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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3

   월음지체를 얻은 이후 멸화침식을 패널티 없이 일정 수준을 유지 중이던 크라슈였다.

   애초에 멸화침식을 유지할 수 있었기에 아돌프와 직접 맞설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크라슈가 월음지체를 얻으려고 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한계의 폭이 넓어진다.’

     

   멸화침식은 세계 침식의 힘을 이그니스로 연소시켜 그 에너지를 육체에 담아내는 비술이다.

   단점은 연소 되는 그 에너지가 크라슈의 육체에도 손상을 입힌다는 점.

     

   그 때문에 크라슈가 멸화침식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3초였다.

     

   하지만 월음지체를 얻은 지금 그 폭은 훨씬 넓어졌다.

   적어도 전투 중에는 마음껏 멸화침식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온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곧 다시 시간을 3초로 압축시키면 지금보다 더 위의 한계도 돌파할 수 있다는 소리와 같았다.

     

   ‘해본 적은 없지만.’

     

   못할 것도 없었다.

   크라슈가 끼고 있던 호흡기를 집어 던졌다.

     

   오히려 호흡에 방해되는 까닭이었다.

     

   그러곤 자신의 검을 검집에 끼워 넣었다.

   전투 중 사실상 미친 행위.

     

   그러면서도 크라슈는 겁 없이 숨을 한차례 크게 들이쉬며 내부에 오러를 끌어 올렸다.

   그 순간 그의 몸에서 세계 침식의 힘이 이그니스를 만나 불태워지기 시작했다.

     

   뜨겁다.

   그러나 견딜 수 있다.

     

   ‘더, 좀 더.’

     

   몸 안에 깃든 세계침식의 힘이 더더욱 거세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몸 전체를 불 싸질러 버릴 듯 거세게 타오르는 열기가 계속해서 강해져 갔다.

     

   크라슈가 입술을 까득 깨물었다.

   열기에 정신이 혼미해질 것 같았지만 월음지체가 간신히 열기를 유지 중이었다.

     

   크라슈의 입술을 비집고 연기가 흘러나왔다.

   그의 눈동자 속에서 불길이 일렁거리고, 크라슈의 주위가 열기로 왜곡되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돌프 또한 그의 이상을 감지했다.

     

   ‘뭘 하려는 거지?’

     

   상처 입히지 않고 제압하기가 생각보다 까다로워 고민하던 찰나.

   크라슈의 흐름이 기묘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불덩어리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크라슈가 그런 불덩어리보다 더한 열기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마치, 육체가 한계를 넘어서려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아돌프의 생각은 일치했다.

     

   ‘더!’

     

   크라슈가 피를 토하듯 또 한 번 육체를 달굼질한 순간.

   아득한 그 열기가 모조리 연소함과 함께 크라슈의 육체 전신으로 뻗어 나갔다.

     

   근육과 말단 신경 하나하나에 그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동시에 크라슈의 머리카락 끝과 손가락 끝이 흑염에 새까맣게 타오른 순간이었다.

     

   한계를 기어코 넘어선 크라슈의 영역이 극단적으로 확장되었다.

   전신에 타오르던 열기와 함께 그의 정신이 일순간 한계치까지 압축되었다.

     

   몸 안에 깃들어 있던 오러가 세계 침식과 함께 용솟음치며 다음을 향해 나아가듯 그 몸을 부풀렸다.

     

   쨍그랑!

     

   그 순간 크라슈의 머릿속에 무언가 부서져 가는 감각이 느껴졌다.

   그것은 벽이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넘기 힘들었던 벽이 일순간 크라슈의 한계 돌파와 함께 새로운 영역에 도달한 것이었다.

     

   엑스퍼트 최상급.

   마스터 직전, 천재와 범재를 나누는 그 영역에 크라슈가 기어코 도달하고 만 것이다.

     

   열기로 붉게 변한 크라슈의 두 눈이 어느 때 보다 강렬하게 타올랐다.

   

   

   

   

     

   3초?

   웃기지 마라.

   1초도 고작이다.

     

   그러나 그 1초라도 충분했다.

     

   쿵!

     

   크라슈가 발을 찍어 내린 충격이 한 박자 늦게 울려 퍼졌다.

   충격이 자리했을 때는 이미 크라슈의 검이 검집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이상을 감지한 아돌프가 뒤늦게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크라슈는 그의 손보다도 더 빨랐다.

     

   휘몰아친 열기가 크라슈의 검에서 순식간에 뻗어져 나갔다.

   그것은 곧 이그니스를 만나 새까만 흑염의 불길로 타올랐고, 크라슈는 그런 검을 뻗어 나가고 있었다.

     

   신검합일.

   이 순간 크라슈의 정신은 누구보다 빨리 그 영역에 도달했다.

     

   정신 속 호수에 일어난 파문조차 불길에 거세게 타오른 그 순간, 용오름은 불을 집어삼켰다.

     

   단 한 번의 내려치기.

   일검.

     

   그것은 크라슈의 손에 의해 검귀의 거합술과 멸화침식과 만나 새로운 경지에 도달하고 말았다.

   거합술 속에 담긴 일검이 이제 내려치기라는 제약을 완전히 벗어나 또다른 비술로서 탄생했다.

     

   멸화침식(滅火浸蝕)

   이식(二式)

   멸화천검(滅火天劍)

     

   흑염이 정령왕의 숲을 베고 지나간 때.

   아주 잠시 멈춘 침묵이 그 자리를 메꾸었다.

     

   이윽고, 서서히 주변 모든 것이 반토막 나듯 일그러져 가기 시작했고.

     

   이제는 그 자리를 대량의 폭음이 메꾼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타오르는 흑염의 불길 속.

   크라슈를 부릅뜬 눈으로 내려보고 있는 아돌프가 있었다.

   그의 볼에는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동시에 뒤늦게 앞으로 뻗은 그의 손도 화상을 입은 듯 붉게 물들어 있었다.

     

   큰 상처는 아니다.

   세계 침식을 상대하다 보면 천하십강에 오른 그조차 이 정도 상처는 일상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높게 평가한들 고작해야 약관도 되지 않은 후기지수에게 입을 상처는 아니었다.

   아돌프의 눈이 서서히 아래로 향했다.

     

   검을 휘두른 자세 그대로 쓰러지는 것만을 간신히 견디고 있는 크라슈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타들어 간 손끝은 검게 물들어 있었고, 억수 같이 쏟아지는 땀은 그의 한계를 명백히 가리켰다.

   더군다나 크라슈의 검은 열기로 인해 죄다 금이 가 있었다.

     

   챙강!

     

   그리고 그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검이 부서져 내렸다.

     

   그러나 아돌프를 똑바로 바라보는 그 눈동자만큼은 죽지 않았다.

     

   화상을 입은 손을 아돌프가 천천히 쥐었다.

   설마하니 자신의 보호 마법조차 뚫을 거라곤 생각 못했다.

     

   동시에 그의 눈빛이 변했다.

     

   “발하임의 직계야.”

     

   아돌프의 부름을 듣고, 크라슈가 감기려는 눈을 애써 들어 올렸다.

     

   악착같은 의지였다.

   저 나이에 대체 어디서 저런 근성이 나오는지.

     

   누가 보면 전장에 몇십 년은 구른 모습이었다.

     

   “너는 아슬란과 무슨 사이냐.”

     

   아돌프의 질문을 크라슈는 이해할 수 없었다.

   단지, 하나는 확실했다.

     

   “그냥 빌어먹게 아는 놈입니다.”

     

   자기는 혼자 편하게 먼저 죽어버린 빌어먹을 놈 말이다.

     

   아돌프는 그 말을 듣고는 잠시동안 침묵했다.

     

   크라슈는 분명히 성장할 거다.

   언젠가 세상 사람 모두가 다 알 정도로 말이다.

   그때 그의 옆에 있는 인물들은 하나 같이 새로운 세대를 맞이할 것이다.

     

   그 사실을 아돌프는 지금, 이 순간 엿보았다.

   그리고 그 옆에 아슬란이 설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질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옆에 서는 과정이겠지만 말이다.

     

   ‘양녀 절차를 밟은 아벨라가 갑자기 사라져 기껏 찾으러 갔다 왔더니만.’

     

   그사이에 이런 녀석이랑 아는 사이나 되었나.

     

   “크라슈!”

     

   그 순간 거대한 얼음의 벽이 크라슈와 아돌프의 사이에 치솟아 올랐다.

     

   아슬란의 마법이었다.

   아돌프에게 들키지 않고자 도로시를 물에 숨긴 아슬란을 보고, 크라슈가 씩하니 웃었다.

     

   쿵!

     

   그 순간 숲 저편에서 진동이 울려 퍼졌다.

   그 진동이 무엇인지 크라슈와 아돌프는 잘 알고 있었다.

     

   방금전 크라슈가 일으킨 소란을 듣고, 상위 정령 중 하나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상위 정령이 날뛰기 시작하면 곤란해진다.

     

   자칫하면 성벽에도 피해를 줄 수 있는 상황.

   상위 정령은 무조건 쓰러트려야만 했다.

     

   “너희들 둘 다!”

     

   아돌프가 둘을 당장 잡아 바깥으로 보내려던 순간이었다.

   크라슈와 아슬란의 발밑 마법진이 빛나기 시작했다.

     

   “염왕, 아돌프 이그리트.”

     

   그걸 본 아돌프의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을 때.

   크라슈가 아돌프를 보며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상위 정령이랑 잘 놀아 보십쇼.”

     

   그걸 본 아돌프는 크라슈가 일부러 소란을 일으켰음을 눈치챘다.

     

   “이놈!”

     

   아돌프가 노성을 터트린 순간 크라슈의 눈앞은 이미 새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순식간에 정령왕의 숲, 바깥으로 오게 된 크라슈는 쓰러지려는 몸을 누군가 받아 주는 게 느껴졌다.

   그건 다름 아닌 크림슨가든이었다.

     

   “아주 몸을 작살을 내지 그러더냐?”

     

   크림슨가든의 말에 크라슈는 애써 정신을 붙잡았다.

     

   “사람 열받게 하는 재주가 있는 영감이니까. 어쩔 수 없었어.”

   “그냥 천하십강에도 네 힘이 통하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지 않았느냐.”

     

   크라슈는 찔끔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걸 보던 크림슨가든이 한숨을 내쉬고 있자 크라슈의 눈에 아슬란과 도로시가 보였다.

     

   다시는 놓지 않겠다는 듯 도로시의 손을 꽉 잡은 아슬란이 크라슈에게 고개를 숙였다.

   도로시는 아직 이 상황이 얼떨떨한 듯했지만 말이다.

     

   “……고마워. 크라슈, 너에게 평생 갚지 못할 빚을 졌어.”

   “그러냐.”

     

   크라슈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월음지체가 없어진 아슬란은 앞으로도 계속 강해질 거다.

     

   어쩌면 크라슈가 알던 시절보다도 더 강해질지도 몰랐다.

     

   “아슬란, 넌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

     

   아까야 그랬지 이제 더 이상 아돌프가 아슬란을 죽이려 하지는 않을 거다.

     

   게다가 월음지체가 없어진 아슬란은 이그리트의 화염 마법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그가 그 사실을 바로 밝힐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더 이상 이그리트에 압박당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 해서 그 속 좁은 영감이 아슬란을 마냥 좋게 보지는 않을 거다.

   아슬란은 가문을 거론하며 아돌프에게 도발했으니까.

     

   거기다 도로시도 있다.

   이그리트 가문에서 정령과 함께 있는 것은 절대 용납되지 못할 테지.

     

   그 모든 게 하루 이틀로 해결될 문제들이 아니었다.

     

   “……이그리트 가문의 화염 마법을 배울 거야.”

     

   아슬란의 두 눈이 붉은색으로 선명히 빛났다.

     

   평생토록 이그리트 탓에 고통받았음에도 다시금 제 발로 이그리트에 들어간다.

   그 말은 즉, 구태여 험한 길을 저 스스로 걷겠다는 소리였다.

     

   도로시를 지켜내기 위해 그는 어떤 험한 길이라도 지나 강해지고자 마음먹은 것이다.

     

   그 모습에서 크라슈는 예전 아슬란이 보여주던 고집스러운 면모를 새삼 느꼈다.

     

   ‘이래야 아슬란 답겠지.’

     

   도로시를 지켜내는 것도, 염왕을 무너트리는 것은 결국 전부 그가 할 일이었다.

     

   “아슬란, 너 내년에 라헬른 아카데미로 와라.”

     

   그러니 크라슈는 아슬란에게 제안 하나를 했다.

     

   “거기라면 이그리트의 여러 문제도 미룰 수 있고, 힘도 키우면서 도로시를 지켜낼 시간도 벌 수 있을 테니까.”

     

   그 시간 동안 이그리트의 마법과 아슬란 본인을 갈고 닦을 수만 있다면.

   그가 이그리트에서 벗어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리라.

     

   “크라슈, 너도 라헬른 아카데미에 입학할 거지.”

   “그래.”

     

   크라슈의 대답을 들은 아슬란이 천천히 웃었다.

   크라슈에게는 처음 보는 아슬란의 진짜 웃음이었다.

     

   그의 얼굴은 늘 화상과 붕대로 덮여 있었으니까.

   그럭저럭 괜찮은 미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학할게. 거기서 꼭 다시 만나자.”

     

   그렇게 아슬란과의 약속을 나눈 크라슈는 피식 웃곤, 조금은 돌아온 힘으로 몸 돌렸다.

     

   “그럼 너희 문제나 해결해라.”

     

   아슬란이 뒤늦게 크라슈에게 뭔가 보답이라도 더 하고 싶어 부르려던 찰나 아슬란은 멈칫하고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이래저래 부끄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도로시가 있었다.

     

   결정 상태에서도 도로시는 희미하게 바깥의 소리를 들었다.

   그걸 깨달은 아슬란이 헛기침을 내뱉는 사이 크라슈는 이미 크림슨가든과 떠나고 없었다.

     

   “으흠, 흠, 아슬란.”

     

   죽음에서 돌아온 정령, 도로시가 수 줍은듯 헛기침을 그를 불렀다.

   상황이 어찌 되었든 그녀 또한 마지막에 하고픈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슬란과 그녀의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은 지금 분명 같은 기분이었다.

     

   그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지만, 말로 전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었다.

     

   “도로시, 나는 마법을 싫어했다고 생각해.”

     

   그러니 아슬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월음지체 덕에 화염 마법을 다루지 못하는 내게 마법은 오히려 족쇄였어. 이그리트 가문이 내 삶을 이루는 전부였었으니까.”

     

   이그리트 속에서 아슬란은 서서히 죽어 갔다.

     

   그러니 그도 간단히 알 수 있었다.

   도로시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결국 끝내 자신은 망가져 버렸을 것이라고.

     

   “하지만 너를 만나고 서서히 바뀌었어. 마법 하나에 그토록 행복해하고, 아픈 나를 위해 마법을 써주고, 그리고 너가 있었기에 나는 기숙사에서 내 인생 처음으로 다른 이를 위해 마법을 쓸 수 있었어.”

     

   로맨틱한 말도, 시적인 말도, 아슬란은 할 줄 몰랐다.

   그저,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전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도로시의 눈가에는 서서히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그건 전부 네 덕이야.”

     

   그녀가 인간이 아닌 정령이든, 인간의 적이든, 뭐든 아슬란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딱 하나, 도로시였다.

     

   “도로시, 널 좋아해.”

     

   세상이 도로시를 부정해 자신이 세상의 적이 된다면 되겠다.

   어차피 자신의 세상을 이루게 해준 것은 도로시였으니까.

     

   그 말이 떨어진 순간 도로시의 눈가에 떨어진 눈물과 함께 그녀가 파르르 떤 눈을 감았다.

     

   “난 정령이야.”

   “알아.”

   “이름도 가짜고, 내 모습도, 어쩌면 기억조차도 세계 침식으로 만들어진 걸지도 몰라.”

   “그래도 내게 넌 도로시야.”

     

   그것만큼은 절대 변함없다.

     

   “아슬란, 태초의 정령사에 관해 들어봤어?”

     

   모를 리가 없다.

   태초의 정령사는 이그리트 가문의 출신이었으니까.

     

   “정령과 인간의 끝은 결국 그런 결말밖에 없는 걸지도 몰라.”

     

   아슬란이 손을 들어 도로시의 손을 맞잡았다.

   그 따스한 온기 앞에 도로시의 눈이 떨렸을 때 아슬란은 입을 열었다.

     

   “설령 어떤 결말이 오더라도 나는 결말이 오기 전 과정에서 오직 네 곁에 있고 싶어.”

     

   아슬란의 붉은 눈동자와 도로시의 푸른 눈동자가 마주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도로시는 흘러내린 눈물과 함께 어느새 환한 웃음을 그렸다.

   어쩌면 정령은 결국 사람을 좋아할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나도 좋아해.”

     

   다시 본 도로시의 눈물 젖은 환한 웃음은 아슬란이 기다려온 대답으로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 * *

     

     

   아슬란과 도로시를 위해 자리를 비워주고, 크라슈는 거의 죽상인 표정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침대가 그립다.

     

   “눈 떠라. 네가 한 일은 네가 책임져야지.”

     

   그러자 어느새 까마귀로 대체된 크림슨가든이 매몰차게 말했다.

   사실 크림슨가든은 악마가 아닐까.

     

   다른 건 몰라도 지금 상태로 어깨 위에 있는 건 자제해줬으면 좋겠다.

     

   “크라슈 님!”

   “크라슈 님.”

     

   그 순간 크라슈는 자신을 부르는 두 목소리를 들었다.

   한쪽은 놀람을 담은 목소리였고, 한쪽은 늘 그렇듯 차분한 목소리였다.

     

   크라슈가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한 명은 색이 무척이나 연한 금발의 연상의 메이드.

   다른 한 명은 백발의 자그마한 연하의 소녀였다.

     

   둘을 본 크라슈가 고개를 기울였다.

   리리나는 그렇다 쳐도 비앙카가 어떻게 여기 있나 싶었다.

     

   “크라슈 님은 늘 보고 있어요.”

     

   크라슈의 생각을 읽은 듯 비앙카가 그리 말했다.

   눈썹이 살짝 찡그려진 게 비앙카는 왜인지 화난 것 같았다.

     

   “리리나 씨는 또 왜 여기 있어요.”

     

   비앙카의 눈을 애써 피하며 크라슈가 리리나에게 물었다.

   진작 저택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아슬란한테 가야 할 그녀가 왜 여기 있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야 저택은 난리가 났으니 일이 많을 거 같고.”

     

   하나는 직무태만이 이유였고.

     

   “아슬란 님과 도로시 양 사이에 끼일 만큼 눈치 없는 사람도 아닌걸요.”

     

   두 번째는 그냥 눈치 보여서였다.

   크라슈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었기에 긍정했다.

     

   그 사이 리리나는 비앙카 쪽을 힐끗 보곤 크라슈에게 말했다.

     

   “이런 귀여운 약혼자분이 있으셨으면서 저를 그렇게 꾀어내시려 하다니.”

     

   이어진 말을 듣고, 크라슈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꿰어 내긴 뭘 꿰어 냈단 말인가.

     

   첫사랑인 건 맞지만 이미 오래전에 끝난 사랑이고, 눈인형으로도 감정을 억눌렀는데 말이다.

   하지만 크라슈는 리리나가 비앙카를 힐끗힐끗 보는 걸 보며 그녀가 놀리고 있단 걸 눈치챘다.

     

   하여튼 저 성격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소녀 마음을 희롱하고, 정말 나쁜 사람이네요.”

   “크라슈 님은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하지만 비앙카가 반박한 부분은 다른 부분이었다.

   비앙카는 크라슈의 앞에 돌아서서 리리나를 올려 보았다.

     

   “크라슈 님은 좋은 사람이에요.”

     

   그 눈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리리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곤 크라슈를 돌아보더니 곧 입을 가렸다.

     

   “진짜 귀엽네요. 크라슈 님한테 아까울 지경이에요.”

     

   크라슈는 이제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주머니에 넣어서 집에 데려가고 싶은데 약혼자분, 저 주시면 안되나요?”

   “침도 묻힐 생각 마십쇼.”

     

   크라슈가 비앙카를 당기자 비앙카는 눈을 크게 뜨다가 곧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러곤 스리슬쩍 크라슈의 팔을 양팔로 끌어안았다.

     

   그걸 보며 흐뭇한 미소를 흘린 리리나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괜히 저만 설레발 쳤었네요.”

     

   크라슈가 의미 모를 말을 한 그녀는 곧 크라슈에게 정중히 고개 숙였다.

     

   “아슬란 님과 저를 도와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려요.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게요.”

     

   딱히 은혜랄 것도 없었다.

   크라슈는 회귀 전 그녀에게 받은 것들이 지금의 그를 유지하는 데 도움 됐으니까.

     

   하지만 조금 마음이 풀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구하지 못한 사람을 구한다는 건 크라슈에게도 소중한 일이었으니까.

     

   “그럼 다행…….”

     

   그 말을 내뱉던 크라슈의 시야가 틱하니 끊겼다.

   아, 이거 한계다.

     

   그리고 크라슈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트위치에서 삽화 작업을 방송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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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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