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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3

    이끼로 덮인 벽에 앉은 졸려 보이는 고양이는 무거워 보이는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하루 종일 돌아다녀서 그런지 쉬지 않고 하품을 계속하는 고양이, 그러면서도 두 눈은 주변을 훑으면서 새로운 모험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임시 캠프는 악명과 달리 겉보기에는 평화롭기만 했다.

    이슬이 달라붙어 반짝이는 물방울을 머금은 들풀, 그 위를 날아다니는 나비.

    “와, 고양이다!”

    그리고 그 들풀이 가득한 들판을 뛰어다니는 가짜 어린이들.

    호의를 표하는 어린애들에게 둘러싸인 고양이는 굉장히 익숙한 표정으로 귀찮아하고 있었다.

    뭐 유령 고양이는 이쁜 하얀 고양이니까, 저런 관심을 많이 받아 봤겠지.

    하지만 지금 고양이에게 호의를 표하면서 포위하고 있는 애들의 손에 포크 같은 게 쥐어져 있다는 건 알고 귀찮아하는 걸까?

    저런 포크로 내리쳐도 유령화를 할 수 있는 고양이에게 상처를 입히진 못 하겠지만, 슬슬 끼어들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담벼락 위에 서서 유령화를 풀며, 고양이를 안아들었다.

    애옹!

    고양이는 깜짝 놀라며 왜 온 거냐고 타박했다.

    ‘왠지 재밌어 보여서 와봤어.’

    애옹.

    피곤한 고양이는 별 관심이 없는지, 애옹 거리고는 내 품에 안겨 고롱거렸다.

    평온한 고양이의 반응.

    반면에, 가짜 어린애들의 반응은 격렬했다.

    후다닥, 거리를 벌리고 겁먹은 표정으로 쳐다봤다.

    천천히, 천천히 슬금슬금 물러서며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별 신경 안 쓰는 것 같이 보이자, 사방으로 흩어져 골목 구석구석으로 숨어들어가 사라져버렸다.

    애옹.

    ‘그러게? 갑자기 도망쳐 버리다니 무슨 일인 걸까?’ 

    고양이를 품에 안고 캠프 안을 뚜방뚜방 걸어 다녔다.

    가판대에 물건을 잔뜩 쌓아두고 호객을 하는 상인.

    정육점 카운터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는 정육점 주인.

    단체로 줄넘기를 뛰고 있는 아이들.

    바둑판을 바라보며 훈수를 두는 할아버지들.

    평온한 일상의 한 때.

    고양이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여기 가짜 인간들은 아닌척하면서 나를 상당히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상하네, 왜 그러는 걸까?

    애옹.

    심심하다고? TV에 나올 정도로 위험한 곳 같지 않다고?

    ‘확실히 여기가 TV에서 말하는 것처럼 흉흉하고 난폭한 ‘사람’들이 많은 곳 같지는 않네.’

    애오옹.

    TV가 너무 과장을 심하게 했다고? 

    원래 TV가 그런 거지 뭐. 

    애옹….

    고양이는 평온한 캠프가 지겨웠는지, 잠 좀 자겠다면서 눈을 감고 고롱거렸다.

    ***

    핏물에 젖은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지하실.

    어둑어둑한 지하실 한 가운데에는 붉게 물든 의자가 어둠과 대비를 이루며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의자에는 거친 밧줄로 묶인 머리 없는 시체가 있었다.

    목 없는 시신은 온갖 종류의 상처가 가득했고, 밧줄이 묶인 곳에는 몸부림을 쳐서 생긴 멍 자국이 가득했다.

    의자의 아래에는 피 웅덩이가 희미한 빛을 반사해 요사스런 빛을 뿜어냈다.

    의자 밑의 피 웅덩이 속에는 녹슨 톱이나, 펜치, 망치 등 고문에 쓰였던 도구들이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다.

    의자 위에 놓인 머리가 으스러진 시체를 바라보며 소장이 말했다.

    “이런, 안타깝게도. ‘이름 없음’이 나타나 버렸군.”

    협회 남자는 고문을 받고, 받고, 또 받다가 결국 편하게 죽기 위해서 소장의 이름을 외치고 죽어버렸다.

    “그러고 보니, 이런 식으로 이름을 들어도 검증을 할 수 없군. 아무 이름이나 붙여도 ‘이름 없음’이 나타나니 진짜 내 이름이었는지 확신할 수가 없어.”

    큭큭큭,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내던 소장은 협회 사람의 시체가 있는 지하실을 떠나며 말했다.

    “그래도, 기생 오브젝트 같은 종류는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졌군.”

    소장이 떠난 격리실 안에는 처참하게 죽은 남자의 시체만이 남겨졌다.

    ***

    부소장실에 있는 커다란 모니터에는 휴게실에서 촬영된 CCTV가 재생되고 있었다.

    화면에 한가득하게 나타나는 것은 황금 사신.

    과자 하나를 품에 안고 천천히 갉아내며 먹고 있는 모습이었다.

    “후, 귀엽긴 하네.”

    약간은 상기된 것 같은 표정의 서아가 노트를 펼치고 뭔가를 잔뜩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황금 사신 분석 보고서.>

    <황금 사신의 특징. – 지식 부족. 인류 애호. 원시 사신.>

    <회색 사신과의 차이점 비교 분석.>

    언젠가는 꼭 분석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보고서였다.

    황금 사신은 갑자기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져서 분석이 힘들었다.

    데이터를 손에 넣기 힘들어서 포기하고 있던 보고서였지만, 이제 그 데이터가 손에 들어왔다.

    48시간 이상 유지되고 있는 황금 사신을 촬영한 영상!

    그 영상에서 확인 할 수 있는 확연한 특징은 하나.

    절대로 인간에게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

    밥을 먹을 때도 인간 근처, 혹은 인간을 붙잡고 있으려고 한다.

    쉴 때는 인간 손바닥 위에 뒹굴뒹굴.

    심심하면 옷을 타고 기어올라 얼굴에 달라붙는다.

    회색 사신과 황금 사신은 유사한 점이 정말 많지만 생각보다 그 차이점도 많아보였다.

    우선 회색 사신은 영상 매체라면 무엇이든 좋아했다.

    특히 뉴스를 틀어두고 딴짓을 자주 하는데, 그렇다고 딴짓할 때 뉴스 말고 다른 걸 틀면 싫어했다.

    반면 황금 사신은 영상 매체에 아예 관심이 없다.

    영상에서 사람이 나와도 아무런 관심이 없다.

    실제 인간이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듯이 말이다.

    인간에 대한 태도도 조금 달랐다.

    둘 다 인간을 좋아한다는 점은  동일.

    하지만 회색 사신은 관심 없는 척하면서 혼자 있는 편을 선호했고, 황금 사신은 관심을 직관적으로 표현했다.

    그래도 그 둘의 행동 원리는 유사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회색 사신보다 황금 사신이 멍청해 보이는데, 이는 경험 부족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였다.

    회색 사신은 보기보다 나이가 많은 게 아닐까? 

    세희 연구소에 격리되기 전까지의 행적이 불분명한 것만 봐도 그럴 확률이 높아 보였다.

    그래서 나온 결론은 하나.

    <회색 사신과 황금 사신의 행동 원리에 차이는 없다.>

    <황금 사신은 오히려 경험이 적은 아기 회색 사신에 가깝다.>

    <황금 사신에 대한 분석을 계속하면 특급 위험도의 오브젝트인 회색 사신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니, 황금 사신에 대한 분석을 게을리 하지 말 것!>

    ***

    갑자기 나타난 우리들을 미심쩍게 생각하던 캠프 민들이었지만, 의뢰인의 안내로 놀러 온 친구들이라고 소개하니 순식간에 녹아들 수 있었다.

    질문 공세를 퍼붓는 의뢰인의 가짜 남동생과 쩔쩔매는 의뢰인.

    의뢰인은 뭔가 이상하다며 의뢰했지만, 아직 뭐가 이상한지는 감이 잘 안 오는군.

    “누나, 왜 어제는 갑자기 가버렸어?”

    “그… 글쎄?”

    의뢰인은 상당히 평판이 좋은지, 지나가는 사람마다 공터에 합류해서 반겨주고 있었다.

    허름한 건물 앞 공터에는 그렇게 점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는데, 아무도 의뢰인의 이름을 말하지 않아서 조금 이상했다.

    이상한데… 어디 한번 물어나 볼까?

    “오래 전부터 친하게 알고 지내셨나 보네요?”

    의뢰인과 어려서부터 알던 사이라는 정육점 주인에게 말을 붙였다.

    “어, 그럼. 친하지. 어렸을 때부터 계속 봤는데! 특히 우리 캠프가 조금 좁고 불편해도 서로 의지하고 보탬이 돼서 살기엔 괜찮아.”

    그러면서 의뢰인과 있었던 추억들을 이야기하는데, 무려 의뢰인이 아기였을 때부터 거슬러가서 이야기가 시작됐다.

    “유리야! 이리 좀 와봐라. 이 아저씨가 내 이야기를 도무지 믿지를 않네!”

    이야기를 듣다가, 자연스럽게 의뢰인의 이름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유리? 

    내가 들은 의뢰인 이름은 ‘수아’였던 것 같은데….

    여전히 안색이 좋지 못한 의뢰인은 정육점 아저씨의 부름에 다가와서 그저 웃고만 있었다.

    “선배. 의뢰인 이름이 수아 아니었어요?”

    “수아였지.”

    “그럼 지금 상황은 뭐죠?”

    “뭐긴 뭐야, 오브젝트가 관련된 골치 아픈 상황이지.”

    확실히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한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단 말이지.

    캠프에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태양이 지평선 근처로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의뢰인을 위한 간소한 환영식을 한다던데, 하는 준비를 보니 상당히 거창한 축제 준비로 보였다.

    공터 한가운데에는 통나무 더미를 쌓아올린 캠프파이어가 타올랐다.

    불 주변에는 숯불 그릴이 설치되어 양념 고기 꼬치나 야채, 소시지 등을 굽기 시작했다.

    의뢰인 주변에는 사람들이 넘쳤고, 즐거운 분위기가 풍겼다.

    “선배, 뭔가 수상하지 않아요?” 

    후배 1호가 닭꼬치 8개를 손가락마다 끼운 채 물었다.

    “뭐가 수상한데?”

    “의뢰인이 수상해요. 아무리 살펴봐도 캠프는 문제가 없는 건 명확해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캠프에 문제가 없는데, 의뢰인은 캠프가 이상하다고 한단 말이죠. 그럼, 반대로 의뢰인이 미친 게 아닐까요? 그래서 멀쩡한 동생을 찾아달라고 의뢰한 거 아닐까요?”

    닭꼬치를 냠냠 먹으면서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단언하는 후배 1호.

    “제 추리가 어때요? 이번에는 완벽하죠?”

    “그럴듯하긴 한데, 내 감은 캠프 쪽이 더 이상하다고 한단 말이지.”

    품속의 리볼버를 만지작거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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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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