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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3

       “미약하지만 네게도 영물의 격이 느껴지니, 인간의 언어로 소통하는 게 편하겠지.”

         

        충격적인 뱀 여왕의 모습에 잠시 눈을 가렸다.

         

        신화 속에 나오는 라미아가 생각나는 비주얼이었다.

         

        하반신은 뱀의 몸체를 하고 있으나, 상반신은 아리따운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고 인간의 언어로 말을 할 수 있었다.

         

        다른 건 다 둘째 치고, 저 상반신의 모습이 날 어지럽게 만든다.

         

        감히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다.

         

        뱀이 옷을 입을 리가 없긴 하다.

         

        정말 최소한의 부분만을 가리는 비늘을 제외하고선, 바실리스크는 아무런 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압도적인 크기의 내공 주머니.

         

        솔직히 입을 벌리고 침을 뚝뚝 흘리면서 감상하기에 한 치 부족함 없는 절경이었다.

         

        하지만 하나 걸리는 게 있었다.

         

        바실리스크의 얼굴이 백연영을 닮았다는 것.

         

        완전히 똑같진 않지만 어쩐지 느낌이 비슷했다.

         

        내 스승과 비슷한 얼굴로 저런 복장을 하고 있으니 내 마음이 심란해지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닐 거다.

         

        “히에에엑!”

         

        내가 멍하니 바실리스크를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파이톤이 앙하고 날 물었다.

         

        그리 아프진 않지만….

         

        가만, 좀 아픈 거 같기도 하고?

         

        “게게겍!”

         

        깜짝 놀라 겍겍소리를 내었다.

         

        왜 쉭쉭이의 이빨이 아프지?

         

        투스 푸스의 몸통 박치기가 아프다고 엄살 피운 당소영의 기분이 이런 거였나?

         

        [【볼파이톤 LV14】 정신 차리라고 합니다.]

         

        맞다.

         

        고맙다, 복덩아.

         

        내가 멍하니 있던 걸 보면 저 바실리스크가 무슨 수작을 부렸던 게 틀림없었다.

         

        저 내공 주머니로 날 현혹하려고 한 거 같은데, 어림도 없지.

         

        “배 아파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딸처럼 여긴 아이다. 내게도 보인 적 없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니, 뭐라고 해야 할까. 그래. 심란하다는 말이 맞겠구나.”

         

        뱀 여왕은 나와 파이톤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친딸이 아니었던 건가?

         

        하긴, 바실리스크의 새끼가 저런 귀여운 볼파이톤이 나올 수가 없지.

         

        “다리 달린 뱀이여.”

         

        뱀 여왕이 나를 향해 질문을 했다.

         

        “너는 용을 뱀이라 생각하느냐, 새라 생각하느냐?”

         

        새의 왕이 했던 것과 같은 질문이었다.

         

        답은 너무나 쉬웠다.

         

        “게게겍!”

         

        당연히 공룡은 파충류다.

         

        하지만 뱀 여왕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할 터.

         

        열심히 몸을 꾸물거리면서 뱀과 같은 동작을 취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

         

        내 뜻을 알아들은 걸까.

         

        몸을 꼼지락거리던 걸 멈췄다.

         

        “흐음. 그래. 얼핏 느껴지는 새의 기운. 그 녀석을 만나고, 도망친 게로구나.”

        “게겍!”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난 공룡 파충류설의 열성 지지자라고.

         

        “오랜만에 심지가 굳은 자를 만났구나.”

         

        이야기의 흐름이 좋다.

         

        이대로 아무 문제 없이 이곳에서 나갈 수도 있는 거다.

         

        “하지만 그거 하나만 보고 자네를 내보낼 순 없지.”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뱀 여왕.

         

        “뱀 여왕의 사원에 허락없이 들어온 자는 이유가 어떻든 죽인다.”

         

        파이톤을 꽉 껴안았다.

         

        쉭쉭아.

         

        파괴광선 한 번만 더 쏴줘.

         

        “하지만 내 딸아이가 자네를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하니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구나.”

         

        그래.

         

        날 죽이면 파이톤이 원망할걸?

         

        “사원을 침입한 건 눈감아줄 수 있도다. 하지만, 너의 죄는 그것 이상이다.”

         

        내 죄?

         

        파이톤을 꼬신 게 죄라면 달게 받겠다.

         

        하지만 그게 죽을죄는 아니잖아.

         

        “만년금령지과를 먹은 건 도저히 용서치 못하겠구나.”

         

        맞다.

         

        내가 이곳에서 빼먹은 영약.

         

        만년금령지과.

         

        파이톤이 이 영약에 대해 잘 알고 있던 걸 보면, 분명 이 영약의 주인은 저 뱀의 여왕일 것이다.

         

        나는 그걸 홀라당 먹은 셈이 되었고.

         

        공청석유에 버금가는 영약을 훔쳐먹었으니 내 죄는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먹어버렸는걸.

         

        조금 양심 없는 말이지만, 저 수준의 영물에게는 영약 한두 개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거다. 먹어봤자 효과를 보기 힘들다는 거다.

         

        그에 비해, 앞길이 창창한 이 도마뱀이 먹는 게 대국적으로 이득 아닐까?

         

        “내가 먹을 영약이었다면 조금 아쉽긴 해도 자네를 보내줬을 거다. 그러나 그 영약은 나의 것이 아니라, 내 딸이 장성했을 때 주려고 놔둔 것이다.”

         

        잠깐만.

         

        만년금령지과는 원래 쉭쉭이가 먹을 예정이었다고?

         

        “삐약!”

         

        내게 머리를 마구 비비는 쉭쉭이.

         

        그럼 이 작은 뱀은 날 위해서 자기가 먹을 걸 갖다준 거야?

         

        “다음 대의 여왕이 되기 위해선 영약으로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게 필수적이다.”

         

        그럴 것이다.

         

        볼파이톤의 정체는 뱀 공주.

         

        지금의 쉭쉭이가 여왕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되진 않는다.

         

        더욱더 많은 힘을 쌓아야 겨우 여왕의 자리에 오를 것이다.

         

        “해결책은 원래 하나였다. 만년금령지과를 먹은 도둑을 제거한 후, 내단을 꺼내 공주에게 먹이는 것.”

        “사아아악!”

         

        파이톤이 무서운 표정으로 여왕을 노려봤다.

         

        그녀의 눈빛에 잠깐 움찔한 여왕이지만, 이내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다른 방법을 봤다.”

         

        다른 방법?

         

        “공주의 힘이 갑자기 강해졌다. 만년금령지과를 먹지 않았는데 말이야.”

         

        맞다.

         

        파이톤의 입에서 쏘아지는 광선의 출력이 전보다 많이 강해졌다.

         

        어쩐지 작은 이빨로 날 무는 것도 아파졌고.

         

        영약을 먹은 것도 아닌데, 대체 왜 이렇게….

         

        가만.

         

        이 파이톤이 먹은 게 따로 있잖아.

         

        내 꼬리.

         

        “공주에게서 자네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진다. 보잘것없는 신앙이라지만, 내 딸을 성장시켰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일이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꼬리가 마치 영약과 같이 작용한 거 같다.

         

        워낙 귀한 걸 많이 먹고 자라서 그런가?

         

        아니, 그러면 너무 사기 아니야?

         

        내 꼬리는 계속 재생되는데?

         

        “석화의 광선을 맞고도 아무런 문제가 없기도 하고, 공주도 너를 따른다. 만년금령지과를 훔쳐 먹었지만, 다행히 공주의 성장이 이뤄지고 있다. 너의 죽음을 유예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환호의 게겍소리를 내려다가 멈췄다.

         

        유예요?

         

        “하지만 죗값은 치러야겠지. 나의 부탁 하나를 들어준다면, 너의 만행을 못 본 척해주겠도다.”

         

        부탁?

         

        뱀 여왕씩이나 되는 사람이 평범한 도마뱀에게 부탁할 게 있을까?

         

        “그걸 말하기 전에…. 이제 내 딸을 돌려줬으면 좋겠는데.”

        “게겍!”

         

        안된다.

         

        내 몸을 지킬 유일한 수단이 이 파이톤인데.

         

        “공주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니라. 공주의 안에 들어 있는 알 수 없는 기운. 그 기운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기 위함이다. …좋다. 뱀 여왕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겠노라. 적어도 이 사원 안에선 자네를 해치지 않겠다고.”

         

        그러면 밖에서는요?

         

        수상할 정도로 수상한 맹세지만 내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삐야아악!”

         

        하지만 파이톤은 내게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장하다 우리 쉭쉭이.

         

        “…공주여. 어미의 품으로 오거라.”

         

        뱀 여왕이 아무리 말해도 파이톤은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뱀 여왕보다 내가 좋다.

         

        이 뜻일 거다.

         

        어쩔 수 없다.

         

        파이톤이 가기 싫다는데 내가 억지로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자네가 가까이 오거라.”

         

        내가?

         

        그건 아니지.

         

        갔다가 무슨 꼴을 당할 줄 알고.

         

        난 전적으로 우리 공주님을 지지한다.

         

       

       “빨리 오거라.”

         

        나 참.

         

        내가 저런 수작에 넘어갈 거 같아?

         

        “그래. 말 잘 듣는 아이구나.”

         

        응?

         

        어느샌가 내 눈앞에 내공 주머니가 있었다.

         

        …뭐지?

         

        그래. 이건 현혹이다.

         

        석화의 힘이 있듯이, 매혹이나 현혹의 힘이 있는 게 분명하다.

         

        무시무시한 능력이군.

         

        이 내가 당할 정도니까.

         

        “삐야아악!”

         

        파이톤이 헛소리하지 말라는 듯이 날 마구 물어댔다.

         

        …오해야.

         

        난 그냥 모녀 상봉을 위해 희생한 거뿐이라고.

         

        어차피 뱀 여왕을 적대해선 좋을 거 없을 거다.

         

        절충안을 찾아야지.

         

        이해해줘, 쉭쉭아.

         

        어머니랑 친하게 지내는 거 좋을 거야.

         

        “호오. 그래 몸 안에 이런 게 있었단 말이지….”

         

        뱀 여왕은 내 앞에 있는 파이톤을 한참이나 들여다봤다.

         

        나도 어쩔 수 없이 뱀 여왕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갑자기 허튼수작을 부릴 수도 있으니 대비를 하는 것이다.

         

        절대 사심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자네. 내 딸에게 신체의 일부를 먹인 게로구나.”

        “게겍.”

         

        긍정의 끄덕임을 했다.

         

        “무한히 자라나는 꼬리에서 이 정도 성력이 느껴지다니. 보잘것없는 신앙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수준이 높구나. 물론 여러 가지 제한이 있긴 하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합격이다.”

         

        그래.

         

        이제 내 가치를 알겠지?

         

        우리가 서로 싸워서 좋을 건 없어.

         

        “꽤나 맛있겠어.”

         

        파충류 특유의 세로 동공이 번들거렸다.

         

        인간의 팔이 내 등을 껴안듯이 잡았고 뱀의 몸이 내 몸체를 휘감았다.

         

        꾸드드드득.

         

        느린 움직임이었지만, 저항할 수가 없었다.

         

        “삐야아악!”

         

        깜짝 놀란 파이톤이 뱀 여왕의 몸을 마구 물어뜯었지만, 효과가 없었다.

         

        “꼬리가 이 정도라면, 다른 건 어떨까.”

         

        긴 혀를 날름거리는 뱀 여왕.

         

        표정이 몹시 이상했다.

         

        어딘가 야릇해 보이는, 혹은 식욕이 해소되는 걸 기대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히에에엑!”

         

        내공 주머니가 내 얼굴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스르륵.

         

        몸에 힘이 점점 빠진다.

         

        뱀 여왕의 손길과 꼬리의 움직임은 정말로 뱀과 같아, 어딘가 붕 뜨는 기분이 들었다.

         

        눈이 곧 감길 거 같은 노곤한 기분.

         

        과연 바실리스크.

         

        고작 몸을 몇 번 만졌다고 백독불침을 뚫어버리다니.

         

        이대로 당할 순 없다.

       

       생각해라.

       

       푸스의 엉덩이를 때릴 때 느낀 감각을.

       

       투스가 내 꼬리를 물 때 느낀 감각을.

       

       네필라 쥐라시카가 날 껴안을 때 느낀 감각을.

       

       당소영이 내 독을 빼갈 때 느낀 감각을.

       

       백연영이 내 비늘을 뽑을 때 느낀 감각을.

       

       그리고 내가 목도한 심마를.

         

        반쯤 감긴 눈을 부릅떴다.

         

        뱀 여왕과 시선을 마주쳤다.

         

        “그르르르….”

         

        뱀 여왕은 의외라는듯한 표정을 짓더니, 날 묶어둔 팔과 꼬리를 풀었다.

         

        “우후훗. 장난이도다. 장난.”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처음의 자세로 돌아간 뱀 여왕.

         

        “딸아이가 침 발라둔 걸 내가 어찌 건들겠나.”

         

        파이톤은 내 몸을 마구 핥아댔다.

         

        고마워, 쉭쉭아.

         

        네가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잡아먹혔을 거야.

         

        …그런데 인간의 몸으로 날 잡아먹을 수 있나?

         

        어떻게 먹는다는 거지?

         

        뱀 여왕은 내 반응이 재밌다는 듯이 턱을 괴고 살짝 웃었다.

         

        “궁금한 게 생긴 모양이구나. 호기심을 풀고 싶다면, 공주 몰래 한 번 찾아와 보거라. 오는 걸 막진 않을 테니.”

        “삐야아아아악!”

         

        영거리에서 발사된 쉭쉭데스빔.

         

        하지만 뱀 여왕의 살갗을 뚫진 못했다.

         

        뱀 여왕은 그런 딸의 반응이 재밌다는 듯이 한참이나 웃었다.

         

        “이렇게 웃은 게 얼마 만인지. 응. 좋구나. 식욕을 잊을 정도로 재밌어.”

         

        뭔진 몰라도 식욕을 잊을 정도면 좋은 거겠지?

         

        “공주여. 안심하거라. 농이었다, 농.”

        “삐야아악!”

        “물론 성장이 시원치 않다면 이 어미가 꿀꺽 삼킬 수도 있겠지만.”

        “히에에에에엑!”

         

        [【볼파이톤 lv14】이 의욕을 불태웁니다.]

         

        과연 뱀 여왕.

         

        공주에게 동기 부여를 하기 위해 이런 짓을 한 거구나.

         

        …동기 부여하려고 하는 거 맞지?

         

        “유희는 이 정도면 되겠지. 다리 달린 뱀이여. 이제 일 이야기를 하자꾸나.”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진화하는 도마뱀이 되었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reincarnated as a lizard in a martial arts world. “Roar!” “He’s using the lion’s roar!” “To deflect the Ten-Star Power Plum Blossom Sword Technique! Truly indestructible as they say!” “This is… the Heavenly Demon Overlord Technique! It’s a Heavenly Demon, the Heavenly Demon has appeared!” It seems they’re mistaking me for something e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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