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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3

        

         “파라다이스 타워는 완벽한 채광 설계를 자랑하는 하베스트 플래닛처럼. 철저한 검토 아래 완공된 랜드마크로, 그 복층형 구조도 자긍심을 고취시키라는 회장님의 강조에 따라 적용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도움이 되나요?”

         

         “대부분은 ‘자신의 자리가 위치한 층을 올린다.’라는, 명쾌한 목표가 주어졌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이 해괴한 건물은 로비에서 곧바로 고층까지 직행할 수 있는 수단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1층에서 10층으로, 10층에서 20층으로. 한 구역 씩 넘어간 다음 플로어를 가로질러 다른 승강기에 탑승해야 올라갈 수 있었으니.

         소득에 따라 거주지와 활동구획을 갈라놓은 도시 정경과도 일맥상통했다.

         

         또 이게 내가 47층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움찔한 이유 중 하나이다.

         지금도 간간히 외부인이 보이던 첫 엘리베이터 운행 구역을 벗어났다고, 일하는 사무원들의 흥미로운 관심이 느껴지는데 더 높은 층은 어떨지.

         

         …행여나 여기를 허가없이 홀로 역주행해 탈출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자동문이 스르륵 닫히자 방문증도 목에 걸지 않고 들어온 나를 감시하던 시선들이 차단되었다. 위로 향하는 이 좁은 상자에 남은 건 이제 둘뿐.

         그런데 어째 정해진 매뉴얼대로 행동한다기엔 갈수록 던져지는 멘트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었다.

         

         “본사 직원으로 취업하셨을 경우에 받으실 수 있는 생계혜택이나 연금 제도에 관한 안내 데이터가 구비되어 있는데… 사이버웨어로 송부해드릴까요?”

         

         “아뇨, 저는 정말 괜찮….”

         

         “파라다이스에서 보장하는 혜택에는 가족도 이용하실 수 있는 건강 보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약 보험을 이용하실 가족 구성원이 따로 없…으시다면 근무평가에 가산점…이 부여되오니 참고를….”

         

         “…….”

         

         삐질삐질 땀을 흘리면서도 억지미소와 접객 태도를 유지하는 안내원 씨를 지그시 바라봤다.

         40층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이게 도대체 무슨 미친 권고 사항일까?

         

         스스로 얘기하면서도, 위자료를 신청하러 왔다는 사람에게 할 말은 절대 아니라는 건 인지하고 있는지 시시각각 그녀의 성량이 쪼그라들었다.

         

         …아무래도 이 자리에 있는 건 두 명이라는 전제부터가 틀린 모양이다.

         

         착용한 이어폰 건너편에 있는 게 누구인지는 몰라도, 돌려 말하거나 은근하게 제시하는 법을 좀 배우라고 충고해주고 싶었다.

         당장 사원을 늘리긴커녕 불쾌해진 내 눈동자에 함께 탑승한 안내원이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하는 기색이 역력했으니까.

         

         “…47층은 어떤 부서가 있는 층이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어제의 드레이퓨스가 내 거짓 부고에 애도를 표하면서도, 묘한 관계를 정리하고 재구축하고 싶어 했다면… 지금의 방식은 지나치게 적나라했다.

         

         그냥 마구잡이로. 기업의 좋은 면만 강조하면서 입사를 종용한다고?

         우리가 나눴던 대화나 마주봤던 갈등을 떠올려보면 앞뒤가 맞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때로는 정면에서. 통하지 않는다면 가장자리 해자부터 메꾸면서.

         제안에서 협박으로. 그리고 마지막엔 다시 은근한 권유로.

         

         필요하다면 강경책도 서슴치 않지만, 먼저 허를 찔러 교묘하게 마음속부터 완전히 굴복시키려는 방식을 보여주던 그의 색채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신뢰라 칭하기엔 다소 험악한 구도였으나. …그 실력이라 해야 할까, 적어도 일을 꾸미는 수완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45층부터는 파라다이스의 핵심부서와 최고 경영진분들의 사무실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더 자세한 건 정식으로 계약서를 작성하신 후에나 공개 가능한….”

         

         그리고 이 안내원 분은 날 뭐라고, 누구라고 여기시고 이렇게 데려가는 걸까?

         

         “…질문이 잘못됐네요. 도대체 그 간부진 중 어느 분이 저희를 기다리고 계신가요?”

         

         “……?”

         

         어리둥절한 눈초리가 돌아왔다.

         말을 꺼낸 이쪽이 오히려 민망해질 정도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꼭 손님마저 중간에 낀 자기를 괴롭히는 거냐고 온몸으로 하소연하는 것 같아서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전략기획부서실의 미스터 드레이퓨스와 대면 약속이 존재하시는 걸로 조회되었는데… 혹시 제가 뭔가 실수를……?”

         

         “…아무것도 아닙니다.”

         

         심지어 내 의심이 착각에 불과했다니 더더욱 죄책감이…. 아니, 내 코가 석자인데 착각이라면 다행이지.

         

         설마 자신이 위반사항이라도 저질렀나 싶어서 안절부절 못하는 그녀에게는 단순한 재확인이었다고 손사래를 쳐서 진정시켰다.

         

         나라고 딱히 자꾸만 곤란한 상황에 처하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 쓸데없는 걱정으로 심력을 소모하는 건 이제 그만두고 세치 혀와 알량한 기지로 승부할 준비를 해야….

         

         “물론 48층에 계신 미스터 드레이퓨스께 가시기 전에, 47층의 총무부서실장이신 미스터 와이즈맨부터 만나셔야 하지만요.”

         

         “콜록!!”

         

         …취소! 비상!!

         

         어처구니가 없어서 침조차 안 삼켰는데도 갑자기 사레가 들렸다.

         그쪽은 기업 소속이라면, 적어도 사내 파벌 정도는 공부해왔어야 한다고 말해주겠다.

         

         어쩌면 정말 정치 문제의 ‘정’도 모른 채로 회사생활 하는게 본인은 더 안전할 수도 있으나, 그로 인해 나만 엉뚱하게 험한 꼴을 당하게 생겼다.

         

         총무부서실장 미스터 와이즈맨, 풀네임은 아마 빈센트 와이즈맨. 분명 그는 아론 드레이퓨스와 출세경쟁을 하는 대표격 인물 중 하나라고 배웠으니.

         

         아, 씹…!! 아직 내 볼일은 시작조차 못했는데 벌써부터 괜한 분쟁에, 피곤한 일에 휘말린 게 틀림없었다.

         

         “48층으로 바로 가죠?”

         

         “죄송하지만 저도 받은 지시가 있어서 그렇게는….”

         

         내가 해줄 수 있는 양보는 끝났다.

         멍청하게 기다리고만 있다가는 활로가 사라지겠다는 위기감에 마음대로 승강기 버튼을 조작하려 했지만.

         

         쉬이익! 하는 공기 가르는 소리와 동시에 느닷없이 튀어나온 손이 내 팔목을 움켜쥐었다.

         

         “?!”

         

         “미스터 와이즈맨이 반드시 면접 순서를 지켜야 한다고 성화셔서… 제멋대로 행동하시면 곤란합니다.”

         

         과정을 정확하게 본 것도 아니다. 꿈쩍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내 오른팔을 보고 추측했을 뿐이지.

         붙잡힌 부위가 아프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반응해보기도 전에 일방적으로 접촉을 허용했다는 것도 오싹했고.

         

         실상 저 손길이 내 목으로 향했다면 접촉이 아니라 그대로 제압을 당했을 게 뻔했으니, 이건 메가 코프 직원을 어리숙한 품새만 보고 호텔 종업원처럼 여긴 내 실수다.

         

         그러니까….

         

         “…알겠으니, 일단 이 손 좀 풀어주시면 안 될까요…?”

         

         “어머! 제가 큰 실례를!”

         

         이미 도망치기엔 한참 늦은 사람이니까 놔주세요, 제발.

         

         임플란트라는 게 이렇게나 치사한 기술이었구나! 라는 걸 덕분에 아주 확실하게 체감했다. ……앞으로 근거리 전투는 최선을 다해 회피하도록 노력하자.

         

         또각… 또각….

         

         어느새 도착한 47층, 파라다이스의 총무부서로. 선행하는 안내원 씨를 따라 잘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내디뎠다.

         

         계속 피하는 건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찾아왔지만, 막상 물리적인 억압에 대항할 방법이 애매하다는 걸 깨닫고 나니.

         여차하면 본사 시스템이나 데이터베이스를 볼모로 잡고 협박하려던 계획을 일부 변경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위해가 가해질 것 같으면 곧바로 접속되는 모든 곳에 특제 랜섬웨어를 풀어버리는 걸로.

         …이건 악질적인 게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운 자기 방어라고 주장하겠다.

         

         “와이즈맨 총무부서실장님, 아나스타샤 발렌타인 시민님을 모셔왔습니다. 일차면접이 끝나실 때까지 밖에서 대기할까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겠군.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이만 물러가도록.”

         

         정중한 노크 후, 둘의 문답이 끝나자마자 사무실 문이 열렸고.

         안내원은 가벼운 눈인사만을 건네고는 부리나케 떠나버렸다.

         

         받은 자료는 어디까지나 드레이퓨스가 주된 대상이었기에 와이즈맨에 관한 내용은 자세하지 않았다.

         그저 전형적인 상류 계층의 일원이자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는 꼴통이라고만….

         

         “……하층민답게 시간 아까운 줄 모르는군. 어서 입실하도록.”

         

         “후우….”

         

         …일단, 솟구치는 반항심을 잠재우기 위해 심호흡을 추가로 실시했다.

         정보의 신뢰도가 급격하게 치솟았으니 되레 이득.

         

         내가 순순히 명령에 따르는 게 기정사실인 것 마냥 던지는 말본새가 상당히 거슬렸으나, 오히려 이쪽을 낮게 평가하고 있다고 여기자 마음이 좀 편해졌다.

         

         저는 뜬금없이 주시당하기 시작한 일개 시민 겸 용병에 불과합니다… 남다른 점은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그쪽이군. 요즘 미스터 드레이퓨스가 공들여 깔짝거린다던 인간이.”

         

         “…아나스타샤 발렌타인이라고 합니다. 미스터 와이즈맨.”

         

         최악에 근접했던 첫마디만큼이나 그는 인상도 별로였다.

         

         툭 튀어나온 이마와 코, 노화방지시술이 아니라 무슨 보톡스를 맞았는지 어색하게 당겨진 피부.

         

         찾아온 나를 도중에 낚아채 온 걸 보면, 총무부도 전략기획부와 비슷한 수준의 권한이 있는 건 맞을 텐데. 관록은 있어 보여도 그만한 위엄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신호 송수신용 기초 임플란트가 전부? 괴이쩍군.”

         

         “…….”

         

         어쩐지 눈만 이상할 정도로 또렷하다 싶었더니 스캐닝 기능이 있는 의안인 모양인데.

         

         흡사 물건을 품평하듯, 자리에서 일어선 그가 내 주변을 빙빙 돌며 여기저기를 살핀다.

         솔직히 더럽게 거북했지만… 이 인간의 목적을 알 수 없던 나는 원활한 진행을 위해 참아주었거늘. 다짜고짜 지껄이시는 말이 이거다.

         

         “아론 녀석, 주사기 바늘도 안 박힐 것처럼 굴더니… 뒤늦게 여자놀음에 눈이라도 뜬 건가? 애첩을 감추는 솜씨가 너무 형편없어서 실망이 크군. 내가 간섭할 말썽거리조차 아니었어.”

         

         ‘……이 개새끼가?!’

         

         논리는 어렴풋이 알겠다.

         신체개조조차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시민에게 급이 다른 권력자가 맴도니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거겠지.

         물론 그게 초면에 이딴 말을 들어도 된다는 이유로 적절하지는 않았지만.

         

         “송구하지만… 저는 말씀하시는 주제를 따라가기가 어렵….”

         

         “오는 동안 들었던 입사 제의는 잊어버리도록. 이곳에 무가치한 인간이 있을 자리는 없으니.”

         

         “…….”

         

         이런 걸 두고 멸시당했다고 하던가?

         직설적이다 못해 폭언에 근접한 막말의 향연.

         

         결국 나는 분노를 더 참지 않고… 않고…….

        잠깐만, 이게 꼭 화낼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알아서 관심을 거둬준데다가.

       

         그저 부탁받은 대로 찾아온 사람이, 관계자에게 추방당해서 쫓겨났다면 더는 내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지 않을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방심했구나!

    지각해서 늦게 자고, 결국 수면 주기가 더 꼬이는 마법 같은 패턴에 빠진 것 같습니다.

    아마 이번 주말경에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피치 못하게 휴재를 하게 될 것 같으니, 그때까지는 어마무시하게 지각하더라도 일일연재를 지켜보겠습니다.

    항상 재밌게 봐주시고, 추천에 댓글까지 달아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정말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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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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