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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3

       이튿날.

         

       우리는 셀다스를 만나기 위해 술집으로 향했다. 시각은 점심이었다.

         

       술집으로 들어가자 접수원은 우리를 보곤 바로 안방으로 들어갔다.

         

       “이젠 우리를 보자마자 바로 안방으로 들어가네. 목적을 바로 아는 건가?”

       “오히려 눈치가 빠르니 좋은 거죠. 괜히 엑시드의 접수원이 아닌가 봅니다.”

         

       제국 최고의 암흑 길드의 접수원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분명 돈도 많이 받겠지?

         

       무력은 내가 더 강하더라도 돈은 쟤가 더 많을 거다. 이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측은해졌다.

         

       ‘뭐, 그래도 인제 와서 프란체의 노예가 된 점은 후회하지 않아.’

         

       나로 인해 누군가가 구원받는 것.

         

       프란체를 만나고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성취감과 뿌듯함을 얻을 수 있었다. 아마 그녀와 함께 지내온 날들은 평생 잊을 수 없겠지.

         

       “아, 접수원 나왔네.”

       “바로 들어가죠.”

         

       우리는 마치 안방을 드나들 듯이 자연스레 안쪽으로 향했다.

         

       “왔군.”

       “기다리고 있었나 봐?”

       “그럴 수밖에 없지. 난리가 났으니까.”

         

       셀다스의 가면 사이로 보이는 눈이 호선을 그렸다.

         

       “18억을 꽁으로 줄 일은 없겠군.”

       “내가 말했잖나? 자신이 있다고.”

       “그래, 그랬지. 그런데 말이야.”

         

       고개를 꺾으며 날카롭게 프란체를 응시했다.

         

       “전부 다 진 바렌베르크의 계획 아닌가? 공녀가 한 거라곤 별로 없는 거 같은데.”

         

       이번에도 대놓고 무시하는 발언. 프란체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저번부터 나를 그렇게 무시하던데, 무슨 자신감으로 그리 나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네.”

         

       날이 서 있는 프란체의 음성. 셀다스는 이에 굽히지 않았다. 오히려 피식 웃기까지 하며 도발을 해왔다.

         

       “데카르트 공녀. 지금까지 당신이 주도한 일이 뭐가 있나? 황실 파티장에 나도 있었는데, 지켜보니 진 바렌베르크가 전부 주도한 거 같더군. 이게 인형이 아니면 뭐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프란체는 지금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만 해오고 대부분은 내가 계획했다. 그 할 수 있는 일도 내가 짜놓은 판 위에서 했기에 가능했던 것.

         

       프란체도 이 사실을 알았는지 아랫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내렸다. 이러니 나까지 열 받는데.

         

       “셀다스 프레이아.”

       “뭐지?”

       “그 이상 주제넘지 말도록.”

       “…주제를 넘지 말라?”

         

       나는 눈을 얕게 뜨고 살기를 분출했다. 움찔. 셀다스의 몸이 한순간에 경직되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우리는 우호적인 관계 아니었나?”

       “우호적인 걸 떠나서 주제를 알라는 거다.”

         

       우리 프란체가 이렇게 무시당하는데 내가 지켜보고만 있을 순 없지.

         

       “그래. 이번은 내가 실수…….”

         

       셀다스가 한 수 굽히고 들어가려던 그때.

         

       “아니.”

         

       프란체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끊었다.

         

       “…뭐지?”

       “이건 내가 직접 얘기해야 할 것 같아서.”

         

       내 앞에서 둘이 시선을 마주했다. 묘하게 전류가 흐르는 느낌인데. 기분 탓인가?

         

       “진이 모든 일을 주도한 건 사실이야. 하지만 내가 그저 인형처럼 움직였다는 건 인정할 수 없네.”

         

       사실 완전 인형처럼 움직이긴 했는데. 배우는 과정이니까 뭐, 나중 가면 괜찮아질 문제다.

         

       “글쎄. 인형처럼 움직이지 않았다는 건 공녀의 생각 아닌가?”

         

       큿, 프란체가 입술을 머금었다. 분하긴 한데 반박할 수가 없는 거다. 이 분노가 셀다스에게도 전해졌는지, 자세를 굽혔다.

         

       “뭐, 나도 말이 심했으니 사과하도록 하지. 아무리 진 바렌베르크가 주도했다고 하더라도 공녀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니까.”

         

       병 주고 약 주고도 아니고 이게 무슨 대화란 말인가. 저럴 거였으면 진작에 도발하지 말 것이지.

         

       “아무튼. 이 얘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프리다의 건으로 찾아온 거지?”

         

       프란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로 대답하지 않은 걸 보니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모양.

         

       “전부터 프리다는 지켜보고 있었어. 그런 일을 했으니 움직이지 않는 게 이상하지.”

         

       셀다스는 비릿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황실 파티에서 확신하고 암흑 길드에 의뢰를 맡긴 거 같더군.”

         

       그런데 용병단도 아니고 암흑 길드에 의뢰했다니. 어지간히도 화가 났나 보군. 프란체가 물었다.

         

       “어디에 의뢰를 넣었지?”

       “젠부코로스라는 집단이야.”

       “흐음…….”

         

       젠부코로스. 제국의 암흑 길드 중에 두 번째로 강한 길드. 엑시드와 다르게 무력에 집중된 집단이다.

         

       “나는 그쪽이랑 정면으로 붙는 건 사양이네.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목적이 뭔지만 알려 줄 수 있어.”

         

       하긴, 셀다스라고 해서 그들과 맞붙는 건 손해가 크겠지. 뭐, 그래도 내가 직접 움직이면 되니 상관은 없다. 프란체도 이를 알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상관없어. 진이 있으니까. 너희는 정보만 전달해주고, 매장과 작업장만 지켜주면 돼.”

         

       셀다스의 가면 아래로 보이는 입꼬리가 씰룩였다. 왠지 우리가 저 새끼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는 거 같은데.

         

       “그거 좋은 소식이군.”

         

       그리 말하고 또 비릿하게 웃는다. 슬슬 재수가 없어진단 말이지.

         

       “그럼 정보를 얻는 대로 소식을 전하겠다. 일은 이제 끝인가?”

       “하나 더 남아있어. 이것도 꽤 중요한 일이라서 너희들에게 맡기고 싶네.”

         

       의문이 든 셀다스는 고개를 꺾었다.

         

       “이번엔 또 뭐지?”

       “프리다에 첩자 하나를 심고 싶어.”

       “첩자?”

       “그래. 우리 쪽으로 넘어오도록 만들려고.”

         

       톡. 톡. 셀다스는 고민에 잠긴 듯 책상을 두드렸다.

         

       “과연. 그런 계획까지 세운 건가. 프리다에 원한이라도 있나?”

       “원한이라기보다는 정직함을 추구하는 거지. 그들은 정상적인 상단이 아니니까.”

         

       그래, 악덕 기업에는 심판을 내려야지. 착취를 일삼아 자신들의 지갑만 두둑이 불려온 놈들인데.

         

       “좋아. 요청은 받아들이지. 목적은 알았으니 첩자는 우리 쪽에서 알아서 진행할 거야. 그리고 젠부코로스의 움직임이 보이면 알려주겠다.”

         

       좋아, 일단 첫 번째 목적은 끝났고.

         

       근데 이쪽은 방어에 치중해야 하는 건가?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소설에서 배웠는데.

         

       ‘그냥 젠부코로스 자체를 부수는 편이 좋겠군.’

         

       젠부코로스는 황도부터 시작해 주변 일대를 관리하는 무력 집단이다. 게임에서도 꽤 골치 아픈 놈들이라 직접 없앤 경력이 있다.

         

       ‘위치도 알고, 우두머리도 알고 있으니 빠르게 정리하는 편이 좋겠군.’

         

       추측이지만, 그들은 벌써 계획을 완성하고 우리 매장과 작업장을 습격할 준비까지 마쳤을 거다.

         

       그 전에 먼저 공격해야지. 다른 일은 셀다스에게 맡기고.

         

       “용건은 이게 끝인가?”

         

       셀다스의 말에 프란체가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슬쩍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래, 이게 끝이야. 부탁한 일은 잘 처리해줬으면 좋겠군.”

         

       프란체는 소파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문고리를 돌리려던 순간,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 할 말이 아직 남았네.”

       “이번엔 또 뭐지?”

       “수익의 1할을 주기로 했던 거.”

       “아, 그거 말인가. 천천히 줘도 상관없다.”

         

       음? 바로 받아갈 줄 알았는데 의외군.

         

       “어차피 공녀와 일하는 건 이번이 끝이 아니니까.”

         

       맞는 말이긴 해. 앞으로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으니까.

         

       “그럼 이만 가보겠다. 순수익이 나오는 즉시 수표로 보내지.”

         

       이 말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술집을 나왔다. 프란체는 위로 한숨을 쉬었다. 입바람에 앞머리가 팔랑거렸다.

         

       “그 남자의 콧대를 눌러주지 못한 게 한이네.”

         

       마치 도토리를 빼앗겨서 화내는 다람쥐 같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원래 저런 놈이니까요. 크게 신경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도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잖니. 다시는 나를 무시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아직 커리큘럼 1단계라 그래. 나중 가면 확 달라질 테니 걱정하지 말도록.

         

       “이제 시작이지 않습니까. 너무 조급해도 안 좋아요.”

         

       내 위로에도 화가 덜 풀린 듯 프란체는 입술을 삐죽이며 인상을 찡그렸다. 확실히 셀다스가 너무 강하게 나오긴 했어. 원래 그런 놈이지만.

         

       “아무튼. 중요한 얘기가 있으니 카자르의 집으로 갑시다.”

         

       프란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자르 집? 약 받으러 가는 거야?

         

       “그것도 있지만, 이번 일에 관해서 얘기할 게 있어서요.”

       “그렇네. 걔도 이 일을 알고 있어야 하니까. 가서 천천히 얘기하자.”

         

         

       * * *

         

         

       “…왜 제 집이 작전회의실로 변한 거죠?”

         

       카자르가 얼빠진 얼굴로 물었다. 손에는 찻잔이 올려진 쟁반이 들려있었다.

         

       “정확히는 내가 빌려준 집이지.”

       “그건 맞지만요…….”

         

       하아, 한숨을 푹 내쉰 카자르는 고개를 휘저었다.

         

       “그래서? 무슨 일 때문에 오신 건데요?”

       “암흑 길드가 우리를 공격할 거야.”

       “네? 암흑 길드가요? 왜요?”

         

       카자르의 고개가 옆으로 꺾이며 눈썹이 일그러졌다. 암흑 길드는 웬만한 금액으로는 귀족을 건들지 않는다. 젠부코로스를 움직일 정도면 거금을 투자했다는 거겠지.

         

       프란체는 찻잔을 들며 말했다. 새끼손가락이 뻗어있는 걸 보니 귀족 영애의 소양인 듯하다.

         

       “그때 프리다의 핵심 인력들을 다 데려왔잖니? 그거에 대한 복수야.”

         

       천천히 고개를 주억이는 카자르. 과연, 이라고 말한 뒤 말을 이었다.

         

       “제게 방어 임무를 맡기고 싶다는 거죠?”

         

       역시 눈치가 빠르군.

         

       “그래. 너 같은 마법사가 있는 편이 든든하니까.”

         

       프란체의 단련된 혀 놀림. 여기서 칭찬까지 하며 설득할 생각을 하다니. 뭐, 그런 거 안 해도 도와주긴 했겠지만.

         

       “좋아요. 약속도 있으니 할게요.”

       “잘 생각했어.”

       “그래서, 저는 뭘 하면 되는데요?”

       “정보가 들어오는 즉시 거기로 가면 돼.”

       “설마 싸워야 하는 건가요?”

       “맞아.”

         

       싸움이라는 말에 질색하는 카자르. 아니, 백작령에서는 암살도 하려고 했던 애가 고작 싸움하는 거 가지고 저래?

         

       “어쩔 수 없죠, 뭐. 할게요.”

       “다행이야. 네가 우리에게 있어서.”

       “…그리 칭찬해도 나올 거 없어요?”

         

       말과는 달리 입꼬리가 씰룩인다. 칭찬에 약한 건가. 카자르를 잘 조련하는 걸 보니 프란체도 대단하다.

         

       아무튼. 필요한 얘기는 다 끝났다. 이쯤에서 말해도 되겠지.

         

       “공녀님,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찻잔을 들던 프란체가 나를 응시했다.

         

       “응? 뭔데?”

         

       나는 프란체에게 내가 세운 계획을 얘기했다. 내용은 이러했다.

         

       젠부코로스라는 집단을 혼자 쳐부수고, 이 소문을 널리 퍼트려 그 어떤 집단도 다시는 건드리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것까지. 모두 얘기했다.

         

       “…아무리 너라도 너무 위험한 거 아니니?”

       “제게 위험은 없습니다.”

         

       내가 본 바렌베르크의 역사서에는 진의 존재 하나만으로 국가를 견제할 수 있었다. 움직이는 재앙과도 같다는 소리.

         

       소미레로 플레이하던 시절에도 걔네들은 쉽게 때려잡았는데, 이 몸으로 안 될 리가 없지. 하루면 초토화 될 거다.

         

       “좋아. 허락할게. 근데 무리는 하면 안 된다? 상태가 안 좋으니까.”

         

       나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카자르에게 약 받아야지.”

         

       프란체의 말에 카자르가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약이요?”

       “응. 진이 네가 약을 만들었다는데?”

       “제가요?”

       “…아니었니?”

         

       나는 카자르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쏘아붙였다.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말을 맞춰주기 시작했다.

         

       “아, 맞아요. 정신이 없어서 잊고 있었네! 금방 가져올게요!”

         

       황급히 위층으로 올라가는 카자르. 약이라곤 했지만, 뭘 전해주려나.

         

       “가져왔어요!”

         

       카자르는 내게 유리병 하나를 건넸다. 안에는…….

         

       가지각색의 별사탕이 들어있었다. 이걸 본 프란체가 눈썹을 좁혔다.

         

       “그거 그냥 별사탕 아니니?”

       “아니요? 모양만 별사탕이에요.”

       “…그래?”

         

       의심의 눈초리가 끊이질 않는다. 이런 데서 눈치가 빠르단 말이지.

         

       “너무 이상하게 생기면 먹기 좀 그럴까 봐 별사탕 모양으로 만들었어요. 맛이 좀 많이 쓰거든요!”

         

       이걸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치며 넘어가는 카자르. 헤실헤실 웃으며 말하는 게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그러니? 그렇다면야, 뭐…….”

         

       다행히 납득한 듯하다.

         

       “그럼 빠르게 다녀오겠습니다.”

       “아, 이거 가져가렴.”

         

       프란체는 수표 하나를 건네주었다.

         

       “말은 타고 가야지?”

       “아, 감사합니다.”

         

       싱긋 웃으며 내 어깨를 쓰다듬은 프란체. 미소에는 다소 걱정도 섞여 있었다.

         

       “조심해야 한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 잘 다녀와.”

         

       나는 고개 숙여 인사한 뒤, 곧장 집을 나왔다. 그리고 은행으로 향해 수표로 돈을 꺼냈고, 마구간에서 말까지 빌렸다. 준비는 끝마쳤다.

         

       “가보자고.”

         

       손으로 부드러운 말의 목을 쓰다듬고 있자니 문득 드는 생각.

         

       ‘근데 나 말 탈 줄 모르는데?’

         

       이거 어떡하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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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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