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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34

        

       또각.

       또각.

         

       일정한 간격으로 울려 퍼지는 소리.

         

       하이힐의 굽이 계단과 부딪치면서 소리 하나.

       그리고 그 뒤를 따르듯 또 하나의 소리.

         

       한 쌍의 발이 한 쌍의 하이힐을 신고 계단을 내려오는 듯한 규칙적인 소리.

         

       하지만 그 실체는 어떠한가?

         

       진실로 하이힐을 신고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이가 있는 것일까?

       이 밤중에, 인적이 드문 이곳에, 귀신 빌딩이라는 별명까지 있는 이곳에.

       불편한 하이힐을 신고 굳이 지하로 향하기 위하여 계단을 내려오는 사람이 있는 것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또각.

       또각.

         

       또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것은 움직인다.

       수많은 손을 이리저리 놀리면서 말이다.

         

       수많은 손을 붙여 만든 것 같은 기괴한 생김새.

       손 둘에는 장갑 대신 하이힐이 끼워져 있다.

         

       그것은 수많은 손을 이리저리 놀리며 움직인다.

       난간을 붙잡고, 벽을 붙잡고, 천장까지 손을 뻗고, 마치 통로 전체를 점유하기라도 하는 듯.

       좁아터진 통로에 수많은 촉수를 늘어뜨리면서 움직이는 괴물처럼 그것은 통로 전체에 손을 뻗은 채 기괴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움직임이란 사람이라기보다는 수많은 촉수가 달린 해산물, 혹은 벌레와 닮은 것인지라.

       그래서 그것을 맨정신으로 본다면 새된 비명을 지르고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공포에 질려서 반대 방향으로 도망을 칠지도 모르지.

         

       하지만 애석하게도 맨정신으로 그것의 형체를 볼 사람들은 없다.

         

       그저 규칙적으로 저 귀신이 발하는 소리만을 들을 뿐.

         

       손이 움직이면서 인위적으로 내는 또각거리는 소리.

       실제 걸음은 수많은 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건만, 움직이는 소리는 오직 저 손에 끼워진 하이힐 한 쌍으로만 난다.

         

       마치 자신이 간다는 것을 과시라도 하려는 듯이.

       혹은 인간일 적을 그리워하며 그때의 행동을 조금이나마 따라 하려는 듯이.

         

       이해 못 할 것은 아니다.

         

       사람이 그러하듯 발로 걷고 싶으니 하이힐을 구했고.

       발로 걷고 싶어도 발이 없으니 대신 손에 하이힐을 꼈으며.

       몸과 다리가 함께 움직이듯 그 움직임과 함께 하이힐의 소리가 들리는 것이니까.

         

       사람 흉내를 내는 저 모습이 가련하다.

       참으로 가련하기도 하다.

         

       다만 저 수많은 손의 휘적거림은 인간과는 이질적인 것을 품고 있으니.

         

       어린아이의 사악한 동심으로 만들어진 꽃꽂이도 저만큼이나 끔찍하지는 않으리라….

         

       그리고 그것은 마침내 도달하였다.

         

       흐리멍덩한 눈으로 지하에 갇혀버린 가련한 이들에게로 말이다.

         

       [ 근데이지하너무넓은것같은데이거원공간이이상하게꼬여서그런가기감을한번열어보는건어떨까. ]

         

       [ 진법인가? 그럴 가능성이 높겠는데. 어떻게 생각해? ]

         

       [ 그래도주인이주술사니까뭐진법같은거라도설치한거아닐까진법중에는무공이아니라주술이섞인것도있다고들었는데그것을사용한다면이런수작정도는충분히가능하지않을까싶은데. ]

         

       [ 아니야진법이라니말도안되는소리중국의주술사라면모를까이주술사는대한민국의주술사라고대한민국대한민국이라는나라가주술의불모지라는것을모르는것은아니겠지. ]

         

       [ 아니지. 그래도 뭔가 우리가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주술이 남아있을 수 있으니까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 아니겠어? 너무 무시하지 말라고. 아무리 주술 불모지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나라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큰 부자는 쉽사리 망하지 않는 법이야. 대마불사(大馬不死)! 아무리 온갖 수난을 겪었다지만 흔적도 없을 리가 없다고! 그러니 진법을 제공받아서 익혔을 가능성도 충분해! ]

         

       [ 그렇다면 조금 곤란해지겠는데. 진법 내부에 사람이 들어왔음을 알리는 조치가 되어 있다면…. 우리가 여기에 온 게 들켰을지도 모르겠어. ]

         

       [ 아니야괜찮아우리는그럴줄알고흉가를체험하는이상한놈들이랑같이온거잖아그러니까어서일을빠르게마치고돌아가면돼그리고진법을건드린건흉가체험을온이상한놈들이지하로발을들인거라고조금증거를조작해두면그만이지주술사도딱히의심은하지않을걸그흉가체험온놈들이온갖난리를쳐댔을테니까말이야. ]

         

       그들 사이에 전음이 오간다.

       전음 사이에 귀신의 속삭임이 교묘하게 끼어든다.

       그리고 대화를 가장하고 끼어드는 귀신의 속삭임 사이사이에는, 그들의 생각을 유도하는 속삭임이 귓가에 들린다.

         

       벽에서 튀어나온 길쭉한 입들이 속삭이고, 누더기나 다름없는 몸을 가진 귀신이 속삭이고, 천장에서 머리채를 늘어뜨리며 내려온 그것이 그들에게 속삭인다.

       그들이 필요 이상으로 경계하지 않도록, 홀려버린 정신이 깨어나지 않도록.

       그렇게 아주 섬세하게 그들을 조종한다.

         

       어렵지는 않은 일이다.

         

       이러한 귀신이 무리를 이루면 그 힘이 그리 약하지 않은 것도 이유겠지만….

       귀신에게 핏줄 같은 무형의 선을 연결한 채, 그들의 언변에 힘을 실어주는 주물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무형의 선.

       형체가 없는 그것은 향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귀신들에게 연결이 되어 있었다.

       아주 희미해서 밝은 조명 속에서도 착각이라 여기기 충분할 정도로 가느다란, 어둠 속에서는 아예 눈에도 띄지 않는 존재감이 없는 형상.

       하지만 그것은 귀신들의 영체에 연결이 되어 있었다.

       하나의 주물을 근원으로 삼은 채 말이다.

         

       그리고 그 주물은 사람이었으며 사람이 아닌 것으로 변해가고 있던 것을 재료로 만든 것이라.

       그 일부는 언젠가는 ‘순대’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어떠한 인물의 것이었다.

       요정에게 홀려서 기괴하게 변해버렸던.

       그리고 안타깝게도 지옥에 떨어져 버리게 되어버린 바로 그 사람.

         

       다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니.

       ‘순대’ 역시도 죽어서 무언가를 남기기는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가공되지는 않았으나 그 자체로 진성이 짜놓은 방위체계의 핵이자 일부가 되어서 이렇게 크나큰 도움을 주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자연의 법칙이다.

         

       죽는다고 할지라도 만물이 연결되어 있으니 좋지 않은가.

       이러하니 자연에 경의를 표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허투루 제 존재를 소모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니까….

         

       [ 좋은것은위로나쁜것은아래로신이빚어놓고보기좋아하였던것은위로향했으니그것은신의형상을닮아있으니그이름은사람이라그들은그자체로신의피조물임을증명하고있으니온갖사악한것들이그들을질투하고미워하면서도그들을부러워하였다더라. ]

         

       [ 그렇다면아래에는무엇이있느냐아래에는온갖추악한것과사악한것과오물들이떨어졌으니그것은신의피조물이라고하기에는흉측하여보기에좋지아니하셨다더라그러하니아래로향하는것은신의피조물이아니며보기좋은것이아니라그것은마땅히땅아래에귀속이되어있으며땅아래를관리하는사악한것의손아귀에들어가있느니라. ]

         

       보아라.

       저기 귀신들도 그 이치를 잘 알고 있지 않으냐?

         

       그러하니 귓가에 속삭이며 ‘그것’이 홀려있는 것들에게 다가갈 때까지 자리를 비키지 아니하였으며.

         

       [ 팔 ]

         

       뿌드드득!

         

       그것이 제 몸에 붙일 팔을 뜯어가기 위해 수많은 손을 뻗을 때도 그 자리를 지키며 그들의 정신을 홀린다.

       자기 몸에 없는 다리를 만들기 위해 그들의 다리를 씹어먹을 때까지도.

       팔다리가 뜯겼음에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멍한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진 채 허우적대게 되었을 때도.

         

       [ 몸이조금불편하네조금쉬는게좋지않을까싶은데….]

         

       그것들은 속삭인다.

         

       속삭인다….

         

       …멍청하게도 지하로 발을 들인 이들을 조롱하면서.

         

         

         

        * * *

         

         

         

       허억.

       허억.

         

       [ 저건 대체 뭐야…!]

         

       지하로 향한 이들은 운이 나빴다.

       그곳은 진성의 주술로 인해 ‘지옥’의 속성을 얻게 되었으며, 진성이 이곳저곳에서 잡아다가 풀어놓은 귀신들이 배회하는 귀신 소굴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그뿐만 아니라 손에 넣은 재료들을 가공해 만든 주물들이 곳곳에 배치가 되어 있기까지 했으니…. 지하에 발을 들인다면 특별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지 않거나 강력한 정신력을 갖고 있지 않고서는 십중팔구는 홀려버린다.

         

       그리고 이 빌딩에서 귀신에게 홀린다는 것은 곧 상실을 뜻하는 것이라.

       홀려버린 이들은 무언가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것이 신체 일부든, 정신이든, 혹은 좀 더 추상적이고 형체가 없는 것이든.

         

       그런 점에서 미루어볼 때, 위로 향하게 된 팀장과 팀원은 운이 좋았다.

       적어도 최악을 면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운이 좋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것이겠지.

         

       하지만 최악을 면했다고 해서 그것이 최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최악 다음에는 차악이 있으니.

         

       그들의 처지가 바로 그러했다.

         

       그들의 첫 번째 불행은….

         

       [ 손이, 손이 성게처럼! 손으로 만들어진 성게가! ]

         

       정말 운이 나쁘게도, 위에서 내려오는 ‘그것’과 마주해버리고 만 것이었다.

         

       다만 말했듯이 그들은 최악은 아니었던지라.

         

       그래서 그들은 문을 통해서 다른 층으로 피신을 할 수가 있었다.

         

       지하에 있는 먹이를 먹기 위해서 계단을 질주하는 ‘그것’에게 관심을 끌지 않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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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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