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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3

       인간으로 태어나, 기계처럼 살아왔다.

         

       제아무리 원하는 게 생겼더라도 그 목표를 달성하려는 과정에서만큼은 로봇처럼 행동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사회의 부품으로 소모되고 있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남들도 나와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랬기에 내가 나를 믿지 못하는 만큼 다른 사람도 신뢰하지 않았다. 솔직히 얘기해서 타인에게 사근사근한 표정 한 번 지어주는 일이 어려웠다.

         

       그런데도 내가 다른 이에게 배려를 베풀어주며 이 각박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돈, 영문으로는 크레딧(Credit). 크레딧에는 신용이라는 뜻도 담겨 있다.

         

       종교에서 말하는 경건한 신앙도, 가족만큼 가까운 사이에서야 겨우내 생기는 신뢰 따위도 아니다.

         

       신용이라는 단어는 이성과 논리, 비즈니스와 니즈가 딱 들어맞아야만 비로소 그 효력을 발휘해낸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내가 남에게 해준 만큼 남도 나에게 해주길 바랄 뿐이었으니까. 그러면서 서로 허울뿐인 덕을 쌓다가 갔으면 하는 바람이었으니까.

         

       일명 기브-앤-테이크. 불행하게도 나는 그 철칙을 가족에게서 배웠다.

         

       “일단 대금부터 치러야겠지.”

         

       내 손에 금화 하나가 얹어졌다.

         

       나는 빙의자가 준 돈을 주머니 깊은 곳으로 찔러넣었다. 버멜의 금화와 로테의 은화가 맞부딪히며 ‘짤랑’ 하고 경쾌한 쇳소리를 냈다.

         

       “절반은 펄스 스크롤의 라이센스 생산을 허용해줬던 값, 나머지 절반은 나와 동행해주는 대가로 주는 값.”

         

       그렇게 말하는 버멜의 목소리는 묘하게 떨렸다. 침착함을 유지하고는 있었지만 앳된 티를 전부 숨기고 있진 못했다.

         

       나는 이 엘프가 나와 동향 사람이라는 걸 확신하고 있다. 반면 이 친구는 내가 자신과 같은 세계에서 왔다는 걸 반신반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정보전에서 누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지는 굳이 입을 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정보 격차를 메울 수단이 재화(Credit)였고.

         

       나는 아직 너를 충분히 신용하지 않고 있으니, 그 간극을 화폐로써 묶어내겠다. 이것이 나와 버멜이 방금 맺어낸 사회계약이다.

         

       “지금부터 널 데리고 마수를 잡기 위해 여기로 내려갈 거야. 특별한 불만 있어?”

         

       신용 없는 애매한 동행은 사절이다. 나는 고개를 내젓고는 맨홀 뚜껑을 땄다.

         

       하수처리장 내부. 라이트를 켜지 않으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어둠이 자리해 있다.

         

       “미안, 데이트 코스로는 최악이네.”

       “넌 어디 가서 에스코트 하지 마라.”

         

       우리는 실없는 농담을 따먹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조금이나마 말을 터 놓으며 이 으스스한 분위기를 정화하려는 나름의 시도였다.

         

       “얼마나 더 가야 해?”

       “20분 정도.”

         

       하수처리장 답게 분위기만으로도 비위생적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오염된 물이 수로를 따라 흘렀다. 이따금씩 인간 형상을 갖추고 있는 주철 덩어리들이 둥둥 떠내려가는 모습도 시야에 들어온다. 사람을 담을 자루가 없어서 몸뚱이째로 저리 흘려보낸 모양이다.

         

       그나마 사지를 토막 치지 않고 버린 게 어디냐. 아, 저건 손만 있네.

         

       […황실 재난대책본부에서 알려드립니다. 본 감염병 비상사태의 대상이 되고 있는 흑사병은 잠복기의 측정이 무의미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하여 제국민 여러분께서는 개인 방역을 보다 철저히 하시고, 발병은 아무런 예후 없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항시 간과하지 마시길 바랍─]

         

       “여기서부턴 라디오도 안 터지는데.”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위생상태가 더욱 개판이었다. 고약한 하수구 냄새가 폐포를 찔러댔다. 그나마 두꺼운 천을 두르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필터가 없었더라면 이 자리에서 졸도했을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별 말이 없자 심심해졌다. 먼저 입을 연 건 내 쪽이었다.

          

       “정말 흑사병 퍼뜨린 새끼가 여기 있는 거 맞아?”

         

       내가 빙의자와 동행한 이유는 단순했다.

       

       병 퍼뜨린 놈을 잡아 족치려고.

         

       최초 유포자가 물러나면 이 사태가 멈출 거라고 한다. 미래를 아는 놈이 그런 말을 했으니 틀린 정보는 아니겠지.

         

       “글리스턴 선생님께서 의심이 간다고 하셨어. 하수처리장엔 날벌레가 많으니까 아예 헛다리 짚는 것도 아니겠지.”

        “어쨌든 걔 절멸급이라면서.”

       “…그래.”

       “그러면 우리 둘이서 되겠어?”

         

       생각해보면 이건 제 분수도 모르는 멍청이들이나 할 법한 짓거리였다.

         

       학부생 두 명이 고작 스크롤 몇 개 챙겨와서 있을지도 모르는 절멸급을 잡으러 어른들 몰래 지하수로로 내려온다? 다음 날 사이좋게 손잡고 변사체로 발견돼도 이상할 일 없었다.

         

       변명거리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버멜은 목을 가다듬고는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등교 못 한 지 꽤 됐네.”

        “성도도 개판이고 말이야.”

         

       흑사병이 퍼진 지 3주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성도는 반쯤 제 기능을 상실했다. 수백만이 넘는 수도의 인구 중 10만에 가까운 사람이 흑사병에 걸렸고, 그중 1할 정도가 철화되어 유명을 달리했다.

         

       그나마 피해를 덜 본 지역은 황성과 아카데미 두 곳.

         

       황성이야 말할 것도 없고, 아카데미에선 아직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다. 아마 빙의자가 열심히 뛰어다니며 손을 쓰고 있었던 거겠지. 그런데도 학교 밖에서 죽는 사람이 나오는 것까진 어찌하지 못했을 테고.

         

       암울하다.

       

       정말, 빌어먹게도 암울한 세상이다.

         

       여기서 마왕이라도 부활했다간 인간 세상의 끝이 도래하는 게 아닐까. 내가 떠나기 전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조금 위험하겠는데.

         

       “역시 답은 핵밖에 없는 건가.”

       “…뭐?”

         

       툭, 하고 내뱉은 말. 무심코 씹어뱉은 그 말에 버멜이 걸음을 멈췄다.

         

       “아니, 그런 게 있어서.”

       “뭐가 문제인데.”

       “절멸급 하나가 이 정도잖아. 두 마리만 모여도 나라 망하는 거 아니야?”

         

       이 세상의 장르가 어떻느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다크 판타지라 답하겠다. 식민 지배를 받기 직전 약소국이 처한 상황도 이 정도로 암울하지는 않으리라. 

         

       앞에서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내가 의대를 버리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내쉬었던 것보다 더 기나긴 한숨이었다.

         

       “아마 그러진 않을 거야.”

       “그래?”

         

       의외네. 수 틀리면 다 쳐부수며 들어올 줄 알았는데.

         

       “놈들이 노리고 있는 건 인간이나 엘프 따위가 아니니까. 아마─”

         

       촤아악!

         

       “뭐지…?”

         

       지면이 세차게 흔들렸다. 수면이 먼저 지나간 파동을 따라 출렁거렸다.

         

       “저쪽에서 뭔가 오는 것 같은데?”

         

       물길을 가르며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 보통 속력이 아니었다.

         

       하수구 천장 너머로 텅텅거리는 소리가 났다. 마치 고양이가 환풍구를 오르내리는 듯한 쇳소리.

         

       나는 반사적으로 스태프를 쳐들었다.

         

       버멜이 핸드라이트로 측면을 비추었다. 그러자 비로소 소음을 낸 원인과 마주하게 되었다.

         

       “이런….”

       “…씨발.”

         

       다리는 여섯 개였다.

         

       그중 두 개는 천장에, 또 다른 두 개는 벽면에, 나머지 두 개는 물바닥에 붙여놓은 채였다.

         

       방사형으로 뻗은 여섯 다리의 중심에는 누에고치 같은 두툼한 몸통이 자리해 있다. 전체적인 모양새만 보면 각다귀처럼 생기기도 하였으나, 등 뒤로 달린 날개가 총합 세 쌍이었다.

         

       또한 배 위쪽으로 나 있어야 할 머리 부분은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 사람으로 치면 가슴우리에 머리가 달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머리의 수는 여섯. 다리와 정확히 같은 개수였다.

       

       다만 두개골은 사람의 것을 빼닮았다. 아니, 그냥 사람의 것이었다.

         

       치열은 고르지 못했는데, 일부는 선인장의 즙을 빨아먹도록 진화한 핀치 새의 부리처럼 변이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놈은 쇠철로 되어 있다. 생명이라고 볼 수가 없었다.

         

       황화카드뮴 센서라도 내장되어 있던 모양인지 녀석은 빛을 비추자마자 속도를 줄였다. 그렇다고 뒷걸음질을 쳐서 도망가려는 움직임은 안 보였다.

         

       라이트에 적응한 놈이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뛰어!”

         

       버멜이 소리쳤다.

         

       나는 스태프로 녀석의 하악부를 올려 치려고 했으나, 그 시도는 보기 좋게 실패로 돌아갔다.

         

       헛스윙. 깐프 놈이 내 팔뚝을 붙잡고는 뒤로 쑥 끌어당겼다.

         

       “어, 어?”

       “너 미쳤어?”

         

       버멜은 내 손목을 붙잡은 채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쿵, 쿵, 쿵. 물을 가르는 발걸음이 등 뒤를 서늘하게 만든다. 코너가 없는 이상 전속력으로 달리더라도 금방 붙잡힐 것이다. 나는 뒤를 돌아볼 때마다 쌍소리를 내뱉었다.

         

       “아까 얘기했으니까 알지? 저기 앞까지만 가서 돌아!”

         

       지하수로에는 곳곳마다 오수의 범람을 방지하기 위한 수벽이 설치되어 있다. 이 수벽을 내리는 레버를 당기기만 한다면 시간을 벌 수 있을 터였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코너 부근의 레버까지 도달했다. 녀석도 우리가 하려는 짓을 눈치채고는 기계음 섞인 괴성을 내지르며 돌진해왔다. 그 음성에는 사람의 말도 섞여있었다.

         

       미친. 죽은 사람으로 저걸 빚어낸 건가? 그 절멸급 마수가?

         

       이끼나 돌가루가 끼어있었던 터라 레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성인 남성 두 명… 은 아니고, 남자 하나에 여자 한 명 분량의 몸무게 대부분을 실었음에도 불구하고 레버는 꿈쩍 안 했다.

         

       “비켜 봐.”

         

       인간은 무릇 도구를 쓰는 동물. 관성 모멘트가 최대로 되도록 스태프를 움켜쥐었다.

         

       그걸 마법의 보조를 받지 않고 가속, 레버의 끝자락을 정확히 내려쳐서 하단부가 받는 돌림힘을 최대로 만들었다.

         

       순간적으로 막대한 토크를 받은 레버는 아래쪽까지 쭉 내려갔고, 그와 동시에 쇠사슬이 스르릉 올라갔다.

         

       쾅! 우리는 수문이 강하하기 직전에 샛길 쪽으로 발을 붙였다. 아슬아슬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다.

         

       레버 하나에 철벽 세 개가 내려갔다. 운이 좋게도 괴수는 세 갈래 길의 중앙에 딱 갇힌 신세가 되었다. 뒤쪽에선 계속 ‘살려줘’ 따위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수문은 막대한 수압을 막고도 남을 만큼 단단하게 설계되어 있어서 놈의 체구로는 부수거나 하지 못한다. 우리는 무릎을 잡고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이거면 될까?”

       “아직 모르지.”

         

       이제 후방은 막혔다. 앞에서 적이 나타난다면 정면으로 받아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여 플레어 스크롤을 꺼냈다. 버멜도 세계수 가지를 접목한 스태프를 꺼내 주문을 저장하기 시작했다.

         

       툭, 툭, 툭.

         

       “…누가 우리의 정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리 설치는 것인가?”

         

       불길한 예상은 늘 들어맞는다.

       

       어둠을 걷어 젖히고, 8척 장신의 인영이 으스름한 불빛과 함께 드리운다.

          

       코앞에서 새부리 가면을 쓴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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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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