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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3

       받아라!

       아나이스는 속으로 일갈을 내지르며 그녀가 정리한 [인물 목록]에서 한 사람을 뽑아 내밀었다.

         

       [유령 (??): 벽을 뚫고 다니는 괴인. 카바레 지하에서 기거하며 소녀들을 착취했다.]

         

       방청객들은 그녀가 제시한 근거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령이 뭐 어쨌단 말이지?

         

       도스빌 남작의 얼굴에 뒤늦게 아차 싶은 표정이 떠올랐다.

       아나이스는 한 손을 허리에 척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작님께서 사건을 설명할 때 말씀하셨죠. 유령은 벽을 뚫고 다니는 힘이 있으며, 카바레를 뒤에서 농락한 존재라고.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그의 능력을 생각한다면, 애초에 외부인의 출입을 따지는 일 자체가 무의미하죠. 그는 어디서든 튀어나올 수 있으니까요.”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생각해보니 그녀의 말이 맞았다.

       유령은 벽을 통과할 수 있었다.

         

       도스빌 남작의 주장은 ‘유일한 용의자이기에 그가 유령이다.’라는 것이었는데, 유령의 능력을 생각한다면, 그가 유일한 용의자로 몰리는 논리는 성립될 수 없었다.

       그의 주장은 기소 내용과 모순됐다.

         

       도스빌 남작은 재빨리 반론을 펼쳤다.

         

       “어쨌든 피고인이 공연 당시 사라진 것은 사실 아닙니까? 피고인이 그 능력을 이용해 천장으로 날아갔다면 설명이 되는…….”

         

       아나이스는 쾅 하고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이의 있습니다! 기소인은 현재 증거나 증언을 제시하는 게 아닌 추측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기소인, 해당 주장은 기각하겠습니다.”

       “큭.”

         

       남작이 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떨궜다.

       아나이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원더스타인이 용의자라는 의혹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어쨌든 당시에 자리에 없던 것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유일한 용의자’ 논리는 해소되었다.

         

         

       [서커스단의 명성이 2 올랐습니다.]

         

         

       그때부터 재판은 완전히 아나이스의 페이스였다.

         

       도스빌 남작은 연금술 길드의 사람을 불러 아나이스의 경호원인 포르슈 경이 사건 당일 황을 구매했다는 것과 이본느가 당한 공격이 황산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을 연결했다.

         

       포르슈 경이 증인석에 올라 ‘원더스타인의 부탁으로 황을 샀다,’라고 증언했을 때, 서커스단의 명성이 크게 추락했다.

       다시 방청석에서 목을 매달자는 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아나이스가 질문 몇 가지를 던지자 해당 주장은 금방 허점을 드러냈다.

       

       “포르슈 경이 황을 산 시각은 사건이 발생한 날 오후였습니다. 이본느 씨가 습격을 당한 것은 당일 오전이었고요. 선후 관계가 반대 아닌가요?”

       “그, 그러니까 황산을 썼으니까, 황을 보충하려고 산 건 아닌지…….”

       “이의 있습니다! 기소인은 또 추측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기소인의 의견을 기각합니다. 자중하세요.”

         

       그의 주장이 또 꺾였다.

       여기서 도스빌 남작은 잠시 경찰 쪽을 노려봤다.

       수사 담당자였던 부사관 사보가 찔끔한 표정으로 그의 시선을 피했다.

         

       황을 구매한 시간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찾았다! 찾았다!” 하며 신나서 해당 내용을 증거로 제출한 사람이 그였기 때문이다.

         

       이게 정상적인 법정이었다면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검사가 사건의 내용과 증거를 꼼꼼히 검토하고, 이 정도로는 도저히 재판에 나서기 힘들겠다고 소를 반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재판은 애초에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2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의혹을 던져서 상대를 여론으로 매장할 목적으로 시작한 것이었다.

         

       상대가 의심받는 그림만 나오면 충분했다. 그래서 증거의 논리나 신빙성 같은 건 대강 훑어보기만 했다.

       도스빌 남작은 그 정도만 있어도 자신의 말솜씨로 재판을 수렁으로 끌고 갈 자신이 있었다.

         

       상대가 아나이스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이의 있습니다!”

       “잠깐!”

       “증거 받으시죠!”

         

       도스빌 남작이 어떤 억측을 던져도, 어떤 꼬투리를 잡아도 아나이스는 그 자리에서 바로 반박을 해버렸다. 그가 불을 지필 틈을 조금도 주지 않았다.

         

       와아아.

       이제 그녀가 손가락을 척 들기만 해도 객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기소인 측 사람들도 그녀의 변론에 혀를 내둘렀다.

         

       무대를 둘러싼 사람들은 어느새 방청객에서 다시 공연을 지켜보는 관객들로 돌아와 있었다.

       그들이 지켜보는 것은 언어와 논리로 이루어진 현란한 곡예였다.

         

       -허허, 이것이 바로 그 철가면의 명성이군요.

       -불과 20살의 여인이 루즈에서도 입심으로 소문난 도스빌 남작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다니.

       -저러니 베르그송이 나날이 번창할 수밖에 없지.

       -아까 상회의 주식을 모두 팔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험험, 내가 말실수를 했소. 넘어갑시다.

         

       환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총감독 유그 마로이네는 즐거운 분노를 느꼈다.

       그가 오늘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공연은 사람들 머릿속에서 이미 잊히고 없을 것이다.

       오늘 장미 풍차 1번 홀에서 펼쳐진 최고의 쇼는 바로 이것이었으니까.

         

         

       [서커스단의 명성이 3 올랐습니다.]

       [서커스단의 명성이 4 올랐습니다.]

       [서커스단의 명성이 6 올랐습니다.]

         

         

       아나이스가 상대의 주장을 하나하나 꺾어놓을수록 명성이 급격하게 치솟았다.

       기존의 최고점이었던 40도 돌파했다.

         

       저 철가면 아나이스의 불치병을 치료한 마술사!

       그녀가 직접 변호하는 남자가 이끄는 서커스단!

       그것만으로 이름값이 크게 뛴 것이다.

         

       만약 원더스타인 본인이 자신을 변호했다면 이 정도로 결과를 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가 생각해둔 명성을 올릴 수단을 전부 동원한다고 해도, 퀘스트 실패 지점 바로 앞에서 겨우 막아나가는, 아주 위태위태한 게임이 됐을 것이다.

       그나마도 아까처럼 명성이 3 이하로 단숨에 몰려버렸다면, 말을 꺼내는 것조차 힘들었을 게 틀림없다.

         

       -제 병실을 방문했던 그 ‘유령’이라는 분이요? 흠, 저 원더스타인이라는 분과는 전혀 다르게 생겼는데요? 키도, 목소리도 전부 다요.

         

       이본느를 끝으로 증인에 대한 심문은 끝났다. 도스빌 남작은 그녀에게서 어떻게든 ‘2명의 유령 설’을 끄집어내 원더스타인과 엮으려 들었으나, 이미 장미 풍차 사람들을 상대로 원한을 잔뜩 쌓은 그에게 그녀가 협조할 리 없었다.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증언을 들으면서 작은 의문을 느꼈다.

       그녀를 만났을 때, 그는 ‘데릭의 성대’를 쓰고 있었으므로 목소리가 다르다는 증언은 맞았다. 하지만 키가 전혀 다르다는 말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냥 도스빌 남작을 엿 먹이려는 시도일까?

         

       그때,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이본느와 눈이 마주쳤다.

       붉은색의 웨이브 진 풍성한 머리카락 사이로 그녀의 붉은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것을 봤다.

         

       아, 들켰군.

         

       아나이스의 병을 치료해줬다는 시점에서 그녀는 눈치챘을지도 몰랐다.

       자신이 그녀의 병실에 나타나 피부를 치료해준 유령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모든 심문이 좌절되자, 기소인 측은 이제 최후의 카드를 꺼냈다.

         

       바로 사건의 수사를 담당했던 기마경찰대의 부사관 사보의 증언이었다.

       여러 가지 엉성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래도 수사를 담당한 사람이었다.

       그가 찾아낸 티끌만 한 의혹들이라도 모아보면 작은 뉴스거리라도 만들어낼지 몰랐다.

         

       그의 증언이 시작되었다.

       그는 과연 기소인 측의 기대를 충족시켰다.

       그의 증언은 내일 신문의 한 면을 차지할 것이다.

       ‘루즈 기마경찰대의 대망신’이라는 표제를 달고 말이다.

         

       -마지막 희생자로부터 1년 동안의 공백이 있습니다! 마침 피고인의 서커스단이 활동을 시작한 것도 9개월 전! 딱 맞지 않습니까? 지하에 웅크리고 있던 괴물은 이제 밝은 세상을 찾아 세상으로 나온 것입니다!

         

       그의 주장은 같은 편인 도스빌 남작조차 뭐라고 변호해주기 힘들 정도로 근거 없는 억측들이 가득했다.

         

       -새로운 희생자를 찾으러 나선 거죠! 마침 이 서커스단은 16살의 소녀가 둘이나 있다고 들었습니다!

         

       서커스단 사람들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서커스단에 애들 없는 곳이 어딨다고.

         

       -범인의 동기도 생각해둔 게 있습니다. 본인 서커스단의 이름을 빛내기 위해, 이본느 양을 무대에서 내려오게 한 뒤, 자신의 부단장을 대역으로 무대 위에 오르게 한 거죠!

         

       장미 풍차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논리는 점점 더 말도 안 되는 단계로 비약하고 있었다.

         

       -왜 유령이 지하로 들어갔을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세상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죠. 무엇 때문에 그는 쫓기고 있었을까요? 그건 그가 세상에 다시 나온 이유와도 연관이 있다고 봅니다. 그가 바로 17년 전, 서커스 그랑프리를 습격한 ‘검은 마도사’이기 때문이죠! 그는 예전에 벌였던 일을 다시 시도하기 위해 극장 지하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보가 원더스타인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홀 여기저기서 신음과 한숨이 흘러나왔다.

       판사는 법봉을 던져 그의 머리를 깨버리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아나이스는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도스빌 남작은 이를 빠득빠득 갈며 그를 노려봤다.

         

       “17년 전이면……피고인이 10살 때 그런 일을 저질렀다?”

       “그게 뭐 마법을 써서 신체를 조작했다고 치면…….”

         

       이제는 대꾸해주기도 싫었다.

       도스빌 남작은 한숨을 푹 쉬며 뒤를 돌아봤다.

         

       기소인 진영의 방청석은 어느새 사람의 수가 팍 줄어 있었다.

       친분이나 정치적 논리에 따라 편을 들었던 사람들은 다 떠나고, 이제 음모를 꾸몄던 핵심 멤버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의 안색도 좋지 않아 보였다.

         

       상대의 명예에 흠집을 내려고 꾸민 일인데 이러면 이제 역으로 자신들이 여론에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그 화룡점정은 저기 있는 얼간이 경찰이 마무리했다.

         

       “재판장님, 이제 판결을 내려도 되지 않을까요?”

         

       아나이스의 말에 도스빌 남작도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더 진행해봤자 뒷말 나올 거리만 늘릴 게 뻔했다.

         

       판사도 수긍하고는 망치를 손에 쥔 그때, 1번 홀의 문이 쾅 하고 열리며 경찰 한 명이 뛰어 들어왔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그는 자신에게 몰리는 관심에 당황해하더니 조직 체계상 여기서 가장 높은 사람, 루즈 경찰서의 부서장에게 다가갔다.

       

        몇 주 내내 몇 번이나 공중으로 끌려 올라갔다가 내팽개쳐지면서 온몸에 붕대를 두르고 있는 부서장.

       그는 사건이 벌어지는 내내 중립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부하의 보고를 들으며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게 됐군.”

         

       부서장은 부하가 내민 보고서를 훑어보고는 그것을 판사에게 제출했다.

       판사는 그 내용을 꼼꼼히 읽어봤다.

         

       홀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저 보고서의 내용이 뭘까?

       도스빌 남작은 일말의 기대를 담아, 아나이스는 약간의 불안감을 누르며 판사의 입을 주목했다.

         

       가장 인내심이 모자란 사람이 첫 번째 신음을 흘리는 순간, 판사가 입을 열었다.

         

       “방금 루즈 경찰서에서 감식보고서가 도착했습니다. 그것은 2주 전, 하수도 끝에서 발견된 신원미상의 시체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 시체는 팔 한쪽이 없었는데, 감식 결과 카바레 지하에서 발견된 팔과 절단면이 일치하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체가 카바레 지하에 남아 있는 몇 년 분량의 생활 흔적(Vital trace)의 주인임이 확인되었습니다.”

         

       판사가 말하는 것이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 모두가 알아듣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그러나 눈을 질끈 감는 도스빌 남작과 활짝 미소를 짓는 베르그송 자작을 보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두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합니다.”

       

       땅땅땅.

         

       경쾌한 나무망치의 타격음과 함께 우레와 같은 함성이 뒤따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소해도중요하다 님, 3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아깝지 않은 글 앞으로 계속 써가도록 하겠습니다! 데볼루트는 신체를 바꿀 수 있으니 TS? 무서운 발상입니다..ㄷㄷ 우려하시는 일은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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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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