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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3

       

       

       

       

       

       

       

       【혼약대전이 끝난지도 벌써 90일이 지나가고 있구나. 오늘 도시로 시찰을 나갔다가 우연찮게 엘든의 이야기 들었어. 남편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던 아이와 여인을 구해줬었단 이야기.】

       

       【근위병의 질문에 엘든은 그렇게 대답했다지? 세상에서 가장 역겨운 놈이 여인과 아이를 폭행하는 놈이라고. 하긴, 돌이켜보면 엘든은 아카데미에서도 내게 그렇게 얘기했었더라.】

       

       【너는 왜 날 괴롭히지 않냐는 질문에, 그리 대답했었지. 나약한 자에겐 흥미가 없다고 말이야. 그런 엘든이 나약한 자들을 위해 피를 묻힐 줄은 꿈에도 몰랐어. 엘든은 나약한 자들의 몰락을 방관했던 이였으니까.】

       

       【그리고 아이의 물음에 후드를 벗으며 정체를 밝히던 엘든의 모습이 너무 멋졌다며 여인들이 호들갑을 떨더라.】

       

       【변하겠다는 다짐, 더 이상 방관자로 살지 않겠다는 그 다짐을 혼약대전이 끝나고서도 지키고 있는 엘든은 어떤 모습일까. 한없이 비참해지고 나약해지고 있는 나와 달리, 한없이 비상하고 강해지는 엘든의 모습은 어떠할까.】

       

       【문득 궁금해져서 그 모습을 상상해보려 했는데, 상상이 되질 않아. 새까만 먹지에 새까만 펜으로 그리는 것 같달까.】

       

       【듣자 하니, 축제 기간 동안 몬스터 요리사를 구하고 다녔다던데. 어쩌면 나의 요리가 엘든의 새로운 입맛을 돋궜지는 않을까, 하는 부질없는, 헛된 망상도 들기는 해. 이제 와 아무런 쓸모도 쓸 데도 없는 망상이.】

       

       【어쨌든, 오랜만에 들려온 엘든의 이야기에 이렇게 일기를 적어봐.】

       

       【기회가 된다면 나약한 이들을 도와주는, 위기에 처한 이들을 구원하는 엘든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언젠가.】

       

       【어디서든.】

       

       【그냥, 그 모습이 궁금하네.】

       

       【역경에 허덕이는 이를 도울, 엘든의 모습이…】

       

       【세상의 끝에 내몰린 이를 도울, 엘든의 모습이…】

       

       【그냥, 그냥 궁금하네.】

       

       __르미앙 윈터펠의 일기, 그 어느 장에서 발췌.

       

       

       

       

       **

       

       

       

       

       “…어째서 저 이들을 도운 것입니까?”

       

       훌쩍.

       패앵!

       손수건이 휘날리도록 코를 푼 렌들러가 뒤에 바짝 붙어서는 그리 물었다.

       여기서 감동적인 명언 하나 투척했다간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을 할 기세였기에, 퉁명스런 어조로 무뚝뚝한 답을 해주어야 했다.

       

       “가는 길에 방해되서 치웠을 뿐이야. 겸사겸사 배운 걸 써먹어보고 싶기도 했고.”

       

       하지만 이미 감동의 물결에 냅다 다이빙을 해버린 영감께선 텁! 입을 틀어막으며 뜻을 멋대로 해석해버린다.

       

       “겸손의 미덕에 배움의 실천까지…!! 소인, 너무도 기쁘옵니다…!”

       “…….”

       

       뭐, 그래.

       평생을 이 악질 캐릭터를 모시고 사느라 부던히 노력하고 고생했을 영감님께서 말년에라도 행복을 누리신다면 기뻐해야 할 일이겠지.

       개망나니로 전국 각지에 정평난 엘든 때문에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지내지 못 했을 테니까.

       그리고 그런 렌들러의 옆에서 함께 걷던 레이첼도 한마디 거들어왔다.

       

       “군더더기 없는 훌륭한 쇄도셨습니다. 힘과 속도의 균형 또한 완벽했습니다. 균형이 어그러지면 체력만 빠르게 소모될 뿐이지요.”

       “전부 스승님의 가르침이 훌륭했던 덕분이야.”

       “저는 그저 간단한 설명을 해드린 것뿐입니다.”

       

       혼약대전이 치뤄지는 기간 동안, 열심히 특훈을 받은 것이 확실히 빛을 발하고 있는 듯 했다.

       원작 엘든의 타고난 감각과 재능, 그리고 나의 고집스런 뚝심과 불굴의 의지가 빚어낸 빛이리라.

       독서와 훈련.

       그 두 가지만으로 하루 일정을 빡빡히 채우며, 마음과 몸의 양식을 골고루 챙긴 보람이 있다.

       

       문제는.

       몬스터 요리사 구인을 위해 하루종일 쏘다니고 있는 걸음에는 보람이 없다는 것.

       

       “다들 고생했어. 어서 와요.”

       

       그렇게 우린 여느 날과 다름없이 허탕을 치고선, 아리엘의 숙소로 복귀했다.

       이제 남은 건 고작 이틀.

       기간이 줄어들수록 희망은 기하급수적으로 내려갔지만, 구하지 못 한다 하더라도 출발에 차질이 생길 일은 없었다.

       여기서 못 구한다면, 다른 곳에서 구하면 그만일 일이니까.

       그리 긍정적인 생각으로 지친 심신을 달래며 저녁을 맞이했다.

       오늘 저녁은 심혈을 기울인 요리를 선보이겠다는 아리엘의 엄포에, 모두가 공복인 상태였다.

       

       “짜잔-!”

       

       아리엘이 재차 뿌듯한 미소와 함께 몬스터 요리 하나를 내놓았다.

       

       “저번엔 실수였어! 하나를 빼먹었지, 뭐야. 이번엔 정말 맛있을 거야. 기대해도 좋아.”

       

       이제는 소설책이 아닌, 요리책을 품에 끼고 사는 아리엘이 그리 호언장담을 했다.

       

       “오늘은 메인 디쉬는 바로, 요즘 제철이라는 화이트 트윈테일 폭스의 엉덩잇살 구이야-!”

       

       1월에는 꼬막.

       3월에는 냉이.

       7월에는 갈치.

       11월에는 대하.

       계절마다 제철음식이 있듯, 몬스터 또한 살이 포동하게 오르고 영양소가 풍부해지며 육질이 좋아지는 계절들이 있는데, 아리엘이 소개한 몬스터가 바로 5월부터 7월까지, 즉 북부령에 온기가 찾아오는 시기가 제철로 분류되는 몬스터였다.

       

       제철이 아닐 때에는 육질이 너무 질기고 퍽퍽해 먹기가 힘들다 하여, 이번 축제 기간 중에도 빈번히 보였던 음식이었다.

       

       “기대되는걸?”

       “히히. 조금 뜯어먹어봤는데, 맛있더라?”

       

       아리엘의 말대로 먹음직스러워 보이기는 한다.

       문제는 첫 번째 요리 때도 그랬다는 것.

       그래도 이번엔 요리책의 순서를 빠짐없이 잘 지켰다고 하니, 조금은 기대하며 한입 베어 물었고.

       

       으득.

       

       아리엘이 말한 것이 계절을 뜻하는 제철이 아닌, 금속 공학의 제철(製鐵)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때? 어때? 저번보다는 괜찮치 않아?”

       

       으흠.

       이렇게 단단한 육고기는 난생 처음인걸?

       조금만 더 연성하면 제법 쓸만한 몽둥이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뭐, 괜찮아.

       누구나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하는 법이니까.

       그래도 우리를 위해 열심히 요리를 준비해준 게 어디야? 라는 생각에 엄지를 번쩍 치켜들었고, 이내 아리엘의 얼굴엔 걱정 대신 환희가 피어올랐다.

       

       “아잣! 성공!”

       

       용기는 모든 발전의 거름이 되는 법.

       그렇게 우린, 뒷다리 구이를 가장한 냉동 육포로 저녁을 떼워야했다.

       

       

       

       **

       

       

       

       “흠. 끝이로군.”

       

       7일간 개최되는 몬스터 요리 축제가 결국 성대한 막을 내렸다.

       다사다난했고, 시끌벅적한 축제였지만 소득은 없는 축제였다.

       몬스터 요리 전문가를 초빙하지 못 했으니까.

       가능성을 염두에 둔 이들에게 고용금도 올리며 협상을 해봤지만, 역시나 갖가지 이유로써 모두 거절해버린 터였다.

       그리고 이제 한산해지기 시작하는 도시와 하나둘 떠나가는 요리사들에 이곳에서의 희망도 꺼진 상태였다.

       윈터펠 북부영지에서의 몬스터 요리사 구인은 그렇게 막을 내려버린 것이다.

       

       “어쩔 수 없지, 뭐. 랑그렌 공작령에서 구해질지 모르니까 낙담하지들 말자고.”

       

       나의 응원에, 짐꾸러미를 동여맨 렌들러 영감이 측은한 눈빛으로 내 어깨를 짚었다.

       

       “너무 낙담하지 마십시오. 공자님. 랑그렌 공작령에 도착하거든 더 열심히 뛰어보겠습니다.”

       

       이어, 아리엘이 두 눈동자에 힘을 주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 힘내! 나도 노력할 테니까!”

       

       마지막으로, 레이첼이 무언갈 이해한다는 듯 사근한 미소를 지었다.

       

       “다 잘 될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생은 나만 한 게 아닌데, 왜 다들 나만 응원하고 위로하는 거지?

       난 괜찮다니까?

       이 정도로 낙담할 거였으면 시작도 안 했다고?

       

       “…….”

       

       흐엉.

       

       솔직히 이렇게까지 안 구해질 거라곤 예상치 못 했다고.

       족히 이백 명에 이를 요리사들에게 물어본 거 같은데, 어떻게 하나 같이 거절을 할 수가 있지?

       아니.

       북부령, 이렇게 삭막한 곳이었어?

       북부령, 이렇게 푸석한 곳이었어?

       다들 야생의 낭만과 모험의 로망을 잊어버린 거야?

       하다 못해, 요리사로써 최상의 신선도를 가진 식재료로 최고의 요리를 만들고 싶다는 드높은 꿈을 가진 이가 단 한 명도 없을 수가 있지?

       

       축제도 즐기지 못 한 채 일주일이란 시간을 구인난에 허덕인 것이 아까워 마음 같아선 꺼이꺼이 통곡하고 싶지만, 식도락 여행단의 위대한 단장으로써의 체통을 위해 태연한 척 어깨를 으쓱였다.

       

       “걱정 안 해. 어차피 아직 초급 수준의 몬스터 밖에 못 잡는데, 뭐.”

       

       물론 초급 몬스터들 중에도 식재료로 사용되는 몬스터가 많지만, 초급으로 분류된만큼 도시나 마을 인근에서 사냥되다 보니 신선도는 잘 유지되는 편이었다.

       특히나 사시사철 서늘하고 싸늘한 냉기의 땅, 북부령에선 초급 몬스터 정도의 식재료는 산지직송과 다를 바 없었다.

       그만큼 흔하디 흔한 요리라 구태여 사냥을 해서 요리해 먹을 필요까지는 없었고.

       나의 최종 목표가 최상류 귀족가 식탁에 오르는 [슬라임 푸딩]이듯, 최소 중급 이상의 몬스터 요리가 1차적인 목표였다.

       

       중급 몬스터는 되어야 식재료의 신선도를 논할 수 있을 정도로 인간의 거주지에서 멀리 떨어진 깊숙한 숲이나 외진 곳에 서식하기에, 신선도를 위한 식재료 여행은 중급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는 실력자가 되어서야 그 본질이 빛을 발하는 것이다.

       

       중급까지만 해도 지금의 사냥 실력으로는 꽤나 먼 목표라, 아쉬워할지언정 낙담할 필요도 실망할 필요도 없었다.

       물론 초급이라 할지라도 험지에서 기깔난 몬스터 요리를 해줄 요리사가 있으면 좋겠지만, 없다고 해서 출발을 지연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중급 사냥꾼으로써 발돋움하기 전에는 몬스터 요리사가 구해지리란 믿음으로써 실력을 갈고 닦는 데에 열중하면 될 노릇.

       

       “그럼 출발하지.”

       “예. 공자님.”

       

       축제가 갈무리된 그날 오후, 우린 각자의 짐을 챙긴 채, 북부령 도시 성벽의 서쪽문에 도착했다.

       문득 북쪽을 바라봤다.

       하늘을 찌를 듯한 드높은 대공성이 보였다.

       그 본성의 꼭대기에서 휘날리고 있는 대공가의 깃발이 보였다.

       왜 그쪽으로 시선이 옮겨갔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아기새가 눈을 떴을 때, 처음으로 보인 것을 어미라 생각하듯 빙의 이후 처음으로 본 것이 별채의 침실이라 그럴까.

       왜인지 모르게 고향을 떠나는 듯한 기분이다.

       

       르미앙이 남긴 마지막 미소가 마음에 걸렸지만, 이제 와 돌이킬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다.

       각자의 억울함을 피하기 위해 발버둥 친 두 인간의 결말이 이러할 뿐.

       

       “신분 확인 부탁드립니다.”

       “엘든 라펠리온.”

       “행선지는 어디십니까?”

       “랑그렌 공작령.”

       “출성(出城) 목적은 무엇입니까?”

       

       경비병의 마지막 질문에, 거리낌없이 답해주었다.

       

       “여행.”

       “통과하십시오. 평안한 여행길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고맙네.”

       

       그렇게 우린, 서쪽의 성문을 통해 나와 랑그렌 공작령으로의 첫 발을 내딛었다.

       새로운 경험, 새로운 세상으로의 첫 발을 그렇게 내딛은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흘러.

       

       어느덧 냉혹한 한겨울이 성큼 다가온, 11월을 맞이했다.

       

       녹았던 눈이 소복히 내려 설원을 이루고, 차디찬 바람이 빙판을 만드는 혹한의 땅이 그 명성에 걸맞는 계절을 맞이한 11월, 두툼한 방한복을 둘러입은 우린 5월의 북부성을 나섰던 그때와 같이, 함께 걷고 있었다.

       

       

       

       “으앙, 춥다앗! 아리엘 엘론드, 여기서 잠들어버렷!”

       

       “…그만 칭얼거리십시오.”

       

       “레이첼! 넌 이 추위를 겪어 봤었잖아? 난 처음이라고옷.”

       

       “추위란 겪어도 추운 법입니다. 저도 춥지만 푸에취! 이렇게 멀쩡히 훌쩍, 가고 있지 않습니까?”

       

       “어허, 제군들. 이 할아범도 씩씩히 가고 있거늘, 투정 그만 부립세. 그리고 우리 위대한 단장님의 저 위풍당당한 걸음이 보이지 않나들?”

       

       

       

       ……엄마.

       

       여기 X나 추워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일찍 찾아뵙습니다!

    (_ _)

    감개무량한 후원을 해주신 독자님, 그리고 이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독자님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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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migrated Into A Tragic Romance Fantasy

Transmigrated Into A Tragic Romance Fantasy

후피집물의 후회캐가 되었습니다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was curious about what a female-oriented tragic romantic fantasy was like, so I skimmed through only the free chapters. And then… “…Ha.” I found myself transmigrated into one of the main male characters, destined for tears of regret, exhaustion, and obsession. So, the first thing that had to be done was… “I, Elden Raphelion, hereby declare my withdrawal from the competition for the betrothal of the Third Northern Duchess.” To escape this trage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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