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63

   검을 한 손에 든 채 날 바라보는 프레이의 눈빛은 무심하다.

   

   <너와 싸우는 광경을 상상하고 있구나.>

   ‘그걸 어떻게 알아요?’

   <몸이 움찔거리고 있지 않으냐. 저걸 보면 대충 예상할 수 있지.>

   

   그러니까 싸움에 앞서서 쉐도우 복싱을 하고 있단 거죠?

   

   할배는 몸이 움찔거리는 것만으로 그걸 예상한 거고.

   

   할배는 대체 생전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던 걸까.

   

   어마어마한 사람이니 영웅이라 불린 거겠지만 지금의 나로는 짐작도 안 되네.

   

   그런 생각을 하며 방패와 메이스를 치켜들었다.

   

   신성으로 방패를 만들 수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실물로 존재하는 방패를 쥐는 게 마음이 편하다니까.

   

   “양 쪽. 준비 되셨습니까?”

   

   ‘네.’

   “그래. 허접 교수.”

   

   “응. 나도.”

   

   어느 쪽이건 교수에게 사용하는 어휘치고 무례했지만 안톤은 그저 웃을 따름이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안톤이 선언을 하자마자 프레이가 발을 움직였다.

   

   그를 본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빠르다는 것이었다.

   

   분명 둘 사이의 거리가 꽤 벌어져 있었는데 프레이가 발을 한 걸음 내딛자마자 거리가 좁혀진 것이다.

   

   어지간한 사람이었다면 이 속도에 반응하지도 못한 채 발렸겠는데?!

   

   하지만 나는 아냐!

   

   이 정도 속도라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어.

   

   차기 검성이니 뭐니 하지만 결국 아카데미의 1학년이잖아!

   

   현직에서 일을 하는 포셀과 칼을 상대로 대련을 하던 내 입장에서는 이까짓 거 별 거 아니거든!

   

   방패를 움직여 검을 튕겨냈지만 아직 메이스를 휘두를 때는 아니었다.

   

   이빨을 내밀기엔 물 바깥에 있는 사냥감의 움직임이 거셌으니까.

   

   “풋♡ 허접 검사♡ 이런 허접한 공격으로 방패에 흠집이나 낼 수 있겠어?♡”

   

   도발을 건 순간 프레이가 입술을 끌어 올렸다.

   

   얘 왜 웃는 거야?

   

   프레이는 감정이 부족한 사람인 거지 마조히스트는 아닐 텐데?

   

   그런 의문이 머릿속에 차오른 순간 메스가키 스킬의 고양감이 내게 대답을 해주었다.

   

   겉으로 웃는 체를 할 뿐 사실 화가 났다는 사실을.

   

   뭐야. 놀랐잖아.

   

   점차 기세를 더하는 공격을 본 나는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방패를 치켜들었다.

   

   자. 더 가까이 와라. 물속으로 발을 내딛어라. 호기심에 수면을 바라본 순간이야말로 내 이빨에 잡아먹히는 순간일 테니까.

   

   *

   

   프레이는 자신의 가슴 속 어딘가가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건 도대체 뭘까?

   

   프레이는 단 한 번도 이런 것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화가 났다는 사실은 인지하지 못했다.

   

   자신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다는 것도.

   

   그저 화끈거리는 느낌이 신기하다고 생각을 할 뿐이었다.

   

   “허접 검사♡ 아주 여유가 넘치네?♡”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메이스를 다급히 쳐낸 프레이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저기.”

   “뭐야. 허접 검사♡ 패배 선언이라도 하려고?♡”

   “네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화끈거리는 데 이게 뭘까?”

   

   프레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음을 던지자 루시는 잠시 눈을 크게 떴다가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가볍게 웃더니 프레이의 물음에 답을 해줬다.

   

   “화가 난 거잖아. 허접 검사.”

   “화?”

   “그래.”

   

   화가 난 거야? 내가?

   

   프레이는 눈을 끔뻑거리다가 눈을 감고서 자신의 안에서 휘몰아치는 감정에 집중했다.

   

   머리를 향해 혈류가 오르고 있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등줄기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는 느낌.

   

   이게 분노라는 감정이구나.

   

   프레이는 태어날 때부터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의 오빠가 자기를 보고서 왜 웃는 건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키우던 햄스터가 죽었을 때 동생이 왜 우는 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부모가 왜 자신을 두고서 언성을 높이는 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언성을 높인 후에 그녀를 껴안고 사과하며 눈물을 흘리는 이유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세상이란 무채색이었으니.

   

   프레이는 그저 멍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그녀가 처음으로 감정을 느껴본 것은 다섯 살 적의 일이었다.

   

   그녀는 길을 걷던 도중에 우연히 마물의 습격을 받았다.

   

   다행히 마물이 그녀를 해하기 전에 호위가 마물을 제압했지만 그들이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프레이는 마물의 이빨에 목숨을 잃었으리라.

   

   그 순간.

   

   죽음을 눈앞에 둔 그 순간.

   

   프레이는 느꼈다.

   

   세상이 완벽히 검은 색으로 물드는 것을.

   

   심장이 멈춰버리는 것만 같은 느낌을.

   

   등골이 오싹해져서 숨이 멎어버리는 듯한 느낌을.

   

   검었단 세상이 다시금 본래의 색으로 돌아오며 심장이 세차게 뛰는 걸 체감한 순간 프레이는 삶의 실감을 얻었다.

   

   프레이는 그게 공포라는 것을 몰랐다.

   

   다만 마물을 마주했기에 생겨난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프레이는 부모에게 이야기를 했다.

   

   마물과 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그녀의 부모는 프레이를 말렸지만 한 번 결정을 내린 프레이의 마음을 뒤집지는 못했다.

   

   그렇게 프레이는 검을 쥐게 되었다.

   

   강해지면 더 강한 상대를 만날 수 있단 아버지의 말만을 믿고서 무작정 검을 휘둘렀다.

   

   허나 그 이후로 프레이는 단 한 번도 비슷한 감정을 느껴 본 일이 없었다.

   

   그 어떤 마물과 싸우더라도.

   

   그 어떤 사람과 싸우더라도.

   

   그녀의 세상은 그저 무채색으로 물들어 있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프레이가 지닌 재능이 너무도 압도적이었으니까.

   

   가파르게 강해진 그녀에게 죽음의 위협을 줄 수 있는 상대를 여태까지 만나지 못했으니까.

   

   처음에 프레이가 루시에게 시비를 건 이유도 이러했다.

   

   그녀가 만나본 동갑내기 중에서 강한 축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는 루시라면 자신에게 비슷한 감각을 선물해주지 않을까 하고.

   

   프레이는 자신의 선택이 정답이었다고 확신했다.

   

   루시에게 한 마디를 들을 때마다 세상이 붉은 색으로 물들고 있었으니까.

   

   루시를 몰아붙인다면 이 붉은 색이 더 짙게 물들까?

   

   시험해보자.

   

   프레이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는 망설임이란 것을 몰랐으니까.

   

   다시금 눈을 뜬 프레이는 두 손으로 검을 쥐고 루시를 노려보았다.

   

   프레이가 지닌 압도적인 재능이 그녀에게 몇 가지 길을 보여주었다.

   

   힘싸움으로 가면 밀려.

   

   어중간한 잔재주를 부려도 바로 간파해.

   

   내 검으로 저 방패를 부술 순 없어.

   

   루시는 까다로워.

   

   아버지는 이럴 때 뭐라고 했더라.

   

   “허접 검사♡ 내가 무서워서 발도 못 움직이는 거야?♡ 겁쟁이네♡”

   

   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 프레이는 세상이 완연히 붉은 빛으로 물드는 것을 보았다.

   

   응. 생각하지 말자. 일단 공격하자.

   

   루시의 웃음을 무너트리자.

   

   완벽한 계획이야.

   

   프레이는 자신의 본능에 따라 무작정 검을 휘둘렀다.

   

   방어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패도적인 공세.

   

   허나 거북이의 등껍질은 단단했다.

   

   몰아치는 연격의 와중에도 루시는 자그마한 틈조차 보여주지 않았다.

   

   역시 방패를 부러트릴 순 없.

   

   “이게 다야?♡ 하품이 나오는데?♡ 혹시 날 잠재우려고 그러는 거야?♡”

   

   부러트리자.

   

   난 할 수 있어.

   

   프레이가 검을 위로 치켜들었다.

   

   여태까지 보여주었던 여러 검격 중에서 가장 커다란 동작을 지닌 검격.

   

   켄트 가문에서 전해지는 필살의 일격.

   

   준비 동작이 큰 만큼 커다란 위력을 지닌 비기.

   

   프레이가 그를 준비하는 순간에 루시가 발을 움직였다.

   

   방패 너머로 보이는 얄미운 눈동자를 본 순간 프레이는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루시는 메이스를 휘두르지 않았다.

   

   방패로 밀쳐내지도 않았다.

   

   대신 프레이의 허리를 붙잡아 위로 치켜들고서 그대로 바닥에 내던졌다.

   

   큰 충격을 받은 프레이는 순간 머리가 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고통 속에서 다시금 프레이가 눈을 떴을 때 루시는 프레이의 위에 올라타 있는 상태였다.

   

   자신의 얼굴을 내리찍기 직전에 멈춘 방패의 끝을 본 프레이는 자신이 졌음을 깨달았다.

   

   분해. 세상이 붉은 색으로 물들지만 않았어도 결과는 달랐…

   

   분해? 내가?

   

   자기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했단 사실을 깨달은 프레이는 자기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역시 루시한테 시비 걸길 잘했어.

   

   *

   

   애는 왜 발려 놓고 웃는 거야?

   

   진짜 이해가 안 되네.

   

   프레이가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게임 속에서 처음으로 화가 난다는 걸 느꼈을 땐 얘 진짜 이 악물고 미친사람마냥 적에게 달려들었단 말야.

   

   지금처럼 미소를 짓는 게 아니라.

   

   그러고 보면 얘가 웃는 것도 엄청 드문 일인데.

   

   “거기까지.”

   

   안톤의 말을 듣고서 몸을 일으켰다.

   

   아. 진짜 더럽게 힘드네.

   

   역시 소울 아카데미 근접전 최강 캐릭은 격이 다르구만.

   

   <뛰어난 재능을 지닌 아이구나.>

   ‘그쵸?’

   <완전히 개화하진 않은 듯 하다만.>

   ‘…저게요?’

   

   지금도 더럽게 강하던데?

   

   철벽 스킬이랑 신성 스킬 버프. 메스가키 스킬 디버프. 버프. 거기에 할배의 도움까지 받아서 겨우 이긴건데 아직 다 개화한 게 아니라고?

   

   <언젠가 벽을 넘으면 말도 안 되게 강해질 거다.>

   

   그러고 보면 프레이 개인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얘한테 검의 깨달음을 얻게 해주면 급격하게 성장을 했었지.

   

   할배. 방금 싸움으로 그걸 읽은 거야?!

   

   진짜 영웅은 영웅이구나.

   

   속으로 할배의 안목에 감탄하고 있던 중 안톤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두 분 다 멋진 싸움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박수!”

   

   우리의 싸움을 구경하던 학생들이 다들 박수를 치는 와중에 단 한 사람.

   

   책상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조무래기의 친구처럼 보이던 녀석인데.

   

   많이 피곤했던 걸까?

   

   *

   

   

   “가라!”

   

   해리는 프레이를 응원하면서 신을 내고 있었다.

   

   루시와 프레이의 공방은 일방적이었다.

   

   프레이가 공격을 퍼부어대고 루시는 방어를 할 뿐.

   

   두 사람의 싸움에서 유리한 쪽이 누구냐 묻는다면 누구라도 프레이라 이야기를 할 것이다.

   

   루시가 질 리 없다 생각하던 제이콥이지만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불안감이 슬며시 올라왔다.

   

   아무리 알른 영애라도 켄트 영애를 이길 수는 없는 걸까?

   

   그 때였다.

   

   프레이가 갑작스럽게 검을 치켜들었고 루시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무기를 손에서 놓아버리며 프레이에게 달려든 루시는 프레이의 몸을 들어선 그대로 바닥에 내리 꽂아버렸다.

   

   콰앙!

   

   소리만 들어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광경 속에서 루시는 즉시 프레이를 깔아뭉개곤 방패로 프레이의 자그마한 얼굴을 내리 찍으려 했다.

   

   방패가 직전에서 멈추었지만 그 결과는 누가 보더라도 명백했다.

   

   루시가 이겼다.

   

   완벽한 역전승.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모습에 그를 바라보던 학생들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두 분 다 멋진 싸움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박수!”

   

   안톤이 소리를 치니 그 침묵이 깨졌지만 단 한 사람만큼은 여전히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였다.

   

   “말도 안 돼. 이건 사기야.”

   

   해리였다. 그는 책상에 이마를 박은 채 말도 안 된다는 소리만 연신 반복하고 있었다.

   

   한 학생이 좌절에 빠졌지만 그는 안톤이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그는 방금 전 수준 높은 싸움이 재밌었는지 연신 웃음을 흘렸다.

   

   “자! 여러분! 방금 전의 싸움이 어떤 싸움처럼 보이십니까?!”

   “일발역전이요.”

   

   학생 중 하나가 그리 대답을 했다.

   

   허나 안톤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보일수도 있지만 다릅니다. 이건 완벽하게 설계된 승리입니다!”

   

   안톤은 그리 소리를 치며 이게 어떻게 설계된 것인지를 알려 주었다.

   

   속도에 있어서 루시가 느리기에 섣불리 공격하면 오히려 불리해진다.

   

   그래서 방어를 굳히며 상대의 실수를 유도.

   

   상대가 잘못된 판단을 한 순간 그를 잡아챈 것이라고.

   

   안톤의 설명을 들으며 제이콥은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알른 영애야. 지난 번 던전에서 보여준 모습은 가짜가 아니었어.

   

   제이콥은 맨 앞에 앉아 안톤의 이야길 듣는 루시를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

   

   프레이는 한 번 졌음에도 전혀 기가 죽지 않은 건지 수업이 끝나자마자 나를 찾아와선 대련하러 가자고 이야기했다.

   

   난 그걸 단호히 거절했다.

   

   너랑 대련하는 게 실력 늘리는 데 도움은 되지만 해야 할 일이 있거든?

   

   다음에 대련을 하자 그랬더니 프레이는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어디론가 향했다.

   

   자아. 귀찮은 것도 떨쳐냈고 오늘 들어야 할 수업도 끝났으니 칼을 데리고 퀘스트를 하러 가볼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정이 없어도 감정을 만들어내는 도발스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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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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