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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3

       <공간왜곡>의 바퀴벌레 같은 생존력은 인정하겠다.

       

       훅!

       

       설마하니 다시 한번 내 앞에 나타날 줄은 상상도 못했으니까.

       

       하지만.

       

       “뭔가 착각하나본데.”

       

       놈에겐 안타까운 사실이 하나 있었다.

       

       “네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기분이 나쁘다. 이전에는 녀석의 숨을 끊지 않았지만, 지금은 경우가 완전히 다르다는 뜻이었다.

       

       “너는 내 상대가 아니야.”

       “큭큭!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법이지!”

       

       스르륵!

       

       비열하게 웃음을 터뜨린 김인만은 나타날 때처럼 허공에 녹아들 듯 사라졌다. 

       

       ‘……각성을 달성한 건가?’

       

       초능력을 얻은 히어로가 다시 한번 도약하는 경지, <각성>.

       

       <공간왜곡>은 놀랍게도 그 힘을 깨우친 것처럼 보였다. 공간을 도약하는 수준이 아닌, 자신이 공간 그 자체가 되어버리는 현상.

       

       ‘온갖 분탕질은 다 쳐놨네.’

       

       뒤죽박죽 뒤엉킨 <히사있>의 시나리오다. 원인은 새로운 흑막, 일성. 분명 놈들과 <공간왜곡>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오고 갔던 것이 확실했다.

       

       “내가 보이느냐? <현상거절>.”

       “…….”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으면 말투조차 저리 변한 걸까.

       

       뭐, 사실 내 알 바는 아니었다. 놈은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렸다. 단지 그뿐이었다.

       

       “크하하하하! 보아라! 나는 ‘죽음’을 받아들이며 보다 완벽한 존재가 되었으니!”

       

       녀석의 광소가 복도를 뒤흔들었다. 대체 무슨 원한이 있는 건지, 놈은 완전히 나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이거 죽기 딱 좋은 날이군.”

       “흐흐, 포기한 것이냐? 나와 감히 맞서 싸울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거냐? D등급 버러지.”

       “아니.”

       “……뭐?”

       “네가 죽기 딱 좋은 날이라고.”

       

       현상거절.

       

       재빨리 능력을 전개한 나는 곧장 공간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 해당 시설에서의 공간 도약을 거절한다. ]

       

       쑤우욱!

       

       진언을 읊는 것과 동시에 징그러운 장면이 연출됐다. 마치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공간이 출산하는 것처럼, 고약한 생김새의 김인만을 쏟아낸 것이다.

       

       쿠당탕!

       

       “크윽! 이 빌어먹을 놈이!”

       

       화악!

       

       재빨리 몸을 일으킨 놈 역시 얌전히 포기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내 능력에 저항하는 녀석은 처음인데?’

       

       놈의 이명처럼, 장기인 <공간왜곡>을 사용해 모습을 감춘 것이다. 

       

       “인정하마. 김인만, 네가 며칠 사이에 퍽 강해진 걸.”

       “크흐! 흐으! 제법 눈썰미가 좋은 놈이야.”

       “하지만 너는 내 능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기껏해야 아공간 속에 모습을 감추는게 전부겠지.”

       “……하! 착각하지마라. 아직 공격은 시작도 안 했으니.”

       

       놈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현재 놈이 크게 동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 증거로 여기서 나와 말동무를 하는 것 자체가 녀석의 뜻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뜻하니.

       

       “이제 질렸다. 인정할 수밖에 없겠어. 내 알량한 박애주의는 결국 하등 도움이 안 된다는 걸.”

       “그, 그게 무슨 소리냐?”

       “너 같은 금쪽이는 특별한 교육을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당황한 듯한 김인만의 물음. 그에 나는 차갑게 내뱉었다. 사실 송수아의 마나중독을 치료한 순간부터, 언제고 나를 괴롭혀온 사실이기도 했다.

       

       [ 나는, 이 세계의 유일한 이방인이다. ]

       

       따라서 결심했다. 모든 것이 시나리오대로 지나가게 두리라. 나는 그저 편안하고 꿀 빠는 생활,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할 테니.

       

       하지만 이제 와서는 그 결심은 의미가 없어졌다. 애당초 원작의 스토리라인에서 크게 이탈한 것도 그렇고, 내가 직접 나서서 악의 뿌리를 도려내지 않으면 ‘완결’에 다다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덕분이다.

       

       “현상거절.”

       “…놈!”

       

       내가 능력을 다시 한번 사용한다고 생각한 걸까? 놈의 다급한 외침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복도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 <공간왜곡> 김인만. 녀석의 망막에 상이 맺히는 것을 거절한다. ]

       

       지금 사용하는 수는 놈의 예상을 아득히 상회하는 것이었다. <각성>의 단계에 이른 놈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기습적인 공격이 필요하다. 

       

       애당초 <공간왜곡>이라는 능력은 상상보다 훨씬 더 위험한 까닭이었다. 앞선 <신속> 최영웅이 그랬던 것처럼, 김인만 역시 아직 능력을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른다고 표현하는 편이 좋겠다.

       

       ……그야 뻔한 일이었다. 애당초 ‘아카데미’라는 온실 속 화초들이 뭘 알겠나. 물론 이따금 <원소술사>, <성녀> 같은 이레귤러가 나타나지만 말이다.

       

       “이, 이게 도대체 무슨! 이건 불가능해! 비겁하다고!”

       

       공간과 공간. 쉽게 말하자면 차원의 틈에 숨는다고 내 능력이 빗겨나가는 일은 없었다.

       

       곧장 김인만의 비명이 복도를 시끄럽게 울렸다. 아직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본디 초능력이란 시전자의 멘탈이 가장 중요한 법.

       

       집중을 잃은 놈이 한심하게 복도를 뒹구는 건 시간문제다.

       

       “크아악! 이 비겁한 녀석! 빨리 능력을 해제해라! 넌 자존심도 없는 거냐? <현상거절>!”

       

       쑤우욱!

       

       다시 한번 모습을 드러낸 김인만이 내게 삿대질하며 소리를 내질렀다.

       

       ……분명 일시적으로 시각을 잃었음에도 감은 대단히 좋은 녀석이다. 이런 공간에서 정확히 나를 가리키고 있었으니.

       

       “이, 이이이……!”

       

       녀석은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자신의 품을 뒤적거렸다. 마치 안주머니에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처럼, 후들거리는 팔이 놈의 심경을 증명하고 있었다.

       

       스윽.

       

       “……저건.”

       “흐, 흐흐흐!”

       

       김인만이 이내 품에서 꺼낸 것은 작고 투명한 플라스크였다. 그 안에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불길한 기운이 가득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건가. 그게 ‘죽음 물질’이라는 건가?”

       

       고개를 삐뚜름하게 치켜 든 나는 싸늘하게 적을 응시했다.

       

       금지된 약물, ‘수어사이드’와 궤를 달리하는 불길함이다. 녀석이 저것을 복용할 경우엔 어떤 결과가 나올지 나조차 장담할 수 없었다.

       

       “현상거절!”

       

       여태까지의 나와 달리, 초조한 목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퐁!

       

       놈의 두툼한 손가락이 푸른빛의 기이한 밀봉을 뜯어낸 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 <공간왜곡> 김인만의 신체 활동을……. ]

       

       진언을 읊는다. 애당초 내 의도대로, 이 공간은 내가 완벽히 장악한 상태. 김인만은 내 현실 조작에 거역할 수 없을 터였다.

       

       그러나.

       

       푹!

       

       “멍청한 청년. 그대 혼자서는 무리라고 하지 않았소.”

       

       나는 진언을 끝내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동시에 속이 울렁일 정도로 느끼한 말투와 고압적인 어투가 등 뒤에서 들려온다. 놈이 투척한 예리한 단검이 내 집중력을 흐트려 놓았던 것이다.

       

       거기다.

       

       촤악! 주르륵!

       

       “큭!”

       

       도대체 이게 무슨 영문인지, 서둘러 뽑은 단검이 녹아내렸다. 마치 한여름 뙤약볕 아래의 아이스크림처럼. 걸쭉한 액체가 되어버린 단검은 이제 물건이라 부를 수도 없을 정도였다.

       

       “……너는.”

       “호오. 생각보다 더 냉철한 청년이구려. 아니면, 내 능력을 아는 것이오?”

       “하나가 아니었나.”

       

       마음이 차게 식는다.

       

       그야 갑작스레 전투 아닌 전투에 난입한 녀석이 누구인지 아주 잘 알았던 덕분이었다.

       

       “소개하겠소. 아카데미 3학년, 루터스 블라드. 이명은…….”

       

       금발에 푸른 눈. 특유의 음모를 꾀하는 것 같은 음침한 낯빛에 초췌한 안색까지.

       

       화악!

       

       또한 안젤리카와 같은 영국 출신이지만, 그녀와 누구보다…… 아니, 모든 랭커의 앙숙인 존재. 녀석이 자신의 등을 감싼 코트를 내던졌다.

       

       “<페이즈 체인저>외다.”

       

       갑작스레 등장한 적은 애당초 하나가 아니었다. 어떤 방법으로 기척을 숨겼는지 알 수 없었지만, 놈은 처음부터 이 기나긴 복도 내부에 숨어있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위험하다.’

       

       본능 속의 경종이 쉬지 않고 울려댔다.

       

       현 상황에서 <공간왜곡>을 제압하고, 처치하는 것?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애당초 그러리라 굳게 마음 먹기도 했었고. 하지만 또다른 ‘랭커’의 난입은 얘기가 달라진다. 심지어 그 랭커가…… 페이즈 체인저라는 것은.

       

       ‘역시 일성인가. 랭커를 동시에 몇이나 움직인 거지?’

       

       내가 <히사있>의 세계에 떨어진 후, 가장 큰 위기에 봉착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페이즈 체인저>는 강하다.

       

       그의 주력기는 ‘열기’다. 다만 문제는 불꽃, 화염 같은 열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화르르륵! 치이익!

       

       어느덧 뽑아 던진 단검…… 아니, 이제 쇳물이 된 그것이 기화한다. 고체가 액체가 되고, 그것이 다시 끓어 기화한다.

       

       ‘……철의 끓는점이 2862도라고 하던가.’

       

       그렇다.

       

       <페이즈 체인저>가 다루는 열기는 단순히 ‘마그마’ 따위마저 아득히 초월한다.

       

       “아쉬운 일이오. 당신 같은 영웅이, 생명이 다할 운명에 처하게 된다는게.”

       

       우우웅-!

       

       루터스 블라드. 녀석의 등 뒤로 붉고 밝은 빛이 떠오른다.

       

       놈이 다루는 힘은 ‘태양’. 그 힘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안녕하세요!

    소제목 변경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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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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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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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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