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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3

    <63 – 깃발을 케이크처럼 쉽게 먹는 법>

     

    서로 몇 개나 깃발을 모았나 저녁식사 시간에 만나 현황을 공유하려던 롯토와 헤스티아, 지고쿠가 나란히 충격 받은 얼굴로 절망했다.

     

    “다, 다들 몇 개 모으셨나요…?”

    “5개. 죽어라 산을 돌아다녀서 모았는데….”

    “4개. 만만한 애들은 열심히 삥 뜯었는데….”

    “저도 3개. 교관님들의 심부름 열심히 들어드렸어요….”

     

    그 정도 노력으로는 턱도 없었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하나로 모였다.

     

    “다른 사람의 깃발을 빼앗지 않으면 안 되겠어요.”

    “이 이상 나빠질 평판도 없어. 오크노디를 위해서라면 손을 더럽히는 일도 주저하지 않겠어.”

    “셋이 같이 저지르는 거야? 그럼 좀 더 강한 놈들도 삥 뜯을 수 있겠네!”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이제는 그 이상의 해결책이 필요하다.

     

    “가자. 1인당 16개, 16명한테 1개씩만 삥 뜯으면 되는 거야.”

     

    정당한 노력의 시간은 끝났다.

    3인조 깃발강도가 결성됐다.

     

     

    * *

     

     

    방과 후, 아카데미 학생들은 동아리에 가입해서 추가컨텐츠를 즐길 수 있다.

    생존에 급급한 뉴비들은 의외로 동아리 참여율이 높은 편인데, 먹을 걸로 유혹하는 비겁한 동아리 선배들에게 깜빡 속아버리기 때문이다.

     

    “좀 더 힘차게 갈퀴를 들어!”

    “야압!”

    “밭을 갈아!”

    “이야압!”

     

    겨우내 꽁꽁 언 논밭을 열심히 뒤집고 파헤치던 신입생들이 선배들에게 물었다.

     

    “선배님들. 저희 언제까지 밭만 갈아요?”

    “맞아요. 여기 사냥동아리 아니었어요?”

    “하, 이 새끼들 봐라.”

     

    신규부원 모집 할 때만 해도 고기를 굽고 무료시식까지 하게 해주었던 친절한 선배들은 표정까지 싹 바뀌어서는 불쌍한 신규부원들을 윽박질렀다.

     

    “야. 니들 고기 먹었어, 안 먹었어?”

    “머, 먹었는데요.”

    “요?”

    “먹었습니다!”

    “그럼 고기 먹은 값을 해야 할 거 아니야.”

    “그럼 사냥을 같이 가지 왜 농사를…”

    “사냥 망하면.”

    “네?”

    “우리 사냥 실패해서 공치면. 그땐 뭐 먹어?”

    “학식이라던가…?”

    “학식 같은 소리 하네. 포인트는 땅 파면 나오냐? 농사라도 해서 자급자족해야 할 거 아니야!”

     

    신입생들은 깨달았다.

    친절했던 선배들은 전부 연기, 가식,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친절하고 착하고 양심 있는 교수님 같은 존재였다는 사실을.

    선배들은 처음부터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그들에게 사기계약을 걸었다는 사실을!

     

    “저, 전 이런 농사나 지으려고 사냥동아리에 들어온 게 아니에요. 나가게 해주세요!”

    “그래? 그럼 위약금 내놔.”

    “뭐, 뭐에요 이 말도 안 되는 포인트는!!”

    “뭐긴. 너희가 사인했던 거지.”

    “이건 사기야!”

    “어 사기 아니야. 아카데미 행정부에서 보증하는 계약서고 니가 사인했어. 나가고 싶으면 이만큼 포인트로 빚을 지고 채무상환 시작하던지.”

    “크흑!”

    “아니면 너 대신 일할 친구를 두 명 데려오던지.”

    “치, 친구! 친구만 데려오면 일하지 않고도 탈출할 수 있어요?!”

     

    선배는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계약서에 사인하는 친구가 딱 두 명만 나오면 돼. 그리고 걔들이 추천인에 네 이름만 적으면 포인트 한 푼도 안 내고 탈출할 수 있는 거야.”

    “할게요. 무조건 구해올게요!”

    “근데 구하는 건 구하는 거고, 오늘 치 동아리활동은 마저 해야지. 이거 못하면 활동불량으로 벌금 또 나오는 거 알지?”

     

    진짜 더러워서 어떻게든 그만두고 만다.

    동아리에 잡힌 학생들의 눈에는 울분이 차올랐다.

     

    “진짜 선배들은 악마야. 어떻게 피도 눈물도 없이 저런 끔찍한 짓을 시킬 수가 있지?”

    “맞아. 자기들도 선배한테 당했으면 우리한테는 이런 짓은 시키면 안 되는 거잖아.”

     

    모브와 자쿠.

    고기냄새와 육즙의 유혹에 넘어간 두 신입생은 진심으로 불만이 가득했다.

     

    “무슨 이상한 깃발만 잔뜩 받고 말이야. 이걸 다 어디다가 써?”

     

    모브는 가지고 있으면 어딘가에는 쓸 일이 있을 거라며 선배들이 준 깃발을 들고 투덜거렸다.

     

    “어? 저기 봐. 깃발을 엄청나게 등에 매고 다니는 애가 있어.”

    “나 알아. 쟤 A그룹 수석 오크노디야.”

    “그 오크 혼혈이라던 최연소 최단신 신입생?”

     

    두 사람은 냉큼 오크노디에게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본 오크노디는 더 빨리 달려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야, 야! 잠깐 멈춰봐!”

    “헉, 헉! 시발, 무슨 애가 저렇게 빨라!”

    “싫어요! 안 해요! 하지마세요!”

     

    모브는 억울했다.

     

    “우리가 뭘 어쨌다고! 깃발을 어디다 쓰는지 알고 가지고 다니는 거냐고 묻고 싶었을 뿐인데!”

    “정말요?”

    “맞아! 그거랑 덤으로 사냥동아리에 들어오면 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추천인에는 자쿠라고 써달라고 말하려던 것뿐이었다고!”

     

    모브의 말에 발을 슬슬 늦추던 오크노디가 자쿠의 말에 다시 뒤도 안 돌아보고 속도를 높여 쌩 달리기 시작했다.

     

    “야, 이 병신아! 입좀 다물고 있어!”

    “으악!”

     

    화가 난 모브가 자쿠를 밀쳐 쓰러뜨리고는 열심히 뒤쫓아가며 나랑은 관계 없는 일이라며 열심히 설득한 후에 겨우 오크노디를 멈추게 할 수 있었다.

     

    “헉, 헉, 허억…”

    “그래서 왜요?”

    “자, 잠깐만, 헉, 헉…”

    “저 그냥 가도 돼요?”

     

    무슨 애 체력이 이렇게 강해. 모브가 원망스럽게 오크노디를 한번 째려보고는 말했다.

     

    “이건 우리 사냥동아리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고 받은 깃발인데, 선배들이 어딘가에는 쓸모가 있을 거라고 줬거든. 넌 깃발이 많으니까 혹시 아나 싶어서.”

    “아하. 이번엔 사냥동아리에 몰려있었구나.”

    “이번에는? 역시 깃발을 어떻게 쓰는지 알고 있는 거지? 제발 가르쳐줘!”

     

    오크노디는 손을 내밀었다.

     

    “저 5개만 주세요.”

    “내가? 왜?”

    “그럼 알려드릴게요.”

    “좋아. 대신 도망치지 못하게 붙잡고 있을 거야.”

    “그러시든지요.”

     

    모브는 오크노디를 꼭 붙잡고는 하도 열심히 달려서 후덜덜 떨리는 몸으로 힘겹게 깃발을 건넸다.

     

    “그래서 이거 어디다 쓰는 건데?”

    “상급반 강의용 과제에요. 상급반 학생들은 깃발을 모으면 강의과제로 제출해요.”

    “꽤 좋은 거네?”

    “보다시피 양이 많으니까 가치는 높지 않지만요.”

     

    하긴 오크노디만 해도 깃발을 무슨 장사하는 사람처럼 잔뜩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모으러 다니기 귀찮으니까 포인트 주고 살게요. 한 끼 식사가 5포인트니까 5포인트랑 그거 전부랑 바꾸실래요?”

    “싫어. 5포인트는 기본배식밖에 안 되잖아.”

    “반나절 사이에 애도 이만큼이나 모으는 깃발을 얼마나 비싸게 팔려고 그래요?”

    “그냥 이걸로 상급반 신입생들을 모으고 싶은데. 이거 줄 테니까 동아리에 들어와 달라고 할래.”

     

    오크노디가 쳇, 하고 혀를 찼다.

    뜻대로 되지 않자 금세 심통이 난 아이의 모습에 모브는 피식 웃었다.

    아카데미 최연소 수석다운 희대의 천재 내지 오크의 혼혈다운 체력바보 이미지를 떠올렸는데 현실은 그냥 고향마을에서도 흔히 보던 어린애였다.

     

    “포인트는 됐고 친구 두 명만 내 이름 대고 사냥동아리에 입학하게 해주면 깃발 다 줄게.”

    “정말이죠?”

    “그러엄. 난 한 입으로 두말 안 해.”

     

    애한테 진지하게 딜을 걸어봤자 얼마나 친구를 데려올까. 애를 속이는 게 잘하는 짓이기는 할까.

    몹쓸 짓을 하는 어른이 된 기분이 든 모브였지만 뒤딸아온 자쿠가 “얘가 뭐라 했든 나도 같은 조건!”이라고 한 덕분에 죄책감은 싹 사라졌다.

    악마 같은 동아리에서 탈출하는 것이 중요하지, 양심이 뭐가 중요한가.

    하지만 그건 오크노디를 너무 얕본 생각이었다.

    불과 30분 뒤.

    오크노디 뒤를 학생 넷이 쫄래쫄래 쫓아왔으니까.

     

     

    * *

     

     

    동아리를 돌아다니며 학년이 다른 선배들이 어느 동아리에 누가 속해있는지 간을 보며 돌아다니던 도중, 뜻밖의 행운이 제 발로 찾아왔다.

    낮은 확률로 동아리 신입생에게 주어지는 선배의 선물에서 한층 더 희소한 확률로 풀리는 <선배들이 모은 깃발>이 바로 그 정체였다.

     

    “헤헹. 날먹이다!”

     

    깃발은 이미 잔뜩 모았지만 더 모으면 모으는 대로 쓸모가 다 생긴다.

    제국의 띠거운 학생 넷을 유인해서 사냥동아리에 팔아넘긴 뒤, 나는 그들의 손에 깃발을 하나씩 사이좋게 들려주었다.

     

    “자, 여기 약속한 보수에요.”

    “와! 동아리를 들면 깃발이 하나 공짜라니, 너무 행복해!”

    “고마워, 오크노디. 너 은근 착한 애였구나?”

     

    불쌍한 학생들을 팔아넘겼다는 죄책감은 없다.

    저거, 전부 착한 척이다.

    뒤에서 변방은 귀족도 평민도 품위가 없다느니 오크노디는 귀여운 얼굴에 그렇지 못한 체력을 지닌 오크 같은 애라느니 흉본 걸 모를 줄 알아?

    지금도 그렇다.

    깃발을 받고 얼마나 지났다고 뒤에서 큭큭 바보같은 어린 것 같은 비웃음이나 짓고 있다.

     

    ‘다음부턴 마음씨를 곱게 쓰라고. 그래야 나처럼 나쁜 어린애한테 당하지 않는 거야.’

     

    미리 벗어두었던 가방에 잔뜩 담아둔 깃발을 챙기고는 신이 나서 돌아갔다.

    덕분에 깃발이 하룻밤 사이에 두 배로 불어났다.

    거의 40개는 될 물량이다.

     

    “고맙다 오크노디!”

    “덕분에 살았어!”

     

    깃발 4개의 지출이 무색하게 모브와 자쿠가 넘겨준 깃발만 이십여 개.

    깃발 4개로 이십여 개를 벌었으니 누가 봐도 명백한 개이득이다.

    모든 깃발을 넘겨주고 동아리에서 탈출한 두 사람이 화기애애하게 손까지 흔들며 인사했다.

    불쌍한 호구들.

    깃발 하나 가격이 나중에는 100포인트까지 오른다는 충격적인 사실은 알려주지 말아야지.

    너희도 자업자득이야.

    나보고 오크 혼혈이라고 놀렸잖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정당하게 노력할 줄 모르는 날먹충 오크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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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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