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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30

        

         

       아무것도 없는 곳을 걷고 걷는다.

       벽에는 페인트가 군데군데 어설프게 벗겨져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콘크리트 특유의 냄새가 코끝에 닿는다. 걸음걸음마다 이는 먼지는 폐가가 풍기는 특유의 냄새와 분위기를 풍겼으며, 가끔 어깨가 벽면에 닿기라도 하면 차가우면서도 묘하게 축축한 듯한 느낌이 살갗을 스치고 지나간다.

       무언가 젖었기에 그러한 것도 아니고 습기를 잔뜩 머금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저 기분.

       곰팡이가 가득한 벽지에 스치기라도 한 것처럼 그저 기분이 벽을 차갑게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벽면을 만져보자면 뽀송뽀송하기 짝이 없다.

       밤 특유의 냉기를 살짝 머금고 있기도 하였고, 겨울이 아닌 이상 습기는 어느 정도 있을 수밖에 없기에 완전히 메말랐다고 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통풍을 아주 훌륭히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건물인데 당연히 그렇겠지. 관리인도 있을 테고….’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무리 귀신 빌딩이니 뭐니 이상한 별명이 붙었다고 해도 서울에 있는 빌딩이다.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당연히 관리하겠지.

       관리인을 고용했거나 업체와 계약을 했을 테고, 그것도 아니라면 건물주 본인이 수시로 들락날락하면서 관리하는 게 정상이다.

         

       서울에 있는 빌딩이 무슨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관리 못 해서 떨어질 돈을 생각한다면 이상한 소문이고 나발이고 상관없이 눈에 불을 켜고 관리를 해야 하는 게 맞다.

         

       그래.

       그러니까 그건 이상하지 않은 일이지만….

         

       동시에 좀 기묘한 느낌이 드는 일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가 있는 곳은 ‘서울에 있는 빌딩’이 아니라, ‘서울에 있는 빌딩을 매개로 이동한 다른 세계’였으니까 말이다.

         

       다른 세계.

         

       그는 올바른 방법으로 다른 세계로 이동했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온갖 이상한 방법을 행하고, 실 하나를 구명줄로 삼아서 이렇게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흠.

         

       이게 맞나?

         

       ‘다른 세계로 온 게 맞기는 한가…?’

         

       그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뭔가 생각하던 것과는 좀 다른데….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할까.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할까….

         

       매뉴얼대로 거창하게 움직여서 왔는데, 김이 빠지는 느낌.

       SNS로 난리가 났다고 해서 잔뜩 기대하고 유명한 음식점에 갔더니, 집 근처에서나 맛볼법한 평범한 음식 맛이 났을 때 느끼는 그런 느낌이 든다.

         

       왠지 실망스럽고, 부풀어 올랐던 기대감이 순식간에 꺼지는 것이 느껴진다.

         

       고작 벽의 감촉 하나 때문에 말이다.

         

       ‘쩝. 아니야. 더 탐사하면 뭔가 다르겠지.’

         

       그는 애써 실망감을 떨쳐내려 노력했다.

         

       더 탐사하면 좋은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다른 세계 특유의 무언가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뭐야 이거.’

         

       건물 안을 둘러볼수록 실망감은 더더욱 커질 뿐, 그의 기대를 전혀 만족시켜주지 못했다.

         

       평범하다.

         

       건물 안은 너무나도 평범했다.

         

       그가 은근히 기대했던 귀신 특유의 기척이라거나, 저 멀리에서 귀신이 보여서 혼비백산하면서 엘리베이터로 돌아가는 이벤트라거나, 창문 밖을 내다봤더니 하늘은 새빨갛게 거리에는 이상한 괴물 같은 것이 돌아다니고 있는 광경을 본다거나, 자신과 똑같은 존재가 갑자기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이벤트를 겪는다거나….

       그러한 일은 단 하나도 없었다.

         

       단 하나도!

         

       그냥 폐가나 흉가가 아니라, 그냥 불 꺼진 건물 어디에 들어가도 볼 수 있을법한….

       상권이 망해버린 거리의 건물에 들어가면 볼 수 있을법한 평범한 모습들만 보일 뿐이다.

       한때 머물렀을 업체나 사무실의 흔적들, 벽지나 페인트의 흔적이 남아있는 콘크리트의 벽, 너무 새까매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바깥의 풍경에….

         

       하.

         

       뭐 건질 것이 없다.

         

       ‘밖은 깜깜해서 보이지도 않고. 손전등으로 비춰보려고 하면 거울처럼 변하기나 하고.’

         

       특수 유리인가?

       이런 유리를 설치해놓는 빌딩들이 좀 있기는 한데….

         

       쓰읍.

         

       ‘이거 성공을 한 건 맞기는 한가? 엘리베이터가 뭔가 달라졌다고 생각해서 탔는데 사실은 아니었던 거 아닐까?’

         

       남자는 실망감에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자신이 왔던 길을 돌아갔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제대로 매뉴얼을 따르기는 한 것인지, 애초에 뭔가 달라졌다고 생각한 것도 자신들의 착각이었고 그 때문에 제대로 다른 세계로 오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달라졌다고 해서 타기는 했는데…. 뭐가 달라졌는지는 못 봤지.’

         

       생각해보면 정말로 그랬다.

       누가 엘리베이터가 달라졌다고 해서 황급히 타기는 했다.

       그걸 놓치면 다른 날에 또 와야 하길래, 엘리베이터 안에 타는 것에만 집중했었다.

         

       적당한 타이밍에 타기 위해 그쪽에 신경을 썼었지.

       너무 일찍 타면 엘리베이터 가장 안쪽에 들어가기에 자칫 잘못하면 다른 세계를 탐험할 수 없게 되니까 바로 타면 안 되고, 그렇다고 늦게 타면 정원 초과가 되어서 못 타게 될 수도 있으니 안 되고….

       그러니 최적의 타이밍에 탑승하거나, 최적의 위치에 자리를 잡기 위해 거기에 신경을 집중했더란다.

       그리고 탑승한 후에는 탑승하지 못했던 사람을 견제하기도 했고.

         

       ‘내가 견제한 건 아니지만.’

         

       그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하지 못한 불쌍한 4명을 견제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불편함을 느꼈었다.

       다들 즐거워지자고 하는 일인데 그걸 또 자기 불편할까 봐 배척하는 꼬락서니라니….

       다음부터는 다른 모임에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었지.

         

       흉가를 탐험하는 담력 시험의 특성상 정말로 위험한 일이 터질 수도 있기에 같이 탐험하는 사람들은 믿을만한 사람들로 채워야 한다.

       공포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뭐 조금 무섭다고 사람들 버리고 도망을 가거나, 대뜸 동료들 위치 팔아넘기고 자신은 살려달라고 하거나, 몰래 어디 다른 데로 빠져서 강령술이나 이상한 의식 같은 것을 하는 미친 새끼가 껴 있으면 좋지 않은 일이 터질 테니까.

       게다가 악령이니 악귀니 하는 것들을 숭배하는 놈들, 귀신 보고 싶다면서 안달을 내는 놈들 등 미친놈들이 끼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기 때문에 안전하게 스릴을 즐기기 위해서는 주의를 거듭해야 하는데….

         

       글쎄.

       이번 체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그리 믿을만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 남은 4명 보고 은근히 눈치 주고 견제할 때부터 알아봤지.’

         

       그래.

       뭔가 시원찮은 사람들이긴 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매뉴얼이 지켜지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지.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조건인 엘리베이터가 뭔가 달라졌어야 한다는 그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것 아니겠어?

         

       남자는 그렇게 천천히 머릿속에 논리를 완성해갔다.

         

       자신의 기억을 짜 맞추면서, 그리고 지금 실시간으로 느끼고 있는 너무나도 평범하기 짝이 없는 정말 놀랍고도…아무튼 너무 놀라워서 한숨이 터져 나올 것만 같은 이 다른 세계의 풍경을 즐기면서 말이다.

         

       그렇게 남자는 터벅터벅 걸어서 엘리베이터로 돌아왔다.

         

       “오, 돌아왔네요. 느낌 어때요?”

         

       “이야 몸에 힘 빠진 거 봐. 많이 긴장하셨나 봐요?”

         

       “긴장할 정도라…. 이거 기대되는데요. 과연 평범한 세상과 뭐가 다른 걸까. 귀신의 세상이니까 뭐 벽에 피라도 흐르는 건가?”

         

       “에이. 저분 옷이 깨끗하잖아요. 아마 올 때 무슨 인기척을 느꼈다거나, 이상한 걸 봤다거나 뭐 그런 거 아닐까요.”

         

       “그러면 귀신이란 이야기인데…. 진짜 귀신 봤어요?”

         

       그가 엘리베이터로 돌아오자 수많은 사람이 그를 환대로 맞이해주었다.

       설렘과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이다.

         

       사람들은 그에게 다른 세계의 느낌이 어땠냐, 뭐 위험한 건 없었냐, 뭐 특이한 건 보지 않았느냐 물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보고 느끼게 될 ‘다른 세계’ 탐사가 너무나 기대되어서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남자의 속도 모르고 말이다.

         

       “그….”

         

       “그?”

         

       “…아닙니다. 직접 한 번 보세요. 제가 지금 말하면 스포일러니까요.”

         

       뭘 말할 게 있어야 말을 하지.

       안타깝게도 기쁘게 떠들만한 무용담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었다고 분위기를 팍 죽이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었고….

         

       그러니 남자는 그냥 말을 뭉개버리는 것을 택했다.

         

       직접 경험해보면 알 것이라면서 말이다.

         

       “오. 그렇죠. 이야. 뭘 좀 아시네. 그렇지. 지금 말하면 스포일러고, 재미가 반감이 되는 거죠.”

         

       “이야 이분 자세가 됐네. 맞아요. 선발대가 뭐 이것저것 얘기해서 김빠졌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이거 우리가 실수했네요.”

         

       “자자. 우리도 저분을 본받자고요. 정말 위험해 보이는 것이 나타났다거나, 가지고 있는 부적에 이상 현상이 발생했을 때라거나…. 뭐 그런 경고가 필요한 일 아니면 우리도 스포일러는 자제하는 겁니다. 아시겠죠?”

         

       “네~”

         

       하지만 분위기가 들떠있었던 까닭일까.

       남자가 대충 말을 뭉갰음에도 사람들은 그것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하였고, 마치 스포일러를 자제할 정도로 뭔가 훌륭한 반전이나 점프 스케어(Jump Scare) 요소가 있으리라는 생각에 더더욱 기대감을 키웠다.

         

       “이번엔 제 차례죠? 갔다 오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두 번째 사람이 실을 묶고 밖으로 나섰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엘리베이터로 귀환했다.

         

       “…하하. 다녀왔습니다.”

         

       “오. 오셨네. 어때요?”

         

       “…이야. 왜 스포일러를 자제하셨는지 알겠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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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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