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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3

       엘란의 정보요원. 에렌.

       그의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작은 수정구의 떨림을 느꼈다.

       여왕의 호출이다.

       그는 조용히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해, 수정구를 꺼내들었다.

         

       ─에렌?

         

       치지지직.

       통신 거리가 멀어 마나가 흐트러지고, 혼탁함이 섞여있지만.

       다행히 못 알아들을 정도의 목소린 아니었다.

         

       “예. 여왕님.”

       ─현재 마제로스 상황은 어떤가요?

       “마제로스 테라포밍의 진행률은 낮은 편입니다.”

       ─가만히 놔둬도 그들이 붕괴할까요?

       “아뇨.”

         

       ─일이 이렇게 굴러가다니.

       “그러게나 말입니다. 제가 몇 달 전부터 말씀드렸는데.”

       ─그건… 넘어가도록 하죠. 마제로스에 관심이 이렇게 쏠릴 줄 몰랐으니까요.

       “….”

         

       완전히 그러니까 미리 보고를 올렸을 때 대비를 하지.

       마제로스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면서 무시하더니.

       에렌이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그건 어쨌든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

       지금에서라도 어떻게든 해결할 차례였다.

         

       “그럼 어떻게 하실 예정입니까?”

       ─그렇다면… 연구를 못하도록 방해 해야겠죠.

       “예. 여왕님.”

         

       잠시 침묵이 흐르고.

       단호한 목소리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에렌 방해하세요.

       “예?”

         

       ─에렌. 그들의 활동을 방해해요.

       “여왕님?”

         

       ─이 일을 성공한다면 우리들의 입지가 확고해져요.

       “근데 그걸 왜 제가 해야 하는….”

         

       ─그야, 믿을 사람이 에렌 말고는 없으니까요.

       “저요?”

         

       ─예. 에렌. 실패하면 앞으로 언제 기회가 올지 몰라요.

       ─알아서 최선을 다해, 그들의 일을 망쳐보세요.

       “언제 올지 모른다고요?”

         

       ─길면 앞으로 수십 년일 수도 있겠죠.

       “….”

         

       ─믿을 사람이 에렌 밖에 없어요.

       “…하아.”

         

       ─근데 실패하면 우리 둘 다 위험한 거 알죠?

       “예? 그럼 저 빠질게요.”

         

       ─빠진다고요? 제게 또 십자조르기를 당하고 싶나요?

       “….”

         

       ─아무튼. 해요.

       “아무튼이라니.”

         

       ─화이팅.

         

       뚝.

         

       “저기요?”

       “야. 야!!!!!!”

         

       연락이 끊겼다.

       지독한 적막이 찾아왔다.

         

       원로들의 지원을 받는 광신도들을 처리하라고?

       미친 거 아닌가.

         

       성공하면 그만한 보상이 뒤따른다고?

       근데 실패하면 여왕과 자신. 둘 다 위험해지고?

       그럼 당연히 안 하고 말지.

       폭거나 다름없는 명령이잖아.

         

       “안 하지. 절대 안 하지.”

         

       이런 위험한 일에 휘말릴 생각은 없다.

       자리를 뜨려던 에렌의 몸이 멈칫 했다.

         

       ‘제게 또 십자조르기를 당하고 싶나요?’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와 동시에 고통스러운 기억도 떠올랐다.

       어릴 때 몰래 누나의 푸딩을 먹었다가 당했던 십자조르기…!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십자조르기를 당한다고?

       그거 존나 아픈데.

       에렌은 한숨을 푹 쉬었다.

         

       “하기 싫은데.”

         

       하지만 누나가 말하지 않았던가.

       다시는 기회가 없을 수 있다.

       믿을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유일한 기회.

       아마 정치적인 이유가 들어가 있겠지.

       그렇다면… 이번 기회가 되게 소중하다는 얘기다.

         

       에렌이 눈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

       왜 여왕이 되어 가지고 이런 일에 휘말리냐고.

       지금 상황이 얼마나 좋지 않으면. 왜 동생말고 믿을 사람이 없다 하냐고.

         

       “망할년.”

         

       에리스의 남동생. 에렌이 눈을 감고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집회… 광신도… 리더… 위장 마법… 투자….’

         

       그는 오랜 시간동안 자신의 계획을 점검했다.

         

         

       ***

         

         

       평화로운 마제로스의 수도. 키르넬.

       키르넬의 광장엔 아침부터 단체복으로 집합한 이들이 있었다.

         

       하얀 피부, 기다란 귀. 손수건으로 가린 하관.

       마지막으로 살짝 광기 서린 눈빛.

       어두컴컴한 마제로스에서 이질적으로 흰색 빛을 띠는 이들은 엘프였다.

         

       “오오…!”

       “오늘도 마제로스에 따스한 빛을!”

         

       그들이 왜 아침부터 광장에 모였을까.

       당연히 아침 체조를 하기 위해 모인 건 아니고.

       그들끼리 단합하기 위한 절차였다.

       리더로 보이는 엘프가 소리쳤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모인 우리는 서로 협력하고 이루어낼 것입니다!”

       “맞습니다…!”

       “세계수가 그리워도… 우리는 이 곳에서 해낼 거야….”

         

       눈물이 줄줄줄.

       곳곳에서 감격의 눈물과 함께 주먹을 쥐었다.

       단합을 위해 준비된 멘트에 모두가 감격했다.

         

       이곳에서 엘프는 모두 하나다!

       각자 다른 사연으로 모였지만 하나다!

         

       집에서 백수로 반백년을 보내다 쫓겨났어도.

       여행 왔다가 자연스럽게 마제로스에 정착했어도.

       올곧은 신념을 가지고 마제로스로 왔어도.

       망할 성격 나쁜 누나가 좋은 일자리를 소개 시켜준다면서, 마제로스로 보냈어도…!

       그들은 이곳에서 하나가 되었다.

       모두 입을 모아 한 마음으로 외쳤다.

         

       “우리들은 숭고한 뜻을 이루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에겐 한 가지의 사명이 있습니다…!”

       “그건… 마제로스의 구원!”

       “헉….”

       “마제로스는 구원 받아야 마땅하오…!”

         

       “이곳 마제로스에 세계수의 그늘이 닿지 않는 건 저주입니다!”

       “맞아… 여기는 저주 받았어…!”

       “어떻게 그럴 수가….”

       “마제로스는… 구원받아야 한다…!”

       “이 곳을 구원해야 해!”

         

       그들의 바람이 담긴 외침이자, 포효였다.

       왜 이곳은 세계수의 그늘이 닿지 않는 것인가. 버림받은 땅이다!

       모든 이에게 외면 받고 세계수를 거부하는 땅이라니.

       엘프들에게 마제로스란 충격 그 자체였다.

         

       ‘어떻게 이런 곳이!!!!!!!’

         

       질 좋은 마나란 엘프들에겐 당연한 것이다.

       세계수가 마나를 항상 최고의 품질로 정화해주니까.

       그런 이들에게 마제로스란 흡사 쓰레기장처럼 보이는 나라였다.

         

       마기로 뒤덮인 나라! 세계수의 영향력이 전혀 없는 곳이라니.

         

       ‘크흐윽….’

       ‘이런 곳에서 살다니 마족들이 너무 불쌍해요.’

         

       그들은 진심으로 마족들을 측은하게 여겼다.

       마기가 없었더라면 세계수의 은총을 받았을 텐데.

       이곳은 너무나도 황폐하지 않은가!

         

       ‘여기는 최악이야….’

         

       집회의 리더가 마기로 점철된 흙바닥을 발로 쓸었다.

       마기란 무엇인가?

       마기는 마나와 상극을 이루는 물질…!

       마제로스는 마기에 심각하게 오염 되었다. 그것도 아주 오랜 시간동안 말이다.

         

       ‘세계수의 그늘이 닿지 않는 건 마기의 영향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기를 없애면 되는 일이지만….

       마기는 스스로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마기를 최대한 정화하고 없애야 한다.

       그 대상은 정해져있었다.

         

       “우리가 행동해야 합니다.”

         

       다른 종족과 달리, 마법에 조예가 깊은 엘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얼마나 올바른 일인가.

         

       “우리가 아니면 없습니다.”

         

       마제로스를 정화하고 이 곳에 세계수의 위대함을 알리리라!

       세계수의 따스함을 베풀다니.

       감동적인 이야기에 모두가 코를 훌쩍였다.

         

       이 이야기는 원로들도 감격하며 박수치고 탭댄스 출 정도로 기뻐하였다

       자신의 일처럼 좋아하며, 지원금을 보내주지 않았던가!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이 감격스러워하는 이유가 있었다.

         

       “자! 오늘도 마제로스를 살려봅시다!”

       “마기 하나 없는 깨끗한 나라를 위해!”

       “세계수의 그늘이 이곳에 닿도록!”

       “우리는 승리하리라!”

         

       더 이상 이런 땅이 대륙에 존재해선 안 된다!

       풍요로움과 쾌적함을 선물해야 한다!

         

       “해치우세!”

         

       엘프들이 동시에 주먹을 위로 뻗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족들도 같이 주먹을 치켜들었다.

         

       “어?”

         

       “해산해라 이 미친 엘프들아!”

       “끼야아아앙아아악!”

       “핍박이다아아앗!”

       “세계수를 거부하는 자다!”

       “마기에 중독되었어!”

       “우리는 핍박당하더라도 꺾이지 않는다!”

         

       “아무 문제도 없는 마제로스를 왜 건드는 것이냐!”

       “이곳은 문제투성이다!”

       “우리는 해결해주러 왔을 뿐인데…!”

       “크흐흑… 마기란 나쁜 거란 말이닷…!”

         

       마왕의 군세가 엘프들을 향해 적개심을 드러냈다.

         

       “이들을 모두 해산시켜라! 마왕님의 뜻이다!”

       “도망쳐어어어엇!”

       “마기에… 마기에 중독되어 마족이 이성을 잃었다…!”

       “마기를 진작 정화했다면… 세계수님의 은총을 받았더라면… 이런 일이 없을 텐데 크흑…!”

       “동족들이여… 우리의 숭고한 뜻을 지켜야 한다!”

       “모두 아지트에서 만나자!”

         

       하지만 이곳은 마기가 가득한 마족들의 땅.

       마나가 충분하지 않아 맞설 수 없다.

       엘프들은 평소처럼 각자도생 작전을 펼쳤다.

         

       “도망쳐라!”

         

       모임 강제 해산!

       엘프들이 광장에서 뿔뿔이 흩어졌다.

       일단은 살아야 뭐라도 할 수 있으니까!

         

       “마족들이여…! 그대들을 저희가 구원하겠습니다.”

       “잡히는 놈은 곤장 100대를 때려서 돌려보내라!”

       “끼야앙아아아아앙!”

       “곤장형은 안 돼…!”

       “네 발로 걷는 건 싫어…!”

         

       엘프들이 절규했다.

       엉덩이 볼기짝이 쓰라린 건 참을 수 없는 고통!

       이미 모두 겪어본 고통이기에 더욱 두려웠다.

       살아야 한다!

         

       그렇게 모두가 도망가고.

       이 모임의 리더도 마찬가지로 능숙하게 골목 사이로 몸을 숨겼다.

       그의 뒤를 따라온 엘프 남성도 숨을 헐떡였다.

         

       “허억… 허억….”

       “도망치는 데 성공했으니 안심하십시오. 형제여.”

       “그, 그렇습니까…?”

       “예. 우리들의 아지트로 돌아가지요.”

       “그거 좋네요.”

         

       에렌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몽둥이를 마법 주머니에서 꺼냈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본 리더는 눈을 크게 떴다.

         

       “무슨 일 있습니까…?”

       “예. 있지요.”

       “무슨… 엥윽…!”

       “누나가 준 좆같은 임무.”

         

       에렌은 바닥에 쓰러진 리더의 얼굴을 확인했다.

         

       “얼굴은 이렇게 생겼고… 목소리는… 아아…. 아… 음. 무슨 일 있습니까…? 돌아가지요. 음.”

         

       이 정도면 됐겠지.

       그는 바닥에 쓰러진 사내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수면 마법으로 한 번 더 재웠다.

       멀리서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에 몸을 피했다.

         

       “이쪽에 엘프의 기척이다!”

       “바닥에 누군가… 이 녀석은… 악질 광신도 엘프의 복장!”

       “잡아가라! 강제노역을 시켜라!”

         

       강제노역이라니. 불쌍하네.

       에렌은 질질 끌려가는 사내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처리완료.’

         

       이제 제대로 일을 시작할 시간이다.

       그는 위장용 인피면구를 마법 주머니에서 꺼내 착용했다.

         

       “후우… 나는 광신도 리더다. 광신도 리더다. 광신도다.”

         

       그의 눈에 광기가 깃들었다.

         

         

       ***

         

         

       엘프들은 능숙한 몸놀림으로 마족들에게서 도망쳤다.

       광장에 모인 이들은 전부 수십 번이나 도망쳐본 프로 중에 프로. 엘리트 중에 엘리트!

       모두가 다치지 않고 도망치는데 성공했다.

         

       “살았다…!”

       “내 엉덩이가 죽을 뻔 했어….”

         

       오늘도 마족들의 횡포로부터 생존한 엘프들이 아지트로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압도적인 패배를 겪었지만, 그들은 분함보다는 슬픔이 눈에 맺혀있었다.

         

       “아아, 얼마나 슬픈가…!”

       “세계수의 따스함을 모르다니!”

       “그들은…세계수의 따스한 품을 모르기에… 거부하는 것이지.”

       “크흐흑… 딱한 마족들….”

       “너무 슬퍼서 눈물이 멈추지 않아!”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안다고.

       세계수를 접해보지 않은 마족들은 세계수의 따스함을 모르는 거다.

       그러니 빨리 마기로부터 해방시켜줘야 한다.

       과열됐던 분위기가 가라앉자, 이 모임을 이끄는 리더 엘프. 아니, 에렌이 등장했다.

         

       “리더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리더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으니까요.”

       “으음…. 그래서 다들 모였군요.”

         

       근데 왜 모였을까.

       그 내용은 모르겠지만 일단 뭐라도 얘기를 해야 한다.

       시작과 동시에 찾아온 위기에 식은땀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에렌이 아는 정보는 많지 않았다.

       에리스라는 이름을 가진 여왕은 썅년이라는 것.

       광신도들이 원로들에게 자금을 지원받는다는 사실과 마기를 정화하여 마제로스라는 나라의 근간을 없앤다는 미친 발상을 추종하는 것.

       그리고 미리 조사해놨던 마기 정화에 대한 정보들 뿐.

       하지만 이제 슬슬 입을 열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리더?”

       “….”

         

       마기 정화. 마법 효율. 세계수. 연구 중지. 광신도. 새로운 길. 시간 지연….

       실패하면… 자신과 여왕의 삶이 고달파질 확률 100%

       뒤죽박죽 섞인 생각이 정리되고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연구는 이제 그만 하겠습니다.”

       “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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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oming The Top Moderator Of The Otherworld Board

Becoming The Top Moderator Of The Otherworld Board

I Became The Top Moderator Of The Otherworldly Gallery 이세계 갤러리 주딱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as minding the board 24/7 when I got dragged into another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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