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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3

       “기사단과의 협조는 곤란하다고요?”

         

       토너먼트까지 며칠 남지 않은 날, 이상한 통보를 들은 파스텔은 교수실에 들이닥쳤다.

         

       “기사단이 빠지면 누가 학생을 지키죠?”

         

       교수의 책상을 양손으로 짚고 카를로 교수를 응시했다.

         

       파스텔은 공작 영애 암살 겸 테러 계획의 발견으로 정신이 살짝 곤두선 상태였다. 깐깐한 학생회 모드라고 할까.

         

       축제 때처럼 토너먼트 기간 동안 외부인이 들어올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여러 사안으로 외부인의 접촉과 방문이 많아지는 건 사실이라 안전에 집중해야 했다.

         

       그런데 며칠 안 남은 오늘 갑자기 교수회의에서 방지 계획에 기사단을 넣는 건 곤란하다는 통보를 보내왔다.

         

       “오해가 있어.”

         

       무뚝뚝한 인상의 카를로 교수가 살펴보던 업무 서류를 내려놓았다. 카를로 교수는 이전에 학생회 폐지를 통보해서 파스텔과 살짝 마찰이 생겼던 사람이었다.

         

       “기사단이 빠지는 게 아니라 기사단은 아카데미 주변부 방위에만 집중하라는 의미다. 평소처럼 외부 침입만 잘 막아주면 아카데미 내부에서 발생하는 테러는 우리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

         

       파스텔은 인상을 찌푸렸다.

         

       “결국 같은 얘기잖아요. 아카데미 내에서 테러가 발생하면 기사단의 즉각 대응이 늦어질 거고 그럼 학생 안전에 위태로움이 있을-.”

         

       카를로 교수가 손바닥을 펴 말을 멈추게 했다.

         

       “기사단의 과한 개입은 필요 없어. 아카데미는 우리가 알아서 지키고 그래야 해.”

         

       으이이.

         

       이게 무슨 말이라암.

         

       『흠, 아카데미와 기사단 간의 권력 다툼인가. 하늘섬을 사실상 운영하는 두 세력이니 서로 간섭받기 싫어하는 거겠지.』

         

       학생 목숨 두고 권력 다툼?

         

       으에에.

         

       파스텔은 산책하다가 멍멍이 대변을 본 표정이 됐다.

         

       『아카데미는 하늘섬 총독부가 전신이고 기사단은 제국 파병군이 전신이니 마냥 편한 사이는 아니겠지.』

         

       카를로 교수가 쳐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가로 걸어가 커튼을 걷으니 어두운 교수실에 강한 햇살이 들어왔다.

         

       파스텔은 눈부심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교수가 창문 너머로 교내를 내려봤다.

         

       “방학 전에 벌어진 교단의 습격으로 총장님이 돌아가셨어. 황제 폐하께서 아직 임명해 주시지 않아 현재 총장직은 공석이지. 권력 공백 상황에 기사단을 들일 순 없어.”

         

       카를로 교수가 뒷짐을 지며 돌아봤다.

         

       “그 외의 사안엔 학생을 존중해 학생회에 적극 협조하지. 토너먼트 개최의 예산 편성을 굳이 막지 않은 것도 그래서다.”

         

       파스텔은 뚱하게 시선을 마주치다가 몇 가지 협조를 더 받고 교수실을 나왔다.

         

       정말정말 마음에 안 들어.

         

       팔짱을 끼고 교수실을 돌아봤다.

         

       으이으이.

         

       주변을 슬쩍 살피고 악마에게 말을 걸었다.

         

       “카를로 교수님 뭔가 수상하지 않아요?”

       『어떤 점이 그렇지?』

       “저번에도 교단의 약물이 교내에 퍼지는 데 암묵적으로 허용하자는 결정을 내리기도 하셨잖아요.”

         

       약물 덕분이긴 해도 신체 능력 상승으로 학생들의 성취가 좋아졌으니 나쁘지 않다고 했던가.

         

       “이번엔 테러범들이 아카데미를 노리고 있는데 저런 대응이라니! 물론 기사단이 아예 배제되는 게 아니고 평소처럼 아카데미 주변을 지키며 침입을 방지해 주긴 해도요!”

         

       완전 수상수상.

         

       혹시 내부 협조자?

         

       『흠.』

         

       악마가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넌 어리니 잘 모르겠지만 저 교수 정도면 흔한 인간상이다. 그리고 아카데미 교수는 아무나 될 수 있는 직위가 아니다. 신분 확인도 거치지. 요즘은 확실히 느슨해지긴 했겠지만 만만하게 여길 정도는 아니야.』

         

       허억.

         

       넌 어리니 몰라~.

         

       가장 짜증 나는 말.

         

       “저도 알건 다 아는 나이거든요?”

       『그렇나.』

         

       악마가 짧게 웃음소리를 냈다.

         

       비, 비웃었어……!

         

       “이런 식으로 나오면 저 반항아가 될 거예요! 말 한마디 안 듣고 제 뜻대로 살 거라구요!”

         

       파스텔은 양손을 벌려 손톱을 세우곤 고양이처럼 송곳니를 드러냈다.

         

       크아앙-!

         

       “크앙! 크아앙!”

         

       악마가 시답잖아했다.

         

       『언제부터 말을 잘 들었다고. 네가 좋아하는 찍찍이 친구들을 잡고 존재의 격을 맛있게 먹은 게 며칠 전이다.』

         

       악마는 말하다 보니 속이 타는지 한숨 소리를 냈다.

         

       『하아. 위험하니 먹지 좀 말라니까 내 말은 듣지도 않지. 그렇게 말을 안 들을 거면 혼자 살던가 해라.』

         

       앗.

         

       진심이 느껴지는 신세 한탄.

         

       파스텔은 움찔했다. 눈치를 보며 스리슬쩍 손을 내리곤 어색한 휘파람을 불었다.

         

       “와, 와아. 기사단 협조를 못 받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어~.”

         

       양팔을 휘적이며 걸음을 옮겼다.

         

       얼마간 걷자 복도 저편에서 사람이 다가왔다. 익숙한 교수였다.

         

       “앗! 선배님!”

         

       파스텔은 손을 번쩍 들었다.

         

       선배선배님!

         

       “오오! 후배 아닌가!”

         

       호레이스 교수가 주변을 살펴보더니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했다.

         

       “일은 잘되고 있는가?”

         

       여기서 일이란 당연히 밀무역.

         

       파스텔도 덩달아 주변을 살피는 등 수상한 행동을 하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아주 좋죠! 지출액이 상당해서 저 혼자 밀무역을 할 때보다 수익률은 낮지만 상단 명의로 융자를 끌어당겨 밀무역 규모를 키우니 수익금 자체는 월등히 많아졌어요!”

         

       마계에서 유통해 줘야 할 프레스턴 조직이 밀무역품을 전부 감당하기 벅차해서 멜리사가 조직 항쟁을 도와줘야 할 정도였다.

         

       “허어! 그거 아쉽구만!”

         

       호레이스 교수가 스스로의 가슴팍을 퍽퍽 쳤다.

         

       “하필 하늘고래가 오는 시기와 겹쳐 아카데미를 지키느라 자네 상행에 참여하지 못했어! 이 얼마나 큰 기회비용 손실인가!”

       “에이, 위험한 첫 상행에 선배님을 모실 순 없었죠! 다음 상행엔 적극 모시겠습니다!”

         

       호레이스 교수가 방긋 웃었다.

         

       “그리해 줄 텐가?!”

       “밀무역품만 준비해 주세요! 마계까지 직행 배송해 드리죠!”

         

       파스텔은 하늘로 손짓했다.

         

       “저렴하게 슈웅~! VIP로 모시겠습니다!”

       “오오! 후배만 믿겠네!”

         

       에헴.

         

       학생회 감사를 무마시켜 주시는데 이 정도쯤이야.

         

       “현재 투자자 모집 중이니 상단에 얘기하시면 돼요! 제가 그레이스 상단주님께 얘기해 둘 테니까요!”

         

       얼마간 진지한 일 얘기를 하다가 사담으로 흘러갔다.

         

       “헌데 후배는 이 건물엔 무슨 일인가?”

       “기사단의 개입 축소 건으로 카를로 교수님을 뵙고 왔어요.”

         

       아 맞아!

         

       선배님께 부탁해 볼까?

         

       “혹시 교수회의 결정을 어떻게 바꿀 순 없을까요? 학생회로서 학생 안전이 우려되거든요. 부탁드려요, 선배님.”

       “허어, 그거 말인가.”

         

       호레이스 교수가 안타까워했다.

         

       “그 결정엔 나도 반대를 했네만, 교수 중엔 기사단과 갈등을 빚은 사람이 많아 주류 의견을 바꾸긴 어렵더군.”

       “아아, 그런…….”

         

       이러고도 교육 기관인가.

         

       호레이스 교수가 씁쓸해했다.

         

       “내가 외유가 잦아 교수 사이에 인망이 없어. 그럴싸한 파벌도 없다 보니 이런 사안조차 바꿀 힘이 없다네.”

         

       앗.

         

       파스텔은 손을 휘저었다.

         

       “아니에요! 교수님은 잘못이 없어요! 모두 이 세상이 잘못된 거죠! 나쁜 세상! 나쁜 세상!”

       “후배…….”

         

       호레이스 교수가 감동했다.

         

       『흠.』

         

       악마가 복잡미묘해했다.

         

       『씁쓸한 분위기에 이런 말 하긴 그렇다만 그 외유란 건 결국 밀무역 아닌가? 의심이 안 갈 리가 없으니 동료 사이에 인망이 없을 만해. 교수면서 학생한테 밀무역 강습을 해줄 때부터 알아봤지.』

         

       허억.

         

       악마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교수님의 진심을 속물근성으로 치부하지 마세요오!

         

       속물이신 건 맞지만요오!

         

       파스텔은 마음속으로 외치곤 양 주먹을 꼭 쥐었다. 호레이스 교수를 불타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선배님, 걱정 마세요! 학생 안전은 학생회가 책임지겠습니다!”

       “허허. 자네가 확언하니 안심이 되는 한편 어른으로서 부끄럽군. 혹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어떤 일이든 말하게!”

       “아 그래서 그런데요.”

         

       파스텔은 살짝 나쁜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학생회 감사를 뭉개주실 수 있을까요?”

         

       호레이스 교수가 의아해했다.

         

       “그건 이미 해주고 있네만.”

       “알죠! 알죠!”

         

       그런데 그건 재무 영역이니까.

         

       “학생 안전을 위해 학생회의 권한을 조금만 넓게 해석했으면 해서요.”

         

       예를 들어 학생 안전을 위한 긴급 병력의 동원이라던가.

         

       공작 영애에 암살 위협까지 받는 앨시어가 사병을 사용인으로 위장해 간신히 들였듯이 현재 아카데미는 사병 운용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냥…….

         

       분홍분홍 파스텔은 갑자기 신성한 교육의 장에서 병사를 부리고 싶어졌어~.

         

       별일 아님.

         

       헤헤.

         

         

         

       #

         

         

         

       “운용 비공정을 13척으로 늘렸습니다. 파산한 상단들에게서 인수한 중고 비공정과 밀무역 도중에 나포한 해적선들까지 합친 수치죠.”

         

       파스텔은 크래프트 상단을 거닐었다. 상단 병력을 총괄하는 맥스가 현황 보고를 했다.

         

       “이번 밀무역 동안 멜리사 캐머롯 님께서 해적을 피해 없이 격퇴해 주시지 않았다면 이 정도의 해적선 나포는 불가능했을 겁니다.”

         

       어쩐지 밀무역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했더니 이것저것 챙긴 게 많아서 그랬다. 비행 생명체의 서식지 변경으로 하늘길이 고단해졌다는 건 남들도 그렇다는 거고 챙길 것도 많아진다는 얘기니까.

         

       “역시 절친 멜리사! 제가 꼭 고마움을 표시할게요! 만나면 볼 뽀뽀해 줘야지!”

         

       파스텔은 허공에 손 키스했다.

         

       뽀뽀 쪽~!

         

       맥스가 뒤쫓아 걸어오며 서류를 넘겼다.

         

       “상단의 전투 병력은 현재 260명가량까지 늘렸지만 다음 상행 전까진 450명 정도로 늘릴 계획입니다. 상단 호위 병력은 일부 남기고 비공정 당 30명씩 배치할 계획이죠.”

         

       헤에.

         

       “그럼 비공정 한 척에 몇 명씩 타는 거예요? 전체 인원이요.”

       “전투 병력이긴 하지만 선박 운용을 병행할 수 있는 인원이 대부분이라 전투 병력까지 포함해서 비공정 선원은 대략 50명입니다.”

         

       50명.

         

       우와아.

         

       사람 완전 많아!

         

       파스텔은 입이 헤 벌어졌다.

         

       헤벌레.

         

       옆에서 걷던 그레이스 상단주가 힐끔 바라봤다. 상단주의 줄부채가 펼쳐지더니 파스텔의 입을 가려줬다.

         

       으엣.

         

       “이번에 비행 생명체의 서식지 변경으로 많은 상단이 파산해 버려서 흡수하며 몸집 불리기가 쉬웠지만 내실을 들여보면 그리 좋은 상태는 아니랍니다. 모두 빚더미지요. 다음 상행도 성공시켜 많이 털어내야 해요.”

         

       파스텔은 밝게 웃었다.

         

       “괜찮아요! 꼭꼭 성공시킬 거니까요! 그렇죠?!”

       “뭐 그건 그렇지만요.”

         

       그레이스 상단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맥스가 전방으로 손을 가리켰다.

         

       “연병장으로 가시죠. 훈련 상황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파스텔은 연단에 서서 260명의 일사불란한 훈련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상단답지 않게 체계 잡힌 훈련과 일원화된 장비였다. 그레이스 상단의 독특한 강군 전통이 크래프트 상단까지 전파된 덕이다.

         

       아, 좋아.

         

       이게 교단을 물리칠 병사들이란 말이지.

         

       만족만족.

         

       웃으며 짝짝 손뼉 쳤다.

         

       슬쩍 맥스를 돌아봤다.

         

       “실전 훈련도 일정이 잡혀있나요?”

       “예. 하늘섬 서쪽의 숲 지대에서 수렵을 해볼 계획입니다.”

         

       그 실기 시험 봤던 곳인가.

         

       “그럼 아예 며칠 동안 실전 훈련을 해보죠.”

       “어떤 것으로, 말씀이십니까?”

       “으음.”

         

       파스텔은 팔짱을 끼고 고민하다가 밝게 웃었다.

         

       “일명, 칼은 펜보다 무겁다!”

         

       우리 함께 친구들을 지켜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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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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