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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35

        

         

       상상해보라.

       계단을 올라가다가 위에서 또각 소리가 났을 때의 그 심정을.

         

       그들은 관리인이나 경비원과 마주치는 게 아닐까 생각되어서 언제든 다른 비상구의 문을 열고 숨을 준비를 하였다. 은형술이나 은신술이 극에 달하였다거나 은신과 관련된 아티팩트가 있다면 코앞에서도 숨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판단이 행운을 불러왔다.

         

       또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위층에서 내려오기 시작한 것.

       관리인이나 경비원의 것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명확한 하이힐의 소리와 함께 내려오는 그것은 그들이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었으니까.

         

       보기만 해도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은 그 모습.

       기감으로 느꼈을 때 머릿속에 하얗게 되었고, 그것이 꿈틀거리는 수많은 팔을 곳곳에 뻗으며 내려오는 것이 보였을 때는 공포에 질려 본능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성게.

       가시 대신 인간의 팔이 붙어있는 성게!

         

       미치광이 과학자도 만들지 않을 것 같은 저 기괴하기 짝이 없는 존재라니!

         

       [ 정보가, 정보가 틀렸잖아! ]

         

       기세의 흉험함은 요괴를 떠올리게 만들고.

       흉흉한 생김새는 뭇사람을 두려움에 질리게 만드니.

         

       저것은 귀신이었다.

       그것도 앞에 악(惡)이 붙어 마땅한 귀신!

         

       넓은 중국에서도 보기 힘들며, 옛 북한 지역에 있는 장백산(长白山)이 있는 지린성(吉林省)에 가야 코빼기나 볼 수 있을까 싶은 강력한 존재.

         

       그러한 존재가 빌딩에 있다니!

       계단을 마치 제집처럼 누비고 다닌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가?!

         

       [ 한 나라의 수도 한복판에 저딴, 저딴 악귀가 왜 존재해! ]

         

       더 경악스러운 것은 바로 그 귀신이 있는 위치다.

       주술사 박진성의 거처인 이 빌딩이 존재하는 곳은 서울.

         

       대한민국의 수많은 인구가 밀집해 있는 수도!

         

       그런 수도 한복판에 저런 위험물이 존재한다고?

       그냥 귀신조차 GOP를 넘어서지 못하도록 세금을 퍼부어가며 안간힘을 써서 막아내고 있는 이 나라가, 수도 한복판에 저런 귀신을 두는 것을 허락해줬다고?

         

       [ …이건 뭔가 잘못됐다. ]

         

       이해할 수가 없다.

         

       아무리 주술사가 희귀하고 중요한 존재라지만…. 여기까지 허락해줄 수 있다고?

         

       [ 이 나라가 귀신에 대해 가지는 집착을 생각해보면…. 이건 뭔가 잘못됐어. ]

         

       그들은 무지하지 않았다.

       통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비정상적인 집착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앞에 ‘통일’이라는 단어가 붙기 전 대한민국은 포와 전차에 대한 집착이 어마어마한 나라였으며, 북한이 스스로 망하면서 ‘통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된 후에는 귀신에 대한 집착도 어마어마하게 강해졌다.

         

       어쩌면 그것은 포와 전차의 연장선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옛적 화약이 그들에게 손에 들렸을 때부터, 귀신은 양기 덩어리인 화포로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던 나라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더 강한 포=더 강한 퇴마’라는 공식이 세워졌을지도 모르지.

         

       물론 그것만으로는 그들의 집착을 충분히 설명할 수는 없다.

       어쩌면 핵을 가질 수 없다는 제약이 그들이 필사적으로 다른 길을 찾게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가지 않은 길로 향했을 때 그러하듯, 그들은 핵을 가진 다른 나라와는 다른 길을 찾게 된 것일지도 모르고.

         

       그렇게 대한민국은 핵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국방력을 가지게 되었다.

       대국인 중국조차도 큰 출혈을 감수해야 할 정도의…. 소국으로서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과도한 수준의 국방력을 말이다.

         

       그리고 그 국방력에 쏟아붓던 돈이, 이제는 귀신에게도 쏟아부어지기 시작했다.

         

       GOP는 귀신을 막는 최전선이 되었고, GP는 귀신을 관측하고 고토를 수복하기 위한 거점이 되었다.

       그리고 귀신에 대한 관측과 더불어 그들의 습성과 행동양식, 그리고 그들을 군사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도 연구에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고.

         

       다행히 큰 성과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는 했지만….

         

       ‘큰일이군.’

         

       이제는 ‘대한민국의 귀신 무기화 계획은 진전이 없으며, 옛 북한과의 경계에서 귀신을 막아내는데 급급하다.’라는 정보조차도 의심해야 할 상황이다.

         

       [ 둘 중 하나겠군. 고려 놈들이 귀신을 제어할 방법을 알아냈거나, 이 주술사가 정부의 눈을 속이고 멋대로 빌딩에서 귀신을 부리고 있거나. ]

         

       전자라면 중국의 국방계획을 뜯어고쳐야 할 수준이고.

       후자라면 한국에 저런 귀신을 부릴 정도의 주술사가 출현했다는 사실에 경악해야 할 것이다.

         

       그나마 둘 중 하나를 고르자면 후자가 낫겠지.

       전자는 국가 단위고, 후자는 개인이니까.

       개인은 회유가 가능할 테니 어쩌면 최악은 아니다.

         

       어쩌면 호재가 될 수도 있으리라.

         

       공산당은 능력 있는 주술사를 끌어들이기 위해 천금(千金)을 아끼지 않을 것이요, 만 가지 보물(萬寶)을 안겨줄 테니까 말이다. 어쩌면 옛적 중화가 그러했듯 벼슬과 권력을 쥐여줄 수도 있겠지.

       주술사의 목적을 이루는 데 도움을 주겠다는 것으로 회유를 할 수도 있을 테고….

         

       그래…. 나쁜 일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저런 귀신을 부릴 수 있는 존재가 중국에 들어온다는 것은 확실히 좋은 일이었다.

       저 주술사를 필두로 내세워서 북한 지역을 그들이 먹을 수도 있지 않은가.

       명분이야 뭐 만들면 그만.

       북한이 살아있을 적 그들에게 빌렸던 채무가 어디 한둘이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채무에 이권도 넘겨주고 장백산 일부까지 그들에게 팔아치울 정도이지 않았던가.

       민족의 영산이라고 지껄이던 곳까지 팔아넘길 수준이었으니….

       아마 공산당이 조금만 뒤적거려도 명분은 쉽게 찾을 수 있겠지.

         

       그리고 그 명분을 앞세워서 북한 지역을 모두 먹어 치우게 된다면?

       그렇게 된다면 아시아의 질서는 다시 중국으로 향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옛적 아시아 지역이 그러하였듯, 천명이 중화의 손에 다시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무릇 중원(中原)은 세상의 중심이요.

       세상의 중심이니 중화(中華)라.

         

       천명이 손에 들어온다면 무엇이 두려우랴?

       북적, 서융, 동이, 남만이 모두 그들을 두려워하고 존경할 것이다.

         

       무릇 중심이란 가정 안정적이면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니.

       국가가 되었든 개인이 되었든 그 이치는 변함이 없으리라.

         

       어쩌면 그 이치는 거대한 것과 작은 것이 다르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니.

       우주라는 것이 그 크고 작음에 구별되지 아니하는 것이요.

       사람의 몸은 소우주이니.

       우주가 닮았으니 세상 만물이 중심을 바로 세워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무공 또한 그와 마찬가지.

       몸의 중심은 단전이요, 그 중심을.

         

       “자. 여기까지.”

         

       중…심…을.

         

         

         

        * * *

         

         

         

       생각이란 바다다.

       생각이란 늪이다.

       생각이란 개활지이며, 감옥이다.

         

       생각에는 정해진 형태가 없으며 그 효과 역시 천차만별이라.

         

       그러하다면 생각을 규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하게 만드는 기관은 무엇인가?

         

       옛적 사람들은 심장이 생각하게 만든다고 여기기도 하였다.

       옛적 사람들은 영혼이 생각하게 만든다고 여기기도 하였다.

       어떤 곳에서는 몸 안에 있는 벌레가 생각의 주체라 여기기도 하였고, 어떤 곳에서는 아주 작은 하얀 쥐가 생각하게 만든다고 여기기도 하였다.

       몸 안에 아주 작은 사람이 있어 그것이 생각하게 만든다고 여기기도 하였지.

         

       하지만 이제는 모두가 안다.

         

       사람은 뇌로 생각을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말이다.

         

       그 ‘생각’을 조금 도와준다면 어떻게 될까?

         

       뇌가 생각을 더 깊게 할 수 있도록, 정신을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 어떨까?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상념을 더 구체적으로 만들고, 화두에 끊임없이 파고들게 만들고, 깨달음을 도와준다면 어떨까?

         

       그렇게 이득을 안겨준다면.

       형상이 없는 생각을 더 또렷하게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어떻게 될까?

         

       “평소 명상을 잘하지 아니하고 정신을 가다듬고 키우는 데에 집중하지 아니한다면 이렇게 되는 것이라. 그러하니 정기신의 조화가 중요한 것이요, 육체와 정신과 영혼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 답은 눈앞에 있다.

         

       생각에 잡아먹혀 버린 불쌍한 자들.

       두 무인은 머릿속에 수없이 떠오르는 생각에 휩쓸리고, 그 생각에 파묻혀서 정보를 정리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기감을 켜놓았으나 그 기감이 보내오는 정보를 정리하지 못하였고, 머릿속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쓸데없는 생각들을 제어하지 못한 채 거기에 휩쓸렸다.

         

       마치 재미있는 생각을 하다가 중요한 수업 내용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점점 깊어져서 외부의 자극에 점점 둔감하게 되었고, 종국에는 그들의 근처에서 일어나는 기묘한 현상조차도 눈치채지 못하게 되었다.

         

       보아라.

       저 두 무인을.

         

       생각에 잠겨있다가 결국에는 제압당한 저 두 무인을.

         

       벽에 수많은 벌레가 꼬이고, 그것들이 층층이 쌓여가며 사람의 얼굴 형태를 이루고, 그 얼굴이 허공을 둥둥 떠서 그들에게 닿을 때까지도 인지하지 못했음이니.

       이것이 어찌 감각이 뛰어난 무인이라 할 수 있겠느냐?

         

       이것이 바로 정신의 중요성이다.

         

       평소 명상으로 정신을 관조하지 못하였으니 이상함을 눈치를 채지 못했고.

       정신을 다스리는 법을 몰랐으니 다스려야 할 정신에 휩쓸려 제대로 끊어내지도 못하였다.

         

       이상함을 눈치채었다면.

       갑자기 수많은 상념이 떠오르고, 깨달음이 그들에게 다가오는 이상한 현상에 위화감을 느꼈다면.

         

       그랬다면 이렇게 쉬이 붙잡히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독과 약은 한 몸이라. 어설픈 대책을 세우고, 정신을 등한시하기까지 하였으니 이렇게 되는 것이지….”

         

       만약 그랬다면 깨달음을 얻는 데 도움을 주는 약을 흩뿌려서 그들의 발목을 붙잡은 이 함정에 대해 눈치를 채었을 것이고.

       약이 독이 될 수 있다는 간단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텐데.

       그렇다면 탈출을 시도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물론 탈출하지는 못했겠지만.

         

       “자아. 지하로 가자. 꽃을 피우러 가자….”

         

       가자.

       너희가 만나고 싶었던 박진성의 손에 이끌려.

       지하로 같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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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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