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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3

       저 새끼는 뭐하는 거야?

       

       힌드라스타가 팔짱을 끼고 굉장히 못마땅한 표정으로 디안을 쳐다봤다.

       

       왜 애꿎은 노인네들을 괴롭혀서 울려?

       

       힌드라스타는 가이드의 대열을 따라가지 않고 주변을 기웃거리던 중이었다.

       

       드래곤인 힌드라스타에게 4년전쟁 전적지니 뭐니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심드렁하게 있는데 갑자기 인간 노인네들이 디안을 보고는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 아닌가?

       

       저 쓰레기 같은 놈은 같은 동족을 상대로도 가차없구나. 심지어 늙은이라 하더라도.

       

       하긴 저런 놈이니 나를 뒤쫓으면서 그런 기행을 저지른 거겠지. 제정신이면 그랬겠어?

       

       그런데 저년들은 왜 울고 지랄이야?

       

       눈물을 흘리는 키르린과 펠레미아를 보며 힌드라스타는 혀를 찼다.

       

       사각사각사각.

       

       도저히 인간들의 행태를 봐줄 수 없어 막 자리를 떠나려던 힌드라스타는 이상한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의무소의 마야 사제가 디안을 보며 조용히 수첩에 필기를 하고 있었다.

       

       이년은 대체가 맨날 써재끼고 있네. 뭐가 적혀 있는 거지?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

       

       힌드라스타가 슬쩍 훔쳐보려 하자 마야 사제가 그만큼 옆으로 물러났다.

       

       “안 봐요, 안 봐. 별것도 아닐 건데.”

       

       힌드라스타의 핀잔에는 전혀 미동도 하지 않고 마야 사제는 계속해서 뭔가를 써내려 갔다.

       

       재미가 없어진 힌드라스타는 혀를 차며 몸을 돌렸고 그대로 나이틀리의 가슴에 얼굴을 박았다.

       

       “윽! 뭐야!”

       

       힌드라스타보다 키가 훨씬 큰 나이틀리는 힌드라스타가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박은 것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듯했다.

       

       그녀는 힌드라스타의 머리 너머로 디안을 멀거니 쳐다보고 있었다.

       

       “비켜. 막지 말고.”

       

       그러나 좀처럼 나이틀리가 비킬 기미를 보이지 않자 힌드라스타는 고집스럽게 얼굴로 나이틀리의 가슴을 마구 밀어댔다.

       

       그제서야 나이틀리는 힌드라스타의 존재를 깨닫고 손을 들어 머리를 옆으로 치워버렸다.

       

       “야!”

       

       하지만 나이틀리는 금방 힌드라스타에 대해 잊고 디안을 멍하니 쳐다봤다.

       

       저거 뭐지? 참전용사들이 왜 디안 교수에게 저런 반응을?

       

       서로 구면이라는 소리인데, 어떻게 알게 된 거지?

       

       디안 교수는 브룬스웰에서 10년을 살았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종전 직후니 참전용사들과 안면이 있으려면 전쟁 동안이었을 터.

       

       디안 교수가 이브로니크 탈환전에 참전했던 것일까?

       

       문득 나이틀리는 저번에 트롤을 포획하고 돌아올 때 디안 교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기가 라이너스 경과 친구라고, 같이 이것저것 많은 활동을 했었다고.

       

       그때 나이틀리는 디안 교수가 자신을 놀리기 위해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참전용사들과 있는 디안 교수를 보며 어쩌면 그게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스스로도 믿기 어려운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거 정말로 말도 안 되는데…?

       

       그런 대단한 사람이 어째서 고작 아카데미에서 수석교수 따위를 하고 있냐고.

       

       혼란해 하는 나이틀리를 본 힌드라스타는 곧바로 분위기를 파악하고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너… 수석교수가 뭐하던 사람인지 궁금하구나?”

       

       “아는 게 있나?”

       

       나이틀리의 물음에 힌드라스타의 미소가 더욱 커졌다. 

       

       “몇 가지 알고 있지. 아마 들으면 깜짝 놀라 기절할 걸?”

       

       “흐음, 그래? 뭔지 들어나 볼까?”

       

       “저 녀석은 전쟁 때 나를 잡으러 다니던 놈이야.”

       

       나이틀리가 힌드라스타를 빤히 쳐다봤다.

       

       “수석교수가 전쟁 때 너를 왜 잡으러 다녔지?”

       

       “나는 사실 드래곤인데….”

       

       “지랄하네.”

       

       “야! 아직 안 끝났어!”

       

       나이틀리가 한숨과 함께 가버리자 힌드라스타가 소리를 지르며 쫓아갔다.

       

       

       # # # # #

       

       

       한편 모턴을 비롯한 몇몇 전투학과 교수들 역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확실히 여기 참전경력이 있으신 분이 맞군요. 허풍이 아니셨던 거예요.”

       

       리나의 말에 모턴은 조용히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단순 참전용사라고 하기에는 이상한 부분이 꽤 많다.

       

       이브로니크 성 탈환전에 참여한 것치고 디안 교수는 너무도 멀쩡하다.

       

       확실히 보통 병사가 아니라 특임대원이었던 것 맞는 듯한데.

       

       그런데 이브로니크 성에 특임대 활동이라 할 만한 게 있었던가?

       

       라이너스 경이 직접 절벽을 기어올라 성문을 연 것 외에는 딱히 생각나는 게 없다.

       

       특임대를 투입했으되 모두 실패했다는 쪽으로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도대체 디안 교수는 어떻게 저렇게 사지 온전하게 살아 있는 것인가.

       

       뭔가 중간에 아주 중요한 고리가 끊어진 듯한 느낌.

       

       그러나 그 고리가 무엇인지 모턴은 감히 추측할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추측했지만 함부로 그것을 입밖에 꺼낼 수가 없었던 것.

       

       설마… 기록이 날조되었나…?

       

       라이너스 경이 아니라 디안 교수가 한 것이라면…?

       

       혹은 둘이서 같이 했거나…?

       

       라이너스 경이 당시 특임대인 디안을 이끌고 절벽을 기어올랐다, 라고 한다면 얼추 앞뒤가 맞는다.

       

       애초에 라이너스 경도 특임대원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기에.

       

       그렇다면 디안 교수가 역사의 전면에 나오지 못한 이유는?

       

       그야 당연히 황성에서 라이너스 경에게 모든 조명을 집중했기 때문이겠지.

       

       거기에 일개 특임대원인 디안 교수가 낄 자리는 없었을 터.

       

       정말 디안 교수가 라이너스 경과 함께 절벽을 오른 것이었나….

       

       혼자서 심각한 모턴과 달리 다른 교수들은 각자의 성향대로 긍정적 반응만 보였다.

       

       리나는 다른 여교수들처럼 눈물을 훔쳤고 웨이버와 오렌디도 격한 감동. 이 사람들은 좋은 게 좋은 성격.

       

       브로그와 카자다르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고 제네브는 말없이 성의 그늘 안에 서있기만. 무슨 생각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애나 교수는 혼자서 머리를 긁적이며 성 안뜰의 잔디가 질이 좋아 보이니 방목장에 기르면 좋겠다고 중얼중얼. 도무지 말 말고는 관심이 없다.

       

       그외에 다른 여러 학생들도 디안과 참전용사의 재회를 목격했지만 이것에 대해 의심하거나 깊게 생각하는 이는 별로 없었다.

       

       그냥 말빨 좋은 디안 교수가 수고하셨다, 감사하다 등의 말을 해서 참전용사들이 울컥했다더라, 디안 교수가 예전에 봉사활동을 여기로 왔었다더라 등의 전혀 근거 없는 소문들뿐.

       

       아주 어릴 때부터 라이너스 경의 전설을 듣고 자란 어린 학생들이다.

       

       그들에게 이브로니크 성 탈환전의 주역은 라이너스 경이었고 거기에 누군가의 조력이 있었다는 식의 추론은 감히 상상조차 못할 일이었다.

       

       

       # # # # #

       

       

       성 내부의 라이너스 경 벽화까지 모두 둘러본 후에 이스메라 교수는 학생들을 이끌고 성을 나섰다.

       

       오전 나절의 가이드는 모두 끝났고 이제 아래로 내려가 도시락을 먹고 복귀할 참이다.

       

       교수들과 함께 학생들을 차례로 승강기에 태우던 이스메라 교수는 문득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도대체 교장이라는 작자는 어디로 사라져서 내내 안 보이는 거야!

       

       아니, 잠깐만. 이제 보니 전투수석도 없잖아?

       

       이것들이 나한테 일 다 떠넘기고 둘이서 어디서 뭘하고 있는 건데?!

       

       분노한 이스메라는 다른 교수들에게 현장을 맡기고 씩씩대면서 도로 성으로 돌아갔다.

       

       “아이고, 귀쟁이 교수 화났네.”

       

       당장이라도 아무나 물어뜯을 기세인 이스메라를 본 카자다르가 껄껄 웃으며 옆으로 비켜섰다.

       

       저 뒤쪽에서 걸어오는 디안과 키르린을 본 이스메라는 그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쏘아붙였다.

       

       “지금 뭐하시는 건가요?”

       

       “예? 뭐가요?”

       

       디안이 눈을 깜빡거리자 급기여 자제력을 상실한 이스메라가 꽥 소리쳤다.

       

       “전투수석이라는 분께서! 전적지 답사를 왔으면 본분을 다하셔야죠! 모든 것을 다 저에게만 맡겨 두고 한가하게 산책이나 하시다뇨!”

       

       “산책이요?”

       

       “이이익! 참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그리고 교장님!”

       

       “저, 저요…?!”

       

       깜짝 놀란 키르린이 평소에 하지 않는 존댓말로 대답했다.

       

       “그래요! 교장님! 저 말이죠!”

       

       이스메라가 이어서 뭔가를 말하려는데 저쪽에서 가이드가 허둥지둥 달려왔다.

       

       “저기요! 선생님! 선생님!”

       

       디안 앞을 가로막으며 서는 가이드 때문에 이스메라는 하려던 말을 하지 못하고 얼떨결에 뒤로 물러났다.

       

       “드디어 와주셨군요.”

       

       가이드가 디안의 손을 잡자 이스메라는 생각도 못한 상황에 영문을 모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희 참전용사님들께서는 선생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고 계셨답니다.”

       

       “아, 네…. 그런 이야기는 굳이 안 하셔도 되는데요.”

       

       디안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애초에 저분들께서 끔찍한 기억이 있는 여기서 일을 하고 계신 것도 다 그 때문이었어요. 언젠가 다시 오실 것을 믿고요.”

       

       가이드가 잡은 디안의 손을 흔들며 계속 말했다.

       

       “처음에는 라이너스 경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극구 아니라고 하시더라고요. 말씀들을 못하시는 분들이라 정확하게 의사소통이 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다른 사람이 있다고. 사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그 이야기를 믿지 않았는데….”

       

       감정이 북받쳤는지 가이드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비로소 참전용사님들께서도 편안하실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거….”

       

       가이드가 묵직한 주머니를 내밀었다.

       

       “그 동안 참전용사님들께서 당신들의 급료에서 조금씩 떼어 모은 것입니다. 비록 약소하지만 그분들의 마음이니….”

       

       “히익!? 주지 마세요!”

       

       디안이 양손을 허우적대면서 황급히 그것을 거절했다.

       

       “이런 거 받으려고 온 거 아닙니다. 그분들께 전해주세요. 그저 잘 살고 계신 것만으로도 보답하신 거라고요. 그럼 저는 이만!”

       

       디안이 키르린의 손목을 붙잡고 성밖으로 도망쳤다.

       

       뭐, 뭐야 이 상황은…?

       

       멀어지는 디안을 보며 어리둥절하던 이스메라는 방금 도대체 어떤 내용인지 묻기 위해 가이드를 돌아봤다.

       

       “저기, 지금 무슨 일이죠?”

       

       그러나 이미 가이드는 훌쩍훌쩍 눈가를 비비며 성 안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스메라 교수님! 빨리 오세요! 마지막 승강기입니다!”

       

       따라가려고 하는데 반대편에서 교수들이 이스메라를 소리쳐 불렀다.

       

       중간에서 갈등하던 이스메라는 결국 승강기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뭘까, 방금 그거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저는 이스메라가 탑으로 꼴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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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Quietly 은퇴한 조력캐는 조용히 살고 싶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causing chaos with my knowledge of the original work, I assisted the protagonist.

I successfully completed the story and now planned to retire and live peacefully.

However, it seems the protagonist still needs my help.

An academy professor? That’s nothing much.

But why is the state of the academy so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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