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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3

       학기평가가 시작되면 뜻밖에도 호황을 누리는 업계는 다름 아닌 채석장이었다.

       학기 시험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는 [바위 트롤과의 승부].

         

       이 때문에 채석장에서 캐낸 질 좋은 대리석이나 단단한 암석 등을 학술원에서 대량으로 구매해주는 것이었다.

         

       허나 채석장을 관리하는 귀족이나 상단주가 호황을 누릴 뿐.

       그 밑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경우는 전혀 호황이 아니었다.

       도리어 과로가 심해지는 시기였지.

       

       콰앙! 콰아앙!

         

       마땅한 채석 장비조차 없는 얄팍한 시설.

       있는 거라곤 곡괭이와 거대한 해머, 대못 등이 자리를 차지할 뿐이었다.

         

       산을 깎아내어 드러나 거대한 돌산을 채석꾼들이 쉴 틈 없이 두들기고 있었다.

         

       “순서대로 두들겨! 자세 흐트러지지 말고!”

         

       “이 멍청한 새끼야! 얼타지 마! 이 씨…!”

         

       “긴장 풀지 마, 잘못하면 목 분질러진다!”

         

       고성 섞인 일갈이 난무한다.

       한 번의 실수로 목숨이 위험해지는 직종들의 경우 아무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그래도 이것도 거대한 바위를 온전한 형태로 캐내야 했기에 예민할 뿐이지, 평소엔 그들도 나쁜 이들은 아니었다.

         

       그저 돈을 벌어야 하고, 목숨도 소중하기에 일할 때만큼은 과격할 뿐.

         

       그러던 도중.

         

       파직!

         

       “이 멍청한 새끼가!”

         

       오늘 신입으로 들어온 일꾼 하나가 기어이 사고를 쳤다.

       결을 잘못 쳐서 전체적으로 돌산 일부에 균열이 일어났고, 그 균열이 점차 커져갔다.

         

       쩌저적-!

         

       “어, 어어?!”

       “머저리처럼 어버버 거리지 말고, 대피해 이 머저리들아!!”

         

       입이 걸걸한 작업반장의 호통소리.

       한 번의 실수로도 큰 사고가 일어나기에 매뉴얼이 있기 마련이었고, 무작정 안전한 곳까지 도망가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매뉴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다급히 모두가 줄행랑을 칠 때.

         

       “자, 잠시만…!”

         

       초보 일꾼 하나가 다리가 굳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다리 힘이 풀린 것이리라.

         

       “구스…!”

         

       일꾼의 이름을 부르며 어느 동료가 다급히 도와주려 했지만, 이미 타이밍은 늦은 바.

         

       콰과과광!

         

       균열이 일어난 바위만한 암석들이 연달아 추락했다.

         

       낙석 사태와 같은 재해 앞에 인간은 한없이 무력해지는 법.

         

       사람들은 창백해진 얼굴로 오늘 사람 한 명이 한줌의 핏덩이가 되겠구나 싶었으나.

         

       덥석!

         

       한 사람이 일꾼의 목덜미를 잡아채며 그대로 낙석을 피해냈다.

         

       “…어?”

       “정신 차려 이 양반아. 언제까지 얼타고 있을래.”

       “…….”

       “당신은 이 일에 영 안 맞네. 다른 일을 찾아봐.”

       “…가,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도 너무 늦고.”

       “…예에.”

         

       일꾼은 저를 구해준 남자의 조언에 느릿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말대로 체질이 아닌 건 맞는 듯해서.

         

       * * *

         

       “로한 씨! 정말 고마워요, 당신 아니었으면 송장 하나 치웠을 거야.”

       “송장은 무슨, 송장도 못 건졌겠지.”

       “거 재수 없는 말 좀 그만하지?”

         

       “고마우면 수당이나 더 챙겨주든가.”

         

       일꾼 로한은 퉁명스레 대꾸하며 묵묵히 다시 진행되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토록 큰 낙석 사고가 있었는데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다시 일이 시작되다니.

       이 광경도 어찌 보면 공포였으나, 노동자들은 그러려니 했다.

       사고가 있긴 했지만, 그래봤자 불의의 사고였을 뿐.

       노조는커녕 노동자 인권마저 없는 세상에서 사고 좀 났다고 누가 걱정이나 해줄까.

         

       솔직히 이런 사고는 일상다반사와 같았고, 도리어 떨어진 다량의 암석들 덕분에 일이 빠르게 끝날 것 같다며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다면 믿겠는가?

         

       “알지, 내가 위에 말해서 더 챙겨줄게. 어차피 사고 친 놈 노동비는 안 줘도 되니까, 당신한테 다 몰아주지, 뭐.”

       “그건 확실히 괜찮은 감사의 표시군.”

         

       캉! 콰직!

         

       “…이야, 솜씨가 제법인데? 혹시 다른 곳에서도 일 좀 했어?”

         

       반장은 일꾼 로한에게 주목하던 중, 그의 솜씨를 목격하고 감탄을 연발했다.

       그 정도로 솜씨가 범상치 않았기에.

         

       “그냥, 이곳저곳에서 쌓은 경험이 있는 거지.”

       “허허, 경력자셨구먼, 그것도 아주 훌륭한!”

         

       채석 작업의 본격적인 시작은 암석 등을 마차 등에 실을 수 있도록 다듬는 데 있었다.

       아무래도 너무 무거운 건 옮기지도 못하니까.

       그리고 암석을 다듬는 도구는 오직 곡괭이 하나만 주어질 뿐, 다른 도구는 그다지 없었다.

       하여 오로지 숙련된 작업자의 힘과 기술 등이 필요했고, 항시 목숨 등이 위험한 채석장에서 실력 좋은 베테랑은 귀한 인력이었다.

         

       ‘보통 녀석이 아니야, 저 일정한 타격을 보게?’

         

       콰직! 콰지직!

         

       곡괭이가 지나갈 때마다 암석이 다듬어진다.

       마냥 힘이 좋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요령과 기술이 필요한 솜씨였음이다.

       훌륭하다!

         

       ‘돈을 좀 더 주는 한이 있더라도 스카우트 해야겠어!’

         

       인재난은 어느 업계나 있었으니.

         

       작업반장은 눈을 빛냈다.

         

         

         

         

       ‘…서글퍼 죽겠군, 이상하게 아저씨들만 날 너무 좋아해.’

         

       돌을 다듬는 일꾼 로한.

       아니, 잠시지만 개명을 하고 채석꾼이 된 일꾼 기사는 떨떠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뒤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시선의 주인을 확인하니 서글픔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어느 태창이 놈은 미인 귀족 영애한테 저런 강렬한 시선을 받던데, 나란 놈이 받는 거라곤….

         

       ‘놀 같다, 염병.’

         

       욕지기가 치밀어 오르는 그였지만, 그는 묵묵히 채석 작업에 열중했다.

         

       입에는 채석가루 등을 막기 위한 두터운 마스크를 쓴 채 연신 곡괭이질을 하는 것이었다.

         

       “후우욱! 후우욱!”

         

       숨 쉬기가 버겁다.

       마스크 자체가 특수제작된 것으로, 채석가루와 미세먼지 등을 99.9% 확률로 막아주지만, 대신 빌어먹게 숨 쉬기 힘들다는 연금술사 상인의 말이 사실이었던 모양.

         

       그래서인지 격하게 몸을 움직일수록 평소보다 체력의 소비가 빨라진다.

         

       허나 그는 이 빌어먹을 마스크가 더할 나위 없게 만족스러웠다.

         

       이쯤 해야 한계를 느끼기 좋으니까.

         

       카앙! 카아앙!!

         

       ‘빌어먹게 단단하네!’

         

       다른 돌보다 유난히 더욱 단단한 돌을 깨려고 하니, 손이 다 울린다.

       작업반장은 그가 마냥 쉽게 돌을 깨는 것처럼 보일 테지만, 전혀 쉽지 않았다.

         

       곡괭이질이란 건 원래 하면 할수록 더욱 체력을 뺏어가는 것이며, 특히 단단한 것을 깰수록 몸에는 충격이 전해지는 바.

         

       그런 뜻에서 남들의 다섯 배 넘게 돌 깨기를 진행 중인 몸은 금세 한계를 느끼는 중이었다.

         

       혹사당하는 손목과 팔목에서 올라오는 통증.

       부상이 언제 발생할지 모를 신호였다.

         

       평소였다면 이런 신호도 대수롭지 않겠지만, 지금만큼은 무척 고단했고 정신이 아득해져만 갔다.

         

       아무리 회복력이 좋아도 한계란 놈이 있는 것이기에.

         

       ‘역시 하루 18시간 훈련은 고문이네.’

         

       그는 벌써 여드레란 기간 동안 온종일 지금과 같은 페이스로 훈련에 몰두하는 중이었다.

         

       일어나자마 러닝 두 시간.

       통나무 등에 지고 절벽 오르기 세 시간.

       무기술 연마 다섯 시간.

       틈틈이 밥을 먹으며 일곱 끼 이상을 챙겨먹고 쪽잠.

         

       그리고 남은 시간에는 온전히 다 채석장에 썼으니.

       조금의 휴식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고, 그는 슬슬 정신이나 체력이나 바닥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육체가 가진 타고난 재생력만 믿고 버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게 8일이 넘어가자 슬슬 바닥을 드러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

         

       카아앙! 캉!!

         

       허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도리어 더 힘차게, 더 강하게 돌을 때렸고, 깨트리길 반복했지!

         

       불끈!

         

       힘을 죄이는 요령은 이미 안다고 생각했으나, 시도하면 시도록할수록 새로운 감각이 온몸에서 곤두선다.

         

       힘의 이동과 흐름, 그리고 집중과 체화(體化).

       반복 숙달할수록 이러한 체화는 더욱 깊어지고 진해진다.

         

       아마 오로지 자신만이 가능한 훈련법이리라.

       특별한 체질과 함께 이러한 과정을 수년 동안 반복한 그만이 할 수 있는.

         

       그리고 어느 순간…!

         

       ‘보인다.’

         

       내 바닥이.

         

       일꾼 로한은, 아니 기사 이한은 집중했다.

         

       지금 이 순간, 자기 바닥이 보이는 이때가 기로였으니까.

         

       성장이 될지, 아니면 퇴보가 될지 모르는 갈림길.

         

       화아아악!

         

       ‘왔다!’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자신이 기다리던, 어떤 전사의 경우 평생 한 번만 겪어도 행운 취급하는 ‘그것’이 찾아왔음을…!

         

       몰아(沒我)의 상태.

       혹은 무아지경.

         

       스스로를 극한까지 몰아붙여 강제로 일으킨 상태였다.

         

       이한은 나라는 존재와 몸이 움직이는 행위마저 잊고 마냥 곡괭이를 휘둘렀다.

         

       이제 이한조차 결과를 모른다.

       이 강제로 일으킨 몰아의 상태가 그를 어떠한 길로 인도할지.

         

       그러나 이한은 스스로를 믿었다.

         

       그동안 노력하며, 오로지 자신이 목표했던 바를 이루기 위해 한계까지 내몬 자신의 노력을, 세월을 믿는 것이었다.

         

       쿠웅!

         

       카앙!

         

       콰직!

         

       반복되는 동작들.

       아니, 동작마저 잊으며, 눈의 초점이 사라진 채, 오로지 몸을 관조하는 데만 쓰이는 현재.

         

       이한의 몸속 내부에서 자그마한, 아주 사소한 변화가 일어났다.

         

       우우웅-!

         

       미세한, 아니 미세하게 일어난 흐름의 변화.

         

       그리고 그것은.

         

       서걱!!

         

       ─최상의 결과를 이루어냈다.

         

       “……아.”

         

       뒤늦게 초점이 풀렸던 동공이 다시 정상화하며 이한은 한차례 다리 힘이 풀릴 뻔했다.

         

       “이봐, 로한 형씨. 적당히 해, 너무 무리하다 골로 가는 수가 있어.”

       “…내가 얼마나 이러고 있었습니까?”

       “응? 한 1분도 안 지났는데?”

       “1분….”

       “지, 진짜 뭐 문제 있는 거 아니지? 지, 지금이라도 돌아갈래?”

       “…….”

         

       귀중한 에이스가 몸이 상할까 전전긍긍하는 작업반장이었고, 반대로 이한은 자기가 해낸 결과를 보았다.

         

       ‘…그래도 도전해본 가치는 있었던 건가.’

         

       그가 내려쳤던 암석.

       분명 단단하기 그지없었고, 지금까진 그저 깨트리는 수밖에 없던 것이었다.

       한데 지금.

         

       “어라? 이거 돌 단면이 왜 이래, 이거?”

       “로한 형씨, 이거 어떻게 한 거야?”

         

       “…그냥, 뭐.”

         

       곡괭이는 암석을 깨는 것이 아닌 나무 장작을 패듯 깔끔하게 여러 갈래로 갈라내었고, 이를 확인하며 이한은.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네요.”

         

       마냥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을 주었다.

         

         

         

       학기평가 12일차의 밤.

         

       만약을 대비한, 본인만의 ‘벌크업’을 끝낸 기사였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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