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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31

        

       돌아오자마자 짓는 의미심장한 미소.

       그는 뭔지 알겠다는 듯 슬쩍 웃으며 첫 번째로 갔던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얌전히 제자리로 돌아오고는, 어떻게도 해석이 될만한 모호한 말로 소감을 말함으로써 사람들의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그렇게 사람들이 하나씩 엘리베이터 밖으로 빠져나왔다.

         

       세 번째 사람이 나갔다가 들어오고, 마찬가지로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다.

       네 번째 사람이 나갔다가 들어오고,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는다.

       다섯 번째 사람이 나갔다가 들어오고, 기쁜지 놀란 건지 모를 표정을 짓는다.

         

       나갔다가 들어오는 이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뭔가 애매했고, 무엇을 보기는 한 건지 아니면 아무것도 목격하지 못한 건지 알기 힘든 표정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가고.

       마침내 마지막 남은 사람까지 무사히 엘리베이터 밖에 나갔다가 들어옴으로써 ‘다른 세계’를 탐험하는 것은 종료되었다.

         

       “으음…. 이거 참.”

         

       “뭐라고 해야 할까. 묘한 느낌입니다.”

         

       “그렇죠?”

         

       그리고 탐험이 끝난 후 엘리베이터 안은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뭐지? 속이는 놈만 있고 속는 사람이 없는 그런 상황인가?’

         

       첫 번째로 나갔던 남자는 엘리베이터 안에 감도는 분위기에 묘한 표정을 지었다.

         

       뭐 기대감이나 긴장 때문에 환각을 본 게 아니라면 자신과 똑같은 일을 겪을 것이 분명할 텐데.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매뉴얼대로 제대로 하기는 했는지 의문을 품는 것이 당연한 일일 텐데.

       그렇다면 다들 저런 반응이 아니라 실망감을 표출하거나, 묘한 언행으로 자신들을 속인 사람들에게 분노를 터뜨리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일 텐데.

         

       그런데 어째 사람들의 반응은 그런 것 같지 않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아무것도 보지는 못했지만, 뭔가 묘한 일을 겪기는 한 사람들의 반응이라고 해야 하나.

       자신들이 겪은 일이 즐겁기는 한데 직접 목격하거나 제대로 느낀 것이 아니라 아쉬워하는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사람들은 분명히 그런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거 좀 아쉽네요. 좀 제대로 된 장비들을 챙겨왔어야 했나 봐요.”

         

       “그러게요. 뭔가 있는 건 분명한데 느끼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했으니. 이거 정말 아쉽습니다.”

         

       “다음에 또 올 때 들고 오면 되죠.”

         

       첫 번째로 나갔던 사람은 그런 사람들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한데?’

         

       이상하다.

       뭔가 있으리라 믿는 거야 뭐 이상한 일은 아니다.

       솔직히 그런 경우가 없는 것도 아니고.

         

       분위기 으스스한 폐가에 가서 뭐 몇 년 전 살해당했던 원혼의 기척이 느껴진다느니, 싸늘한 기운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느니, 어디서 자신을 바라보는 악령의 시선이 느껴진다면서 호들갑을 떠는 일이 드문 일이던가.

       그렇게 온갖 호들갑이란 호들갑은 다 떨었다가 자신이 찾아간 흉가가 ‘연쇄살인범이 잔인하게 피해자를 죽인 집’이 아니라, 96세 할머니가 혼자 살고 있다가 요양병원으로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방치가 되면서 노후화되어버린 집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입을 꾸욱 닫는 것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사람은 스토리라는 것에 강하게 영향을 받고, 때로는 그 스토리에 이것저것 짜 맞춰서 말도 안 되는 것을 느끼거나 보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평범한 고양이 소리를 듣고는 아기 귀신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면서 입에 거품을 물며 난리를 피우기도 하고, 그냥 나뭇잎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귀신이 자신에게 다가온다면서 비명을 꽥꽥 질러대기도 한다.

         

       그런 것이야 뭐 그리 드문 것은 아니다.

       썰로 많이 풀기도 하고, 이런 흉가 탐험 같은 담력 시험을 계속하다 보면 꽤 많이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그런데.

       지금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은 뭔가 달랐다.

         

       그런 스토리에 지배당해서 이것저것 짜 맞추고 과대 해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증거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떠드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명확한 증거라….

       그것도 자신 외의 모든 사람이 겪고 느낀 명확한 증거라…?

         

       ‘그런 증거가 있으면 내 앞에서도 나타났어야지!’

         

       억울함마저 느껴진다.

       자신도 그런 것을 보았다면 이런 끔찍한 실망감과 배신감에 몸부림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남자는 속으로 아쉬워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아, 다음에 올 때도 이거 필요할 것 같죠?”

         

       “그렇죠. 이렇게 새까맣게 타들어 간 걸 보면…. 뭔가 있기는 한 것 같으니까요.”

         

       “어휴. 이거 없었으면 뭐 큰일이라도 당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아니 그래도 첫 번째 분은 멀쩡히 돌아왔잖아요?”

         

       “혹시 모르죠. 이따 내려가서 소금 뿌리고 그럴 때 소금이 새까맣게 변할지도.”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뭔가 이상한데…?’

         

       뭐가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고?

       이게 없었으면 큰일이 일어났을 거라고?

         

       …’이거’?

         

       남자는 뭔가 찜찜한 기분에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했다.

         

       그리고 한 사람이 품에서 꺼내 든 것을 보자마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새까맣게 타들어 간 것.

       대부분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재가 되어서 귀퉁이만 남은 그것.

       노란색 종이에 붓질의 흔적이 미세하게 남아있는.

         

       부적.

         

       부적이다!

         

       ‘이런 미친.’

         

       남자는 그들의 모습에 인상을 팍 찌푸렸다.

         

       ‘시이팔 매뉴얼 지키는 새끼들이 없었네.’

         

       『 3. 성물이나 주물, 부적을 지니고 있지 않을 것.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다른 세계로 향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공명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성물, 주물, 부적 같은 것이 있다면 이 공명에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이것을 지니고 다른 세계로 가는 방법을 시도한다면 대부분 실패할 것이고, 운이 나쁘면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서 다른 세계에서 좋지 않은 것이 나온다거나, 가지고 있는 물건의 효과가 비틀려서 귀신에 빙의되기 쉽게 된다거나 하는 일이죠.

       그러니까 되도록 그런 물건은 집에다가 두고 오거나, 혹시 몰라서 챙겨오셨다면 건물의 바깥에 놓는 것을 추천합니다. 』

         

       매뉴얼에서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았는가.

         

       부적을 지녀선 안 된다고 말이다.

         

       그런데 부적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게 자신밖에 없었다니.

         

       ‘이러니까 실패하지.’

         

       그는 왜 자신이 아무것도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는지, 왜 일반적인 건물의 풍경과 똑같다고 느꼈는지 알 수 있었다.

         

       매뉴얼에 적혀 있던 ‘준비 과정’에서부터 문제가 있었으니 실패하는 게 당연했다.

         

       “저기, 매뉴얼에 부적 챙겨오지 말라고 적혀 있지 않았어요?”

         

       요리로 따지자면 식재료 준비부터 문제가 있었던 셈.

       그러니 제대로 결과물이 나올 리가 있었겠는가?

         

       하지만.

         

       “네? 아니 뭐…. 아. 흉가 체험 최근에 입문하셨다고 했죠? 아 난 또 뭐라고.”

         

       “발못쓰님. 흉가 체험할 때 중요한 게 뭐냐면요. 자기 몸은 자기가 지켜야 한다는 거예요. 이런 자료만 철석같이 믿으시면 큰코다치십니다.”

         

       “매뉴얼이 꽤 상세하게 적히기는 했는데요. 그래도 방법은 그렇다 쳐도, 자기 몸 지킬 건 꼭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거예요. 인터넷에는 꼭 이런 자료에 장난질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아무 생각 없이 따라 하면 꼭 탈이 나게 하는 놈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안전과 관련된 내용이 적혀 있으면 그 부분은 대충 넘기고 스스로 몸을 지킬 것을 챙겨야 한다 이 말입니다.”

         

       “아마 발못쓰 님도 흉가 체험 몇 번 하면 딱 감이 오실 거예요. 아, 내 몸은 내가 스스로 지켜야 하는구나. 뭐 동영상이나 글만 믿고 있다가는 병원 신세를 지게 되겠구나 하고요.”

         

       오히려 사람들은 첫 번째로 나갔던, ‘발못쓰’라는 아이디어를 쓰는 사람에게 오히려 충고를 늘어놓았다.

         

       자기 몸은 자기가 지켜야 하는 게 원칙이라고.

       뭐라고 말하건 안전과 관련된 부분은 부적을 챙기던 방검복을 입고 오든 간에 알아서 준비해야 하는 게 맞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하는데….

         

       “제가 말입니다, 울산 외곽 쪽에 있는 흉가를 간 적이 있었는데…. 와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곰 덫을 깔아놨지 뭡니까? 안전화를 신고 있지 않았으면 아마 큰일이 났을 겁니다. 게다가 위치도 아주 교묘해서…. 100% 사람을 노리고 설치한 거더라고요.”

         

       “저는 부비트랩도 봤어요. 폐교 탐험을 하는데…. 흉가의 계단에 부비트랩이 설치되어 있는데…. 세상에 실을 딱 건드리자마자 칼이 위에서 내려와서 명치께를 푹 찌르게 되어있지 뭡니까. 외국 스트리머가 흉가에서 본 부비트랩 흉내를 내서 만든 것 같은데, 세상 참 미친놈들 많아요. 내가 그때부터 사슬 앞치마를 옷 안에 꼭 챙겨 입잖아요.”

         

       “저는 노숙자가 덤벼드는 것도 겪어봤어요. 소주병 깨서 나한테 겨누는데 참…. 좋은 말로 타이르고 돈 쥐여 보내서 내보내기는 했는데, 자칫 잘못했으면 큰일이 났을 것 같다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그날 이후로 전 이렇게 모임 아니면 흉가 안가잖아요. 하하하.”

         

       그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흉흉했다.

         

       그들이 부적을 챙겨온 것이 조금은 이해될 정도로 말이다.

         

       ‘그런가…? 아니 그래도 저 사람들 때문에 제대로 다른 세계로 이동이 안 된 것 같긴 한데…. 하.’

         

       남자는 그들의 말에 설득이 되면서도, 묘한 반감이 안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미 이번 체험은 망한 것 같은데….

         

       ‘제대로 다른 세계로 이동한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매뉴얼대로 끝까지 하긴 해야겠지….’

         

       남자는 한숨을 쉬면서 아까 올라왔던 때와 똑같은 숫자를 입력했다.

       매뉴얼에 적힌 대로 말이다.

         

       그렇게 그들은 1층으로 돌아왔고.

         

       “아. 뭐 나름 재밌었네.”

         

       “자자. 다들 모여주세요. 소금 뿌릴 테니까요.”

         

       “같이 맥주나 한잔하실 분?”

         

       “에이 흉가 다녀와서 뭔 맥주에요. 술은 좀 그런데.”

         

       “아 맥주가 뭔 술이에요. 딱 한 잔씩만 합시다.”

         

       흉가 체험이 끝난 다음에 으레 하는 액막이 의식을 끝마치고는 왁자지껄 떠들면서 흩어졌다.

         

       그렇게.

       아무런 이상한 일 없이 말이다.

         

         

         

        * * *

         

         

         

       [ 하나 빼고 다. ]

         

       [ 그렇지? ]

         

       [ 그렇네. ]

         

       [ 바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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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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