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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3

     

    “항생제, 항생제, 여기도 항생제, 여긴… 허어억, 선생니임.”

     

    클로에는 어김없이 말을 더듬으며 나를 맞아줬다.

     

    결투 재판이 잘 끝났다고 얘기하니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해, 해주제는 어땠나요?”

     

    “해독제. 잘 작동했어. 뭐, 원리를 생각하면 비슷한 단어긴 하네.”

     

    “네에. 흑마술로 만든 독이었으니까아.”

     

    해주. 저주를 푸는 작업이다.

     

    “결투 때문에 잠깐 신경 못 썼는데.”

     

    파티에서 아셀라에게 널 째겠다고 대놓고 선언을 해버렸었다.

     

    “문제는 이건데.”

     

    상태창의 녹화기능을 써서 수정구로 옮겨놓은 엑스레이 사진을 확인한다.

     

    그림자의 독을 연구하다가 아셀라의 사진에서 같은 메커니즘을 확인했다.

     

    아셀라의 뱃속에 엉켜있는 검은 덩어리는 저주라고 판단됐다.

     

    독 정도는 내가 해독할 수 있었지만 진단으로도 판단 불가능한 고등급 저주는 뭔지 정확히 알아야 대처가 가능하다.

     

    함부로 쨌다간 그 순간 저주가 터져버릴 수도 있다.

     

    “클로에, 저주에 대해 잘 알아?”

     

    “아, 아뇨. 저주는 해주 전문 치유사 분들이 따로 계셔요.”

     

    “해주사 말이지.”

     

    필요하겠는데.

     

    “내의원에서 가장 솜씨 좋은 해주사가 누구야?”

     

    “어, 아마, 휴고씨… 일 걸요?”

     

    “휴고? ‘검은 손 휴고’?”

     

    “어? 아는 사이셔요?”

     

    잘 아는 사이지. 10년 후에서.

     

     

    ―증오스러운 제국에서 보낸 용사인가! 10년 동안 참아온 원한을 갚아주겠다!

     

    ―치유사! 제국의 내의원 출신이겠지. 그 악마 놈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으리라!

     

     

    훌륭하게 레이드 보스 같은 대사를 치던 휴고의 모습이 떠올랐다.

     

    상태창을 열어본다.

     

     

    [No. 025 검은 손의 저주 21%]

     

     

    휴고는 사룡을 숭배하는 흑마술사 집단의 리더였다.

     

    나름 강력한 저주를 구사했기에 꽤 까다로운 적이었다.

     

    ‘제국 내의원에서 문제가 생겨서 쫓겨나고 흑마술사의 길을 걸은 놈이지.’

     

    “지금 어디 있어?”

     

    “어음. 아마 사룡 시체 해주… 같아요.”

     

    “그걸 아직도 하고 있어?”

     

    “네에, 고전 중이라는 모양이에요.”

     

    비무대회에서 쓰러트린 사룡 시체는 대충 태우거나 묻을 수는 없다. 놈의 몸에 담긴 저주가 여기저기 흩뿌려지니까.

     

    “드래곤 시체 엄청 비싸지 않아? 이빨 하나만 3골드씩은 할 텐데.”

     

    “어마어마하죠오. 해주하는 파벌이 가져가는 거라 다들 달라붙었대요.”

     

    엑스트라 머니 좋지.

     

    하지만 사룡이면 최상급 저주를 품고 있을 테고, 나도 해주는 어느 정도 할 수 있지만 끽해야 하급이나 중급 정도다.

     

    “휴고, 다음에 만나나 볼까.”

     

    슬슬 결투 재판에서 사용한 근력 강화제의 부작용이 찾아왔기에 오늘은 휴무했다.

     

     

     

    ***

     

     

     

    얼마 후, 나는 해주 작업이 이뤄지는 내의원 지하를 찾았지만 그다지 좋지 못한 대답을 들었다.

     

    “휴고가 해고당했다니?”

     

    지하 재단에서 사룡 시체를 성포로 꽁꽁 묶어놓고 진땀빼던 치유사 한 명이 내게 설명했다.

     

    헤이케 산하, 즉 알베리치 파벌인 친구였다.

     

    여기는 인원이 많다 보니 출신 따라 성향도 나뉘는 분위기다. 그는 제국 출신이라 비교적 내게 호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게, 휴고 치유사가 소속됐던 파벌이 얼마 전에 없어졌습니다. 아치볼드 천왕 전하의 장손이신 아르민 경의 파벌이었는데.”

     

    “얼마 전에 자작 지위를 받고 독립했지.”

     

    “예. 그 일로 트러블이 생겼는지…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습니다만, 내의원을 떠난 지 몇 달 됐습니다.”

     

    “어디로 갔는지 알아?”

     

    “휴고는 내의원에서 십 년 이상 근무했으니 어디 집이라도 하나 얻어 살지 않겠습니까. 가족도 있는 모양이던데.”

     

    “아, 휴고 그 친구? 걔 한 푼도 없어.”

     

    지나가던 다른 치유사가 이야기를 듣고는 거들었다.

     

    “치유사, 어떤 이야기야?”

     

    “아, 고트베르크 선생님. 휴고는 내의원에서 번 것보다 치유비로 돈을 훨씬 많이 냈습니다. 빚이 어마어마할걸요?”

     

    “치유사가 왜 내의원에서 치유를 받아?”

     

    “그 시커먼 손 때문인가? 해주하다가 다쳤다고 들었는데.”

     

    “그래, 손. 그 친구 치유주문 못 썼습니다. 그래서 딸 치유비로 전재산을 다 날렸어요. 꼬마애가 계속 몸이 아팠거든요.”

     

    “딸이라.”

     

    휴고가 제국을 증오하는 이유가 얼추 예상됐다.

     

    평생 다닌 직장에서 가족도 제대로 못 고쳐주고 돈만 뜯어갔으니.

    해주하며 지식이 쌓인 흑마술에 손을 대 복수를 꿈꾸게 된 건가.

     

    아니, 직원 할인이나 산재보험도 없어?

     

    내의원, 꿈의 직장이네.

     

    “그런 빚쟁이들이 갈 곳은 뻔해요. 검문을 피할 순 없으니 제도에서 나갈 수도 없고, 빈민가에 숨어 지내야 하죠.”

     

    “빈민가라. 그러고 보면 그쪽 주민은 본 적이 없네.”

     

    “내의원에 치유 받으러 올 일도 없으니 당연하지요.”

     

    의료서비스의 사각지대란 소리다.

     

    “환자가 득시글거리겠네.”

     

    “그렇… 겠죠?”

     

    좋은 생각이 났다.

     

    마침 황제에게 기침약의 효능도 증명해야 한다.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다.

     

    ‘실험하고 싶은 약제도 잔뜩 있었어.’

     

    최근 경험치가 더디게 오르는 의학 스킬을 올리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휴고도 꾀어낼 수 있을 거고.’

     

    그가 협조적으로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배드엔딩을 삭제할 기회가 생긴다.

     

    얻을 게 많다.

     

    “아이고, 또 터진다!”

    “막아, 막아!”

    “원, 주교께서 또 한 소리 하시겠어.”

     

    사룡의 잘린 목 단면에서 시커먼 액체가 꿀렁이며 새어나온다. 치유사들이 새 성포를 날라 머리를 감싸며 낑낑댔다.

     

    “휴고가 있었으면 진작 끝났을 텐데.”

    “내 말이 그 말이야. 딱 필요할 때 그만둬 버려서 미쳐버리겠어.”

     

    나는 팔짱을 끼고 해주 장면을 감상하다가 자리를 옮겼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목휘궁이었다.

     

    클로에와 함께 아스피린과 페니실린을 납품하니 헤이케가 아주 만족했다.

     

    “기한도 정확하군. 대금은 월광궁으로 보내겠다.”

     

    “좋습니다. 토진궁을 쓰러트린 축하 보상은 어떻게 됐습니까?”

     

    “아셀라와 토진궁 파벌 소속이던 2연대와 그 병영을 나눠 갖기로 합의했다.”

     

    “반가운 소식이군요.”

     

    아셀라도 아셀라였다. 그새 황실 기사단의 4대 병영 중 하나를 낼름 집어먹었다.

     

    헤이케야 아셀라를 아직 견제하지 않아서 좋은 의미로 많이 양보했겠지만.

    그러다 크게 깨지는 날이 오실 텐데.

     

    “고트베르크, 자네가 받을 보상도 생각해왔는가?”

     

    “굳이 챙겨주시니 감사히 받겠습니다. 대단한 건 아니고.”

     

    나는 잠시 뜸을 들인 후 대답했다.

     

    “황녀님 파벌의 치유사를 빌리고 싶습니다. 제국 출신으로 열 명 정도요.”

     

    “치유사를? 어디에 쓰려고 그러나?”

     

    궁금해하는 헤이케.

     

    나는 가벼운 미소로 화답했다.

     

    “잠깐 출장 좀 다녀올까 해서요.”

     

     

     

    ***

     

     

     

    “후우.”

     

    휴고는 고된 노동을 끝내고 몇 푼 안 되는 일당을 손에 쥐었다.

     

    그와 같이 일한 일용직들은 대부분 집이 없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이들이다.

     

    그나마 조금 사정이 좋으면 여관에 지내지만 대부분은 노숙이다. 보통은 일당을 주점에서 술값으로 소비한다.

     

    하지만 휴고는 그럴 여유가 조금도 없었다. 돈을 조금이라도 더 모아서 치유사를 고용해야 했다.

     

    장갑을 써서 숨겨놓은 양손. 그 아래는 저주가 침범했다.

     

    특정한 한 가지 저주가 아니다. 하도 오래 해주를 하다 보니 손톱 밑에 때가 끼듯 여러 저주의 잔해가 섞여 스며들었다.

     

    “…쯧.”

     

    신성력을 내보내 보지만 저주의 영향으로 검게 오염된다. 이런 상태로 치유주문을 썼다간 환자에게 저주를 옮길 뿐이다.

     

     

    휴고는 주머니에 장갑 낀 손을 찔러넣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제도 외곽, 개발이 중지된 공터를 향한다. 여기저기 텐트를 잔뜩 쳤다. 누구나 집이 없는 빈민들이다.

     

    빈민가.

     

    불과 얼마 전까지 제국 내의원에서 일했던 그는 밑바닥까지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하며 의지가 가득 담겼다.

     

    휴고는 한참 걸음을 옮겨 집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텐트 하나로 들어갔다.

     

    “에리, 아빠 왔어.”

     

    “압빠아…!”

     

    텐트 안에는 다섯 살 정도의 어린 여자아이가 이불을 덮고 누워있었다.

     

    새까만 머리색은 휴고와 똑 닮았다.

     

    “아빠 없는 동안 잘 있었어?”

     

    “응…! 찰리랑 막시랑 놀아써. 콜록.”

     

    에리의 베개맡에 얌전히 놓여있는 인형들의 이름이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에리는 종일 힘이 없어서 누워있기만 했었음이 분명했다.

     

    “에리, 일어나서 물 먹자.”

     

    “웅….”

     

    휴고가 작은 종이컵에 물을 따라 에리에게 천천히 먹여주었다.

     

    꼴깍꼴깍 먹다가도 금방 콜록대며 뱉어내고 만다.

     

    ‘치유를 못 받은 지 세 달이 넘었어.’

     

    휴고는 속이 답답했다.

     

    에리도 태어날 때는 건강했다. 몸이 약해지고 시도때도 없이 기침을 하게 된 건 3년 전부터였다.

     

    건강했던 게 착각이었을까. 몸이 약한 편이었던 아내는 에리를 낳고 떠나갔다.

     

    휴고가 가장 답답했던 건 자신이 치유사면서도 딸에게 치유술을 쓸 수 없게 된 현실이었다.

     

    ‘에리를 치유하느라 전재산을 다 썼건만.’

     

    아무리 치유를 해도 잠깐만 좋아질 뿐, 에리는 금방 다시 상태가 악화됐다.

     

    내의원의 치유는 비싸다.

    인맥을 이용해서 더 자주 치유를 받다가 정신을 차리니 이미 집도 팔아넘긴 후였다.

     

    그래도 치유가 없었으면 이미 에리가 죽었을지도 모른다.

     

    ‘일을 계속했으면 좋았을 텐데.’

     

    휴고의 가장 큰 불운은 잘못된 파벌을 선택했던 점이었다.

     

    저주에 걸린 환자는 흔하지 않다. 해주사는 수요가 크진 않기에 보통 치유사들이 병행하는 정도다.

     

    파벌의 주군인 아르민 경이 독립해버렸고, 휴고는 그를 따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아르민은 휴고의 빚을 해결해주지 않으면 데려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를 즉시 내팽개쳤다.

     

    결국 세상은 돈이다.

     

    ‘다른 파벌도 나를 원하지 않았고.’

     

    평생 일한 직장에서 순식간에 버림받았다.

     

    ‘뭐가 황제의 은덕이냐.’

     

    휴고는 내의원과 제국에 대한 증오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나 에리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그건 에리를 못 고친 무능한 제국 놈들의 잘못이다.

     

    “콜록, 콜록!”

     

    “에리!”

     

    휴고는 어쩔 줄 모르며 에리를 편히 눕히고 이마를 쓰다듬을 수밖에 없었다.

     

    에리가 간신히 눈을 뜨고는 작은 입술을 오물거렸다.

     

    “압빠아….”

     

    “에리, 먹고 싶은 거 있어? 아빠가 사다 줄게.”

     

    고개를 젓는 에리.

     

    “그냥 여기 이써….”

     

    에리가 작은 손으로 휴고의 옷자락을 슬며시 잡았다.

     

    자신이 나간 동안 얼마나 외로웠을까.

     

    휴고는 같이 있어 줄 시간도 없는 현실에 화가 났다.

     

     

    그때였다.

     

    “어이, 떡대 형씨 있어?”

     

    밖에서 다른 빈민가 주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휴고가 텐트 입구를 치웠다.

     

    “나를 찾았나?”

     

    “그래, 자네. 딸 아프다 하지 않았어?”

     

    “…그렇네만.”

     

    “빨리 데리고 나와 봐.”

     

    “무슨 일인가?”

     

    주민이 흥분한 목소리로 휴고에게 손짓했다.

     

    “일주일 전부터 내의원에서 와있대, 내의원에서. 심지어 주치의라네? 지금 공짜로 사람들 다 봐주고 있으니까 빨리 데려가 봐.”

     

    “내의원이 여길 왜 와? 환자를 치유해봤자 돈은 한 푼도 못 받을 텐데.”

     

    휴고가 불신하며 인상을 찡그렸다. 주민이 혀를 찼다.

     

    “허어, 거 속고만 살았나. 됐어 그럼. 에스시피인지 뭔지 좋은 거도 준다드만.”

     

    “아스피린 말인가?”

     

    “그래, 그거. 뭔진 몰라도.”

     

    휴고의 눈이 번쩍 뜨였다.

     

    퇴직 직전, 비무대회가 막 열리기 전에 소문으로 들은 적이 있었다.

     

    “에리, 잠깐 아빠랑 외출하자.”

     

    휴고는 에리를 이불째로 안아 들고 텐트를 나섰다.

     

    우글우글 사람들이 몰려있는 장소로 헐레벌떡 뛰어간다.

     

    “진단. 찰과상, 빨간약 바르고. 진단. 아, 기침 환자. 찾던 분이네. 이거 꾸준히 복용하면서 매일 상태 기록 하셔. 약만 받고 튀면 여기 기사 누나가 맴매해?”

     

    흰 가운을 입은 남자 앞에 줄이 우르르 늘어서 있다.

     

    휴고는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해직되기 전에 새롭게 부상하는 3황녀 파벌의 주치의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다.

     

    “고트베르크 선생님!!”

     

    휴고의 우렁찬 목소리에 그 자리의 모든 사람이 고개를 돌렸다.

     

    다들 깜짝 놀라 벙찐 와중에 고트베르크만이 그를 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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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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