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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3

        

       

       

       올리비아는 침묵했다.

       

       웃음이라니. 

       

       죽어가는 와중에, 마지막으로 남긴 것이 웃음이라니.

       

       “…….”

       

       멜리나의 고개는 아래로 떨어졌고, 허리는 앞으로 구부러졌다.

       

       – 고개 드세요. 어깨도 펴시고요. 얼굴도 웃는 편이…….

       

       하지만 웃음만큼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멜리나는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과의 약속, 아니.

       

       약속조차 아니었던, 그 사소한 말 몇마디를.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는 멜리나를 보며, 심장 한 쪽이 아려왔다.

       

       기분이 복잡했다.

       

       [단서 사용이 강제 종료됩니다.]

       

       올리비아는 양 손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현실로 돌아왔지만, 멜리나의 무게는 여전했다.

       

       사라지지 않았다.

       

       기억 깊은 곳에 각인된 채 남아 있었다.

       

       올리비아는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왜 그랬는지는 그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냥 다리에 힘이 풀렸을 뿐이라고, 애써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속이 쓰렸다. 내장 깊은 곳에서 무언가 끓어올랐다.

       

       -쿨럭.

       

       올리비아가 각혈했다. 내장의 일부였을 조각들이 핏물에 섞여 설원을 붉게 물들였다.

       

       ‘……?’

       

       기다렸다는 듯이 엄청난 고통이 밀려들었다. 올리비아는 눈을 부릅뜬 채 알림창을 살폈다.

       

       [현재 강제 종료의 후폭풍을 받는 중입니다.]

       

       거기, 먼젓번에 보았던 알림창이 있었다. 

       

       ‘……왜?’

       

       올리비아는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저 알림창이 지금 떠서는 안됐다. 저건 분명, 동시에 두 회귀자를 만났을 때만…….

       

       “……아.”

       

       올리비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한 가지, 마음에 걸렸던 것이 있었다.

       

       제한시간이 아직 남았는데 기억이 먼저 종료되면, 어떻게 되는가?

       

       ‘……빌어먹을.’

       

       그 답이, 지금의 강제 종료였다.

       

       그리고 올리비아는 온 몸에서 피를 쏟아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몸을 최대한 웅크려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는 것이었다.

       

       고통은 키엘 때보다 몇 배로 심했다. 심장이 터질듯이 두근거렸다. 누가 목을 조르는 것처럼 숨이 막혔다. 기도가 열리는 건 피를 토할 때가 고작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마나가 역류하기 시작했다. 온 혈관이 뒤틀리며, 끔찍한 고통을 자아냈다.

       

       올리비아는 그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멜리나와는 다르게, 그녀를 받아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올리비아는 혼자였다.

       

       아, 아…….

       

       온통 순백으로 가득한 설원에서, 올리비아는 홀로 몸부림쳤다. 

       

       내장이 갈기갈기 찢기고, 온 몸의 핏줄들이 형체를 잃고 터져나가는 와중에도 올리비아는 정신을 놓지 않았다.

       

       이렇게 끝나기에는 너무 억울했다.

       

       그녀에게 죄가 있다면, 게임이 현실이 될 줄 모르고 몰살을 자행한 것 뿐이다.

       

       그건 올리비아가 이 세계에 빙의된 순간부터 머릿속에 품고 있던 생각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세계를 수백 번 구한 대가는 온데간데 없으면서, 한 번 멸망시킨 대가는 치르라니.

       

       이 얼마나 불합리한가. 얼마나 부조리한가.

       

       다만…….

       

       올리비아는 멜리나가 있는 곳을 보았다. 한 때 키엘이 있던 곳을 보았다.

       

       다만…….

       

       올리비아의 생각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그동안의 고통은 시작에 불과했다는듯, 더욱 끔찍한 통고(痛苦)가 몰아쳤다.

       

       아프다, 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도 벅찼다. 뇌가 사고하기를 거부했다. 

       

       아, 아아아…….

       

       아공간을 향해 손을 뻗는 것도 불가했다. 그걸 떠올리는 것조차 버거웠다.

       

       ‘포션, 포션을…….’

       

       점점 정신이 아득해져가는 순간,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온통 붉어진 시야 속에서, 찬란한 금발이 바람에 흩날렸다.

       

       

       

       *****

       

       

       

       멜리나의 금안이 설원을 오시했다. 그녀의 시선 끝에, 붉은 점이 보였다. 붉은 점은 물감이 퍼져나가듯, 점점 그 크기를 넓혀가고 있었다.

       

       – 스승님!

       

       멜리나는 홀린듯 붉은 점을 향해 걸어갔다. 

       

       – 여기서는 어떻게 해야 되나요?

       

       멜리나는 올리비아의 무수한 과거를 보았다. 비록 회귀하며 깨달음은 잃어버렸을지언정, 기억까지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 제자로 받아주세요!

       

       처음 눈을 떴을 때, 멜리나는 안도했다.

       

       잊어버리지 않아서.

       

       올리비아가 얼마나 외로웠을지, 고통스러웠을지, 힘겨웠을지, 잊어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뻤다.

       

       진리 따위 하등 중요치 않았다.

       

       멜리나는 붉은 점에 점점 가까워졌다. 

       

       “……!”

       

       가까워질수록, 멜리나가 움직이는 속도가 빨라졌다.

       

       처음에 걷던 그녀는, 이제 달리고 있었다.

       

       웃음기로 가득했던 멜리나의 얼굴은, 이제 회귀했던 첫날의 그것과 닮아져 있었다.

       

       붉은 점 한 가운데에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멜리나가 익히 알던 사람이었다.

       

       아니, 멜리나가 세상 그 무엇보다 아끼는 사람이었다.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문 멜리나의 눈빛에 여러가지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절망이었고, 분노였으며, 비통함이었고, 동시에 원망이었다. 

       

       서로 상반되는 두 감정이 마음 속에서 마구 뒤치닥거렸다. 

       

       멜리나의 속도가 아까보다 조금 느려졌다.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분노와 원망이 그 원인이었다.

       

       올리비아의 기만, 배신…….

       

       모든 고통의 원인이 올리비아라고, 다 그녀의 탓이라고 누군가가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 반드시 약속할게요. 때가 되면…….

       

       “……아니다.”

       

       멜리나는 보았다.

       

       올리비아의 무수한 과거를 보았다.

       

       그 아이는, 세계를 수천 번도 넘게 구한 아이였다. 

       

       아무런 보상도 없이 영겁을 홀로 싸워온 아이였다.

       

       멜리나는 분노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런 아이를…….’

       

       그런 아이에게 분노를 품게 만드는 누군가를, 그런 아이에게 또 다시 끔찍한 상처를 주려는 누군가를, 멜리나는 도무지 용서할 수 없었다.

       

       아마 자신을 회귀시킨 이유도, 올리비아에게 상처를 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멜리나는 다시 속도를 높였다. 올리비아와 가까워질수록 분노 또한 끓어올랐지만, 멜리나는 견뎌냈다.

       

       행복했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받았던 순간의 기억을 떠올렸다. 

       

       또 다시 생을 반복할 제자에게, 미소 밖에 주지 못했던 과거를 떠올렸다.

       

       그렇게 한 발짝을 나아갈 때마다, 한 개씩 떠올렸다.

       

       마침내, 멜리나는 올리비아 앞에 섰다.

       

       저 여린 몸에서 저렇게 많은 피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멜리나는 처음 알았다.

       

       -두근.

       

       미약하지만 심장이 뛰고 있었다. 아직 살아 있었다.

       

       [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

       

       정신을 잠식하려 드는 분노 속에서, 멜리나는 올리비아를 향해 양 손을 뻗었다.

       

       “……리비야.”

       

       다음 순간, 멜리나는 살포시 올리비아를 안아들었다. 

       

       슈우우우우우!

       

       세상이 아름다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치유의 기운이 한데 응집되더니, 이내 올리비아의 몸 속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상처가 빠르게 아물어갔다. 새파래졌던 피부에 혈색이 돌아왔다. 고통으로 물들어 있던 얼굴이 평온하게 바뀌었다.

       

       이내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잔잔한 미소와 함께 멜리나가 말했다.

       

       “리비야. 다 괜찮을거다. 다 괜찮을거야…….”

       

       멜리나는 올리비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가 입술을 세게 깨무는만큼, 손길 또한 그만큼 부드러워졌다.

       

       짐을 덜어주는 것.

       

       그것이 자신의 역할이었다.

       

       

       

       *

       

       

       *

       

       

       *

       

       

       *

       

       

       *

       

       

       

       이상하게도, 포근했다. 

       

       올리비아는 왜인지 공기가 따뜻해졌다고 느꼈다. 마치 봄날의 그것처럼.

       

       누군가 모닥불이라도 피운 건가? 

       

       의식이 덜 깬 탓인지,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의 올리비아에겐 눈꺼풀을 들어올리는 것조차 버거웠다.

       

       “——.”

       

       주변은 살짝 소란스러웠다. 뭐라고 말하는지 들리지는 않았지만, 무언가 익숙한 목소리라는건 확실했다.

       

       -두근.

       

       올리비아는 심장 박동에 정신을 집중했다. 다행히 아직 살아있는 모양이었다.

       

       “스승……은……괜찮……실까?”

       “우리……걱정……하던……해라.”

       “할당……몇……남?”

       

       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 아직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방금 전보다는 선명하게 들렸다. 몸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신경도 조금씩 돌아왔다. 

       

       근처에서 마력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하나는 뇌전이었고, 다른 하나는 빛이었고, 마지막 하나는 얼음이었다.

       

       올리비아는 그제서야 제가 어디 있는지를 깨달았다.

       

       ‘글레이시아의 레어.’

       

       아무래도 누군가 자신을 여기까지 데려온 모양이었다. 

       

       ‘……그런데 누가?’

       

       제자들은 아닐 것이다. 위치를 알려주지 않았을 뿐더러, 애초에 멜리나를 얼려두었던 장소 자체가 레어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렇다고 사냥꾼이나 모험가들이 척박한 북부까지 왔을리도 없다.

       

       ‘멜리나가 직접 날 데려오지 않는 이상…….’

       

       그 순간이었다.

       

       “일어났느냐?”

       

       한없이 다정한 목소리에, 올리비아는 저도 모르게 눈을 떴다. 그곳에 멜리나가 있었다. 

       

       “이, 일어나셨어요?”

       “괜찮으십니까!”

       

       멀리서 눈치만 보던 제자들이 후다닥 달려왔다. 제자들이 이런 얼굴도 지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올리비아는 처음 알았다.

       

       “……괜찮으실 줄 알고 있었습니다.”

       

       웬일로 예의를 차리는 아라미스였다.

       

       “올리비아.”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올리비아는 그제서야, 멜리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잠시 대화 좀 할 수 있겠느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

    그리고 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 그게 다 날아갈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ㅠㅠ

    ▪︎멸짓수님 5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령월님 1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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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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