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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3

       

       

       

       

       “워, 워터….”

       

       내가 원한 마법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아르가 마법을 시전한 이상 나는 그에 맞추어 영창을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쀼우웃!”

       

       흠뻑 젖은 나를 향해 폴짝 뛴 아르를 안아 들자, 아르는 내 품에 얼굴을 묻더니 물이 차갑긴 했는지 쀽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 뺨에 묻은 물을 털고는 나를 올려다 보며 웃었다.

       

       “그래, 그래. 아르가 응원해 준 덕분에 이겼네. 고마워, 아르야.”

       “쀼우!”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된 나는 그런 아르를 마주보며 피식 웃었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빈말이라 생각하겠지만, 이건 진짜 아르 응원 덕에 이긴 게 맞지.’

       

       [일시적으로 활성화되었던 스탯 동기화 2단계가 해제됩니다.]

       

       메시지와 함께 잠깐 동안 올랐던 힘, 민첩, 체력 스탯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윽.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야.’

       

       그렇지 않아도 두 시간이 넘게 훈련을 한 데다, 마지막엔 전투에 완전히 몰입해서 쉴 새 없이 몸의 힘을 짜내 썼다. 

       

       훈련이 모두 끝나 긴장이 풀린 것, 그리고 스탯 동기화 2단계가 풀린 것의 후폭풍이 한 번에 몰려오자 순간 다리가 휘청일 뻔했다. 

       

       “쀼우!”

       

       아르는 그런 내가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올려다 보았다. 

       

       그러고는 뭐라고 해 주고 싶었는지 내 옷자락을 조그만 손으로 잡고 비틀어 물기를 쪽 짰다. 

       

       물 몇 방울이 똑 떨어져 수련장 바닥에 떨어졌다.

       

       “하하, 괜찮아. 아르야. 벗어서 잠시 불에 말리면 되니까.”

       

       나는 아르의 엉덩이를 토닥여 준 뒤, 다시 짚더미에 내려 주었다. 

       

       [스킬 동기화를 사용해 ‘아르젠테’로부터 ‘파이어’ 스킬을 공유 받습니다.]

       

       ‘파이어 정도면 아르에게 써 달라는 눈빛을 보내면 되긴 하지만….’

       

       어차피 오늘은 아직 한 번도 변경 횟수를 소모하지 않았고, 불을 여러 개 피울 생각이었으므로 나는 ‘파이어’를 공유 받았다.

       

       “파이어.”

       

       내 영창과 함께 따스한 불꽃이 피어났다. 

       

       나는 수련장 내부에 비치된 스탠드형 외투걸이를 가져와 불 앞에 세워 놓고, 물에 흠뻑 젖은 상의를 벗어 한 번 쭉 짠 뒤에 걸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하의도 벗으려는 순간, 문득 아직 실비아가 같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손을 멈추었다. 

       

       “계속 하셔도 괜찮은데.”

       “제가 안 괜찮아요. 실비아 씨. 옷만 빨리 말리고 나갈 테니 먼저 나가 계시면 안 될까요?”

       “후후, 아쉽네요. 그럼 먼저 나가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실비아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짓더니 먼저 수련장 문을 열고 나갔다. 

       

       달칵.

       

       “휴우.”

       

       실비아가 나가고, 비로소 자유로워진 나는 바지도 얼른 벗어 외투걸이에 걸었다. 

       

       “파이어. 파이어.”

       

       그리고 옷이 빨리 마르도록 외투걸이 주변에 불을 피워 놓고 나와 아르 앞에도 난로처럼 불을 하나 소환했다.

       

       짚더미에 불이 붙지 않도록 조심해 위치를 미세 조정하고 짚더미에 앉은 나는, 그제야 아르의 볼을 쭈욱 잡아당겼다. 

       

       “삐우우우?”

       “욘석아, 그렇게 예고도 없이 워터를 써 버리면 어떡해? 하마터면 실비아 씨한테 걸릴 뻔했잖아.”

       “삐이이.”

       

       나는 아르의 찹쌀떡 같은 볼따구를 잡고 위아래로 쭉쭉 늘렸다. 

       

       “삐이….”

       

       볼을 놓자 신축성 있는 볼이 찹, 하고 원래 모습을 찾았다. 

       아르는 입을 살짝 삐죽이며 조그맣게 음성화를 사용했다. 

       

       “나 레온 오래 기다려써. 잠 와도 참아써. 근데 바로 안 안아 조서, 너무 안고 시퍼써.”

       “…….”

       

       가볍지만 따끔하게 혼을 내려던 나는 그렇게 말하는 아르를 보고 잔소리를 다시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다. 

       

       ‘후우…. 저런 표정은 또 어디서 배워 온 거야. 자꾸 귀엽다고 봐 주기 시작하면 애 교육에 안 좋은데….’

       

       근데 저러는데 어떻게 안 봐 줘. 

       

       이 귀여운 모습을 보고도 화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해?

       

       ‘그리고 사실 생각해 보면 수련장 안에 같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몇 시간 동안 안거나 쓰다듬지도 않고 떨어져 있었던 건 거의 처음인 것 같기도 해.’

       

       잘 때도 같은 침대에서 서로 꼭 안고 자거나 최소한 붙어서 자니, 기억을 되짚어 봐도 아예 떨어져 있었던 적은 스미스 씨 잡화점에 처음 방문했을 때밖에 없었던 같았다.

       

       ‘아직 까마득히 어린 녀석이 두 시간 동안 내 수련을 얌전히 앉아 기다리는 것 자체가 보통 일은 아니긴 하지.’

       

       중고등학교 수업도 40분에서 50분, 대학 강의도 보통 1시간 반에서 2시간 안에는 끝난다. 

       

       그런데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해츨링이 얌전히 앉아서 수련 장면을 지켜 보고 있어야 하다니, 얼마나 지루하고 또 힘들겠는가. 

       

       ‘물론 아르도 중간에 졸긴 했지만, 안 졸았으면 그게 더 이상했을 정도였지.’

       

       고등학교 때 밤새 신작 게임 엔딩을 보고 학교에서 거의 오전 풀잠을 때린 전적이 있었던 내가 잔소리를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렇게 아르가 입까지 삐죽여 가면서 나름대로 불만을 표현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지 아마.’

       

       물론 내용이 나한테 안기고 싶다는 귀여운 내용이긴 하지만, 어쨌든 적극적으로 자기 생각을 표현한 거다. 

       

       ‘성장하고 있구나, 아르야.’

       

       나중에 사춘기가 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또 한 번 들었지만, 지금 당장 걱정할 일은 아니니 잠시 접어 두기로 했다.

       

       ‘영원히 나한테 어리광만 부리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자립심을 기르는 편이 나중에 내가 없을 때를 생각하면 좋기도 할 거고.’

       

       인간의 수명은 보잘것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살아 있는 시간이 좀 더 소중하고 빛나는 것이라고 했던가. 

       

       ‘살아 있는 동안 아르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지. 물론, 그러기 위해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노력해야겠지만.’

       

       가장 가엾은 존재가 자식 먼저 보낸 부모라는 말이 있듯, 아르가 나보다 먼저 죽는 건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었다. 

       

       갑자기 아련해지는 마음을 털어 버리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표정을 풀고 아르의 축 늘어진 어깨를 엄지와 검지로 주물러 주었다. 

       

       “알아, 아르야. 그만큼 아르가 날 좋아해 주고 있다는 거니 나는 기뻐.”

       

       그 말에 아르의 표정이 급격히 밝아졌다. 

       

       “정말? 레온도 내가 안고 시퍼하는 게 조아?”

       “응. 당연하지.”

       “헤헤헤…. 레온 조아!”

       

       잠시 삐쳤던 표정이 금세 배시시 풀어진 아르가 다시 나에게 폴싹 안겼다. 

       

       나는 그런 아르를 이번에는 꼬옥 안아 주었다. 

       

       옷을 벗고 있었기에 아르의 부드럽고 따뜻한 맨살이 그대로 느껴졌다. 

       

       “헤헤…. 레온 따뜻해. 기분 조아.”

       

       아르는 내 살에 뺨을 부볐다. 

       

       ‘하아, 힐링된다….’

       

       요 쪼그맣고 따뜻한 해츨링을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품속은 물론 마음속 깊은 곳까지 따스해지는 느낌이었다. 

       

       “따뜻하네.”

       “우응. 따뜨태!”

       

       그래서인지 어느새부터 몸이 좀 후끈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잠깐만. 분명 수련장에 들어올 때만 해도 적당히 서늘한 편이었는데….’

       

       아무리 불이 앞에 가까이 있다고 해도 등 쪽까지 이렇게 따뜻한 게 맞나?

       

       문득 불길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린 나는.

       

       화륵!

       

       “으아악! 옷 탄다! 물…이 아니라 내 마법이었지!”

       

       어느새 몸집이 커진 파이어 마법을 급히 취소해야 했다. 

       

       ***

       

       “휴. 조금만 늦었으면 진짜 탈 뻔했네.”

       

       다행히 옷은 후드 끝자락이 살짝 그을린 것 말고는 멀쩡했다. 

       

       그새 옷이 마른 걸 확인한 나는 아르를 한 번 더 품에 꼬오옥 안아 주고, 아까 내가 잡고 늘렸던 빵빵한 볼을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마사지해 주었다. 

       

       그리고 옷을 입은 뒤 아르를 데리고 나갈 채비를 했다. 

       

       “가자, 아르야. 실비아 씨 기다리시겠다.”

       “우응! 레온, 나 야식 사 조!”

       “그래, 그래. 사 줄게.”

       

       그러고 보니 라면, 아니 꼬부랑매콤국수를 먹은 지도 벌써 세 시간이나 지났다. 

       

       이미 해도 떨어졌겠다, 아예 저녁 겸 야식을 사서 들어가 먹는 것도 방법일 듯싶었다.

       

       아무래도 아르가 지난번에 야식을 야물딱지게 먹은 이후로 ‘야식=맛있는 거 먹는 거’라는 개념이 딱 꽂혀 버린 것 같은데, 뭐 대략 맞는 말이니 넘어가기로 했다.

       

       “야식이요? 좋죠!”

       

       실비아 씨도 흔쾌히 동의했기에, 우리는 먼저 시장에 가서 각종 맛있는 것들을 하나씩 사서 포장해 나왔다. 

       

       캐머해릴은 따로 야시장 문화가 없어 그렘 마을처럼 훈훈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규모 자체가 좀 있는 도시다 보니 늦게까지 여는 가게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고르는 거 보니 우리 아르가 달달한 걸 좋아하나 보네요.”

       “아이들은 다들 단 걸 좋아하니까요.”

       

       언젠가부터 실비아 씨도 은근슬쩍 ‘우리 아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실비아 씨, 요것 좀 들어 주실래요?”

       “그럼요. 그것도 주세요. 제가 들게요.”

       “고마워요.”

       

       실비아 씨는 한 손가락에 봉투 하나씩을 끼우고도 전혀 무겁거나 힘든 기색 없이 포장된 음식들을 가지고 나와 아르를 따라다녔다. 

       

       “후우. 생각보다 많이 산 것 같긴 한데….”

       

       뭐, 세 명이 먹을 거니까 괜찮겠지?

       

       먹을 것을 넘치게 산 우리는 어서 가까운 여관을 찾아 들어가기로 했다. 

       

       “어, 저쪽에 마침 하나 있네요.”

       

       조금 규모가 작아 보이긴 했지만, 아르와 포장한 음식을 바리바리 싸 들고 있던 나는 일단 어디든 들어가기로 하고 어깨로 문을 밀고 들어갔다. 

       

       “어서 오시유.”

       

       여관 주인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우리를 맞아 주었다.

       

       “여기 방 두 개 있을까요? 욕실 포함으로요.”

       “으음, 어디 보자….”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카운터 아래쪽의 열쇠함을 바라보더니, 나와 실비아 쪽을 흘끗 바라보았다.

       

       “…? 혹시 방이 없나요?”

       

       이걸 또 낑낑대며 싸 들고 여관 찾으러 돌아다니긴 좀 그런데….

       

       “아니, 있지요.”

       “그럼….”

       

       하지만 곧 나는 할머니의 말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걸 어쩐댜, 방이 하나밖에 없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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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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