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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34

   아드리가 길을 열어주긴 했지만 그렇다 하여 길이 순탄하진 않았다.

   

   사령인 공작의 입장에서 우리의 존재는 가까이해선 안 될 것.

   

   그는 어떻게든 우릴 막기 위해 왕궁을 이런저런 모양새로 꼬으려 들었다.

   

   그래서 부쉈다. 우리의 앞을 가로막는 걸 모조리.

   

   “왕성을 복원하는 데 수십년이 걸리겠는데!?”

   “안 무너지는 게 기적일 겁니다!”

   

   우리에게 달려드는 사령은 시조의 고함과 아드리의 사령술로 제압. 흑마법에 홀려 달려드는 기사들은 성직자들이 제압. 그리고.

   

   “갈 수 없다!”

   

   게임에서 그랬던 것처럼 성녀의 정화로도 구할 수 없을만큼 공을 들여 사로잡은 기사단장은.

   

   “왜 못 가지? 이 곳이 나의 성이 될 텐데.”

   “2왕자님. 몇 번이나 말씀드리지만 꾸밈을 지니십시오.”

   

   2왕자와 2왕비가 가로 막았다.

   

   “크흠. 죄송합니다. 어머님. 익숙치가 않아서.”

   “어머님도 아니고 2왕비님입니다. 장차 왕이 되실 분이시니 부디.”

   “시끄럽다! 노괴!”

   “…이 인간은 예전부터 정말 품위가 없네. 잘 됐다. 안 그래도 한 번 패 죽이고 싶었어.”

   “어머님?”

   “세실. 무기 들어요. 베드퍼의 형식으로 가겠습니다.”

   “그거 즐겁겠네요!”

   

   그렇게 장애물을 하나하나 지워가며 앞으로 달려나가던 중 저 멀리에서 섬짓한 기운이 느껴졌다.

   

   누군가는 죽음이라 부를 것이고, 또 다른 이는 절망이라 부를 것이며, 어떤 이는 세상의 종말이라 말할 것이고, 누군가는 원수라 이야기할, 내게 있어선 귀찮은 장애물일 뿐인 적.

   

   병신 아그라.

   

   그 기척을 느끼자마자 온 몸에 힘을 더해 앞으로 내달린 나는 벽을 부수고 그 너머에 있는 적을 처날려버렸다.

   

   “주신의 의지란 참으로 빌어먹을 것이군.”

   

   근데 설마 그 말라깽이가 국왕일 줄이야.

   

   “주신의 사도여.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그것도 악신 아그라와 이미 계약을 끝마친 상태의 국왕이라니.

   

   “겁이라도 먹었나? 평소 신나게 나불거리던 그 입은 어디로 간 게지?”

   

   요정여왕이 식은땀을 흘리고 있어. 악신의 권능을 품었다는 증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저 장난기 많은 아줌마가 눈치를 보고 있을 리 있나.

   

   “하. 그대를 상대하는 게 얼마나 곤욕스러웠는지.”

   

   말라비틀어진 육신이지만 신체능력도 아마 경이로울 거야. 중간보스급인 평소의 르네를 상회하는 수준. 지금의 나로는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겠지.

   

   “이제야 되갚아 줄 수 있겠군.”

   

   거기에 더해 쿠르텐 공작의 말에 따르면 국왕은 신체의 능력은 부족해도 머리는 비상하다고 했어.

   

   아마 자신의 부족을 채우기 위해 마법과 흑마법을 두루 익혔겠지. 어지간한 강자와 맞서 싸울 수 있을 수준으로.

   

   “떨고 있군. 재밌구나. 그대도 두려움이란 걸 느끼나?”

   

   그러니까.

   

   “크핳♡ 아~♡ 웃음 참기 힘드네~♡”

   “…허?”

   

   눈 앞에 있는 상대는 내가 단 한 번도 상대해보지 못한 보스이면서.

   

   “땅콩은 유전인거구나?♡”

   

   어둠의 악신처럼 답이 없다 느껴질 정도로 터무니 없는 상대가 아닌.

   

   “이런 남자한테 아양떠느라 많이 힘들었겠네♡ 망상병 왕비♡”

   

   공략하는 맛이 있는 적.

   

   “하! 그래! 네 년은 원래 이런 년이었지!”

   “여유로운 체 해봐야 부들대는 게 훤히 보여♡ 콤플렉스구나?♡ 하긴 밤마다 비웃음을 들으면 악몽이 생길 수밖에 없겠네~♡”

   “좋다. 전설적인 기사를 위해 감수했던 수모를 되갚아줄 맛이 있겠구나.”

   

   방패를 치켜 들고 메이스를 붙잡은 손에 힘을 더한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요정들이 내 머리를 빠져나와 내 주변에 자리했다.

   

   – 마음에 담아뒀어?

   – 치졸해.

   – 못났어.

   – 남자 실격.

   “하! 마음껏 떠들어봐라. 네 놈들의 여왕도 날 두려워하는데 네 녀석들이 무얼 할 수 있겠느냐!”

   “여왕이 못한다면 왕이 하면 될 일이지.”

   

   허공에 모습을 드러낸 에르기누스는 자연스레 여왕의 곁으로 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쟤 왜 저렇게 자연스러워!?

   

   뭐야?!

   

   너 원래 그렇지 않았잖아!

   

   가짜구나! 진짜 에르기누스가 저럴 리 없어!

   

   <그래! 말도 안 된다! 어찌 그 동정놈이 저딴 짓을 한단 말이냐!>

   ‘동… 설마!’

   

   에르기누스는 날 보곤 보란 듯 웃음을 지어 보였다.

   

   설마 승자의 웃음이냐! 그런 것치고는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는데!?

   

   “위대한 대마법사이며 어둠의 신 된자여. 분명 당신이 개입한다면 이 일은 쉬이 해결될 테죠. 허나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저희 사이의 균형이 무너질 텐데요?”

   “악신의 지식을 얻었나.”

   “그런 계약이었으니까요.”

   

   왕이 보란 듯 웃자 에르기누스도 거기에 맞춰 웃음을 지었다.

   

   “균형이란 건 말이야. 더하는 것으로 맞출 수도 있지만 더는 것으로 맞출 수도 있어.”

   “예. 추라는 건 그런 것이니까요. 그래서 무얼 더실 겁니까?”

   “이미 덜어뒀다. 위대하신 주신께서.”

   

   주신? 허접 주신? 걔 이름이 왜 나와?

   

   *

   

   “카리아. 당신이라면 알겠죠. 국왕께서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단 걸.”

   “그래. 당연히 알고 있었지. 몸의 병 때문에 수도 없이 죽을 위기를 넘긴 인간이잖아.”

   

   국왕은 본래 왕이 될 수 없으리라 여겨진 사내다.

   

   태어났을 적부터 연약했던 몸은 무수한 질병을 끌어들였고 왕족의 피를 지닌 자로서 온갖 치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몇 번이나 죽을 위기를 넘겨야했다.

   

   그는 겉으로는 언제나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죽음의 위협에 쫓겨 다니고 있었다.

   

   카리아는 이를 알고 있었지만 심각하게 여기진 않았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본능이기도 하고, 근본적으로 국왕은 나라를 평안으로 이끄는 훌륭한 지도자였으니까.

   

   “내가 잘못 판단 내렸다고?”

   “예.”

   “그럴 리가 없어. 난 분명 상대의 생각을 모두.”

   “하나의 감정이 짙을 때 그 곁가지까지 모두 읽을 수 있습니까?”

   “당연하지.”

   “그게 정열적인 사랑이라도?”

   

   가능하다며 고갤 끄덕이려던 카리아는 잠시 멈칫하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물론 집중해서 본다면 그것도 구분할 수 있어.

   

   그렇지만 내게 있어 국왕과 왕비는 감시 대상이 아니라 지켜야 할 상대였어. 그 정도로 세세하게 볼 일은 존재치 않아.

   

   “그렇죠?”

   “인정할게. 내가 실수했단 걸. 그러니까 애초부터 국왕은 이럴 계획이었다는 거잖아.”

   “생각해보십시오. 오래 전에 부서져 밑바닥에 처박힌 저 같은 인형을 단순히 우연으로 찾아낼 수 있을까요?”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악의 일부였나.”

   “그렇습니다. 폐하께선 언제나 죽음을 피하고자 하셨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의 노력은 국왕의 자리에 올라 에르기누스가 남긴 유산에 대해 이해하게 된 후 개화했다. 악신에게 닿는 방법을 손에 넣음으로서 말이다.

   

   끝을 다루는 권능. 누군가에게 끝을 내릴 수도 있고 누군가의 끝을 무수히 유예시킬 수도 있는 힘.

   

   국왕은 그 힘에 다가섰다. 자신이 그걸 다루기 위해 온갖 계획을 세웠다.

   

   “…잠깐. 야. 미친년. 그 말이 사실이라면 국왕은 나라에 전혀 안 어울리는 인물 아냐?”

   “예. 그럴 겁니다. 솔직히 말해 파트란 왕국을 위해서라면 당장 쳐죽여버러야할 쓰레기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왜 그 놈 말을 따르는 건데! 넌 왕국밖에 모르는 미친년이잖아!”

   “카리아. 전 인간의 마음 없이 만들어진 인형입니다. 주어진 규율만을 따르게 설계된 존재죠. 태어났을 때부터 감정을 지녀 어느새 무뎌져버린 당신들과는 다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감정을 지닌다.

   

   그렇기에 무뎌진다. 싫다는 감정도. 좋다는 감정도. 최초에 비할 수 없이 감흥이 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최초를 잊어버린다.

   

   허나 1왕비는, 감시자는, 인형은 아니었다. 그녀는 마음의 고동을 자각한 순간을 여전히 기억했다.

   

   “인간의 마음이란 실로 귀찮고, 귀찮기에 아름답습니다. 외면하고 얼버무리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국왕을 가로막지 못했다.

   

   또한 잘못되었다는 걸 알기에, 그의 행동이 나라를 망친다는 걸 알기에 막아야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전 기꺼이 자신을 내던졌습니다. 운명이 모든 걸 결정지어주길 바라며.”

   “너무 막무가내잖아. 이 쓰레기년아.”

   “막 그렇지도 않답니다? 최악의 경우에도 왕국을 이끌 지도자들이 여기에 있으니까요.”

   

   그제서야 공작들은 자신들이 이 곳에 갇히게 된 이유가 전력의 차단임과 동시에 훗날의 안배라는 걸 이해했다.

   

   “결국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인가.”

   

   파트란 공작은 실없이 웃으며 어둠에 기도를 올렸다. 자신이 아는 가장 위대한 신을 향해.

   

   *

   

   지금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허접 주신이 갑작스레 언급된 탓에 고갤 갸웃거리고 있으려니 뒤편에서 친구들이 도착했다.

   

   프레이에게 업히고 있었던 페이비는 조심스레 바닥에 착지하더니 얼굴을 살짝 붉히고 앞으로 나섰다.

   

   “어느 순간부터 주신의 따스함이 약해지셨다 생각했는데 이를 위한 안배였습니까.”

   

   아! 그런거야!?

   

   그렇게 말 많고 참견 많은데다가 나대길 좋아하는 개허접관종주신이 여태 조용한 데에 이유가 있었던 거구나!

   

   난 또 병신 아그라한테 처발려서 찌그러진 줄 알았지 뭐야!

   

   “그렇습니다. 주신의 성녀여. 다만 제가 저 자를 쓰러트릴 수준은 아닙니다. 그랬다면 이미 제가 저 자의 목을 날려버렸을 테니.”

   

   에르기누스의 말에는 자그마한 허풍도 없다. 인간의 몸으로 신에게 대적한 마법사가 신의 권능마저 습득한 것이다.

   

   그가 마음을 먹고 힘을 휘두른다면 국왕 같은 잡몹 따위 일순에 사라지겠지.

   

   “그렇다 한들 안심하진 마라. 국왕이여. 이 균형은 어디까지나 신들의 것. 그대의 운명은 아무래도 좋은 물건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단적으로 말하마. 내 제안에 응하지 않으면 네 놈은 죽는다. 괜한 수작질을 해도 죽는다. 악신에 기대어 이 상황에서 빠져나가려 해도 죽는다.

   

   내가 여태 쌓아 올린 마법에 걸고 맹세하마. 무슨 일이 있어도 죽여주겠다. 설령 아그라에게 추를 넘겨주는 한이 있더라도.”

   

   말라비틀어진 국왕의 몸이 떨린다. 신의 권능을 빌린 채이기에 이해한 것이다. 자신이 죽음의 운명에서 빠져나갈 수 없단 걸.

   

   “허나 이래서야 불공평하지. 그러니 난 감독관의 역할을 맡으마.”

   

   감독관? 갑자기 뭔.

   

   “사회성부족의 찐따님. 이해할 수 있게 말씀해주시겠어요?”

   “에르기누스님! 앞 글자가 사라졌어요!”

   “…그. 그걸 굳이 언급해야합니까.”

   “그럼요! 저희의 결실이라고요!”

   “아니. 그. 크흠! 쉬이 말해서 이 곳에 있는 자들은 신의 대리인이 되는 것이다! 악신의 대표와 선신의 대표로 대결을 하는 게야!”

   

   악신 아그라의 사도와. 주신 아르마디의 사도. 각 신을 대표하는 자들 사이의 대결.

   

   “용사여! 세상을 구하기 위해 마왕을 쓰러트려라! 마왕이여! 살아남기 위해 용사를 쓰러트려라!”

   

   어둠의 권능을 지닌 에르기누스가 이 사이에 선 순간 아그라도 아르마디도 움직일 수 없다.

   

   아르마디 쪽으로 추가 기울면 에르기누스가 승부를 끝낼 테고, 아그라 쪽으로 추가 기울면 이 승부 자체가 원점이 될 테니까.

   

   “이 승부에서 벗어나는 건 허락하지 않겠다. 쓰레기.”

   “승부라. 알겠습니다. 그것밖에 없다면 기꺼이 따를 터입니다만 한 가지 생략된 부분이 있군요. 승부의 종목 말입니다.”

   “용사와 마왕이 겨룬다면 그건 하나 뿐이잖나.”

   

   던전.

   

   “어디 그대가 유리할 대로 전장을 꾸며봐라. 마왕.” 

   

   에르기누스가 날 보며 웃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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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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