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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3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문자 한 통.

       그 문자 안에는 누군가는 좋아할 만한, 그리고 누군가는 싫어할 만한 내용이 있었다.

         

       “야! 대박! 대박이야!!”

         

       곰이랑 맥주를 마시면서 노가리를 까던 이아린은 문자를 받자마자 기뻐하며 한달음에 이세린에게 갔다. 그것도 평범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는 게 아니라 창문을 통해 말이다.

         

       “까, 깜짝이야!”

         

       그 때문에 조용히 책을 읽고 있던 이세린은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지만 말이다.

         

       이세린은 온갖 야단법석을 다 부리는 이아린을 보며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별거 아닌 일이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오래비가 러시아로 온다는데?!”

         

       하지만 이어지는 이아린의 말에 이세린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녀는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보기 위해 문자를 확인해보았고, 진실임을 깨닫자 동공이 약간 흔들렸다.

         

       “이놈의 오라비, 드디어 얼굴 좀 보겠구나. 하긴 이렇게 한 번은 보러 와야지~ 응?”

         

       이아린은 진성이 찾아오는 것이 기쁜지 실실 웃었다.

       그녀는 이세린에게 다가가서 너도 오라비가 오는 게 기쁘지 않냐고 연신 물었지만, 이세린은 대답 대신에 식은땀을 흘릴 뿐이었다.

         

       ‘어…. 얼마 전에 훔쳐보는 게 걸렸었는데…?’

         

       이세린은 진성이 찾아오는 것이 기쁘지 않았다.

         

       아니, 기쁘긴 했다.

       기쁘긴 한데….

         

       ‘얼, 얼굴 보기가 좀…. 좀 그런데…?’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기쁜데 기쁘지 않은 느낌?

       찾아오는 것 자체는 환영하는데 얼굴도 보기 싫고 말도 나누기 싫은 그런 느낌?

       들켜선 안 될 것을 들키고 만 사춘기 아이가 느끼는 느낌적인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좀 시간이 지나면 모를까 지금은…좀….’

         

       보기 싫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굳이 지금 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마음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는지, 이아린은 진성이 온다는 것을 주제로 한참이나 떠들었다. 일본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선물은 무엇을 가져올지, 온 김에 관광이나 하고 가라고 말해야겠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물론 이세린은 그녀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런 것보다는, ‘훔쳐보는 것을 좋아하는 애’라는 이미지를 어떻게든 해야겠다는 생각뿐.

         

       그리고 그 모습을 악마가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 찾아온다…라. ]

         

       악마의 얼굴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그 얼굴에는 꺼림칙하다는 감정이 가득 묻어 있었고, 뭔가 좋지 않은 느낌과 나쁘지 않다는 느낌이 섞여 만들어진 혼란이 서려 있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악마 역시 계약자인 이세린과 같이 진성의 방문이 그다지 반갑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일본에 몇 번이고 이아린과 이세린을 부르려 했던 진성.

         

       대체 일본에서 무슨 짓을 했기에 그녀들을 부르려 했던 것일까?

       거기서 무엇을 주려고 했길래 그토록 여러 번 권유를 한 것일까?

         

       악마는 물끄러미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이세린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있었다.

         

       『 가는 김에 저번에 말한 영시막이도 만들어주겠다. 하지만 거기에는 재료가 필요한데, 어지간한 것들은 내가 들고 갈 터이니 몇 개만 준비해주었으면 좋겠구나. 일단 자작나무 장작 30kg, 생후 10개월을 넘지 않은 염소 한 마리, 맹수의 피 300mL, 20년 이상 된 눈 1kg이 필요하다. 맹수는 종류는 딱히 상관이 없으나 피가 신선할수록 좋다. 또한, 반드시 육식하는 녀석이어야 하며, 사람을 해치지 않은 녀석이어야 하느니라. 』

         

       악마는 진성이 보내온 재료를 읽으며 이상한 점을 느꼈다.

         

       [ 장작과 어린 염소를 쓰는 것을 보니 번제(קָרְבַּן עוֹלָה)인 것 같은데, 어찌 맹수의 피와 눈을 필요로 하는지 모르겠구나. ]

         

       번제라는 것은 유서 깊은 주술 의식이다.

       어린 짐승을 통째로 불에 태워서 지내는 이 의식은 지역을 막론하고 항상 존재해왔을 정도로 손쉬우면서도 효과가 좋은 주술이었다.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짐승을 불태워 온갖 분야에서 주술적 가호를 얻었으며, 기독교와 이슬람교에선 번제를 통해 특별한 힘을 가진 동물의 피부를 얻어 여러 분야에 사용해왔다.

       힌두교에서는 번제를 통해 특별한 효능을 가진 음식을 만들었고, 중국에서는 번제를 통해 보패(寶貝)를 만들어 부를 축적하고 힘을 비축했다.

         

       이러한 번제들은 절차나 방식에 조금씩 차이는 존재했지만, ‘제물을 태운다’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의 때를 타지 않은 어린 짐승을 태운다는 공통점이 말이다.

         

       그런데 지금 진성이 요구하는 재료는 뭔가 이상했다.

         

       [ 장작과 염소는 순수한데, 맹수의 피와 쌓인 지 20년이 된 눈은 대체 무엇인가. ]

         

       맹수의 피라는 것은 주술에서 중요하게 사용하는 재료였다.

       맹수라는 것은 먹이사슬의 위에 있는 존재.

         

       즉, 자기보다 서열이 낮은 존재를 억누르고 억압하며 잡아먹는 폭군을 의미하기도 했으며, 생명을 죽이며 잡아먹는 업을 가지며 살아가는 존재를 의미하기도 했다. 따라서 그것이 상징하는 것은 ‘강력한 권력’, ‘폭군’, ‘범접할 수 없는 존재’, ‘공포’ 등의 매우 공격적인 것들이었다.

         

       게다가 쌓인 지 20년이 되는 눈?

       이건 대놓고 어린 짐승과 완전히 반대 위치에 있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들은 순수를 상징한다.

       그리고 눈 역시도 내린 지 얼마 안 되는 것들은 순수를 상징하고, 시간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그 상징은 흐려지기 시작한다. 그것은 더럽혀지지 않았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며, 먼지 한 톨 묻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휘발된 순수를 되돌릴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순수한 눈’을 구하는 주술사들은 일기예보를 끼고 살면서 눈 내리는 지역을 전전하곤 한다. 특히나 대주술 의식을 치를 재료를 구할 때는 아예 구름 바로 아래에 경량화 마법이 걸린 천을 깔아서 즉각적으로 재료를 수급하기까지 한다.

         

       그만큼 주술에 눈을 이용한다면 ‘갓 내린 눈’을 사용하는 것이 상식이었는데….

         

       [ 20년이 된 눈…. 때가 탈 대로 타고, 순수라고는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을 눈….]

         

       그런데 진성은 오히려 그 반대를 요구했다.

       때가 가득한, 상징이 반전된 물건을 요구한 것이다.

         

       앞의 두 개와 뒤의 두 개가 완전히 대립의 위치에 존재하는데 이것이 제대로 된 주술일 것인가?

       만약 진성이 요구한 게 아니라면 사이비 주술사의 헛짓이라 단정을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 전 권능의 힘이 담긴 영시도 가볍게 막던 것을 생각해본다면, 진성이 사용할 주술은 분명 제대로 된 것일 터.

         

       그렇다면 대체 그 주술은 어떤 것이란 말인가?

         

       악마는 찝찝하다는 듯 시선을 돌려 이아린을 쳐다보았다.

         

       『 일본에서 주려고 했던 것은 다른 사람에게 주었지만, 대신에 비슷한 것을 해주겠다.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것을 구해다오. 상처 없이 온전히 살아있는 맹수 한 마리,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겨우살이 1kg, 물고기의 비늘 500g, 맹금류의 깃털 500g, 너와 같은 혈액형의 혈액팩 5개, 도수 80도 이상의 술 5L, 로부르참나무로 만든 80cm 이상의 나무 막대기, 첫 수확한 곡물이나 과실 1kg, 첫 번째로 태어난 설치류 한 마리. 』

       『 맹수는 초식성, 잡식성, 육식성 상관이 없다. 그리고 겨우살이는 절대로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녀석이어야 하며, 채집 과정에서도 사람의 손길이 조금이라도 닿아선 안 된다. 만약 구하기가 어렵다면 내가 직접 채집해줄 테니 겨우살이가 있는 곳만 알아두도록 하거라. 그리고 물고기는 종류는 상관이 없으나 비늘이 아름다울수록 좋고, 맹금류는 되도록 독수리나 매의 것을 구하면 된다. 그리고 로부르참나무로 만든 막대기는 반드시, 반드시 로부르참나무여야만 한다. 그냥 떡갈나무나 참나무가 아닌 ‘로부르참나무’여야만 하느니라. 』

       『 물고기의 비늘과 맹금류의 깃털은 굳이 직접 구하려 할 필요는 없다. 근처의 주술용품 백화점이나 인터넷 쇼핑몰에서 살 수 있을 터이니 거기서 구하되, 하품(下品)이나 가짜 물품을 피해야 하니 평이 좋은 곳에서 사도록 해라. 』

       『 맹수는 직접 잡아도 무방하나 러시아 사냥꾼 협동조합이나 용병 협회에 의뢰하면 편할 것이다. 또한, 필요한 대금은 내가 대신 내줄 것이다. 돈을 많이 벌었으니 얼마가 들던 걱정하지 않아도 되느니라. 』

         

       이세린과 달리 이아린에게 간 문자는 길었다.

       마치 아이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부모가 하는 잔소리처럼 길고 자세하게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악마는 문자의 내용을 보고 피식 웃었다.

         

       [ 자세하게 적지 않으면 대충대충 구할 것 같았나 보구나. ]

         

       그리고 그와 악마의 생각이 맞았다고 증명이라도 하듯 이아린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 뭐 이렇게 따져야 할 게 많아~난 이런 거 설명해봤자 잘 모르는데…. 세린! 세린! 이것 좀 같이 구하자!”

       “아니, 잠깐…. 어? 아니…. 이렇게 자세하게 적혀있는데 왜…?”

       “왜~둘이서 같이하면 좋잖아! 나도 구하는 거 도와줄게!”

       “내가 구해야 할 건 4개인데 너는 9개나 되잖아! 내가 손해…!”

       “어?! 어린 염소?! 나 이거 도와줄게! 나랑 친한 애가 염소 기르고 있거든!”

         

       이아린은 자연스럽게 이세린에게 자기의 몫을 짬 때리고는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아….”

         

       졸지에 이아린의 몫까지 총 13개의 물건을 구해야 하는 처지가 된 그녀는, 창밖으로 신나게 뛰어다니는 이아린을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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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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