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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3

       64. 검은 송곳니 VS 성황청(2)

       

       

       “자, 잠깐만 기다려봐!”

       

       한참 영상을 구상하며 걸어가던 나를, 다급한 목소리가 붙잡는다. 

       

       뒤를 돌아보니 창백하게 질린 루비아 씨의 얼굴이 보인다.

       

       “바, 방금 한 말. 설마, 검은 송곳니의 이름으로 성황청에 전면전을 선포한다는 거야?”

       

       안 그래도 피로에 찌들어 있던 상황.

       나는 루비아 씨가 흥분하지 않도록 최대한 평온한 말투로 질문에 답했다.

       

       “네. 전에도 한 번 말했잖아요. 수틀리면 검은 송곳니의 힘으로 성황청을 세상에서 지워버릴 수밖에 없다고.”

       

       물론 그때 당시에는 그렇게 진지하게 한 말은 아니었다. 

       

       검은 송곳니의 협력을 얻을 수 있을지의 여부도 불확실했고, 무엇보다 그때는 최대한 분쟁을 피하는 쪽으로 방향성을 잡았으니까.

       

       그렇기에 구호 활동으로 제국과 성황청의 시선을 돌리기로 한 거고.

       

       “근데 지금 루비아 씨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사실상 성황청과 부딪히는 건 피할 수 없을 것 같아서요.”

       

       자료를 보니 아무래도 제국의 시선을 돌리는 덴 성공했어도, 성황청 쪽은 좀 어려울 듯 하다.

       

       그러니까… 이참에 아예 묻어버리자.

       

       저번의 계획을 대폭 수정해서, 아예 성황청에 검은 송곳니의 이름으로 전면전을 선포하는 것이다.

       

       ‘물론, 검은 송곳니 의사는 안 물어봤지만.’

       

       그런 건 사실 그다지 중요하진 않은 이야기였다. 

       

       만약에 내가 검은 송곳니의 이름으로 성황청의 악행을 까발린다고 치자.

       

       그럼 한창 주가가 상승하고 있는, 전인류를 구원하실 대단한 검은 송곳니는 모두의 기대를 받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검은 송곳니의 단장이 말할 수 있을까?

       

       저건 그냥 사칭범이 한 얘기에요.

       우리는 성황청 같은 거대권력이랑 대적할 마음이 없습니다, 라고?

       

       그런 모양 빠지는 말을?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지.’

       

       혁명에 있어서 시민들의 지지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요소. 

       

       검은 송곳니는 울며 겨자먹기로 성황청과 대적할 수밖에 없다.

       

       ‘뭐 그놈들 입장에서는 좀 아니꼽겠지만.’

       

       꼬우면 나 같은 열혈 후원자에게는 밥 한 번이라도 사줬어야지.

       

       내가 검은 송곳니 신앙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받아먹을 거 다 받아먹고 입 싹 씻은 건 그놈들이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는 알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성황청인데… 저, 정말 괜찮을까?”

       

       루비아 씨가 내게 그리 물어온다.

       나는 그 물음에 상냥하게 웃으며 답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검은 송곳니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으니까.”

       

       뭐, 만약에 일이 꼬여서 검은 송곳니의 협력을 얻지 못하더라도, 리엔이나 시엘이 있는 이상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으니까.

       

       게다가 이젠 내 감을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긴 해도.

       

       뭔가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고 말이다.

       

       나는 그런 생각으로 루비아 씨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

       

       내 말을 듣자마자 루비아 씨는 고장나버렸다.

       

       검은 송곳니를 모욕할 생각은 없었다든지, 검은 송곳니의 위대함은 나도 당연히 알 수 있다든지 하는 헛소리.

       

       그런 괴상한 이야기를 내뱉다가, 루비아 씨는 픽 하고 쓰러졌다.

       

       사실 이런 일도 이미 몇 번 경험해본지라, 나는 능숙하게 루비아 씨를 받아냈다.

       

       말랑말랑한 두 개의 덩어리의 감촉.

       이후 그녀를 호송하기 위해 공주님 안기 자세로 루비아 씨를 들었을 때의 허벅지의 촉감.

       

       나를 위해 일하다가 무리해서 저리 쓰러진 거니까. 그런 것에 집중하면 안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기에. 

       

       나는 필사적으로 본능과 싸워 가며 루비아 씨를 안전히 침대에 눕혔다.

       

       뭐라고 해야 할까.

       여러모로 참 손이 많이 가는 누님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아직 내가 겪은 일도 얘기를 못 해줬네.’

       

       검은 송곳니 군대 비스무리한 것을 임시보호하게 되었다든지.

       

       어쩌다 보니 내가 검은 송곳니 신앙을 퍼트리게 되었다든지.

       

       얼떨결에 제국군에 스파이를 셋 심어두게 되었다든지.

       

       이래저래 전해야 할 소식이 많은데. 저런 상태여서야 무슨 말을 전할 수가 없었다.

       

       ‘뭐, 급한 일은 아니니까.’

       

       저 사람은 이제 좀 쉬게 내버려두고, 나는 내 할 일에 집중하자.

       

       나는 그런 생각으로 루비아 씨의 방문을 닫고 시엘의 방으로 향했다.

       

       저번에 블랙마켓에서 영상을 남겼을 때의 솜씨. 

       

       시엘이라면 추적의 여지 하나 없이 완벽하게 영상을 배포할 수 있으리라. 

       

       환상 마법으로 적절히 가짜 검은 송곳니 단장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그러니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영상의 내용을 구상하는 것 뿐이다. 

       

       ‘간단하네.’

       

       물론 나는 성황청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다. 전작에서도 떡밥만 무성하지 제대로 정보가 풀린 게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냥 아무 말이나 지어내서 음해하면 되잖아?’

       

       자연스레 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악성 루머를 퍼트릴 시간이었다.

       

       *****

       

       태양빛에 아름다운 빛깔을 채색하는 스테인드 글라스. 

       

       웅장한 신상과 고풍스러운 오르간. 

       

       그런 거룩한 풍경과는 달리, 성당에 모인 사람들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난잡하고 소란스러웠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리라.

       그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성황청의 영역.

       

       그 한가운데에 괴상한 일렁거림이 떠올라 있었으니까.

       

       그것을 없애려 한 자는 있었지만, 모두가 실패했다. 아니, 실패한 걸 넘어서 모두 제정신을 잃고 제 목을 비틀었다. 

       

       그리고 그 시체에는… 보란 듯이 그 자국이 남았다.

       

       늑대가 물어뜯은 듯한, 검은색의 송곳니 자국이.

       

       그 시체를 둘러싸고 웅성거리는 인파 속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만으로도 소란스러웠던 성당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리라.

       

       지금 나온 남자는, 성황청의 추기경이였으니까.

       

       교황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행방이 묘연해진 지금, 차기 교황으로 가장 유력한 남자.

       

       카론이 지금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아무도 감히 그의 앞에서 소란을 피울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 숨막히는 침묵 속에서 카론은… 그 일렁임에 손을 댔다.

       

       영상 마법의 작동신호.

       

       손이 닿자마자 영상은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보인 것은,

       

       [묻겠다. 신의 뜻을 이행하지 않는 성황청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정체불명의 남자의 모습이었다.

       

       저 남자의 정체는 카론도 짐작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리라.

       

       이런 괴상한 일을 벌일 조직은, 이 제국에 하나밖에 없으니까.

       

       [성서에는 나와 있다. 신은 모든 이를 사랑하신다고. 모든 존재를 평등하게 아끼고 보듬는다고.]

       

       검은 송곳니의 단장은 태연하게 성서를 인용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허나, 그렇다면 구원에는 어째서 금전적인 대가가 따른단 말인가. 신은 사실 부유한 이들만을 편애해서?]

       

       성황청에 거금을 지불하면, 신의 이름으로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면죄부.

       

       죽어가는 임산부가 돈이 모자라다는 이유만으로 성당에서 내쫓긴 이야기.

       

       그런 자료들이 화면에 떠오른다.

       

       지금 이 상황.

       검은 송곳니가 하려는 일은 명백했다.

       

       성황청을 공격하려는 것이다.

       아마 이와 같은 영상이 이미 제국 곳곳에 무분별하게 떠올라 있으리라.

       

       [그럴 리가 없지. 신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우리 모두를 아끼시며, 우리 모두를 사랑하신다.]

       

       능숙하다.

       그 선동방식이 무척이나 능숙했다.

       

       신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알 수 있었다.

       

       차라리 신을 부정했다면, 저것을 그저 이단의 헛소리로 치부할 수 있었다.

       

       신앙심 깊은 이들도 검은 송곳니의 말에 반발감을 가졌을 테고. 

       

       하지만 저 교활한 놈은 그런 빈틈을 절대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허나, 신이 공평하다면 어째서 구원은 공평하지 않은가. 성황청의 구원은 어째서 사사로운 대가를 필요로 하는가.]

       

       그 말과 함께 온갖 끔찍한 모습들이 화면에 스쳐지나간다.

       

       굶어죽어가는 아이.

       치료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병자.

       

       도움을 울부짖음에도 그것을 무시하는 성직자의 모습들.

       

       [그 이유야 단순하지. 성황청은, 신의 의지보다 자신의 사리사욕을 우선시하는 배교자들의 집단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

       

       온갖 부정부패.

       성황청이 저질러온 악행들이 버젓이 그 영상에 떠오른다.

       

       언뜻 환상 마법으로 만들어낸 가짜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아보였다.

       환상마법치고는 너무나도 그 모습이 명확하고.

       

       환자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고, 환자가 갑자기 성황청에 전재산을 기부하겠다는 결심을 하는 일 따위,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는 일이었으니까.

       

       다른 비리와 악행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그렇게 성황청의 행태를 폭로한 후, 검은 송곳니의 단장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다시 한 번 묻겠다. 신의 뜻을 이행하지 않는 성황청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자연스레 카론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어느 정도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이 영상을 보고 있을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를. 마음속으로 어떤 대답을 내놓았을지를.

       

       그간 쌓아온 것들.

       지지기반과 명성.

       

       그 모든 것들이 저 영상 하나 때문에 무너지고 있을 거라는 사실을.

       

       허나 악귀처럼 일그러지는 카론의 얼굴과, 그가 뿜어대는 살기에 벌벌 떠는 주위의 사람들과는 상관없이. 

       

       영상 속 남자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렇기에 부수겠다.]

       

       카론의 면전에서 검은 송곳니의 단장은 끝내 선포했다.

       

       [성황청의 이름은, 우리의 손에 의해 역사에서 지워지게 될 것이다.]

       

       …성황청을 무너트리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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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How did you create a dark organization? 어쩌다 흑막 조직 만들어버림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game spoilers turned out to be fake. The characters I gathered thinking they were heroes are actually all villains. In other words,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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