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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35

   국왕은 에르기누스가 내놓은 제안을 기이하다고 생각했다.

   

   서로 간의 전력은 상성이란 걸 고려하더라도 국왕 쪽에 좀 더 유리하다.

   

   악신의 권능을 손에 넣으며 육체의 결여라는 마지막 단점마저 극복한 그다.

   

   빛나는 재능 다섯이 자신을 상대한다 한들 패할 리 없다.

   

   설령 주신의 사도가 일으키는 기적이 있으니 확신을 할 순 없지만 그가 유리하단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헌데 이 상황에서 에르기누스는 그에게 던전을 마음대로 만들어보라고 제안했다.

   

   그에게 직접 성을 만들어서 숨어보라고 말했단 말이다. 공성과 수성의 유불리는 바보가 아니라면 누구나 알 정도로 명백하다.

   

   어둠의 권능을 얻은 에르기누스가 전력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할리도 없고 성을 만든다는 것의 유리를 모를리도 없는데 왜 먼저 이런 제안을 하는가.

   

   어째서 그가 국왕에게 유리를 선물하는가. 도대체 무슨 꿍꿍이를 품은 것인가.

   

   고민하고 또 고민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국왕으로선 그 이유를 떠올릴 수가 없었다.

   

   설마 루시 알른이 지녔다는 던전에 관한 권능을 믿는 건가?

   

   악신의 권능으로 주신의 권능을 상쇄할 수 있는 상황에 진정 권능만을 믿었단 말인가?

   

   에르기누스라는 영웅이, 어둠의 권능을 얻은 신이 그 정도를 고려하지 못했다고?

   

   말도 안 돼. 무언가.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어. 내가 예상하지 못한 무언가가.

   

   “쫄았어?♡ 혼자선 방구석에 숨는 것도 못 하는 거야?♡”

   “하지.”

   

   하. 에르기누스가 믿는 것이 무엇이건 상관없다.

   

   적 측에서 먼저 성을 만들라고 제시해주지 않았나.

   

   무슨 변수를 믿고 있건 간에 박살을 내버리면 그만이다.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건 간에 의미가 없을 정도로 극악한 장소를 만들어 내면 돼.

   

   “하지요. 에르기누스님.”

   

   던전제작은 왕국남자들의 유희이며 교양이다.

   

   나 또한 당연히 던전제작에 몰두했지.

   

   아니, 오히려 나이기에 던전제작에 몰두했다.

   

   검을 붙잡고 휘두르는 기사들의 유희에 참여할 수 없기에 이런 부분에서라도 권위를 높이려 최선을 다했다.

   

   그러니 어찌하면 극악한 던전이 만들어질 수 있는지 아주 잘 알아.

   

   “다만 한 가지 약속해주십시오. 저희들의 대결이 오롯이 저희의 것으로 끝날 것임을.”

   “걱정마라. 그 또한 제약 중 하나이니.”

   

   타인의 도움마저도 균형을 무너트릴 무언가란 이야기에 국왕이 웃음을 지었다.

   

   *

   

   자신의 던전을 만들기 위해 국왕이 떠나간 후 르네는 콧노래를 부르는 루시 알른을 가만 바라봤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던전에 한해서라면 비정상적인 능력을 선보이는 루시 알른이라면 무슨 시련을 준비하더라도 기꺼이 넘어서 보이겠지.

   

   에르기누스님께서도 이를 알기에 상대에게 유리를 내어주면서까지 던전이란 업을 택한 것일테고.

   

   허나 정말 이게 옳은 일일까?

   

   이건 우리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 아니잖나.

   

   우리를 죽이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건 할 적에게 기꺼이 무기를 내밀어 준 것이나 다름없는 일일터.

   

   합리를 내던진 곳에서도 루시 알른의 능력이 가감 없이 발휘될까?

   

   “무얼 그리 고민하십니까.”

   

   아서의 물음에 르네가 어깨를 으쓱였다.

   

   “상대에게 죽여달라고 목을 내민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잖나.”

   “그렇게 보이십니까?”

   “아닌가?”

   “전혀요. 제 입장에선 상대가 제발 자신을 죽여달라고 한 것처럼 보입니다. 상대는 루시 알른이니까요.”

   

   르네는 아서의 굳건한 믿음이 의아했다.

   

   악신의 권능을 지닌 자의 앞에 선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끔찍한 일이었다.

   

   그의 정신은 빠르게 무너져내렸고, 자해하는 것이 최선의 수단이라 굳게 믿게 됐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르네는 자신이 얼마나 멍청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서가 이 두려움을 모르진 않을 거다. 그는 악신의 권능을 빌린 자 따위가 아니라 어둠의 악신을 직접 마주한 영웅이니까.

   

   “두렵지 않으냐?”

   “이보다 더한 것도 겪어봐서 그런가 괜찮습니다.”

   “어찌 그럴 수 있느냐.”

   “아. 형님은 모르시겠군요. 루시 알른 저 녀석과 함께 지옥에 뛰어든 적이 없으시니.”

   

   너무 자기 기준으로 이야기했다며 웃은 아서는 자신이 생각하는 여러 위험을 늘어놓는 루시 알른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저 녀석은 작습니다. 어린 아이에게 친구 취급을 당할 정도죠. 몸은 어찌나 가녀린지 바람이 강한 날이면 날아가버릴 것 같습니다. 헌데 말입니다. 이상하게도 저 녀석이 방패를 든 채 맨 앞에 서 있으면 믿음이 생깁니다. 루시 알른이 맨 앞에 서 있는 한 저희가 패할 리 없단 근거 없는 믿음이 말이죠.”

   

   아서의 미소를 본 르네는 열렸던 입을 다물고 가만 루시의 주변을 살폈다.

   

   인자한 웃음과 함께 루시의 설명을 듣는 성녀를.

   

   오만상을 찌푸리며 도대체 왜 그렇게 되는 것이냐 되묻는 파트란의 영애를.

   

   들을 생각도 않고 허공에다 검을 휘두르고 있는 켄트의 영애를.

   

   “루시 알른이 용사라면 너희들은 용사의 동료들인가.”

   “저 녀석이 용사요? 그게 말이 됩니까?”

   “주신의 사도인 것은 말이 되고?”

   “…이러다 루시 알른이 숭배받기 시작하면 큰 일이 나는 거 아닙니까?”

   “그거 재밌겠군. 교회의 사제가 그녀의 어투를 따라하는 걸 생각해보니 유쾌해.”

   

   근엄한 노인이 단상에 서선 헛기침을 하며 허접~허접~이라 말하는 광경을 상상한 두 사람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무능왕자님. 바보검사보다 나은 게 머리밖에 없으면서 왜 게으름을 피워요? 그렇게나 머저리가 되고 싶으신 건가요?”

   “다 듣고 있었다.”

   “증명해보세요. 못하면. 알죠?”

   

   저들의 사이에서 열불을 내는 아서의 모습에 르네는 애써 웃음을 지었다.

   

   *

   

   국왕은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대신 우리를 초대하기 위한 문을 보냈다.

   

   직접 던전의 문을 열고서 들어오란 거냐.

   

   재밌네. 현장감이 있고 좋아.

   

   뭘 준비해뒀으려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함정이 쏟아지는 치졸한 짓을 해뒀을까?

   

   여느 때처럼 내가 맨 먼저 발을 들인 순간 바닥이 무너져내렸다.

   

   그렇게 드러난 벽들 사이에서 온갖 함정들이 쏟아져나온다.

   

   마법이. 저주가. 화살이. 독이. 침입자를 죽이기 위한 온갖 것들이 말이다.

   

   뒤이어 떨어지는 친구들을 보며 내가 느낀 감정은 기대였다.

   

   잘 준비해뒀네. 어설프게 피하려들다간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도록 설계를 해뒀어.

   

   근데 말야.

   

   이걸로 끝은 아니겠지?

   

   이건 그냥 전초전에 불과하잖아.

   

   국왕 너도 우리가 이 정도로 쓰러질 거라 예상하진 않았을 거야.

   

   상처 하나 둘 입으면 좋겠다 수준이겠지.

   

   진짜는 이 아래에 도달하고 나서. 그렇지?

   

   “예상했던 대로네요.”

   “프레이 켄트.”

   “알겠어.”

   

   프레이가 주변으로 자신의 검을 휘두르자 벽과 함께 모든 함정들이 베어나간다. 이미 쏘아졌던 것들이라 하여 다를 건 없다.

   

   그렇게 상처 하나 없이 바닥에 착지한 우리들을 맞이해준 것은 높다란 성이었다.

   

   수없이 많은 궁수와 마법사들이 난간에 서서 우리를 노리고 있고, 주변에 늘어선 병사들은 창을 치켜든 채 우리를 수로 찍어누르려 든다.

   

   위로 올라가기 위한 계단은 가운데의 하나뿐인데 그건 길고도 길어서 올라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공격을 감당해야 할 게 훤하다.

   

   그리고 높다란 천장 아래의 허공에 국왕이 서 있다.

   

   말라비틀어진 몸에 비해 커서 나풀거리는 왕의 복장을 입은 채 우리를 내려다 보며 웃는다.

   

   아마 중간중간에 자신의 힘으로 개입을 할 생각인 거겠지.

   

   “이건 루시 알른 네가 말한 어떤 것과도 다르구나.”

   “이게 던전 맞나요? 전쟁에 더 가까운 것 같은데요.”

   “그러게. 위험해보여서 찌릿찌릿거려.”

   

   말하자면 이건 토벌이다.

   

   위험한 마물을 상대할 때 군이 나타나 사냥을 하는 것처럼, 이 성의 병사들은 국왕의 명에 따라 우리를 사냥하려 하는 거다.

   

   <효율적이지만, 그와 동시에 치졸하군. 이딴 게 무슨 던전이더냐.>

   

   할아버지의 짜증을 들은 순간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샜다.

   

   ‘왜요? 이 정도면 훌륭한 던전이죠.’

   

   던전의 정의가 무어냐고 묻는다면 저마다 대답이 다를 거다.

   

   그치만 공통점은 존재한다.

   

   적이 우글거리고, 함정이 널려있는데다, 위험천만한 보스가 존재하고, 그 끝에 도달하면 보수를 얻을 수 있는 곳.

   

   여긴 정의에 부합하는 훌륭한 던전이다.

   

   우리가 상대하는 적이 국왕이란 걸 생각해보면 컨셉도 마음에 든다.

   

   왕이 언제부터 전면에서 싸우는 존재였나.

   

   왕은 권력자다. 수많은 군세를 지닌 이다. 높은 곳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오만함을 드러내야만 하는 자다.

   

   보라. 이보다 더 왕의 던전에 부합하는 장소가 어디에 있는가.

   

   “영애님. 지시를.”

   

   페이비의 말을 듣고서 주변을 살핀다.

   

   우리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창병들을.

   

   그 뒤에서 기회를 노리는 기사들을.

   

   지시가 내려지는 순간 우리를 고슴도치로 만들어버릴 궁병들을.

   

   아군이 박살나는 한이 있어도 우리를 죽이기 위해 마법을 사용할 마법사들을.

   

   “꿀꿀이의 우리치고는 너무 멋진 곳이네. 벽돌을 쌓느라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고생했겠지.”

   

   상대가 멋진 장소를 준비해줬으니 이 쪽도 거기에 맞춰 멋진 걸 보여주는 게 맞겠지.

   

   자아. 죽는 게 너무너무 무서워서 벽돌성에 틀어박힌 아기 꿀꿀이님. 당신의 성이 부서지는 광경을 보여드릴게요.

   

   저는 멍청한 늑대가 아니라서요. 성을 후 불어서 무너트린다거나 발톱으로 부순다거나 하는 짓은 안 한답니다.

   

   성을 부수기 위해 제일 효율적인 건.

   

   “얼빵아. 호구왕자님한테 뜯어낸 거 기억하지?”

   “지금 사용하면 효율적일 것 같긴 하네요.”

   

   폭발이지.

   

   “허접새끼들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게 열받거든? 주제에 맞는 위치까지 떨어트려.”

   “페이비. 마력의 지원을.”

   “기꺼이.”

   

   조이가 품 안에 있던 보석을 던지며 검지의 반지에 마력을 불어넣자 바닥에 떨어져야 할 보석들이 허공에 박제된다.

   

   그리고 보석을 기점으로 마법진이 그려진다.

   

   “불꽃놀이를 시작하겠습니다.”

   

   수없이 많은 마법진에서 불꽃이 피어올라 난간을 터트린다.

   

   얼마는 요격되고, 얼마는 마법사에 의해 가로막히고, 얼마는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지만 뭐 어떤가.

   

   보석에 기록된 막대한 마력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의 개수가 수백에 가까운데 말이다.

   

   압도적인 화력 앞에서 몇 개의 난간이 무너져 내린다.

   

   그에 따라 지상에 머물던 규율이 혼란으로 바뀌는 순간 국왕과 나의 시선이 맞닿았다.

   

   아무래도 처음은 내 승리인 모양이네. 멍청한 꿀꿀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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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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