에는 내가 슬그머니 잠수했다.

        

        영원과 같은 20초가 지나고-

        

        

        

       “많이 놀랐나보군요, 우리 뉴 막내들-우븝!”

        

       “…헉, 상어가 납치당했어.”

        

       “이번엔 선생님이…우왁, 도망쳐어어-!”

        

        

        

        물론 늦었다.

        

        네 비얌과 상어 한 마리가 물 속에서 모이는 순간이었다.

        

        

        

        

        

        

        

        

        

        

        

        

        

        

        

        

        

        

        

        

        

        

        

       “어릴 때 갔었던 수영장이 딱 이랬었는데. 수영장 안에 식사할 수 있는 테라스 같은 거 있고 막…그런 기분을 여기서 느끼게 될 줄이야. 좋네요. 수영하다 밥 먹으니 식욕도 돌고.”

        

       “…배달 드론이 뺀질나게 여기를 나갔다가 들어왔다 하는 건 좀 거슬리긴 하네요.”

        

       “어쩌겠어요. 저희가 밥을 너무 많이 먹는데.”

        

        

        

        일반적인 발현자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배가 고픈 발현자다.

        

        옛날 뉴욕에 있었을 때도 그닥 많이 겪어보지 않았던 일이건만, 이게 지금 내 집의 건물 지하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걸 보니 감회가…새롭지는 않았다. 이런 걸로 감명을 느낄 리가 없잖아.

        

        아무튼 그 말대로, 현재 우리는 수영장 옆의 간이 테라스에 앉아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한 번 배달에 100만 원 단위로 깨지는 걸 보는 게 더 감명깊었다.

        

        뭐어, 우리가 시킨 덕분에 돈도 많이 벌고, 재료마감 일찍 끝내고 문 닫은 뒤 편안히 휴식을 즐기면 그거야말로 상호배려가 아닐까. 문득 그런 쓰잘데기없는 생각이 들었다.

        

        

        좌우지간, 5명의 발현자들이 휩쓸고 간 음식-사단은 처참하게 궤멸당했다. 구체적으로는 플라스틱 그릇에 묻어있는 기름만 휴지로 적당히 닦으면 그대로 반납해도 될 것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다들 빵빵해진 배를 통통 두드리고 있었고, 테라스의 한 켠에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뒷처리하기 편하도록 별도의 분리수거 칸이 있었다. 거기다 포장지나 그런 것들을 쏟아넣으면 상황종료.

        

        밥이 소화되려면 아직 한참 남았기도 하고, 그동안 계속 이곳에 있을 수는 없었기에, 나를 포함한 일행은 앞으로 적당히 한 시간 가량 떠든 후 수영장 사용을 끝내고 올라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아, 맞다. 저 지난 번에 스텔라 유니버스 다녀온 거 기억하시죠?”

        

       “물론 알고 있죠. 꽤 재미있게 봤어요. 근데 그건 갑자기 어떤 연유로?”

        

       “그,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만 할지 잘 모르겠는데, 음…저 이번에 스텔라 유니버스 들어올 생각 없냐고 메일 받았어요. 당연히 수익 분할 비율도 타 홀로그램 아이돌에 비해 훨씬 낫고요.”

        

       “오오.”

        

       “…근데 아이리스는 엄밀하게 말하면 홀로그램 아이돌이 아니지 않나요?”

        

       “앗.”

        

        

        

        그와 동시에 바쁘게 이어지는 시선 교환.

        

        생각해보니 그도 그랬다. 홀로그램 아이돌은 가상현실이라는 꿈을 파는 거고, 바로 그 때문에 그런 이들은 거의 모든 경우에서 현실과 엄격하게 분단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으니까.

        

        근데 아이리스는…음…이걸 어떤 케이스라고 해야만 할지조차 모르겠구만. 애시당초 이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표본이니 어떤 결정을 내려야만 할지도 감이 안 잡힌다.

        

        …그래도 본질적인 부분을 생각해보면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지. 어쨌든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고, 스텔라 유니버스에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했기에 아이리스에게 제안한 걸테고.

        

        중요한 건 그녀의 의사겠지.

        

        

        

       “그래서, 아이리스의 생각은 어떤가요? 가고 싶어서 저한테 말한 걸수도 있고, 아니면 조언을 듣고 싶어서 말했을 것 같기도 한데. 어느 쪽인가요?”

        

       “…음, 그 뭐냐. 사실 조금 고민 중이긴 해요. 사실 지금도 돈 잘 벌고 있는데 굳이 저쪽에 수수료 내면서 갈 필요도 없기도 하고…근데 또 나름 다른 방식의 메리트도 있어서. 가령 전담 스케줄 플래너를 붙여준다든지, 콜라보라든지, 광고라든지….”

        

       “…홀로돌 – 홀로그램 아이돌의 줄임말 – 은 예전부터 알고 있긴 했는데, 뭔가 심오한 세계였구나….”

        

       “그러고 보니 어디서 들어본 적 있어요. 홀로그램 아이돌 전문 업체에서는 일반 아바타에서는 지원 안 하는 각종 액세서리나 소품들 같은 거 3D 디자인툴로 만들어주고, 설정도 짜주고 뭐 그런다고.”

        

        

        

        그 말대로. 홀로그램 아이돌은 뭔가 심오하구만.

        

        아무튼 말만 들어보면 아이리스는…딱히 갈 생각은 없는 듯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 가면 된다-로 적당히 끝내기에는 무언가 더 할 말이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사실 이 양반 같은 경우는 기업에 소속되어있는 게 아니니, 무언가 자잘하게 곤란한 일이 있거나, 큰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 대응하거나 뒷처리해줄 뒷배가 부족하다는 점을 고려해야만 한다.

        

        물론 그건 아이리스로서 고려해야만 하는 이야기지.

        

        편집자로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근데 아이리스…아니, 편집자 님.”

        

       “에, 네…앗.”

        

       “제가 뭘 말하고 싶은 건지 눈치챈 듯한데, 알고 있겠지만 아이리스는 유진 사단에서 제1호 편집자로서 종군하고 계시죠. 저쪽이 겸업이 가능하다고 말은 해줬나요?”

        

       “어음, 맞다.”

        

        

        

        당연하게도, 이 양반은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맨날 유진 사단, 유진 사단 하고 비공식적인 것처럼 말하지만, 이미 정식 법인으로 등록한 상태다. 법인등록번호도 있고 말이지. 상시근로자만 20명에 가까운 공식 법인이고, 노동법도 철저하게 준수한다.

        

        하지만 이 양반이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닌 모양이었기에, 나는 입을 열어 물었다.

        

        

        

       “단순한 지레짐작이지만, 편집자님이 원하는 건 일종의…MCN 같은 거겠지요.”

        

       “에…그렇죠?”

        

       “홀로그램 아이돌을 메인으로 삼은 MCN이 해주는 일은…확실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짐작하면 여러가지가 있겠죠. 가령 아까도 말했듯 여러가지 액세서리 디자인, 거기에 요즘은 연기도 중요할테니 액팅 수업도 있을 거고…육성 비용이라고 표현하면 되겠네요.”

        

       “아, 맞아요. 그런 것도 있다고 들은 것 같네요.”

        

       “거기에 요즘은 노래 부르는 친구들도 많다고 하니 레코딩 스튜디오 같은 것도 있을 법하고, 아까 아이리스가 말했듯 단순 스케줄이나 숙제, 콜라보레이션, 광고를 따와서 제공하는 등의 편의를 봐주는 사람도 있고.”

        

       “…진짜 아무런 것도 모르는 거 맞아요, 유진 씨?”

        

       “대충 어림짐작한 거라니까요.”

        

        

        

        말이 꽤 길어졌는데, 요지는 그게 아니었다.

        

        

        

       “까놓고 말해서, 지금의 아이리스에게 그냥 스케줄 관리자 한 명만 붙여놓으면 저쪽에서 제안한 거랑 비슷하지 않나요?”

        

       “…엥?”

        

       “제 네임밸류가 있으니 광고도 훨씬 많이 들어올 거고…MCN 명칭은 유진 사단. 이미 법인도 만들어져있으니 큰 문제는 없겠죠. 그 대신 소속된 홀로그램 아이돌은 단 한 명. 그렇게 대충 퉁 쳐도 문제없을 것 같지 않나요.”

        

       “엑.”

        

       “와, 유진 사단의 유일한 홀로그램 아이돌이라니. 부러워 죽겠다아.”

        

       “무지 재밌을 것 같은데요. 이제 유진 씨 유어스페이스에 아이리스 광고 걸리는 거예요? 막 ‘유진이 직접 운영하는 MCN에서 홀로그램 아이돌 전격 데뷔!’같은 느낌으로?”

        

       “우와아악, 안 돼에-!”

        

        

        

        그리고 그 순간 아이리스는 깨달았다. 이 모든 것들이 자신을 놀리기 위해 아주 정교하게 제작되어 진행되고 있다는 함정이라는 것을 말이다 – 같은 표정을 짓고 있네, 우리 편집자 님.

        

        아무튼 그 말대로. 물론 대대적인 광고 같은 건 당연히 있을 리가 없다. 내가 방송에서 구태여 ‘아이리스가 공식적으로 제 산하 홀로그램 아이돌이 되었습니다’하고 발언하지도 않을 거고.

        

        아마 그 결론을 요약하게 된다면…기업 소속은 아니지만 기업 소속 홀로그램 아이돌이 받을 수 있는 이상의 지원을 받는 – 물론 내가 광고를 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 아이리스의 탄생이 아닐까.

        

        

        그리고 애시당초 그렇게 퍼뜨리는 것도 그닥 바람직한 일은 아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하모니나 다이스가 사비를 털어 제 채널에 광고를 건다면 몰라도, 그럴 리가 없죠. 게다가 홍보가 되면 그것대로 골치가 아파요. 저는 홀로그램 아이돌 이력서를 보거나, 심지어 직접 육성하는 일을 떠맡을 생각은 없으니.”

        

       “…생각해보니 그건 또 그렇네요. 딱히 일가견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걸 하려면 외부에서 관련 인력을 전부 또 섭외해야 할테니….”

        

       “아이리스, 진지하게 듣지 마요. 저 사람은 원하면 보유하고 있는 현금만으로 홀로그램 아이돌이란 파이를 싸그리 집어먹고도 남을 테니까요. 그냥 자기가 진짜 하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거예요.”

        

       “그건 그렇고, 저 유진 씨네 채널에 아이리스 광고 걸어도 되나요? 5천만원 정도까지는 사비로 적당히 투자할 의향 있는데.”

        

       “아아악, 그건 안 돼에-!”

        

        

        

        …결론이 좀 이상하긴 한데, 아무튼 그 말대로. 진짜 그닥 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도 맞긴 했다.

        

        그래도 우리 편집자님의 고민을 해결해줬으니, 그거면 된 게 아닐까.

        

        결과만 좋으면 다 된 거지 뭘. 나는 그냥 그리 생각하기로 했다.

        

        알찼다.

        

        

        

        

        

        

        

        

        

        

       ‘…홀로그램이니 뭐니. 한국엔 그런 문화가 있는 모양이로군요. 기묘해라.’

        

        

        

        물론,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다니는 것과는 별개로, 철저히 현실주의자인 로렌티나로서는 별세계 이야기일 뿐이었다.

        

        일상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번주부터는 슬슬 주7일 연재로 바꿉니다

    if가 이렇게 길어질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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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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