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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3

       옛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었다.

       

       물론 책을 읽는 것 정도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장서고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금방 주제는 ‘책’으로 이동했다.

       

       원래 책 좋아하는 사람끼리 모이면 작가 이야기나 작품 이야기로 떠들썩해지는 법이었다.

       

       물론, 내가 어떻게 반응하기 힘든 화제도 있었다.

       

       

       “호메로스 작가님은 천주께서 내려주신 천사가 분명해!”

       “그건 좀… 과장이 아닐까?”

       

       “과장이라니?! 오히려 부족하지! 호메로스 작가님께서 이 땅에 내리시기 전까지, 문학이라는 건 기껏해야 귀족들의 후원을 받아 쓰인 기사문학이 전부였잖니? 내가 아는 귀족들의 가문명이 나올 때는 조금 웃기기도 하고…. 사실상 전부 똑같은 이야기에 이름만을 바꾼 것들이 매일 인쇄기에서 뽑혀나왔지. 문학은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었어….”

       “음.”

       

       

       이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나 역시 그래서 전생의 문학을 표절한 것이었으니까. 이 세계에 새로운 문학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호메로스 작가님의 돈키호테가 모든 것을 바꿔놓았지. 기사문학의 숨통을 끊고, 문학의 새 시대를 열었어. 그런데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니?”

       “…….”

       

       “돈키호테는 두 번째 시대를 알리는 문학의 성경이야. 구세주께서 말씀으로 이 땅에 나시어 복음을 전하셨듯이─, 문학이라는 게 존재하는 이상 돈키호테만큼은 영세토록 사랑받겠지. 그것은 ‘철학자와 영웅의 시대’를 답습하고 있었을뿐인 우리의 세계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갔다는 상징이기도 하니까. 모든 고전은 결국 죽어야만하니까…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돈키호테는 영원토록 사랑받을 거야.”

       

       

       광신으로 번뜩이는 눈동자에서. 조금씩 고조되어가는 그 찬양의 목소리에서.

       

       나는 ‘아이솔렛 라인하르트’라는 소녀가 가진 재능을 느꼈다.

       

       그것은 비평가의 재능이다. 작품을 단순히 작품으로 보지 않고, 작품에서 해석을 찾아내려는 날카로운 눈이다.

       

       전생의 돈키호테가 가지는 의의─,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현대문학의 시대에 와서까지도 ‘작가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고전’이라고 불리는 돈키호테의 불멸성을 그녀는 터무니없이 명료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르네상스의 마지막 작품이자, 최초의 근대소설. 문학의 성경.

       

       돈키호테.

       

       돈키호테는 ‘변화하지 않는 문학’의 종언을 고하는 소설이었기에, 역설적으로 영세토록 불멸할 수밖에는 없었다. 죽음만큼이나 영원한 것은 또 없지 않은가.

       

       

       “그야말로 천주께서 이 땅에 내려주신 두 번째 구세주나 다름이 없지! 호메로스 님은 문학의 구세주야…!”

       “…….”

       

       

       그렇기에, 내가 알고있는 가장 재능있는 비평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새삼스럽게도 내가 이 세계에 끼치는 영향력을 이해했다.

       

       그러한 영향력은 교회에서 나를 시복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프린키피아로 이 세계의 학문을 발전시켰기에 생기는 것도 아니었으며, 하렌의 용을 상징하는 옥새, 수인의 목자를 상징하는 황금 지팡이, 현자의 반지나 상단 연합의 백금 카드 따위의 물건들로 인해 정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건 기껏해야 ‘잡동사니’에 불과하다.

       

       그 모든 잡동사니 위에 쌓여있는 수십권의 책들이야말로 내가 가진 진정한 영향력이었다. 문학의 영혼은 문학 그 자체에 있으니까.

       

       21세기의 지식도, 부와 명예도, 그 어떤 귀한 상징이나 값비싼 물건도.

       

       영원할 수는 없다.

       

       영원이란 오직 사람의 마음 속에만 있는 것이었으니까.

       

       

       [“공기의 딸들도 영혼이 없지만─ 착한 일을 하여 스스로 영혼을 만들 수가 있지.”]

       [“인어 공주야, 너는 정성을 다하여 우리처럼 영혼을 얻으려고 노력했어. 차갑고 시린 고통을 겪었지. 그 고통이 너를 공기의 세계로 끌어올렸단다. 이제부터 삼백 년 동안 착하게 살면─ 불멸의 영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란다.”]

       

       

       그렇기에, 문학은 가장 무용한 학문이지만─.

       

       가장 영원한 학문이었다.

       

       그것이야말로 문학이 가진 진정한 ‘힘’이었다!

       

       .

       .

       .

       

       아이솔렛은 한참 동안 호메로스 찬양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다가 너무 말을 많이 해서 목이 건조한 건지, 켁 기침을 한번 하고는 머쓱해하며 새로운 화제를 꺼냈다.

       

       

       “그렇지! 에드 너도 책을 좋아하니까 가입하는 게 어떠니?”

       “가입?”

       

       “호메로스교!”

       “…무슨 교?”

       

       “문학의 성인, 호메로스 님을 추종하는 모임이야!”

       “그건 역시 신성모독 아니야…? 이단 같은데….”

       

       

       어쩐지 광신적인 열기가 느껴진다고 생각했는데, 종교까지 있던 걸까.

       

       내가 어이없다는듯 반문하자 아이솔렛은 오히려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호메로스 작가님의 신성성을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신성모독이지! 이건 아직 대외비인데─ 교황청에서 호메로스 작가님의 시복을 준비하고 있거든. 후후.”

       “음.”

       

       

       대외비였나? 딱히 남들에게 말하고 다닌 적은 없어서 잘 몰랐다.

       

       가르니에 추기경님께서도 딱히 남들에게 이야기하지 말라는 말은 없으셨다. 어쩌면 단순히 공식적으로 발표하기에는 준비가 부족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복 절차에는 몇 년에서 수십년까지도 소요된다고 했으니까.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러면 그 ‘호메로스 교’라는 사람들은, 전부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거지?”

       “그치? 가끔씩은 자작 소설같은 걸 써서 서로 비평하기도 하고─.”

       

       “좋네. 당장 가자.”

       “지금? 뭐 괜찮을 것 같지만, 식사해야하는 거 아니니? 며칠째 굶은 것으로 아는데.”

       

       “아, 맞다.”

       “…책을 좋아하는 건 알지만, 인간적으로 식사는 까먹지 말자.”

       

       

       아이솔렛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음.

       

       가볍게 빵이라도 하나 먹고 출발해야겠다.

       

       .

       .

       .

       

       아이솔렛을 따라 도착한 ‘호메로스 교’의 모임은, 이단들이 모여서 촛불 하나 켜놓고 비밀스럽게 집회하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장소는 도서관이었고, 그냥 건전한 독서 토론에 가까워보였다.

       

       전생의 독서 토론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참여자들이 죄다 화려한 옷을 차려입은 귀족이라는 것 정도? 평상복보다는 연회복에 가까운 그런 복장들이었다.

       

       

       “어머, 아이솔렛 공녀님! 오셨군요! 오늘은 친구 분과 예정이 있으신 거 아니셨나요?”

       “후후, 제가 그 친구를 포교해서 이곳으로 데려왔답니다! 에드 씨, 호메로스 교의 교인들과 잠시 인사 나누시겠어요?”

       

       “응? 아, 네.”

       

       

       이게 사교계에서의 아이솔렛 말투구나. 뭔가 갑자기 말투가 확 뒤바뀌니 조금 신기한 기분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프리덴 백작의 차남, 에드 프리덴입니다. 평소 책을 좋아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으음, 뭔가 어색하네.

       

       생각해보면 전생의 나는 독서 모임을 잘 안 나갔다. ‘데미안’이나 ‘그리스인 조르바’같은 이미 읽은 고전들을 함께 읽는다거나, 누가봐도 책 안 읽어봤으면서 단순히 이야기 나누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의 존재나, 뭐 이런저런 이유들로 안 나가게 되었던 것 같다.

       

       아, 그리고 유독 일문학을 찬양하는 사람들의 존재도 이유 중 하나였다.

       

       한국에 살면서 정작 국문학을 안 읽고 일문학만 읽고는, 당당하게 ‘한국 문학은 전부 쓰레기다!’라고 외치는 사람들은 솔직히, 조금….

       

       독자 이전에 인간적으로… 이건 좀 아니지 않나…하는 느낌이 있었으니까….

       

       아무튼, 그러한 이유들로 독서 모임은 별로 익숙하지 않았다. 아마 지금 내 표정을 보면 굉장히 어색하지 않을까.

       

       차라리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에게 작업물 던져주는 게 더 편한 것 같다. 그건 출판사에서 신입 가르칠 때 하던 일이랑 별로 다르지 않기도 하고.

       

       

       “다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곳에서 자작 소설을 나누기도 한다고 들었─.”

       “헤로도토스 작가님…?”

       

       “음?”

       

       

       그런데, 어디선가 익숙한 이름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바라보니, 한 남자가 눈을 부릅뜨며 멍하니 입을 벌린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얼굴이 익숙한 것 같기는 한데….

       

       어디서 본 적이 있던가?

       

       

       “혹시 어디서 뵌 적이 있던가요?”

       “저, 저저! 에릭 결혼식에도 참석했었고─.”

       

       “아아. 형 결혼식에서….”

       “그리고 홈즈X뤼팽 공모전에서 한번 뵈었습니다…!”

       

       “아하.”

       

       

       남자와 내 대화에 주변 호메로스 교인들이 멍하니 우리 둘을 바라보았다.

       

       무슨 이야기인지 잘 이해가 안 간다는 것 같은 태도다.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다시 한번 스스로를 소개했다. 굳이 밝힐 생각은 없었지만, 음, 굳이 숨길 필요도 없겠지.

       

       

       “헤로도토스라는 필명으로 ‘하프 앤 하프’에서 추리소설과 여러 상업소설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나의 소개에.

       

       잠시 주변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더니.

       

       

       “우워어어억─!!!”

       “흐아아아악─!!!”

       

       

       순차적으로, 내가 한 말을 이해한 순서대로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미친, 아니, 그 헤로도토스 작가님께서 여기에 오셨다고?!”

       “레인! 빨리 우리 집에서 내가 보관해둔 잡지 전부 가져와─!”

       

       

       순식간에 도서관이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옆에서 뒤늦게 상황을 이해한 아이솔렛이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에드 네가 헤로도토스 작가님이었다고…?”

       “어어.”

       

       

       …역시 그냥 닮은 사람이라고 할 걸 그랬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바다의 거품처럼 저는 다시는 파도의 음악도 듣지 못하고, 아름다운 꽃도, 붉은 태양도 보지 못하고 떠돌아다니게 되겠죠.”]
    [인어공주는 말했습니다.]

    [“불멸의 영혼을 얻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왕자와의 사랑을 통해 불멸의 영혼을 얻으려던 인어공주는 결국 그 사랑으로 인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합니다.

    그리하여 물거품으로 변했다는 것이 흔히 알려진 결말이지만─.

    [수평선 위로 해가 떠올랐다. 따스하고 온화한 햇살이 한때 인어공주였던 차가운 물거품을 비추었다.]

    사실, 인어공주는 공기의 정령이 되어 진정한 의미에서의 불멸을 손에 넣었다는 것이 진짜 결말입니다.

    안데르센은 이러한 결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내 인어공주가 푸케의 운디네처럼 불멸의 영혼을 타인의 사랑에 의존해 얻게 하지 않았어…. 그런 식으로 영혼을 얻는 것은 운에 달린 거야.”

    (어쩐지 실연으로 슬퍼하는 안데르센의 훌쩍거림이 들리는 것 같네요…)

    #####

    작중 독서 모임의 묘사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나 작가의 창작일뿐 실제 인물이나 사건, 그외 실존하는 것들을 기반으로 하지 않았음을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한국 문학도 재미있는 거 많습니다.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한국인’이라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들도 있고요. 이왕 한국에서 태어나고 한국어를 알고있으니, 그런 문화적 이점을 최대한 누릴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장강명 작가님의 작품을 읽을 때 이런 감상을 많이 느낍니다.

    장강명 작가님의 작품에 대해서는, 음, 시간이 되실 때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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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zing Author in This World 이세계에서 표절 작가로 살아남기
Score 4.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was atrocious.

So, I plagiarized.

Don Quixote, Anna Karenina,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The Metamorphosis… I thought that unraveling the literature of the original world would advance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Those who dream and those who do not, who really is the mad one?”

“To live or to die, that is the question.”

“No matter how fatal the mistake, it is different from a sin.”

But then, people began to immerse themselves too deeply in the novels I plagiarized.

Can’t a novel just be seen as a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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